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68화 (68/307)

# 68

& 함락 (3)

코다로는 웃으며 피의 길을 열었다.

요새들은 계속 함락되었고,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서 해방되는 드워프 들이 늘어났다.

다른 쪽에서는 세인이 진격 중이었다.

비비안은 뒤에서 그들의 진격을 조절하며 포로를 수용했다.

이제 세계수 곳곳에서 벌어진 행군은, 은밀하게 벌어지지 않았다.

보란 듯이 진격을 알리는 깃발을 휘날리며 남으로 북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몬스터들을 처치하기 위해 혈안이 된 군인들이었다.

그중 드워프들은 새들이 날아오를 정도로 크게 진군가를 불렀다.

「북을 울려라.

둥둥둥

북을 울려라-.

귓속에 있는 북을 울려라-.」

커다란 메이스를 메고 걷는 그들은 떠들썩했다.

수레가 진창길에 빠지고 바퀴가 요절날 때, 술에 취한 한 드워프는 수레 위에서 껄껄 대다 사례가 들렸다.

「둥둥둥

쾅쾅쾅

하늘에서 울리는 북은, 신이 치는 북.

둥둥둥

쿵쿵쿵

대지에서 울리는 북은, 달리는 소들이 울리는 북.

둥둥둥

펑펑펑

우리가 울리는 북은, 상대 귀에 울리는 북.

북을 울려라.

북을 울려라-.」

걸걸한 외침들이 절벽에 나 있는 작은 길을 타고 지나간다.

협소한 길의 옆은 낭떠러지였다.

그러나 기죽지 않는 드워프들은 나팔을 불며 전진했다.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면서 말이다.

「말을 보면 다리가 네 개지.

서는 게 겁나 다리를 두개 늘렸지만, 남을 태우고 다니네.

도재를 보면 다리가 네 개지.

서는 게 겁나 다리를 두개 늘렸지만, 남에게 잡아먹힌다네.

다리 두 개로 설 용기가 없으면 지배당하는 법.

둥둥 북을 울려라.

둥둥둥

상대의 귓방망이를 울려라-.

내가 너의 머리를 후려갈기면 둥둥둥.

네 머리에 천둥이 치고 난 신이 되고.

네 머리에 지진이 나고 난 황소가 되고.

넌 쓰러지고 난 두 다리로 선 자가 된다.」

그때 옆으로 침을 퉤! 하고 뱉은 드워프가 이렇게 외쳤다.

“가자! 머리에 북을 울리러 가자!”

그러자 모두가 외쳤다.

“가자! 어서 가서 북을 울리자!”

*  *  *

어느 날 밤.

절벽의 중앙에 세워진 몬스터들의 요새가 공격받는 일이 벌어졌다.

절벽에 돌출된 상태로 튀어나와 있는 공간은, 위에서 굴러떨어지는 바위에 일차적으로 파괴당했다.

그 돌들 사이에는 위에서 지키던 몬스터의 사체도 뒤섞여 있었다.

무너져내리는 집들 사이로 굵은 덩굴이 드리워졌다.

그걸 타고 아래로 내려오는 자들은 도끼와 방패를 든 드워프 들이었다.

그들은 땅에 착지하자마자 고함을 지르면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에게 덮쳐 갔다.

이렇게 용맹한 종족이 왜 포로가 되어 학대받았는지가 의문일 정도로, 그들은 잘 싸웠다.

사실 드워프들의 부족한 부분은 다른 종족들이 철저히 보완해주고 있었다.

다크 엘프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적들을 교란했고 거짓 정보를 흘려 전황을 도왔다. 인간들은 드워프들의 저돌적인 면에 제동을 걸다가도, 필요하면 기꺼이 모루가 되어 주었다.

반대쪽에서 공격해 오는 번우드의 주민들이 모루가 되면, 드워프들은 망치로 변해 목숨을 도외시하고 덤벼들었다.

그러면 중앙에 낀 몬스터들만 박살이 나는 것이었다.

잔혹한 살육이 벌어졌고, 드워프들은 속속 구출되었다.

완전히 대세가 기울자, 피에 젖은 드워프들과 인간들이 항복하라고 외치고 다녔다.

이 마당에 전투를 더 길게 끌면, 이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끝까지 덤벼든 놈들은 악착같이 죽였다.

쿵!

나무통 위에 몬스터의 머리를 처박은 울프크릭이 으르렁거리며 상대를 협박했다.

“두 번 묻지 않겠다.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는 어디 있지?”

그러나 몬스터는 거칠게 고개를 뒤흔들 뿐이었다.

결국, 도끼가 번쩍 쳐들리고 번개처럼 아래로 움직였다.

솟구친 몬스터의 머리가 빙글빙글 돌며 꿇어 앉혀진 몬스터들의 발치로 떨어질 때, 크릭이 외쳤다.

“밤새도록 해줄까? 우리가 그러길 바라냐?”

결국, 절벽의 요새에서 아래로 통하는 길을 알아낸 그들은 지하에 숨겨진 도시를 급습했다.

지하에는 많은 마법 생물들이 있었다.

그들의 저항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세인이 나섰다.

그는 공포스러운 힘을 십분 발휘하며, 선두가 되어 전장을 휘저었다.

가로막는 것이 보이면 찢어발겼고 무기가 날아오면 갑옷으로 막아냈다.

그러면서 주먹으로 상대를 박살 내는 데, 적들의 저항은 결코 길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마법 생물들을 죽이고 나면 전리품은 모두를 강하게 하는 데에 쓰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식량.

도구와 여러 자원은 동맹을 맺은 인간, 드워프, 다크 엘프들이 나누어 가졌다.

세인은 몸을 혹사하듯이 전투에 참여했다.

투구를 벗을 시간도 없이 한계에 부딪히는 일상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검의 힘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강한 상대가 나타나면 피하는 게 아니라 몸을 던져가며 싸우는 식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은 무엇보다도 적을 질리게 했으며, 아군의 사기를 높여 주었다.

파죽지세로 전진하던 그들은 수십 개의 요새를 박살 내고 승전고를 울리게 된다.

그들이 그 과정에서 얻은 전리품은 물건들뿐만이 아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드워프들을 수용했던 곳에, 이제는 괴물들이 갇히게 되었다.

아무리 전체 중 일부만 남았고 코다로가 닥치는 대로 죽였어도, 대륙을 공략하고자 하는 군세의 부분이었다.

당연히 그 숫자가 엄청났다.

이놈들을 두고 어떻게 할 것인가도 고민거리였다.

“다 죽여야죠.”

테이블에 앉은 코다로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들이 잡아넣고 있는 괴물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대륙의 괴물들에 비해 물 같은 놈들이라 해도, 이런 놈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복병이 된다.

“드워프들도 죽이는 것을 원합니다. 우리에게 진 신세가 있으니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들과 손잡기로 했으면 처치하는 게 좋죠. 게다가 괴물 놈들을 유지 관리하는데 들어갈 노력은요? 그걸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옵니다.”

그러면서 코다로는 세인을 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뜻이다.

세인은 테이블 위의 지도와 보고서들을 뒤적였다.

그리고 괴물들의 숫자를 대략 잡은 문서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우리의 본진이 됩니다. 물리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게 될 겁니다. 여기만 든든하면 눈의 허리띠 너머에서 설령 패하더라도 겁을 낼 필요가 없어요. 여기가 있으니까요. 돌아올 곳이 있고, 지원하는 요새가 되니까. 굳이 그런 곳에 불안요소를 남겨둘 이유는 없습니다.”

이제 남자 둘은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그녀만 동의한다면 저 괴물들을 모조리 끝장낼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비비안은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세인과 코다로는 그녀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었다.

‘두 분은 괴물들을 증오하고 있구나.’

비비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거기에 자신도 동의했다.

왜 아니겠는가?

훗날 역사가들이 지금의 결정을 보면 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이들에게는 괴물은 증오 그 자체였다.

그냥 놔뒀다간 그 역사가들이 다룰 역사도 없어질 판이다.

그들이 땅과 인간을 유린하는 것을 보고 나면 도저히 살려둘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생태계의 사슬이라는 관계는 이미 예전에 넘어서 버렸다.

그들은 생태계 일부분이 아니라, 생태계 자체를 위협한다.

그런데도 비비안은 망설였다.

그녀는 상상을 해봤다.

들과 산을 가득 메운 시체.

눈과 입을 벌리고 무기력하게 죽어있는 시체의 강.

“학살….”

전쟁 중에 일어나는 일방적인 죽음이 아니라.

이미 갇힌 죄수들을 학살하는 일이다.

저항할 수 없고, 이미 무기력한 존재들을 일방적으로 죽여 없애는 일이었다.

처형, 그리고 처형.

물고기 떼가 산을 이루며 죽어 있는 것만 봐도 충격적인데….

피라미 떼가 강변에 띠를 이루며 죽어 있는 것만 봐도, 인간으로서 숙연해 지는데….

하지만 그들은 괴물이잖아?

왜지?

그들은 끔찍한 존재들인데 왜 망설임이 들지?

비비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뇌했다.

시간이 계속 지나자 세인과 코다로는 서로 눈을 맞추더니 서류들을 뒤적이며 딴청을 계속했다.

비비안의 입이 열린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저는… 반대합니다. 그들을 노예로 두고 싶어요. 그리고 그게 더 오래 고통을 주는 일이에요. 여기는 넓고 일손이 아주 많이 필요해요. 그들을 완전히 복종시킬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부릴 수는 있을 겁니다.”

코다로는 반대하기 위해 입을 벌리려다가 멈추었다.

비비안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치열한 전쟁 도중에는 학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 중이니까요. 저는 그들을 증오합니다. 저도 뼛속 깊이 그래요. 왜 아니겠어요? 저도 저주해요. 치가 떨려요.”

소녀는 자신의 손을 맞잡았다.

그 하얀 손이 서로 힘을 주는지, 더욱 하얗게 변하며 뼈 부위가 도드라졌다.

“지금이라도 산채로 태워 죽이고 싶어요. 그들에게 저는 엄청난 고통을 당했습니다. 제 밑의 사람들이 형용할 수 없는 방법으로 유린당했어요.”

“….”

“하지만 그들을 가둔 상태로 이마에 정을 내리치고, 또다시 내리친다면…. 다음 죽음을 기다리는 괴물은 그걸 멍한 눈으로 지켜보겠죠. 정을 내리치는 인간도 그런 작업에 점점 무덤덤해지고…. 우리가 그래야 할까요. 그런 명령을 내려야 할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결심이 정리되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떨림을 멈추었다.

그리고 또렷한 눈동자로 자기 생각을 피력했다.

“이미 노예처럼 부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선사할 수 있어요. 그것만 해도 충분히 잔인한 일이에요. 그런 지독함은 저도 있습니다. 하지만 줄줄이 엮어서 도살은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옆의 코다로는 한숨을 쉬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비비안이 불안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자 오히려 코다로가 먼저 말했다.

“한 명이라도 반대한다면 그냥 하지 맙시다. 찜찜한 건 싫으니까.”

“당신이 반대한다면 저는 제 뜻만을 고집할 의사는 없습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는 거죠.”

세인의 말까지 들었지만, 비비안은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과연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것일까?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코다로는 오히려 비비안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표정 지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 명의 의견에 휩쓸리는 것보다,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게 지도자의 덕목에 맞는 겁니다.”

“그럼 드워프들에게 부탁해야 하겠군요. 그들에 대한 관리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세인은 괴물들의 상황이 비비안의 상상보다도 아주 지독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드워프들이 괴물들에게 상냥할 리는 없을 테니까.

자리를 파하고 세인과 코다로는 따로 모였다.

밤하늘 아래에서 음료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세인은 차를 마셨고, 코다로는 술병의 마개를 땄다.

어디서 구했는지 큰 유리잔에 와인을 넣고 빙빙 돌리던 코다로를 향해 세인이 말했다.

“이전, 제게 많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셨지만, 사실 비비안님이 그런 분인 거 같습니다.”

“동정과 덕은 이름을 남길 지도자의 필수요건이니까요. 비비안님이 평화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다면 그녀는 훨씬 더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었을 텐데.”

전쟁이 배고픈 짐승처럼 돌아다니는 시대에도 그런 것은 가능하지만 제한적이다.

적장을 사로잡았을 때 그걸 포용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재는 아무 곳에서나 쑥쑥 자라는 것이 아니므로, 힘을 늘리려면 그런 포용력도 있어야만 했다.

그런 그릇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는 어렵고, 보통은 품성으로 타고난다.

적대와 증오를 초월해 사람을 끌어당기는 포용력.

살벌한 세상이든 평화로운 세상이든 그런 것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능이다.

어쩌면 섭정을 했던 그녀의 고모도 그런 비비안의 싹을 미리 알아봤던 게 아닐까.

그래서 걱정을 남기고 떠나간 것일까.

좋은 싹이 봉우리를 틔우기도 전에 사라질까 봐.

“북부인들이 곧잘 하는 상상이었죠. 보다 풍요롭고 안전한 남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거요.”

그렇게 말하며 코다로는 다과를 입에 넣었다.

비비안의 반대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가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주만을 원했다면, 진작에 어디론 가로 떠났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오히려 비비안의 소신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판단과 다르다고 해도 말이다.

세인은 찻잔을 기울이며 코다로의 노래를 들었다.

그가 마신 차는 보리를 끊여 만든 차로, 이걸 마시면 속이 포근해졌다.

그때 멀리에서 검은 개가 짖는 소리와 마플의 투덜거림이 들려온다.

“그만 좀 먹어, 이 먹보야!”

본인과 전혀 상관없는 외침이었는데, 흥얼거리며 다과 그릇을 비우던 코다로의 손이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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