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 세계수 (2)
“이쪽이야.”
“이쪽?”
“아니, 아니 저쪽이라고! 줄 좀 잘 잡아!”
“언제는 이쪽이라며!”
소가 움직이며 밭을 가는데, 그 주변에서 다투는 남자들 목소리마저도 활기에 차 있었다.
이제 뭐라고 불러야만 할까?
국기도 떼어 버렸으니 마족이라고 불러야 할까?
영지민은 다른 인간들의 냉대를 직접 보고 겪으며 마음 안에서 뭔가를 내려놓았다.
고민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막상 화를 내기엔 대상도 모호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고난은 그들의 결속력을 굳게 만들어 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들은 다크 엘프를 따라 세계수의 한쪽 귀퉁이로 안내되었다.
귀퉁이라고 해도 수해가 끝없이 펼쳐진 지역의 귀퉁이였기에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제법 된다.
다크 엘프들은 어지간하면 지평선 너머를 넘어가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말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 거리를 걸으려면 탐험가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대륙 지도상으로 그들의 위치를 말하자면 트리엔의 윗부분이었다.
가이더의 영지에서 출발해 트리엔을 거쳐 미얄로페로 갔다가, 세계수 지역에 들어와 엘프들을 따라 여기로 이동한 셈이다.
이제 영지민 딴에는 왜 세 영주가 여기로 올망정 북의 허리띠 지역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일단 땅이 너무 비옥했다.
기름지고 뭘 심어도 잘 자랄 것만 같은 땅이다.
게다가 색깔도 지역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붉은색, 검은색, 주황색 등등….
열매 같은 것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풀과 나무들은 우거지지 않은 게 없었고 그 무게에 몸 일부분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동물도 그렇고 곤충들도 신기한 게 마구 돌아다닌다.
높고 큰 울창한 나무 위에 올라가 눈썹 위에 손을 올리고 보면 강과 평원 같은 게 보였는데, 얼핏 봐도 평원에 동물들이 떼를 지어서 돌아다니는 게 목격되었다.
“이런 축복받은 환경에 살면서 왜 내려왔던 거야, 못된 몬스터 놈들.”
노인들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무 그늘 속에 앉아 편히 쉬었다.
날씨도 선선하고 겨울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사실은 이곳이 엘프들의 거주구기 때문에, 특히 풍요롭다는 것을 모르는 노인들이었다.
그들이 등을 기댄 나무 뒤, 싱싱한 풀 내음이 언덕 너머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절벽에서 흘러내린 하얀 물줄기가 보이고.
가까이 가면 폭포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폭포의 물줄기는 여러 갈래였고 말이다.
“일단 마음 놓고 잘 곳을 만들자.”
천막도 마음을 비우면 지내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바람과 비를 막아주는 집에 비교할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무를 베고 통나무를 옮겼다.
그리고 오두막들을 지었다.
레인저들은 나무를 자르는 쪽이었고, 용병들은 순찰에서 교대하며 나무를 톱질하고 집을 설계했다.
물을 길어 오는 사람.
우물을 만들겠다고 분주한 사람 등등….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아직 허전하게 공간이 많이 남아있는 터에는 천막들이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수레나 마차들은 중앙에서 버티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두막이 생겨나자, 사람들은 줄을 지어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가 먼저 들어갈 것이냐로 말이 좀 있었다.
그 와중에 당연히 첫 번째로 거론되었던 세인은, 오히려 제비뽑기를 시키고 자신은 마차 안에 들어가 생활을 했다.
“제비뽑기라뇨, 영주님. 너무 운이잖아요.”
책을 읽던 세인은 건성으로 대꾸했다.
“어차피 현명하고 공평하게 진행할 자신이 없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적당히 공평하다는 인상만 주면 돼.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최소한의 형평성은 운이야. 나중에는 어차피 다 집을 갖게 될 텐데. 뭐가 문제야.”
마플은 그 말을 듣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안고 있는 검은 개에게 물었다.
“넌 알아듣겠니?”
개는 그냥 멍, 하고 짖었다.
* * *
여자 레인저들은 오두막 안의 청소며 빨래를 하는 대신, 남자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지도를 만들었다.
늪지대나, 석회동굴, 호수 등을 지나다니며 양피지 위에 기록한다.
그들이 있는 지역은 고도가 높지 않았기에, 아주 가파르고 높은 산이 있다 보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등산가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산은 멀리에 있었다.
대신 신기한 식물이 많았고 다양한 지형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지하 동굴이나, 그 밑으로 깊은 분지 같은 것이 종종 눈에 띈다.
그 속에는 생전 처음 보는 생명체들이 나무 위에 달라붙어 있다가, 뻔뻔한 이방인과 눈을 마주했다.
“이거 식물은 고사하고 이 지역의 독 있는 곤충들 파악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리겠는데.”
그런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농부들은 파종문제로 열심히 입씨름했다.
“이거 신기하게 생겼잖아. 꼭 이걸 심어보고 싶어.”
“그만둬. 일단 밀을 재배해야 해 .”
“그런데, 이 근처에서 면적을 충분히 만들려면 풀을 엄청 뽑아야 하는데 엘프들이 가만히 있을까?”
눈치가 좀 보였지만, 농부들은 과감히 달려들었다.
엘프들은 인간들이 얼마나 바쁠지 잘 아는 건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초창기니까 배려해 주겠다는 걸까?
비비안은 자신의 마차에 있다가 가끔 세인의 마차에 들렸다.
그리고 같이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들의 마차는 높은 지대로 옮겨졌는데, 한쪽이 열린 채 개조된 상태다.
마치 작은 카페처럼 말이다.
수레 한 대에 책이 꽤 많이 쌓여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표정으로 비비안이 말한다.
“그 도서관의 책들이 참 아쉽네요. 그렇죠?”
“어쩔 수 없죠. 다 챙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가이더와 다른 따뜻한 햇볕이 개방된 마차 한쪽에 쏟아지고, 그들의 머리카락을 뜨겁게 만들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차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런 볕을 쬐면 뜨거움조차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북부인에게는 특히나 말이다.
“그보다 코다로님 좀 어떻게 하는 건 어떨까요?”
“무슨 말씀입니까?”
턱을 괴고 있는 비비안은 약간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쏟아지는 햇볕 아래 정말 드물게 멍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긴장을 푸는 나날들도 좋겠지.
그동안 너무 힘들기만 했으니까.
“사냥한다고 너무 돌아다니시는 것 같던데요. 그리고 헛바람이 좀 드신 거 같아요. 벌써 성터를 알아보신다고 그럽니다.”
“돌 정도 알아보는 것일 테죠. 멀리 보는 건 영주의 덕목입니다. 너무 멀리 보느라 발 앞의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지만 않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그리고 하품과 책갈피 넘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계획을 나눠주고 일이 돌아가도록 순서를 정해주니, 영주들은 거의 할 게 없었다.
그들이 최근에 결정한 일은 울타리 세울 경계를 결정하는 일이었는데, 그것조차 임시 울타리일 뿐이다.
경계는 지금보다 더 넓어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 * *
뿌린 씨들이 자라고, 식량이 확보되고.
창고에 뭐라도 들어가야, 일단 그걸 믿고 뭐든 하는 것이었다.
집도 그렇다.
먹고 자는 공간.
그 기본적인 게 돼야 힘든 일에 착수하기라도 한다.
지금은 적응 기간임과 동시에 쉬는 기간이기도 하다.
채찍질만 한다고 말이 잘 달릴 수 없듯이 천천히 주변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세인은 마플의 시중을 받으며 마차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그는 뭘 고민하는지 깊은 사색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고, 현명한 시녀장은 그의 곁을 지킬 뿐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가끔 밤도 지새웠다.
그러다가 밤새도록 한 장도 넘기지 못한 책을 펼쳐놓은 채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파종을 위해 멀리서 일렬로 서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와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자신들이 땀을 흘리며 넓힌 땅 위에서 말이다.
그런 그들을 보는 세인의 눈빛은 아주 복잡하고 깊어져 있었다.
죄책감과 앞으로 그들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그와 함께 자신이 그들 앞에서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들에게는 이제 어떤 지도자가 필요할까?
강한 리더?
아니면 자상한 자?
현명한 지도자?
“무슨 생각을 하세요?”
뒤에서 나타난 마플이 별안간 물어오자 세인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냥 넓은 땅을 보니 너른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마플은 뒤에서 그런 세인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플이 참견할 수 없는 영역을 고민하고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이 뽑아온 작은 튤립을 창가에 밀어 놓는 것으로 격려를 대신했다.
농사꾼들이 땅을 돌보기 시작하자 땅에는 금방 새싹들이 돋아났다.
색깔이 각기 다른 땅들은 같은 씨앗을 심어도 상대를 가렸는데….
상성이 안 좋은 땅조차 무서운 속도로 작물을 키워서 위로 밀어 올렸다.
나날이 보는 사람이, 그것을 역력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쑥쑥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자 사람들의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그 전까지는 그들도 미처 몰랐을지 모르지만, 낯선 환경에 대한 긴장감이 역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 눈앞에서 자라나는 작물을 보니 곤두선 신경들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때론 마음이 놓이고 나서야 평소에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알고 쓴웃음을 지을 때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걸 다시 깨달았다.
이제 사람들의 일상은 자라나는 작물들 위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바람과 야생동물들이 침입해 오지 않을까 대비하는 일이다.
그러는 중에도 레인저들은 바깥에서 키울 수 있을 만한 동물을 잡아왔다. 그리곤 우리에 가둬놓는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우리를 너무 가까이 짓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동물들이 꽥꽥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친 것이다.
이틀 정도 지나자 우리는 밭 근처로 이동했다.
많은 사람이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이 되면 한데 모여 조촐한 술자리를 열었다.
노래도 부르고 이제는 드물게 춤도 추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콧노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기사들은 멀리 정찰을 나갔다가 돌아오면서도 그 광경을 보며 기꺼워했다.
흘러내린 송진이 채 굳지 않은 소나무 울타리 너머로 빨래를 널고 있는 여자가 흥얼거리자. 그녀의 딸도 곁에서 흥얼거린다.
모녀의 가락은 흥겹게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지나가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했다.
“우울한 정서가 좀 완화되는 것 같죠?”
더이스와 행크, 둘은 멀리 나갔다 오는 김에 폭포 근처에 들려 메기를 잡아 왔다.
물을 뚝뚝 흘리던 행크는 말을 건넨 더이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새삼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눈이 밟히는 구석이 있었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매일 보는 사람이라도 새삼 그가 낯설게 느껴지는 날.
아 길었다… 너무나도 길었다.
이 세상에서 길어야 할 건 미녀의 목 빼고는 없는데, 더이스는 얼굴이 길어서 슬픈 케이스였다.
“다시 살아났을 때 말이야. 좀 짧아졌으면 좋았을걸….”
“예? 잘 못 들었습니다?”
“아, 아니다. 아냐.”
더이스의 얼굴을 보며 무심코 아쉬운 소리를 한 행크가 말을 돌렸다.
하긴 자기도 남보고 뭐라 할 상태는 아니지.
솔직히 비비안의 기사인 윌처럼 잘생긴 것도 좀 이상하다.
모름지기 기사라고 하면 막 생겨야지.
더이스는 유난히 유쾌하게 휘파람을 부는 행크 옆에서 뭔가 속은 기분이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세인은 책을 어느 정도 실컷 읽고 나자, 시선을 마차 주위로 돌렸다.
비록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너무 휑해 보였다.
울타리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맥과 함께 주변의 산에 오른다.
둘은 아주 굵은 나무 한 그루를 사이에 두고 힘차게 도끼질을 했다.
둘의 셔츠는 땀으로 젖어 있는 상태였다.
바람이 불자 시원함이 셔츠를 통과한다.
나무가 넘어가자 잘린 몸통에 줄을 맨다.
그러면서 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영주님.”
세인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맥이 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말입니다. 이제 과거처럼 목숨을 잡초와 티끌처럼 여기고 사는 경우가 아니니까요. 뒤에 계시면 안 될까요?”
영주가 앞으로 나서면 단체의 용맹을 북돋기도 하지만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다.
지휘자가 다치기라도 하면 전투는 오히려 악화된다.
세인은 줄을 잡아당기면서 대답했다.
“맥.”
“예, 말씀하십시오.”
“과거라면 난 당신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이야기하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우린 죽음을 넘나들면서 가까워진 것 맞지?”
맥은 정색을 했다.
더 이상, 그는 과거처럼 땅에만 충성하는 기사는 아니었다.
“저희 세 기사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건 고난을 같이 했으니까요.”
“그래 그런 사이니까 이제 말할 수 있어. 다들 나보다 약하니까, 나는 뒤에 있을 수 없는 거다. 그것뿐이야.”
“알겠습니다.”
무안해서 얼굴이 붉어질 만도 한데 맥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코다로 님도 항상 앞장서시니까요.”
마차 앞으로 나무를 끌어 옮긴 그들은 그것을 쪼겠다.
다듬고 말리는 데 하루가 걸렸고, 다음날 울타리를 만들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이제부터다.
붓을 들고 하얀색 칠을 하던 세인에게 코다로가 다가왔다.
“뭐하고 계십니까?”
“보시는 대로입니다.”
“밑의 사람들이 볼까 봐 두렵습니다.”
하지만 뒤에서 팔짱을 낀 코다로는 왠지 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나무를 하얗게 칠하는 것은 의외로 재미있어 보였는데, 세인은 마지못해 붓 하나를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같이 하시죠.”
“아 이렇게 천한 짓을….”
헛기침을 하면서도 코다로는 열심히 뒤쪽을 칠했다.
둘은 그렇게 칠하다가 경쟁이 붙었다.
책을 가져다 놓으러 곁을 지나가던 비비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투지마저 느껴질 정도니 말리기도 뭐했다.
결국, 간발의 차로 서로 울타리 칠을 끝마쳤는데….
그때….
비가 내렸다….
“….”
둘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멍하니 서 있었다.
허무란 건 대체 뭘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 * *
아비게일은 대장장이 소년 잭과 당분간 같이 지내기로 했다.
잭은 못을 만드느라 바빴는데, 밤마다 질질 짜는 아비게일 때문에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들의 근처론 엘프들을 경계하기 위해 재칼이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잭과 재칼은 점점 친해지며 많은 대화를 했다.
서로의 이야기가 이상하게 융합되어, 못으로 사람 죽이는 이야기로 흘러갈 때쯤.
아비게일이 발작을 일으켰다.
매우 놀란 두 사람은 기겁하며 아비게일에게 달려왔다.
잭이 소리쳤고 말이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이냐고요? 엘프를 봤어요?”
“저기! 저기! 저기이이!”
아비게일이 절규하며 가리킨 나무 벽에는 매미가 붙어 있었다.
둘은 할 말을 잃었다.
가끔 둘은 이런 인간을 납치하려는 다크 엘프의 의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에다가 쓰려는 걸까?
* * *
세인은 아래 지대에 집들이 들어차는 것을 보았다.
따뜻한 날씨는 계속되며 모든 것을 밝게 비추었다.
중부나 남부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날씨겠지만, 북부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축복이다.
하지만 그런 축복의 날들을 계속 즐기려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차일피일 미룰 수만은 없는 숙제들.
“완성되었나?”
“예.”
다가온 기사들이 지도를 내밀자, 받아서 보던 세인은 그것들을 뒤적였다.
근처에는 수많은 괴물이 살고 있었는데.
다크 엘프들은 그것들을 처치하는 데에 동거인들도 나서주길 희망했다.
세인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주변을 안정화하고 부산물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도에는 위험한 마법 생물들이 많이 표시되어 있었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유심히 지도들을 바라보던 세인은 검지로 지도 하나를 툭툭 쳐 보였다.
“이놈 먼저 시작하지.”
그날은 유난히 햇볕이 따사롭고 심은 옥수수들의 높이가 사람 머리를 월등히 넘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