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 가이더 (6)
북의 허리띠 지역에 빛들이 가득 찼다.
하늘의 별들이 일제히 내려왔는가?
레인저들이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빛의 수였다.
그 불빛들은 얼음으로 뒤덮인 평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멀리에서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실상은 그곳이 곧 죽음과 공포의 진원지였다.
세계수 속에 숨어 살고 있던 괴물들은 각지로 흩어져 나갔다.
그리고 일단 인근의 나라들을 공략하는 중이었다.
북쪽에 있는 작은 나라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렸고, 가이더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도 가이더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상태가 꽤 좋은 편이다.
이들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앞에 위치한 곳.
생각보다 완강한 세 영지의 저항으로 괴물들의 진격에 방해가 생겼다.
꼭 그곳을 경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계획보다 원활하지 못하다.
그래도 진짜는 지금부터다.
괴물들의 군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벌판엔, 큰 기둥들이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 달린 입에서는 연설자의 소리를 전달하고,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증폭 기둥에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며 뭔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광신도처럼 군대가 발을 구르고 무기를 땅에 찍었다.
쿵쿵.
쿵.
땅이 출렁이고, 덩달아 깃발들이 출렁인다.
멀리에서 들어 올렸다가 내려앉는 깃발의 파도가 닿은 곳은 이동식 첨탑이었다.
첨탑은 땅에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홀린 듯이 그걸 따라가고 있는 군대도 조금씩이나마 걷고 있는 것이다.
첨탑의 밑 부분은 게의 다리처럼, 여러 개의 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에 치인 괴물들이 꽥 소리를 지르면서 멀리 튕겨 나가기도 했다.
가이더 쪽의 진격을 맡은 군단장.
데스 나이트는 자신의 밑층에서 주먹을 쥔 채 열심히 소리치는 연설 대리인을 보았다.
연설 대리인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눈이 없었다.
그는 입에서 침을 튀기며 전사들을 격려하고 흥분시켰다.
“열광하라! 죽음에 열광하라 전사들아! 위대한 죽음에 입 맞춰라!”
그의 외침에 수많은 오크가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질렀다.
하늘이 울리는 것은 착각인가?
첨탑의 군단장조차 두 손으로 자신의 투구 양옆을 막을 정도였다.
다른 지역의 군단장에 비교하면 그의 진격은 꽤 여유롭게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그를 후원한 왕은 꽤 불만에 차 있었는데, 군대 정비를 이렇게 앞당긴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다.
그의 앞에는 오크들이 도열해 있었다.
흉측한 얼굴에 안면 위장을 하고 커다란 돼지 코를 탐욕스럽게 내놓은 전사들.
그들의 몸은 근육 그 자체였고, 갑옷도 마법 금속으로 만든 것을 입고 있었다.
어떤 놈은 머리의 갈기를 고슴도치처럼 세웠는데, 눈이 아플 정도로 주황색이었다.
평소에 한 성깔 하는 그들이지만, 데스 나이트 앞이라 다들 부동자세였다.
“저 연설자 놈은 오늘따라 유독 시끄럽군. 안 그런가?”
그들은 최근에 데스 나이트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원인을 몰랐으므로 지금의 농담에도 섣불리 웃을 수가 없었다.
손짓으로 그들을 불러들인 군단장은 금붙이와 은붙이가 잔뜩 매달린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말들을 놓아가며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준다.
“대부분 병력을 양 갈래로 나누어 가이더의 수도로 보낸다. 선발대들이 이미 충분히 진격로를 휘저어 놓았을 것이다. 왕은 하루가 멀다고 독촉 질이지만, 큰 그림을 보면 필요 이상으로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차피 가장 뒤의 대국들을 칠 때는 모두가 모여야 하니까. 너희들은 나눠준 지침서대로 움직이면 된다. 매일 일정에 맞춰 시간을 살펴라. 그리고 나와 굴드는 이렇게 뒤로 빠진다.”
굴드라고 불린 검은 애꾸눈 오크는 흠칫 몸을 떨었다.
군단장의 검은 말은 아레이즈 앞에 놓여 있었다.
물론 세 영지가 애를 먹이긴 하지만, 그거야 본대를 만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고….
굳이 굴드 같은 전사가 발목을 잡혀 후방으로 빠져야만 하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굴드는 아무 소리도 못 했다.
데스 나이트의 힘을 생각하면 항명이란 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도 같이 남는다고 하질 않는가?
무슨 생각이 있겠지.
그때 그의 옆 오크가 손을 들었다.
“주인님. 외람되지만, 이 미천한 종이 질문이 있습니다.”
“뭐냐?”
“도중에 포획하는 기사에 대한 문제인데….”
그 오크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군단장의 발길질을 당했다.
뒤로 나자빠진 오크가 잽싸게 다시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할 때 군단장이 으르렁거렸다.
“그런 시시콜콜한 일을 내게 묻지 마! 쓸모없는 녀석! 내가 네 식모로 보이냐?”
오크들은 괜히 미친놈 같은 동료 하나 때문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왜 어느 조직이든 고문관이 하나씩 꼭 있는 것일까?
“지휘 자리가 빌까 봐, 지금 너 하나를 밟아 죽이지 못하는 내 신세가 처량스럽다.”
짜증을 내는 군단장은 그들을 물러가도록 했다.
그는 화도 잘 내지만 너무 변덕스러운 게, 짜증도 금방 풀렸다.
하인을 불러 하프를 연주하게 한 그는 기분이 좋아진 듯 장난스럽게 하인에게 물었다.
“스몰 드래곤과 빅 이야기를 아나?”
하인은 도리질을 쳤다.
다크 나이트는 혼자 쿡쿡거렸다.
아주 음험하게 말이다.
스몰 드래곤과 빅 이야기는 갑자기 왜 한 것일까?
옛날에 스몰 드래곤이라는 드래곤이 있었다.
그 녀석의 크기는 성채만 했다.
엄청나게 커서 움직이면 산이 움직이는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레어로 침입한 난쟁이 빅을 알아차리고 말을 했다.
“이 도둑놈아 난 너를 잡아먹겠다.”
그러자 빅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언변으로 그 자리를 모면하려 했다.
결국, 그 언변에 넘어간 드래곤은 그와 술래잡기를 하기로 했다.
평소에 너무나 심심했기 때문이다.
이건 드래곤이 이긴 거나 마찬가지인 내기였다.
금은보화가 가득 쌓여 있는 레어였지만, 드래곤의 마법은 모든 금화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디에 누가 숨었는지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난쟁이 빅은 재치있게 종일 숨어 있는 것에 성공했고, 드래곤은 결국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빅은 어디에 숨어 있던 걸까?”
너무나 간단한 문제다.
빅은 드래곤의 미간 사이에 숨었다.
매달려 하루를 꼬박 버텼다.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찾지 못하지.
다들 너무 멀리 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
“오 나의 보물이여. 라이트닝 블러드.”
군단장은 키득거리며 창가로 다가가 밑을 내려다보았다.
밑에는 공성 병기들이 첨탑의 곁을 따르고 있었다.
네 발 달린 거대한 생명체로, 그들의 머리는 한결같이 원뿔형이었다.
그리고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다.
악마의 장난감처럼….
아무리 봐도, 가이더의 수도는 가망이 없었다.
그들이 몰려가고 있으니까.
* * *
“잠깐만요.”
“아 잠깐만요, 좀.”
“이런 제기랄!”
대장간 소년은 결국 짜증을 냈다.
그리고 망원경에서 얼굴을 떼며 잠깐 죄책감에 쌓인 표정을 지었다.
어쨌거나 자신보다 어른 아닌가.
소년은 이동하고 있는 군대를 멀리에서 관찰하던 중이었다.
현재 그는 아비게일이라는 마법사와 같이 있었는데, 이 망원경이란 것도 그 마법사가 만든 물건이다.
그들은 아레이즈 영지에서 이곳으로 정찰 나왔다.
참으로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마법사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래도 몬스터들에게 들키진 않을 수 있었지만.
“잭, 이러다가 우리 들킬 거 같아. 그보다 춥다고. 여긴.”
아비게일은 덜덜 떨면서 잭에게 속삭였다.
현재 그들은 설산의 중턱 정도 되는 곳에, 하얀 털옷을 입고 엎드려 있었다.
귀에는 눈바람이 쌩쌩 불었다.
“아저씨, 여기는 설산이에요. 추운 게 당연한 거라고요.”
“들킨다고, 들킨다니까? 너무 가깝다고.”
“가까운 것 같지만,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요. 저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이틀은 걸릴걸요?”
그러면서 다시 망원경을 눈가로 가져다 댄 대장간 소년.
잭은 성으로 돌아가 저들의 숫자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심했다.
그런데 아비게일이 자꾸 옆구리를 찔러온다.
새파랗게 질린 채로 말이다.
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일어나 아비게일의 옆구리를 걷어차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쉴 새 없이 유난을 떨었고, 무엇보다 더럽게 앵앵거렸다.
파리도 아닌데 말이다.
“이번엔 또 뭡니까? 저렇게 전율적인 장면을 보고도 옆에서 투덜거리고 싶어요?”
“잭,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 내가 여기에서 재채기해도 될까?”
잭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재채기를 해도 어차피 안 들린다고, 안 들린다니까… 이 사람아.
그는 아까의 생각을 수정했다.
지금이라도 벌떡 일어나서 아비게일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하지만 참자.
살아서 돌아가야 하니까.
귀환엔 그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잭이 대꾸를 하지 않자, 아비게일은 엎드린 채로 작게 재채기를 했다.
그 재채기에 죄의식을 느끼기도 잠시.
전방의 저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니, 새삼 세리스가 아주 나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따지고 보면 저런 곳에 자기를 데리고 들어가려 했던 것이 아닌가?
오 맙소사.
이건 뭐 성기사가 아니라 악마 기사 같았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을 영지에 떨구고 가버렸다.
진짜 벼락 맞을 여자다!
아 서러운 인생.
배신당하는 인생.
그러고 보니 난 이 무서운 곳에서 낯선 소년과 뭐 하고 있는 거람?
배신자 세리스!
이 악마!
내 인생을 망쳐놨어!
이제 난 끝났다고!
망원경을 통해 열심히 전방을 살피고 있던 잭은, 이윽고 천천히 망원경을 내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옆의 아비게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지금 울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체 왜 갑자기?
그것도 다 큰 남자가?
“아저씨? 설마 지금 울어요? 제 옆에서”
“….”
* * *
디펜더스 성의 비비안은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램프가 놓인 책상에서 자리를 지킨 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고심하던 표정인 그녀는 지도들을 펼쳐보고, 전달된 정보를 뒤적였다.
그녀의 기사들이 나가서 싸우고 올 때도, 승전을 보고할 때에도, 좁혀진 그녀의 미간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윌이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 고심에 빠져 있으신 겁니까?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죠.”
“하루만…. 하루만 더 생각하고요.”
그 생각은 그녀의 방이 아니라, 영주 의자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결심을 내린 그녀는 그녀의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자기 생각과 결심을 털어놓았다.
기사들은 굳은 얼굴로 그녀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차례대로 무릎을 꿇었다.
“당신들에게도 그렇지만, 영지민에게도 제 결심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의견을 묻고 있는 겁니다.”
기사들은 그녀 앞에서 이야기했다.
당신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윌이 이야기했다.
“지금의 영주님 모습에, 제 걱정과 기도는 드디어 보답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윌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 *
하지만 그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었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눈이 내리는 날, 비비안은 공터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앞에 섰다.
가장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그녀는 마치 작은 천사 같았다.
영지민이 다들 숨죽이며 차가운 두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 집중하고 말이다.
비비안은 말을 꺼내기 전에 그들은 한번 죽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내게 공명심이 남아 있는가?’
아니었다.
한때는 그녀가 가진 공포의 근원이었던 저들이지만.
이제는 책임져야 할 어린 양들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 모든 게 세인의 덕분이었다.
그는 세인이라는 인간에게서 영주의 모습을 배웠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디펜더스의 사람들이여. 가이더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게는 저희도 위기에 빠졌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렇지만, 적들은 우리의 수도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위에서 우리를 얼마나 믿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긍지를 지키기 위해 저 아래에 있습니다.”
그녀의 작은 손가락이 눈보라 속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가리켰다.
어느새 디펜더스의 깃발은 보이지 않고, 가이더의 깃발만이 모습을 보였다.
“나는 당신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용기를 냈다.
귀족으로서도, 하나의 인간으로서도.
영지민은 내리는 눈 속에서 동작을 멈춘 채 그녀의 호소와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다 들은 후 충격과 여운에 빠졌다.
비비안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그리고 침묵….
다시 침묵.
그때 한 주정뱅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병사로 활동하다가 오른팔을 잃고, 술에 젖어 살던 남자였다.
그가 주먹을 쥔 왼손을 위로 뻗어 올렸다.
그리고 외친다.
“디펜더스여! 만세!”
눈을 감고 몸을 떨었다.
“영주님 만세!”
그 소리에 어떤 남자는 욕설을 내뱉었다.
작게 말이다.
“빌어먹을!”
하지만 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저 작은 소녀조차 저런 모습을 보이는데….
다 큰 남자로서 이렇게 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도 주먹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디펜더스여 만세! 영민한 영주님 만세! 가이더여 만세!”
영지민은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목이 터지라고 외쳤다.
디펜더스여 만세.
영주님 만세.
그들의 외침이 비비안의 작은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가슴을 통해 작은 그녀의 심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윌이 눈을 맞으며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울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를 쓰는 비비안 앞에서 윌은 무릎을 꿇었다.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영지민의 악에 받친 소리를 배경으로, 기사들은 검을 뽑아 보였다.
그 검을 거꾸로 들어 땅에 힘껏 박았다.
“우리는 당신의 검이며 방패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소유한 권리입니다.”
윌이 말하자, 기사들이 그의 말을 따라 하며 검을 쥔 양손에 힘을 주었다.
검날이 부르르 떨렸다.
이 기사들은 그 떨림에 저항하지 않고, 격동이 한차례 그들의 몸을 훑고 가도록 놔두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으며 우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얀 눈들이 쏟아져 흩날리는 가운데 윌이 선언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이 거둔 충성을 그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목숨을 바쳐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사람들이 외쳤다.
그리고 기사들이 외쳤다.
“나의 영주 비비안!”
“나의 조국 가이더여, 만세!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만세!”
우리의 조국 가이더여 영원하여라.
사자들의 가슴 속에서도.
산 자들의 가슴 속에서도.
* * *
며칠이 지나 코다로는 비비안의 서신을 받아 보았다.
그의 표정은 잔뜩 경직되어 있었지만, 곧 웃음으로 치환되었다.
“이분도 꽤 정상은 아니군. 좋아.”
호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전날 마신 술에 취해 드러누워 있던 용병들을 발로 걷어차며 다그쳤다.
“준비해라. 좋아! 가이더인은 아직 죽지 않았다. 크게 한 방 먹이러 간다. 북부인의 힘을 보여주마!”
그는 정말 미친 듯이 웃었다.
그 경박스럽기까지 한 웃음소리에, 싸움의 피곤을 술로 절였던 용병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세인도 물론 비비안의 서신을 받아들었다.
그는 그 서신을 들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둡고 무거운 얼굴이었지만, 이내 원래 신색을 회복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자신의 장검을 찾는다.
“무슨 일이십니까 영주님? 디펜더스가 위기에라도 빠졌습니까?”
맥이 놀라 묻자 세인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출전이다. 병사들을 모아라.”
검날을 빼내 본 그는 힘껏 그것을 휘둘렀다.
주변의 불빛에 반사된 선이 여러 개로 나뉜 듯 착시를 보였다. 그리곤 그의 몸을 요란하게 스쳐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검광이 번들거리며 세인의 얼굴을 대각선으로 어루만졌다.
좋아.
이제 한바탕 날뛸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