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 가이더 (4)
회의장 안.
코다로는 상석에 앉아 있었다.
뭔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이다.
그의 영지에서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약한 직속 조직과 단합력이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내는 용병대장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엄연히 말하면 우리는 고용된 몸입니다. 위약금을 물으면 될 거 아닙니까?”
“우린 골드 힐의 소속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금 돌아서서 나가겠다는 거야? 계약은? 아무리 이 바닥이 원초적이라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등을 돌리자는 거야? 의리도 없이?”
“이건 생존의 문제지, 의리 문제가 아니잖소.”
용병대장들끼리도 이견이 분분하다.
지금 골드 힐의 밖에는 몬스터 부대들이 속속 도착하는 실정이었다.
그 공포감에 영지민은 물론, 용병들마저도 위협했다.
그들의 고향은 골드 힐도 아니다.
“왜 문 하나만 남겨놓고 다 봉쇄해 버린 것입니까?”
한 용병이 너무 분위기에 취했는지 코다로에게 따지듯이 묻자, 코다로는 성질을 내며 팔걸이를 쳤다.
그 바람에 떠들썩했던 회의장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이 무엄한 놈! 죽고 싶으냐? 어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을 들이밀어!”
직속 병력이 적다는 뜻이지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다.
코다로 뒤에 언제나 서 있던 병사들이, 위협하듯 허리에 찬 검 손잡이 위로 손을 얹었다.
그 바람에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코다로의 서슬에 찔끔한 용병대장들이 뒤로 물러앉았다.
“전시만 아니었으면 본보기로 네놈을 죽여서 매달았을 것이다. 이 예의도 없는 놈!”
아무리 거친 용병대장들이라지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말만 저렇게 곱게 할 뿐.
실제 코다로 성격이면, 갈기갈기 찢어서 짐승에게 먹이고도 남았다.
따지듯이 질문을 던졌던 용병대장이 사죄의 의미로 황급히 머리를 숙여 보이는데, 코다로가 계속 말했다.
“문을 하나만 남겨놓은 것은 너희들을 가두겠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 지형이 그렇잖아… 지형이.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도 아닌 자들이, 왜 이리 경솔한가? 골드 힐은 너희도 알다시피 길게 누워있는 성이다. 당연히 흩어진 문을 막고 인구를 중앙으로 모아 막는 곳을 좁힐 수밖에.”
“영주님. 그러면 저희가 언제든지 떠나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허락해주실 의향이 있는지….”
공손하게 물어오는 용병대장 한 명에게 코다로가 말했다
“물론 나야 당신들을 잡을 수가 없지. 위약금을 내고 떠나겠다는 사람들을 내가 무슨 수로 잡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어디로 갈 거냐이다. 설마 고향으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갈 거면 진작 갔어야지. 지금 이동하는 건 습격해 달라고 매달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 저렇게 진을 치고 앞에 떡 버틴 상황이었다.
그런데 떠나겠다는 자들을 억지로 눌러 앉힌 위인이 누군가?
그러나 용병대장들은 항의도 하지 못하고 분만 삭이고 있었다.
아무리 칼밥 먹고 사는 자들이라고 하지만, 귀족은 나라의 근간이다.
그렇게 시대가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코다로가 잔혹하게 굴기는 하되, 상을 줄 때는 확실하게 주었다.
그래서 신의 없는 인간이라는 평은 듣지 않는 상태였다.
“영주님. 저희 처지도 헤아려 주십시오.”
“들어라. 내가 너희들의 사기 때문에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말이다.”
코다로는 세인에게 받은 종이들을 그들의 앞에 던져 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용병대장들을 보며 설명을 한다.
“너희들의 부하는 그들의 농간에 죽었다. 적의 본대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홉 고블린은 전쟁 준비를 앞당기는 방법으로 훈련병과 들개 같은 놈들을 풀어 버리는 방법을 썼다.
몬스터 군대의 생리는 인간들과 같이 합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전투력을 촉진하기 위해서 훈련병이나 광기에 찬 놈들부터 풀어버린 것이다.
그 자극은 군단 전체로 번져나가고, 그들의 피를 덥힌다. 그리고 점점 구르는 바퀴의 속도를 높였다.
“오와 열도 없다. 그냥 그들 중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놈들을 마구 풀어버린 거야. 지금 놈들은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야. 그냥 사냥이지. 진짜 전쟁은 북의 허리띠 지역에서 몰려오고 있을 거다. 내가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 줄까?”
코다로는 자신의 곡도를 쓰다듬었다.
“너희 부하들은 개죽음당했다. 한낱 그들의 유희에 당한 거야. 우리 인간이 그들의 침입을 알아차리고, 결사적으로 막고 죽을 때. 놈들은 그냥 자신들의 소모품을 가지고 우릴 조롱 한 거였어. 이건 전쟁도 뭣도 아니란 말이다.”
“….”
“이런 사실을 알고도 화가 나지 않냐? 서로 목숨과 목숨을 걸고 죽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말을 듣고도 분개하지 않는다면 가라.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데, 떠나가는 자를 잡지 않겠다.”
그리고서 곡도를 검집에서 빼내어 탁자 위에 거꾸로 박았다.
“….”
좌중은 침묵에 둘러싸였다.
전쟁도 아니고, 군단의 피를 덥히는 놀이에 인간들이 그렇게 죽어 나갔다고?
그들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봉화에 불을 지르고 잔류했던 이들이, 노리개처럼 당하다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고향이 건재할 수 있느냐를 따지기 전에, 만약에 고향에 돌아가 죽은 자의 가족과 마주친다면 뭐라고 해야 하는가?
목숨을 건 혈투도 아니고… 어떤 의의가 있는 죽음도 아니고.
그저 적의 농간에 개죽음당했다고?
자신들은 그 농간을 부린 실체를 보지도 않고 꽁무니를 뺐다고?
이건 아니었다.
자신들이 아무리 돈을 위해 들개처럼 살아도, 개들끼리의 끈끈한 의리는 있었다.
코다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놈들이 탐색을 끝마치기 전에 나는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그리고 침울해진 용병대장들을 뒤로하고 걸어 나가는데, 아차 하고 잊은 게 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침 한 명의 조력자가 필요한 거 같군. 혹시 나와 같이 갈 자가 있는가?”
몇 명이 벌떡벌떡 일어서는 가운데, 코다로는 그중 한 명을 골랐다.
“그대. 눈빛이 아주 좋군. 이름은?”
눈빛은 개뿔.
사실 가장 건장하고 험상궂어서 골랐다.
“재칼, 재칼 입니다.”
“좋아 목숨을 걸어야 한다. 대신 보상은 충분히 주겠다.”
“제 보상은,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명예를 밝히는 놈이라….
뭐 돈만 밝히는 놈보단 낫지.
어깨를 으쓱인 코다로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재칼도 그 뒤를 따른다.
남겨진 용병대장들은 몬스터들에 대한 분을 참지 못하고,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 * *
골드 힐의 앞.
바람 부는 평원에 검은 무리가 잔뜩 몰려 있었다.
크기도 색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광기에 취해 있었고….
입에서는 침이 뚝뚝 흐르고 있다.
그들은 어기적어기적하며 진채를 세웠다.
뽑아온 나무의 가지를 칼로 쳐내고 거꾸로 박는다.
천을 두르고 돌들을 쌓느라 분주하다.
모여있는 괴물들 앞에서 뿔 달린 괴물이 왔다 갔다 하면, 자기들의 언어로 뭐라 뭐라 지껄여댔다.
그러자 멀리 있는 두꺼비 얼굴을 가진 괴물이 킬킬거리며 웃는다.
인간이 담긴 수레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임시로 지은 식량 창고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부는 바람에, 네 개 눈을 좁히고 전방을 주시하던 괴물이 나무 위에서 뭐라 뭐라 소리를 질렀다.
뿔 나팔 소리가 울리고,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짐승 위에 올라탄 괴물들이 몰려나왔다.
그러나 지휘관은 소리를 지르며 그들을 말린다.
지금은 일단 진을 쳐야 하는 것이다.
“놈들은 잘 훈련된 정예병이 아니다. 그러니까 통제력이며 자제력도 바닥이니, 이게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담하게도 코다로는 재칼만 대동하고 평원으로 나왔다.
그는 정말로 미친 것 같았다.
오히려 그 옆의 재칼이 긴장한 표정이다.
“무슨 노래를 즐겨 하는가?”
“예. 낙원의 메리….”
재칼은 무심코 음담패설이 섞인 노래 제목을 말하다가 아차 싶었다.
하지만 코다로는 오히려 껄껄 웃으며 그의 등을 쳤다.
“좋아 불러봐! 크게! 목청이 터져라, 불러봐! 잘 부르면 전사로서의 이름은 몰라도, 가수로서의 자네 이름은 기억하도록 하지.”
검은 기가 도는 얼굴이 더욱 검어진 탓은, 아마 난감함에 얼굴이 붉어져서 일 것이다.
재칼은 어쨌든 눈을 질끈 감고, 목청이 터지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참으로 남사스러운 것이라서,
메리앤의 둔부와 가슴에 집중된 가사였다.
훗날 다른 이들에게 영주 옆에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말한들… 과연 누가 믿을까?
괴물로 꽉 찬 평원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말한다면 아마 허풍쟁이 취급받을 것이다.
재칼의 우렁찬 노래가 평원에 울려 퍼졌다.
평원에 소리가 전달되기 어렵긴 하지만….
고함처럼 부르는 노래에 메리 앤의 신체적 특징은, 괴물들의 귀에 아주 잘 들어왔다.
물론 그들 중에 인간의 언어를 잘 아는 녀석은 적었다.
대부분은 인간 두 명이… 고작 두 명이, 저렇게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게 화가 나는 것이었다.
콧김을 푹푹 내뿜는 괴물들은 지휘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들고 제자리를 서성거렸다.
탈것으로 쓰는 괴물들도, 앞발로 땅을 마구 파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 덕에 노란 갈기들이 흩날린다.
메리 앤의 가사에 맞춰 코다로가 웃었다.
“이 더러운 놈들아. 더러운 데다가 무능하기까지 하구나. 그렇게 수가 많으면 뭐하냐? 고작 둘이 이렇게 너희들을 놀리는데 겁이 나서 꼼짝도 못 하는구나. 하하하! 하하하! 이 벌레 같은 것들.”
종을 넘어 비웃고 있다는 게 확실히 전달되는 웃음이었다.
이제는 말리던 지휘관들도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가장 위에서 이들을 어떻게든 통제해야 할 괴물은, 오히려 자신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있었다.
“벌레들도 너희들보단 용기가 있겠다. 이럴 거면 왜 밀림에서 기어 나왔냐?”
코다로는 노래 부르던 재칼의 등을 쳤다. 그리고 뒤를 보였다.
오히려 놀리는 것보다, 이렇게 사라질 듯 감칠맛 나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인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재칼은 오히려 이러는 의도를 몰라 허둥댈 뿐이었다.
도발하러 나온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영주님?”
“달려라. 분명히 온다.”
그리고서 고삐를 잡은 코다로가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엉겁결에 재칼도 고삐를 힘껏 잡고 말을 몬다.
그들이 탄 말은 아주 날렵하고 가벼운 말로, 땅을 박차며 쭉쭉 앞으로 나갔다.
몬스터들 처지에서 보면 복장 터지게 해놓고 멀어지는 꼴이다.
드디어 괴물 중 누군가가 목이 터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도끼를 들고 부리나케 앞으로 나간다.
그게 시작이었다.
반 정도 완성되어가던 진지에서 먼지구름이 일었다.
그 모습은 성 쪽에서 보면 일대 장관이었다.
그리고 전략가가 있었다면, 성벽 위에서 본 그 모습은… 역사에 남을 병신 짓이었다.
도발한다고 병력 전체가 달려드는 꼴은, 정말 봐줄 만했다.
뿌옇게 일어나는 구름이 점점 앞으로 몰려나왔다.
그 폭풍에 휩쓸린다면 열심히 말을 몰고 있는 둘은 삽시간에 갈기갈기 찢길 것만 같았다.
그 끝이 침처럼 말들을 쏘기 직전에, 이변이 일어났다.
골드 힐의 앞쪽이 질퍽질퍽한 늪지대일 줄이야….
초행길인 몬스터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탐색도 미처 끝내지 못했는데.
“으아악! 아악!”
열심히 달리던 괴물들의 다리가 흔들리며 푹푹 가라앉았다.
늪이라고 해봤자 엄청 깊거나, 마구 빨아들이는 점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코다로와 재칼을 태운 말은, 속도가 눈에 띄게 늦어졌을지언정 저렇게 잘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겁고 큰 무기를 든 데다가, 우람한 몸집을 자랑하는 탈것이나 기수들 형편은 그렇지 않았다.
분주히 움직이던 다리가 꺾이고, 앞과 옆으로 넘어지는 사고가 속출했다.
그리고 앞으로 돌진하던 관성 때문에, 알고도 넘어진 상대에게 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결국, 그 소리는 평원을 가득 채웠다.
코다로와 재칼의 뒤에서 분에 못 이긴 고함이 하늘을 울리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들은 코다로는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을 받는다.
공포 때문이 아니라 놈들에게 한 방 먹였다는 쾌감이었다.
이 즐거움은 고작 낚시에 비할게 아니다.
“이봐 용병! 정말로 내게 이름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나?”
“예?”
혀를 물까 봐 입을 다물고 말을 몰던 재칼이 코다로를 보며 얼빠진 소리를 했다.
“그래 좋아! 이왕 하는 김에 나에게 뿐만이 아니라 성의 모두에게 기억되게 해주지!”
그리고 코다로는 말을 세웠다.
그의 발이 땅에 닿을 때, 재칼도 서둘러 말을 세우고 있었다.
허리에서 두 개의 곡도를 양손으로 뽑은 코다로의 앞에, 장관이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이 회색으로 뭉개진 하늘 아래로 괴물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상자들을 타 넘고, 분노에 소리치는 괴물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며칠을 겁쟁이로 사는 것보다!”
말에서 내린 재칼은 코다로의 외침을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친 사람인 줄 진작 알았지만,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로군.
“단 하루를 살더라도, 오늘을 전사로 살겠다!”
코다로의 곡도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앞으로 뛰어나가는 주인을 따라 살기를 머금고 바람을 갈랐다.
마주 달려 나오던 괴물의 허리가 그 선을 따라 잘려나간다.
찢기며 땅에 처박힌 상반신의 뒤로, 코다로는 점점 멀어지며 미친 듯이 쌍검을 휘둘렀다.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천들이 뒤로 풀려나가며 나풀거렸다.
사방에 뿌려진 피는 코다로 얼굴뿐만 아니라 그 천들을 물들인다.
재칼은 코다로를 따라가며 두꺼운 워해머를 풍차처럼 휘두른다.
그 궤적을 따라 괴물들의 갑옷이 박살 났고, 번쩍이는 파편들이 허공에 수를 놓았다.
악귀처럼 날뛰는 코다로와 무겁게 워해머를 휘두르는 재칼이 서로 등을 맡겼을 때, 골드 힐 쪽에서 성문이 열렸다. 그리고 함성을 지르며 용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용병대장들 입장에서는 화가 난 것도 있고….
아군 둘이 저렇게 싸우는데, 나 몰라라 꽁무니 빼고 도망갈 수가 없었다.
“아군을 구해라! 아군을 구해!”
용병 깃발이 나풀거리며 말들 위에서 춤을 추었다.
철갑옷을 입은 용병들이 달리며 투구 덮개를 위로 올리고, 석궁을 들어 몬스터들을 조준했다.
사격이 개시되자 몬스터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리고 앞으로 몰려가는 방패.
그 번쩍이는 방패에 부딪히며 뒤로 물러나는 괴물들의 아우성.
돌진하는 방패에 밀려난 괴물들의 위로, 천둥처럼 떨어지는 메이스.
창과 검날.
이제 평원은 붉은 광기와 함성으로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