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왕 마검의 주인-40화 (40/307)

# 40

& 가이더 (3)

여명이 밝아 오지만, 안개에 갇힌 숲은 그 빛의 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침입자들이 우글거리는 숲은 오히려 조용했다.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그리고 휙휙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나무 사이를 건너가고 있었다.

매우 빠른 속도였다.

덩굴을 잡고 움직이는 파충류의 시선이 아래위로 오르락내리락거렸다.

그 시선은 열을 쫓았다.

열기 추적자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달리는 맥의 등을 노릴 수 있었다.

리자드맨의 시야에 맥의 등이 확대되었다.

말을 몰고 있는 맥의 등은 완전한 무방비로 보였다.

그래서 리자드맨은 거리낌 없이 달려들었다.

그때 휙 하고 허리를 뒤로 돌린 맥이 그대로 리자드맨의 목을 잡았다.

맙소사! 장갑을 꼈는데도 파충류의 미끈미끈한 비늘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맥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그 목을 긁다시피 하며 거세게 옆으로 던져 버렸다.

쿵!

날아오는 힘의 방향을 역 이용한 던지기에, 리자드맨의 앞으로 굽은 등이 나무에 부딪혔다.

흔들리는 나무가 나뭇잎을 토해낼 때, 리자드맨은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그게 효시였다.

사방에서 리자드맨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걸 힐끔힐끔 보며 말을 달리던 맥은, 지금 여기 모인 놈들의 숫자가 열 마리는 가뿐히 넘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보면 숲에 고작 서른 마리 정도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맥이 고깃덩어리로 보이는지, 리자드맨들은 계속 뒤에 따라붙었다.

그들은 나무를 타고 다니며 추적에 열을 올린다.

그리고 맥의 말이 지친 듯 속도가 늦춰졌을 때, 뭉텅이로 리자드맨들이 달려들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맥은 오히려 말의 속도를 더 줄였다.

그리고 옆으로 움직인다.

그때 바닥에서 낙엽들이 흩날리며 나무로 급조한 창들이 솟아올랐다.

그 덫은 성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거기에 충돌하는 리자드맨들의 꼴이란.

투명한 액체들이 일어선 병사들의 갑옷에 튀었다.

으슬으슬한 바위틈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던 병사들의 움직임은 약간 굼떴지만, 앞으로 나가는 창들은 훌륭하게 돌진해 오던 리자드맨들을 뚫었다.

파충류들의 몸을 관통한 창날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방울방울 맺힌다.

그때 더이스가 소리쳤다.

“뒤로!”

창이 물러나고 뒤처진 리자드맨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다시 창 세례를 받았지만, 뒤에서 본 게 있는지 신나게 창 위를 타고 넘었다.

휙휙 묘기를 부리듯이 공중제비를 넘는 통에, 시선과 함께 혼이 빼앗기는 기분이다.

하지만 뒤에 있던 더이스가 앞으로 뛰쳐나오며 장창을 휘둘렀다.

폭이 넓은 창날은 허공에서 리자드맨들의 발목과 꼬리 따위를 벌목하듯이 조각낸다.

잘린 살덩어리들이 연체동물처럼 휘어지며 펄떡거릴 때, 병사들은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활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더이스는 리자드맨들과 엉킨 다음이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맥은 장검을 현란하게 휘둘렀고, 그렇게 리자드맨들의 단창을 튕겨냈다. 그리고 그 충격에 팔이 퉁겨지면서 가드가 비면, 그 빈틈에 검 끝을 찔러 넣었다.

한 마리 리자드맨에게 창을 집어던져 맞춘 더이스가 이제 봉을 들고 좌우로 미친 듯이 휘둘렀다.

봉 끝은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위를 반 바퀴 돌려 후려치고, 하단을 꺾어 치고….

쓰러진 리자드맨의 정수리에 두 손으로 힘껏 잡은 봉을 들어 올린 후, 마지막으로 처형하듯이 내리 찌른다.

리자드맨들이 죽어 나가자 더이스는 여유를 찾았고 맥에게 물어보았다.

“같이 갔던 영주님은?”

*  *  *

세인의 말은 바람을 타고 내달렸다.

그 덕에 옆의 나무들이 획획 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갔다.

그는 창을 들어 앞을 겨누었다.

비스듬히 아래로 떨어져 있던 끝이 천천히 위로 들린다.

덜렁덜렁 거리는 안장 옆에서 수평을 이룬다 싶더니, 그대로 거대한 리자드맨의 옆구리를 찔렀다.

끼룩 이는 소리가 나고 리자드맨의 몸이 옆으로 접혔다.

세인은 창에 놈을 꿰뚫은 상태로 계속 말을 몰고 달려나갔다.

그리고 나무 둥치에 놈의 몸을 처박는다.

쿵!

말에서 내린 그는 창을 빼냈다.

리자드맨은 즉사한 지 오래였다.

휙휙 창을 돌리며 피를 튕겨내는데, 갑자기 전면에서 안개를 휘감은 거대한 형체가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뜬 그는 창을 세우고 상대에게 집중했다.

마치 스륵 스르륵 소리를 내듯이 안개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안개의 움직임을 휘감은 거대한 리자드맨이 나타났다.

놈은 금속 흉갑을 걸치고 있었고 피부가 온통 얼룩무늬였다.

마치 표범을 연상시켰다.

검은 줄무늬가 가득한 머리에는 붉은 눈이 양쪽에서 빛났다.

콰득. 콰득.

그는 물고 있던 사슴을 계속 깨물었는데, 사슴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피를 아래로 게워내며 몸체를 덜렁거렸다.

휙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날아간 사슴이 풀숲에 던져진다.

세인은 고개를 옆으로 약간 비스듬히 꺾으며 상대를 관찰했다.

이 정도면 마법 생물일까?

“아니겠지?”

그때 리자드맨이 입을 벌리고 크게 울었다.

그 입김이 파동을 이루며 세인의 머리를 뒤로 흩날렸다.

세인은 창을 들더니, 그대로 앞으로 던진다.

리자드맨의 두 손은 놀랍게도 그 날아오는 창을 잡아 버렸다.

그리고 입에서 솟아 나온 혀가 창대에 휘감긴다.

으득!

창대가 휘는 걸 보며 세인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의 망토가 뒤에서 붕 하고 떴다.

그리고 옆으로 휘둘려질 때 세인의 검에 충돌이 있었다.

리자드맨의 등 뒤에서 두 개의 팔이 더 나온 것이다.

그 팔은 세인의 검을 잡고 거칠게 비틀었다.

세인의 몸이 그 난폭한 힘에 인형처럼 이리저리 흔들려질 때였다.

“크크크쿡, 크크쿡.”

세인은 번쩍 위로 들려진 두 팔을 보며, 리자드맨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 팔은 망치처럼 아래로 휘둘러졌다.

쿵!

땅이 뜰썩이는 충격파가 일어나고, 머리를 맞은 세인의 얼굴에서 안광이 밑으로 선을 이었다. 그러나 곧 리자드맨은 의아함을 느낀다.

“그룩?”

머리를 갸웃거리는데 이번에는 세인이 녀석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분지른다.

나무 몽둥이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 고통에 리자드맨이 입을 벌렸을 때, 세인은 번개같이 검을 움직여 앞으로 찔렀다.

그러자 리자드맨의 흉갑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 불꽃은 계속 이어진다.

당황한 놈은 세인을 으스러뜨리려는 듯이 마주 안았는데, 그때 갑자기 리자드맨의 팔 안쪽에서 빛이 폭발한다.

땅에 털썩털썩하고 떨어지는 것은 거대한 팔들이었다.

세인은 장갑을 낀 손을 뒤로 힘껏 젖혔다가, 그를 안느라 몸을 굽힌 리자드맨의 머리 위에서 주먹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힘껏 내지른다.

펑!

뭔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나고, 뒤쪽의 나무가 핏방울 세례를 받았다.

머리를 잃은 거구가 뒤로 넘어갈 때, 세인이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역시나 마법 생물이 아니었어.”

그리고 그는 숲을 누비고 다녔다.

일행과 합류 하겠다는 생각은 그의 뇌리에 없었다.

대체 누가 공포를 몰고 다니는 사냥꾼인지 혼동되는 장면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세인은 불가사의한 힘으로 마주치는 리자드맨들을 보는 족족 잔인하게 죽였다.

박살 내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피를 나무에 칠갑했는데, 그런 그의 표정에서 광기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 긴박한 순간도 있었다.

기형적인 도마뱀 중에 단단한 껍질을 온몸에 둘러싼 놈들이 나타났을 때였다.

진형을 짜서 다가온 그들은 손에 든 망치들을 휘둘렀고, 이따금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세인은 방패를 들고 그것들을 막아냈다.

그러면서 짧게 앞으로 나간다.

쿵 하고 충격이 있는 다음에, 앞쪽에서 버티고 서있던 리자드맨의 몸이 뒤로 물러났다.

쫓아가지 않고 뒤로 한걸음 빠진 세인은 방패에 상반신을 밀착시키고, 빠르게 다시 앞으로 부딪혔다.

그리고 밀었다.

갸우뚱하고 뒤로 넘어가는 리자드맨의 허우적거리는 손톱이 세인의 망토에 걸렸다.

둘은 그대로 같이 넘어졌는데, 역수로 쥔 세인의 검이 아래로 연이어 내리 찍혔다.

피가 물방울처럼 사방으로 튀긴다.

무자비함이 살려고 버둥대는 본능을 찍어 눌렀다.

그 무자비함에는 몬스터에 대한 무한한 증오가 묻어 나온다.

그리고 괴물의 피로 목 위까지 젖어든 소년의 모습을, 리자드맨들이 기가 질린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고, 세인은 그런 그들을 쫓았다.

*  *  *

시간이 흐른 후 병사와 두 기사는, 피투성이가 된 세인과 합류할 수 있었다.

놀라 달려온 사람들에게 세인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많이 죽였나?”

“….”

*  *  *

그들이 성으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부대가 도착했다.

성벽 위의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몬스터를 내려다보았다.

“공성 병기는 보이지 않는군요.”

“오와 열도 없고. 뒤죽박죽입니다.”

그때 세인이 말했다.

“속단하지 마라. 이건 시작이야.”

그는 시선을 깃발이 나부끼는 방향에 던져두고 있었다.

최근 들어 바람의 방향을 자주 확인하는 그였다.

몬스터들은 목책 너머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도끼와 발톱으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성안의 주민들은 공포에 찬 얼굴로 그들이 내는 소음을 들었다.

결국, 아무리 견고한 목책도 떼로 몰려들어 날뛰니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우르르 내려앉는 목책 너머에서 괴물들이 잔뜩 몰려나왔다.

그들은 성벽 위에 줄지어 있는 인간들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웃었다.

바로 공격하는 게 아니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인간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리자드맨들처럼 선발대다.

하지만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세인은 비웃는 얼굴들 너머, 펼쳐진 숲을 바라보았다.

나무와 숲이 흔들린다.

꼭 바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중에는 나무가 넘어가는 거친 소음도 있었다.

성문에 박아 넣을 물건을 만드는가?

“인간들아!”

그때 한 고블린이 앞으로 나와 외쳤다.

망토를 걸치고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종류인 것 같았다.

그 흉측한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했다.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세인이 내려보자, 시선을 맞춘 고블린이 소리쳤다.

“우리가 고문하고 죽이기 전에 모두 자살해라!”

사람들이 웅성거릴 때, 세인은 장갑을 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검지가 고블린의 망토를 가리킨다.

“그거. 뭐로 만들었지?”

고블린은 큰 귀를 가지고 있어 멀리에서도 그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뭐? 이거?”

고블린은 눈을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인간의 가-죽-.”

그때였다.

어깨동무하며 노래를 부르던 괴물들이 잽싸게 앉아 버렸다.

그 큰 덩치들이 앉아 버리자, 뒤에 준비하고 있던 외눈박이 궁수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당겨놓았던 활을 빨리 위로 올리고 일제히 쏘았다.

그러나 이쪽도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곽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방패 병들은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벽을 만들었다.

세인은 들어 올려진 방패의 그림자 사이에서 하늘로 쏟아지는 화살들을 보았다.

대부분은 사람들의 근처에서 떨어졌다.

“명중률이 형편없군. 이쪽의 답례를 보여주지.”

비가 멎자 세인이 방패를 내리게 하며 명령했다.

“쏴라.”

몬스터들의 눈에 하늘을 가로지르는 화살들이 보았다.

그들은 멍하니 그걸 보고만 있었다.

피할 생각은 못 했다.

왜냐면 그들의 한참 뒤로 넘어가고 있었으니까.

불꼬리를 매달고 하늘에 아름다운 줄기를 긋던 화살들은, 그렇게 숲에 하나둘씩 떨어졌다.

리자드맨의 피는 그 자체로 좋은 기름이다.

더구나 역한 비린내가 많이 나서, 나무 곳곳에 칠한 다른 기름 냄새를 숨기기 좋았다.

숲이 삽시간에 불타올랐다.

그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몬스터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중 몇 마리는 화살 세례를 받으면서도 앞으로 달려 나와 성벽에 쿵 하고 부딪혔다.

그러면서 불덩이가 된 상태로 몸부림치다 옆으로 넘어졌다.

그걸 내려다보는 세인은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이었다.

“활은 이렇게 쏘는 거야.”

숲이 불탄다.

검붉은 연기가 무럭무럭 일어나면서 불티들을 화르륵 화르륵 하고 쏟아냈다.

그걸 감상하는 인간들의 얼굴도 그 빛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그때 세인이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리고 말한다.

“창.”

한 병사가 잽싸게 달려가 창을 그의 손에 넘겨주자, 세인은 그 창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성곽의 홈에 발을 디디고 가볍게 차며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앞으로 나서며 힘껏 던진다.

기세 좋게 날아간 투창은, 아까 이죽거리던 고블린의 몸을 무자비하게 꿰뚫었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으아아아악!”

불타는 고블린 인형이 창에 관통되어 춤을 춘다.

고통을 못 이긴 비명을 뽑아내면서 말이다.

그 처절한 고통을 성 위에서 사람들과 함께 감상한 세인은 손을 우두둑우두둑 꺾었다.

그리고 말했다.

“너희는 고작 욕구 때문에 왔지만. 우린 죽을 준비를 했다. 어디 누가 더 끝까지 가나 두고 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