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 턴 테이블
넓은 홀에 사람들이 잔뜩 모였다.
그들은 벽 쪽에 세워놓은 의자에 앉아서 서로 담소를 나누었다.
코다로의 수행원들도 있었고, 비비안의 기사 그리고 행크나 더이스도 있었다.
맥은 양쪽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말에 정신이 분산되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런 그들에게서 떨어진 중앙에는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테이블에는 세 영주가 나누어 앉았다.
마플은 멀리 복도에서 오가며 홀을 훔쳐보았다. 그리고 뿌듯한 얼굴을 했다.
이글거리는 횃불과 램프의 따뜻한 불빛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녀에게는 이런 활기가 괜찮아 보였다.
전대 영주 때도 그렇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런 활기는 성에서 찾기 힘든 풍경이었다.
중앙에 놓인 테이블에서 나눈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셋은 마음 놓고 이야기하며 카드를 돌렸다.
카드는 헥사 카드다.
헥사 카드로는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도형 맞추기가 기본이 되고.
잘 운용하면 포커 비슷하게도 된다.
지금 그들이 하는 것은 배신자 게임이었다.
사람이 많을수록 재미있는 게 배신자 맞추기 게임이지만, 상관없었다.
카드를 돌리고 있음에도, 주된 목적이 카드는 아니었으니까.
그 증거로 술과 음식을 돌리는 하녀들은 세 영주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종종 윌은 뿌듯한 눈빛으로 두 영주 사이에 당당히 앉아 있는 비비안의 등을 바라보곤 했다.
테이블보로는 레인저 부대에서 가져온 지도가 쓰였다.
거기에 대해서 셋은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눈 직후였다.
“누가 먼저 턴 하시겠습니까?”
코다로가 섞은 카드를 나누어 주며 물었다.
세인이나 비비안이 말이 없자, 결국 그가 첫 번째 턴이 되었다.
세 명이 많은 카드를 잡고, 그 중의 카드 한 장씩 내려놓는다.
세 명 중 한 명은 배신자인데, 배신자는 탁자 위에 도형을 완성해야 한다.
나중에 들키더라도 나머지보다 더 큰 도형을 완성하면 이길 수 있다.
배신자가 아닌 쪽은 배신보다 더 크거나, 가장 큰 도형을 만든 사람이 큰 액수를 갖는다.
그 외에도 여러 규칙이 있지만 생략해도 좋을 듯싶었다.
차를 마신 비비안이 세인에게 물었다.
“정말 계획대로 하실 건가요?”
“그렇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그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뭐라도 해봐야죠.”
비비안은 반짝이는 눈길로 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앞의 세인에게서 영주의 참모습을 봤다고 생각했다.
어떤 영주가 훌륭한 영주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워졌다.
치기 어린 생각으로 힘을 휘두르려 했던 일 말이다.
카드를 치는 코다로의 곁으로 뭔가가 스윽 하고 다가왔다.
영주들의 회담에 끼어드는 미친 인간은 있을 리 없으니, 그 생물체는 바로 검은 개였다.
“어라? 이놈 아직도 있네?”
전에 검은 개를 빌미로 찾아가겠다는 말이 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코다로는 개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그렇게 중얼거리며 개를 들어 올리는데, 새까만 눈을 한 개는 엄청 귀여웠다. 그리고 몸집이 커져 있었다.
개는 부엌의 여자들에게 사랑받기 좋은 동물이지. 그래도 이거 근수가 너무 나간다.
비비안은 코다로 같은 인간이 개에게 자상하게 대하는 면이 있다는 것에 의외인 듯, 눈을 크게 떴다.
물론 코다로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고, 세인만이 그 의미를 알고 있음이다.
“아이고, 이 무거운 거 봐라….”
그렇게 들었다 놨다를 당한 개는 코다로가 놓아주자 쪼르르 도망갔다.
그리고 다시 다가와서 비비안의 발치에 엎드렸다.
코다로는 계속 입맛을 쩝쩝 다셨고 말이다.
그때 비비안이 물었다.
“하나의 영지가 먼저 위험해지면 과연 도움을 주러 떠날 수 있을까요?”
세인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영지민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요? 그들의 시선은 성벽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들에게 크게 생각하고 멀리 보라는 건 지나친 요구입니다. 그들이 편협하고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은 그런 시각을 배울 기회를 받지 못했습니다. 시대가 시대니까요. 그 행동은 반란으로 표현될 수도,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고요.”
코다로는 하품을 참았다.
이래서 문제란 거다.
아무리 회담이라도 남자 셋이 모여야, 여자 이야기나 음담패설도 해가면서 분위기가 매끄러워질 텐데….
비비안이 있으니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카드를 줍는 척하며, 장난으로 검은 개에게 눈짓했다.
비비안을 물어!
물으라고!
하지만 당연히 검은 개는 딴청을 부린다.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코다로가 익살스럽게 끼어들었다.
하지만 굉장히 날이 서 있고 민감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시다니, 하나만 물어봅시다. 우리 둘 다 위험해지면 누구를 구하러 갈 겁니까?”
비비안은 질문의 상태에 대해 속으로 우려를 표시했다.
이건 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어떻게 영지 위기를 놓고 저런 능글맞은 표정으로 농담을 한단 말인가.
세인은 이번에도 단숨에 대답했다.
“당신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시계방향입니다. 나는 코다로 님을. 코다로 님은 비비안 님을. 비비안님은 저를…. 그렇게 하면 저는 영지를 비워도 비비안님을 믿고, 당신에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비비안이 대답했다.
“그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기필코.”
코다로는 정색을 하며 다시 물었다.
“당신의 영지가 고립되어 있고, 영지민이 아우성을 쳐도요? 그녀에게 등을 맡기고 출전할 수 있습니까?”
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바위 같은 몸짓에 코다로는 한숨을 쉬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솔직히 기분이 괜찮군요. 동맹이란 이런 거죠.”
그가 소매에서 문서를 꺼냈다.
양피지였다.
그것을 펼쳐 보이던 그는 모두가 볼 수 있게 이리저리 돌려본 후 바닥에 던져 버렸다.
검은 개가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는다.
먹는 게 아니야, 이 녀석아….
“이것이 나의 목적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장을 여기에 찍는 것요. 그리고 여기에 각자 혈서를 쓰는 것이죠. 그러나 이제는 필요 없습니다. 공증인도요.”
코다로는 탁자를 두들겼다.
정확히는 펼쳐진 지도였다.
“이런 판국입니다. 저는 모질고 의심도 많은 인간이지만, 걸어야 할 때는 겁니다. 당신의 믿음에 나를 걸었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의 부정할 수 없는 동맹자입니다.”
비비안은 코다로의 말에 인상 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는 있잖아? 거기다가 방탕한… 까지 추가하면 더할 나위 없겠는데 말이지.’
그러면서 자신의 소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도 종이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도 필요 없을 것 같다.
이제 일촉즉발 상황이다.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후회가 없도록 말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코다로지만, 영주로서의 그와는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세인은 비비안과 코다로에게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당신들의 동맹자로서, 당신들을 돕겠습니다. 그러니 바라건대 당신들도 저에게 도움을 주십시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셋의 뜨거운 눈길이 허공에서 얽혀들어 갔다.
“나는 당신을 믿으며 도움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두 명의 동지를 얻었습니다.”
그날 카드는 의외로 코다로의 패배였다.
검은 개는 그 승패에 하품을 했다.
성질이 난 코다로가 배신자 카드를 던졌는데, 개가 그걸 물고 도망간다.
허탈하게 그걸 뒷짐 지고, 바라보는 코다로였다.
* * *
괴물들을 이끄는 군단장에 대해서 말해보라 한다면, 딱히 말할 것이 없었다.
밑의 부하들은 그가 왕들의 신임을 받겠거니 하고 생각해 버렸다.
강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너무 오래전부터 악의 진영에 몸담았던 그는, 강했고 음침했다.
그리고 언제나 번쩍이는 검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너무나도 반들거리고 번쩍번쩍 윤기를 흘려내는 그 갑옷은, 흑요석 갑옷이라고도 불렀다.
투구를 깊게 눌러쓴 그 안에는 ‘죽음의 사자 레이스’가 들어 있다고 말하는 괴물도 있었다.
투구 안의 얼굴을 본 자는 죽으니까.
왕들은 오랜 역사 동안 함께 해온 그와의 시간보다도, 그의 힘에 신임을 주었다.
그는 정말 강했다.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적을 학살할 때, 악마가 웃는 소리가 투구 안에서 흘러나왔다.
투구에는 진짜 악마처럼 길게 휘어진 두 뿔이 달려 있었다.
그걸로 인간을 받아버리고, 두 조각으로 찢는 걸 직접 본 이도 있었다.
“나도 한 성질 하는 오크지만, 진짜 군단장님은 폭력적이고 악마 같아.”
그는 큰 도끼를 옆에 뉘고, 장검을 짚고 앉아선 인간들이 사는 쪽을 언제나 바라보곤 했다.
으스스한 그 분위기.
그 스스로 피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곧 그의 갑옷에 피를 묻힐 날이 온다.
그가 친히 어둠의 깃발을 들고 군단장이 되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을 죽이는 가장 위대한 이름을 그에게 붙였다.
데스 나이트.
오늘도 데스 나이트는 북의 허리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에서는 학살이 진행 중이다.
그가 웃고 있는데, 거둬들였던 첩자가 돌아왔다.
그의 첩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지형을 알려주고 정보를 물어다 주었다.
왜 가이더 같은 작은 나라에 신경 쓰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이런 꼼꼼함이 그를 단순한 전사 이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의 첩자가 쪼르르 달려왔다.
그때만 해도 데스나이트는 솔직히, 그리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왜냐면 이미 정보란 정보는 거의 다 수집했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마지막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믿을 수 없는 정보를 그의 첩자가 물어온 것이다.
“크크크… 크크크큭….”
그는 음침하게 웃었다.
폐부에서 기어 올라오는 희열이었다.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었고, 참으려야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이냐? 정말로?”
그의 첩자는 확실하다고 했다.
데스 나이트는 웃었다.
그리고 눈앞의 검은 개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던 검은 개는 곧 연기로 화해 사라졌다.
제 임무를 다했으니까.
그 첩자는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라이트닝 블러드… 찾았다.”
데스나이트의 속삭임이 곧 차가운 바람에 부딪혀 부서졌다.
그가 그러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남이 알아서 좋을 건 없지. 그러니 이건 비밀로 하자.’
라이트닝 블러드의 존재를 지금 여기서, 그가 알아차렸다.
오직 그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