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 사냥 (2)
세인이 탄 말은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나무 말뚝 사이를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뒤에서 달려오던 쥐들은 그런 세밀함을 보이지 못했다.
끔찍한 파육음이 들리면서 쥐 몇 마리가 말뚝에 관통당했다.
마지막으로 말이 훌쩍 뛰어넘은 곳에는 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작고 뾰족한 말뚝들이 박혀 있었다.
비명과 함께 수많은 쥐가 구덩이 아래로 사라지자, 양쪽에서 병사들의 창이 나타났다. 그리고 번들거린 은색 갑옷을 추격한 쥐들을 마구 찔렀다.
말을 돌린 세인이 검을 들며 쥐들을 가리키자, 병사들과 용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베고 찔렀다.
누가 봐도 인간 쪽의 압승이었다.
갑자기 의외의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땅이 푹 꺼지며 거대한 두더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눈이 없는 그 괴물은 쥐를 잡아채더니,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집채만 한 크기의 두더지가 나타나자, 그 서늘한 그늘은 세인이 탄 말의 발치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불길에 흔들거리면서 말이다.
당황한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 두더지가 큰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쥐 떼들을 공포에 빠지게 한 모양이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쥐들을 보고 있노라니, 천적이 바로 이놈인 것 같았다.
맥이 저 두더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세인을 바라보자, 세인이 말을 했다.
“다행이군.”
“예?”
“마을 안쪽에서 나타났다면 대참사가 벌어졌을 테니까.”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그렇게 대답한 맥은 병력을 더 뒤로 물리게 했다.
두더지는 입가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양손을 닥치는 대로 휘두르는 중이었다.
그럴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고, 긴 손톱이 허공에 은빛 선을 그었다.
그러다가 나무 한 그루가 손톱에 스쳤는데, 두 동강이 나는 것이었다.
이제 그걸 본 사람들은 맥이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더 멀찍이 물러섰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두더지에게는 발이 달렸고, 조금씩이지만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체구가 사람 머리 위를 훌쩍 뛰어넘는 녀석이 그러면서 다가오니, 참으로 난감했다.
창을 들이밀어 보지만 순식간에 끝이 잘려나간다.
말에서 내린 세인은 땅에 굴러다니는 창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가리키며 자신의 눈동자에 맺힌 상을 가늠했다.
그리고 바람을 가르며 창이 날아갔다.
그렇게 무섭게 쏘아진 창은 믿을 수 없게도 두더지 거체를 한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그때 두더지가 몸을 멈췄다. 그리고 두 팔을 무겁게 내리더니 코를 앞으로 내밀었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듯 코가 실룩인다.
두려운 분위기가 번지는 가운데 다들 입을 다물었다.
저 몬스터가 누군가를 감지하고 달려든다면 그대로 악몽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타닥타닥하고 불타는 소리만 요란할 때, 제한된 정적을 깨트리며 세인이 입을 열었다.
“창.”
그러자 화들짝 놀란 병사가 자신의 영주를 바라보았다.
멍청이처럼 말이다.
세인은 이제 짜증을 내듯이 요구했다.
“창을 내놔.”
두더지가 괴성을 지르며 세인의 위치를 잡고 달려들 때.
병사는 이를 악물고 덜덜거리며 창을 건넨다.
조금 전에 세인이 던진 마을의 나무창과는 달리, 튼튼하고 제대로 다듬어진 창이었다.
쿵쿵거리며 다가온 두더지가 입을 벌리자, 하얀 입김이 허공에서 한 줄기를 이루었다. 그리고 뒤로 밀려나며 입가의 양쪽으로 흩어졌다.
헉헉거리며 다가오는 두더지가 점점 커진다. 그리고 앞발을 내미는데….
세인이 어깨를 이용해 힘껏 던진 창이 두더지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두더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가슴에 박혀 부르르 떨리는 창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가죽이 뚫린 것은 정말 의외였다.
세인은 숙였던 상체를 펴며 검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창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명령했다.
“돌격.”
그런데 말소리가 너무 작았나 보다. 혹은 경악한 사람들의 귀에 안 들렸거나.
결국, 그는 다시 크게 외쳐야만 했다.
“돌격!”
그러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창을 휘둘렀다.
어차피 화살로는 가죽에 타격을 못 주니, 전력을 다해 창으로 찌르는 게 답이었다.
세인은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서서 사람들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 가운데 결국 두더지는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고야 만다.
애초에 가슴 한복판으로 창을 관통당한 상태에서 힘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이번 번우드 마을의 전투도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정작 가장 기뻐해야 할 남자, 토레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이 다 뜯어말렸지만, 그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하고 많은 몬스터 만큼이나 다양한 인간들이 살아간다.
우린 종종 하나의 군상으로 묶기를 즐기지만, 지금의 토레스처럼 개성이 강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의 돌발 행동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언가를 안고 걸었다.
그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주위를 따르다가, 마을 중앙에 자리를 잡은 천막들을 보고 물러섰다. 무장한 사람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레스는 꿋꿋이 걸었고, 뒤에 남겨진 걱정스러운 얼굴의 동료들과 멀어졌다.
그가 제지를 받은 것은 용병들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를 드러내는 용병 앞에서 용건을 말하자 비웃음을 샀다.
그러니까 그가 세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때마침 행크가 용병들의 저지를 받는 토레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행크의 귀띔을 받은 세인은 선택을 했다.
그의 선택은 바로 토레스를 만나는 것이었다.
세인이 걸어 나오자 사람들은 모두 뒤로 물러났다.
토레스만 남기고 말이다.
용병들은 어제도 그렇고 세인의 힘을 직접 봤다.
그게 아니더라도 세인은 귀족이었고, 그것도 모자라 영주였다. 게다가 보상도 확실하게 해주었다.
다이아몬드를 받은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용병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대가를 못 받는 경우였다.
생명이 걸린 노동을 하고 보수를 못 받는 경우를 질색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세인은 그런 면에서 그들을 챙겨줬다.
새로 합류한 용병들은 어제 세인이 던진 창을 보곤 지금은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세인이 다가오자 토레스는 이를 악물었다.
동시에 그의 양팔이 덜덜 떨렸지만, 끝까지 물러설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는 지금 목숨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의 세인도 그것을 알았다.
그는 바보가 아니니까 말이다.
세인은 토레스의 팔에 안긴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에는 진흙들이 달라붙은 상태였고 반나체였다. 그리고 죽어 있었다.
그걸 보며 토레스에게 왜 죽었는가? 라고 묻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지는 세인이다.
“가족인가?”
토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뭔가 상황설명을 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다.
세인은 그의 그런 말소리를 듣지도 않고 명령했다.
“꿇어라.”
그러자 토레스는 잠시 갈등하는 눈빛을 보이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그의 품 안에 안긴 마을 주민의 머리가 땅바닥에 닿았다.
용병들은 병사들이 안 보이는 틈을 타서 번우드 마을의 여자들을 희롱한 것이다. 그리고 저항하는 몇을 죽이고, 이것을 아레이즈의 사람에게 알린다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토레스의 분함은 충분히 알겠지만, 이렇게 귀족을 귀찮게 한다는 것에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이었다.
세인은 눈에 힘을 주고 있는 토레스의 머리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의 장갑이 토레스의 머리에 닿았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하게도, 소년이 다 큰 어른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음에도 그 모습이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세인은 무거운 위엄을 몸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더욱 무거운 목소리로 토레스에게 뭔가를 말했다.
그의 말에는 세금도 내지 않는 자유민 주제에 이렇게 항의하는 게 맞는가? 라든가, 혹은 마을을 지켜줬는데 고작 보답이 이거냐? 라는 말은 들어있지 않았다.
“네 원통함은 알겠다. 그리고 정당하다. 사람들을 책임지기 위해 나서는 네 행동은 물론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네 이름이 뭐냐?”
“토레스입니다.”
“그래 토레스. 네 행동은 현명하지 않아. 이렇게 굴다간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거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너를 지켜주진 않아. 내가 보기에 너는 너무 무모하구나.”
세인을 올려다본 토레스는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자신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은 세인이 아주 크고 무섭게 보였다. 이렇게 큰 존재니까,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는 인자함을 보일 수 있는 것일까?
교훈을 내리는 것일까? 등등의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그의 뇌를 스쳐 지나갔다.
세인은 그런 토레스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토레스의 머리에서 손을 내린 그는 진심 어린 교훈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리고 용병들 앞에서 말했다.
“그럼, 자리를 만들지.”
잠시 후 마을 사람들과 용병. 그리고 병사들까지 빙 둘러선 가운데, 세인은 끌려 나온 용병들을 보았다.
그는 병사들이 천막에서 가져온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이건 공식 재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인은 상대의 변호를 들어보는 시간을 주었다. 그렇지만 용병들이 그런 기회를 잘 활용할 리가 없었다.
보다 못한 용병대 선임들이 나서서 대리 변호를 해주었지만, 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약간 거리를 두고 이 상황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의 면면을 좌에서 우로 훑어보았다.
다들 참 지친 기색이다.
왜 아닐까?
몬스터에 치이고.
같은 사람들에 치이고.
참 고생이었다.
그때도 용병들은 열심히 변명 중이었다.
“이놈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놈들입니다! 그리고 우린 그들을 지켜 줬어요! 보답을 받을 권리가 있단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잘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자유민들에 대한 자기 생각의 피력이 아니었다.
그런 가치관을 여기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곧 여기에서 철수해야 한다.
일정이 바쁘니까.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라. 나는 너희들을 부리며 정당한 대가를 지급했다. 상품으로 내건 것도 다 안겨줬다. 이런 계약 이행에 불만 있는 사람?”
당연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너희들과의 기본을 지켰고,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 전에도 충분히 언질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굳이 이런 형식을 빌려, 너희들의 최후 변론조차 들어주고 있다. 전투 상황에서 이런 귀찮은 짓까지 감수하며 말이다.”
세인은 그냥 용병들과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자 용병 중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세인은 할 것 다했고, 용병들을 충분히 배려해 주었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기본적인 신의를 어기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여기서 당장 끌어내 처형해도 누가 그런 그를 말릴 수 있겠는가?
이유야 귀족이 원하는 대로 가져다 붙이면 그만이었다.
군기 문란이라든가 등등 말이다.
“해줄 만큼 다 해줬고, 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나는 다 큰 남자들의 투정을 받아주기 위해 여기 앉아 있는 것이 아니야. 어리광은 집에 가서 피워라.”
그러면서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손에는 활이 들려져 있었다.
일어난 세인은 눈짓으로 용병들의 포박을 풀어주라 지시했다. 그러자 밧줄에서 손목과 팔이 자유로워진 용병들은 동료들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당연히 누구 하나 편들어 주는 이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이렇게 나와 직접 번거로운 일까지 하는 정도면, 나도 할 수 있는 걸 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말한 세인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한 용병들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그리고 차례차례 등에 화살을 쏘아 맞혔다.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구르는 용병 중 한두 명은 물러나는 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고야 만다.
속사로 날아간 화살이 그들의 등판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이 용병들이 소속된 용병단은 차후 돌격 시 선두에서 굴리겠다.”
그런 말까지 거리낌 없이 해댄 세인은 앞으로 걸어 나가며 다시 활을 들어 올렸다.
그가 이렇게까지 직접 나서는 이유는 차후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완강한 표현이었다.
세인은 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용병의 면전에서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화살을 발사했다.
그 모습에 나름 오래 굴러먹은 용병들도 절로 찔끔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세인은 등과 다리, 팔에 화살을 맞고 기어가는 용병의 등에 발을 얹고 올라갔다. 그리고 머리를 다른 발로 짓누르면서 근처의 토레스를 바라보았다.
토레스는 여인의 시체 옆에서 멍한 얼굴로 그런 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이게 충분한 대답이 될 것이다.
세인은 용병의 목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활을 땅에다가 집어 던지며 말이다.
“이제 이동 준비를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