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 10화. 금화의 가치 (2)
골드 힐은 노란 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은 다시 두 개의 광산을 가졌다.
북부 극단에 있는 영지치고는 꽤 부유함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 부유함을 지키기 위한 병력 또한 많았는데, 사실 영주가 거느린 직속 병력은 전체 중에서도 꽤 비율이 낮았다.
대부분이 용병이기 때문이다.
위쪽 입장에서 보자면, 용병은 굴리기도 좋고 마음껏 명령하기도 좋았다.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시키는 것도 눈치 안 볼 수 있어서 좋다.
예를 들어 기사에게 광산의 죄수들을 채찍질해라 시키면, 제대로 행하는 기사가 드물 것이다.
그에 비교해 용병은 하라는 대로 다 한다.
반대로 용병 입장에서 보자면 배신하기에도 좋았다. 그들의 신의는 돈이 바탕이 된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 용병이 상단과 빌어먹는 것이지만….
어쨌든 골든 힐의 영주는 용병을 대거 고용했다. 그리고 매년 갱신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중간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서로 견제하도록 만드는 중이다.
이게 다 명예가 낮은 영주이다 보니, 모여드는 기사가 없어 취하게 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번화가를 지난 세인과 맥은 병사들을 데리고 영주관으로 들어섰다.
노란색의 성은 좌우로 활짝 펼쳐져 있었다.
마치 금색의 새가 양 날개를 활짝 펼친 것과 마찬가지로, 위풍당당하고 안정적이었다.
물론 테두리의 성벽도 아주 높았고 말이다.
예고도 없이 아레이즈의 영주가 왔다는 소리에 집사가 달려 나왔다.
늙어서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달렸다는 소리다.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집사는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으로, 눈썹에 가려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몰라 골골대는 모습이었다.
맥은 정중하게 급한 용건이 있어, 이렇게 들리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세인은 두건을 눌러쓴 채로 집사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그냥 아주 미미하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 것이지만, 집사 본인에게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소 닭 보듯이 한 게 아니라, 아는 척을 한 거니까.
게다가 고개까지?
“잠시만…, 잠시만 접빈관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하인들에게 안내하도록 명령한 집사는 부리나케 어딘가로 달려간다.
물론 빠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까처럼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 시각 골드 힐의 영주인 코다로는 자신의 취미 활동 중이었다.
여자와 뒹구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제 실컷 했다.
대신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것은 빈 술병이다.
코다로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그의 손을 따라 캔버스 위를 노니는 붓의 놀림은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코다로는 굉장히 잘생긴 미남이다.
세인도 미남이지만,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그는 정말로 잘생겼다.
그의 머리는 아주 밝은 금색이었으며, 햇빛을 받으면 아름답게 불타올랐다.
그 밖에도, 투명하고 하얀 피부와 긴 목.
건장한 어깨. 날씬한 몸매와 긴 손과 발을 가진 미남이 바로 코다로다.
성격은 개차반이지만, 아름답게 생겼고 돈도 많은 그를 과연 누가 마다할 수 있을 것인가? 시내에서는 용병대장의 마누라와도 잠자리를 같이한다는 소문이 퍼진지 오래였다.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대답하는 그의 음성도 매혹적이다.
“무슨 일이야? 방해하지 말랬잖아?”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리고, 노인 집사가 틈에 얼굴을 내밀었다.
“영주님.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코다로는 입맛을 다셨다.
다른 사람이라면 불호령을 내렸겠지만, 집사는 아니다. 집사야말로 코다로가 안심하고 믿는 존재였다.
“한창 감흥이 올랐는데…. 어쩔 수 없지.”
붓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은 그가 일어서자, 집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어때? 괜찮지?”
“이건 추상화로군요, 정물화를 그린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뭐? 이건 정물화야. 보고도 몰라?”
“….”
헛기침한 집사는 어쨌든 급한 용건을 털어놓았다.
“아레이즈의 영주님이 오셨습니다. 급하게 만나고 싶답니다.”
코다로는 잠시 당황했다.
집사가 급하게 여기까지 올라올 만하다. 그런데 기별이 있었던가?
“뭐야? 내가 취중에 편지를 봤던 거야? 왜 기억이 안 나지? 이런 방문을 내가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예고된 방문이 아닙니다.”
옷장으로 다가서는 집사의 굽은 등을 보며 코다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곳의 전대 영주가 예의에 도통 관심이 없는 군인 같은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손자도 똑같이 닮았나 보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집사는 옷을 꺼내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세인을 떠올렸다.
“무도한 분들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뭔가 사정이 있었겠죠.”
“그래? 자네가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자네 눈은 정확하니까.”
“다른 분도 아니고 이웃 영지의 영주를 문전박대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좋게 생각하시죠. 그보다 이 옷 어떻습니까?”
“음, 보라색 비단은 저번에 입었잖아?”
“그렇군요.”
* * *
오래 기다리지 않아 세인과 맥은 홀로 옮겨졌다.
두 명의 병사들은 접빈관에 남겨둔 채였다.
세인은 집사가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무기를 건네주었다.
영주가 이러니 맥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무기를 고스란히 넘겨야만 했다.
“아, 아니 이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아랫사람도 아니고 어찌….”
집사가 황망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세인이 고개를 저었다.
잔말 말고 받으라는 제스처였다.
하인들이 서둘러 무기를 받을 때, 깊게 허리를 숙인 집사는 나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기별 없이 급작스러운 방문에 대해서 더는 뭐라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 정도면 골드 힐에게 아주 제대로 예의를 차려주는 것이다.
천장이 높고 벽면마다 명화가 걸려 있는 홀은 아주 넓고 사치스러웠다.
고풍스러운 장식장들이 멀리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도자기들이 가득하였다.
긴 탁자에 앉은 세인과 맥은 천천히 걸어 나오는 코다로를 볼 수 있었다.
천사와도 같은 미모의 남자가 걸어 나오자, 홀이 환해진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세인과 맥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물론 코다로도 응대했다.
상석에 착석하는 코다로의 귀에서 아주 큰 골드 링이 움직였다. 그것은 상체를 숙이느라, 어깨에 닿았다.
그걸 맥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주 목걸이 하며…. 금팔찌와 손에 낀 가지각색의 보석 반지들. 그리고 보라색으로 물들인 손톱….
이상한 것은 그런데도 그와 굉장히 잘 어울려 보인다는 것이었다.
“잘 오셨습니다.”
“급하게 오게 되어 실례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이웃의 영주라면 언제나 환영이지요.”
그 후에도 의례적인 인사가 오갔고, 세인과 코다로는 서로를 탐색했다.
그들이 나누는 말은 점점 느려져서 이제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침묵이 유지되는 가운데, 맥은 아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수행인으로서의 그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되려 여기에서 헛기침이라도 하면 굉장한 실례가 될 것이었다.
코다로의 사파이어를 박은 듯한 아름다운 눈이 세인을 평가하려는 듯 요리조리 돌아갔다. 그때 세인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무래도 급한 쪽이 먼저 용건을 꺼내기 마련이다.
“오다 보니 고블린을 만났습니다.”
“주변을 정리하라고 자주 타일렀건만. 용병들은 말을 잘 알아먹지 못하죠. 부끄럽지만, 그것조차 저의 부덕함입니다.”
“제 영지도 사실 외부 치안이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이왕 하는 것. 좀 더 넓혀가면 좋겠죠. 디펜더스도 그렇고. 골드 힐도 아레이즈와 남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디펜더스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코다로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렸다.
디펜더스의 건방진 영주를 생각하니 심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세인이 코다로를 관찰하고, 급박하게 만든 계획을 들려주는 동안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정말 좋은 제의군요. 그런데 그렇게 좋은 제의는 시간을 가지고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먼 길을 오셨으니, 허기부터 채우시죠.”
맥은 세인의 옆에서 코다로가 작은 은종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코다로는 굉장한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영주에게 미친개라고 부를 수 있는 정신 나간 존재가 있었다면, 널리 미친개라고 불렸을 인물이다.
그는 벌을 줘야 할 때는 잔혹하기 그지없었으며 즉흥적인 고문을 즐겼다.
세인과 달리 지켜야 할 것이 많은 배경이었으니까.
아주 어린 나이에 영주의 반지를 끼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이겠지만, 그걸 고려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인이었다.
냉막한 표정의 하인들이 나오고, 덮개가 씌워져 있는 음식들이 식탁 위에 놓였다. 세인과 맥은 냅킨을 놓은 하인들의 팔 사이로, 코다로의 앞에 촛대가 놓이는 것을 보았다.
뭐 식사를 해야 하는 시각이긴 하다.
그러나 음식 덮개가 열리자, 맥의 얼굴이 실룩였다.
“그러니까 영지 사이를 정리할 별동대 운영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디펜더스도 동의할까요? 거기 영주는…. 이런 말은 좀 실례지만 매우 의심이 많으며, 신경질적이고 개인밖에 모르는 소인배입니다. 영지 근처에 무장 병력이 돌아다닌다면, 그 까탈스러운 심기를 거스른 일이 되겠죠.”
코다로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음식 덮개를 열었다.
거기에는 커다란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리가 아주 많은 절지류였다.
길게 솟아난 더듬이와 힘찬 몸놀림. 그 움직임에 소스가 약간 튀었지만, 몸의 중심은 핀으로 고정되어 있다.
‘악식이구나!’
맥은 포크를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그는 기사다.
정말 극한의 상황에 이르면 물론, 벌레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곧 벌레를 혐오하지 않는단 의미는 아니었다.
인간은 종종 어떤 대상에 대해 본질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건 이성이랑은 하등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최면을 걸어도 말이다.
‘소설책에서는 나오겠지. 두 눈을 질끈 감고 먹었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소설일 뿐이야.’
상상만으로야 뭐든 가능하지 않겠는가? 미녀가 야수와 결혼하는 것도. 맨정신으로 스스로 팔을 자르고 체스를 두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꿈틀거리는 벌레는 정말 무시무시하게 징그러웠고 역겨웠다.
파닥파닥하는 소리조차 고막을 긁어대는 것만 같았다.
맥은 접시를 집어 던지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게 그의 최선이었다.
“결국, 모두를 위한 길입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아레이즈는 외부 숲과 가장 가까이 닿아있으니까, 배후의 치안에 더 신경 써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러니 저희 쪽에서 좀 더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싶습니다만.”
이제 맥은 물론이고, 코다로 마저도 자기 접시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벌레가 움직이는 소리만 요란한 가운데, 세인의 나이프가 움직였다.
벌레를 썬다. 그리고 움직이는 입 아래에서, 포크가 그 조각난 살점을 찍는다.
접시에 포크 끝이 찍히는 소리가 들렸다.
딱! 하고 말이다.
“약간 도움을 주십사 하면 더욱 좋고요.”
코다로는 맥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세인이 살점을 입에 가져가고 씹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정말 믿을 수 없게도 세인이 벌레를 다 먹어치우는 것을 구경했다.
고개를 끄덕인 코다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물론 이해합니다. 그리고 믿죠, 우린 이웃이니까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디펜더스의 의심 많은 영주는 무장병력이라는 존재에 대해 우려를 표시할 겁니다. 그분은 정말 그래요. 그의 불안감은 어떻게 우리가 종식 시키죠?”
그렇게 압박을 가하면서 다시 종을 흔들었다.
‘그만둬. 이 미친놈아!’
핼쑥해진 맥이 포크를 집어 들려다가 다시 내려놓는 가운데, 다음 요리가 나왔다.
이번에는 가루가 풀풀 날리는 날개를 가진 것들로. 정말 꿈에 볼까 두려운 것들이다.
미치게도 징그러웠다.
맥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차라리 칼부림하는 게 낫지. 본능적인 혐오감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더러운 건 더러운 거고, 징그러운 건 징그러운 거다.
코다로조차 손도 안 대는 음식을 세인은 천천히 먹었다.
남김없이 먹어치우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우려는 이해합니다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디펜더스 쪽도 선의를 이해해 줄 겁니다.”
“그렇군요….”
코다로는 팔짱을 낀 채 세인이 전 코스 요리를 다 먹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눈알이 들은 식후 칵테일까지 마셨을 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수하기 위하여.
“좋은 의견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다시 생각할 여유를 가져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렇게 식사자리를 파한 후. 집무실로 들어간 코다로는 자신의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집사가 노크하고 들어올 때까지 말이다.
“금화를 전달하고 오는 길입니다. 이자는 가능한 한 적게 하고 말이죠. 어떠셨습니까?”
“뜬금없이 동맹을 제안하더군.”
그의 말을 들은 집사는 코다로의 명령을 다시 곱씹었다.
식사 후에 내린, 금화를 가져다주라는 것은 분명 그의 명령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동맹을 반쯤이나마 수락한 것이 된다.
돈을 전달했다는 의미는 최소한 완전한 거절의 몸짓은 아닌 것이다.
거국적으로 보면 북부의 영지가 하나의 목표 아래 모여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도 당연히 알력이 있었다.
개성과 욕심도 있고 말이다.
애초에 그런 게 없다면, 그냥 하나의 영지로 통합되었을 것이다.
“문서가 없는 비가시적인 동맹이라도…. 그런 무거운 제의를 하기 위해서 온 거라면 기별 없이 왔을 리가 없는데요. 과정이 좀 부자연스럽습니다.”
“급조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괜찮았어.”
“그런가요.”
“손해 볼 줄 알고 희생할 줄 아는 기본적인 면이 있는 게 괜찮아.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라면 왜 그런 짓을 하겠어? 그는 상인이 아니니까, 그럴 리가 없지. 그 정도라면 완전히 속을 드러내 보이기 전까진 기다려줄 수 있는 정도는 되니까.”
손가락을 까닥이는 코다로에게 담배를 건넨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가 보기에도 세인은 괜찮은 인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