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300화 (완결) (300/300)

300화 은퇴를 생각하다

혜성 그룹을 손봐주는 것.

비단 정현석 법률고문만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권이 바뀌자 여당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었다.

“혜성 그룹을 손봐 줄 때가 되지 않았나?”

“손봐야지. 일개 기업이 커져도 너무 커졌어.”

“이한성 회장의 오만함도 마음에 안 들어. 정치 자금도 안 건네다니. 혜성은 절대 안 건드릴 거로 생각하는 거야, 뭐야?”

원래부터 혜성 그룹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기부 잘하고 세금 잘 내는 기업일 순 있어도, 워낙 ‘성의’가 없는 기업이기 때문에 돈을 밝히는 정치인들은 특히 혜성 그룹을 안 좋게 봤다.

그리고 혜성 그룹의 인지도와 영향력이 상승할수록 이들은 더더욱 불쾌하게 여겼다.

하여 이들은 정현석 법률고문처럼, 이해송 대통령이 혜성 그룹을 손봐줄 것을 기대하였다.

‘어처구니없는 기대를 하는군.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할 리가 없는데 말이야.’

이해송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의 혜성 그룹을 건드는 것?

설령 임기 1년 차라고 해도 그건 미친 짓이나 다를 게 없었다.

뒷배가 무려 미국 대통령이지 않은가.

아니, 설령 미국 대통령이 뒤에 없다고 해도 한성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였다.

한국에서 혜성 그룹이 차지하는 경제 비중도는 실로 거대하여, 혜성 그룹이 망하면 한국과 북한, 두 나라 모두가 망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혜성 그룹을 향한 민심도 무시할 수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이해송은 한성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여당 의원들이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여주었다.

“김영산 전 대통령이나, 김태중 전 대통령께서 이한성 회장님의 조언에 많이 의지했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이한성 회장님의 조언에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부디 앞으로 많은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

마치 넙죽 엎드리듯, 공손하게 한성을 대하는 이해송이었다.

소문이 퍼지면 그의 권위와 위상에 손상이 입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잠든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서 피를 보느니, 자존심을 조금 굽혀서 혜성 그룹의 지지를 받는 것이 여러모로 남는 장사였다.

‘애초에 내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지.’

실용적이면서 무난한 성격을 가진 그였다.

만약 그가 자존심 때문에 혜성 그룹과 마찰을 빚을 인물이었다면, 혜성 그룹이 15대 대선을 가만히 지켜보지도 않았을 터.

즉, 이해송이 당선된 것도 혜성 그룹의 암묵적인 승인이 따른 결과라는 뜻이었다.

* * *

<초 글로벌 기업, 혜성 그룹. 마침내 자동차에서도 세계 1위에 등극하다!>

<기화 자동차, 혜성 자동차의 뒤를 이어 아시아 빅 4의 기업이 되다!>

2000년대가 되자, 혜성 그룹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졌다.

가장 극적인 성장을 거둔 것은 혜성 자동차였다.

소프트뱅크의 지분을 팔고 얻은 실탄으로 1997년부터 혜성 자동차와 기화 자동차에 막대한 투자를 했었다.

각각 5조씩 무려 10조에 달하는 자금이 투입된 것인데, 이때 투자한 자금이 2000년대가 들어서자 마침내 결실을 보였다.

SUV는 이미 세계 제일의 되었고 승용차 역시도 왜건, 세단, 해치백 등도 하나둘 도요타의 아성을 넘어섰다.

기화 자동차 역시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 빅 4’의 하나가 되었고 말이다.

‘TV도 결국 소니를 넘어섰지.’

몇 년 전에 이미 세계 최고의 전자 메이커가 되었던 혜성 전자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TV 하나만큼은 소니를 이길 수 없었는데 그것도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휴대폰부터 TV, 세탁기, 청소기 등.

모든 가전이 세계 최고의 레벨에 오른 것이다.

‘주력 계열사가 아닌, 다른 계열사들의 약진도 눈에 띄어.’

사람들은 혜성이 가전이나 반도체, 자동차만 잘 만드는 기업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야, 혜성 그룹이 건설도 하고 호텔도 하고 주류나 편의점 등 다른 사업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대부분 내수 시장에만 통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자, 다른 계열사 역시도 세계 시장에서 큰 활약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가장 눈에 띈 것은 혜성 건설이었다.

사실상 북한 국토 전역을 뒤집어 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혜성 건설은 북한에서만 10조가 넘는 수주를 따냈다.

러시아나 동남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의 성장도 놀라웠는데, 국내 1위였던 미래 건설을 단숨에 뛰어넘을 정도였다.

혜성 모직처럼 인건비 문제로 사양 산업이 되었던 사업 역시도 북한 노동자를 대거 고용함으로써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혜성 모직의 브랜드들을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알아줄 정도였다.

‘물론 혜성 그룹 계열사들의 성장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IT 기업들에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기업은 혜성이라 이름 붙인 기업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로를 비롯한 HS 테크 산하의 IT 기업들 역시 내 회사들이었는데, IT 버블이 끝나자 이 기업들은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세계 제일의 포털 기업인 미로의 경우 무려 1,67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50조가 넘는 시가총액을 자랑할 정도였다.

‘어쩌면 HS 테크의 IT 기업들이 혜성 그룹 산하의 기업들을 뛰어넘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

IT 발전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물론 나로서는 둘 중 뭐가 더 성장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잘난 자식도, 못난 자식도 결국 내 자식이라는 말처럼, 두 기업 집단 모두 내 자식이었으니 말이다.

* * *

평양 대성구역 인근 하숙집에는 한때는 김일성 종합 대학이라 불렸던 평양대 학생들이 주로 생활하고 있었다.

하숙집에서 생활하는 평양대 학생들은 북한 최고의 대학교 학생들답게 토론이 일상이었다.

오늘도 혜성제 클리앙 TV 앞에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통일은 시기상조야. 적어도 남조선 경제력의 절반까지는 따라잡아야 통일해도 혼란이 없어.”

“지금 남조선 동무들의 기세가 얼마나 매서운지 몰라? 이제 막 후진국에서 벗어난 우리가 남조선 동무들을 따라잡으려면 10년도 일러. 그리고 그 10년이란 시간 동안, 낙후한 시설과 복지로 사회 약자층은 다 죽어 나갈 거라고.”

참고로 평양에서 젊은 층의 말투는 서울의 그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원래 표준어인 문화어부터가 한국 표준어와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이른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과 유사한 말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통일한다고 사회 약자층이 당장 중산층이 되는 건 아니야. 남조선 동지들이 인터넷에서 하는 이야기 못 들었어? 거기도 가난한 사람은 많아.”

“남조선에서는 아무리 가난해도 굶어 죽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지. 추위 때문에 죽거나, 감기나 독감 같은 작은 병 때문에 죽는 사람도 없을 테고.”

“네 말대로 남조선의 복지시설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은 나도 인정해. 하지만 복지란 것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야. 통일되어 같은 나라 사람이 된다 해도 우리 북쪽 사람들이 공짜로 복지를 누릴 일은 없어. 반드시 대가가 따를 거야.”

“당연히 대가는 따르겠지. 하지만 남조선 동지들은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야. 일본이나 중국 같은 외세에 의한 병합도 아닌데, 대가가 커봤자 얼마나 크겠어?”

“안일하기 짝이 없네. 지금 상태로 통일하면 우리 북쪽 사람들은 자립할 기회를 잃고 영영 남조선 동지들에게 빌어먹고 살아야 해. 너는 그런 미래를 원하는 거야?”

두 사람이 그렇게 열띤 토론을 하는데 TV에서 광고가 끝나고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그들이 기다리던 경기가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들으며 평양대의 두 학생도 함성을 질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통일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은 그들과 같은 민족이었고 한국의 승리는 곧 그들의 승리였다.

“우리 민족 이겨라!”

“대한민국 만세! 북조선 만세!”

2002년 6월 26일.

한국에서 1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여 한국의 승리를 응원할 때, 북한에서도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모여 한국의 승리를 응원하였다.

월드컵이 한창인 지금, 이 순간만큼은 두 나라는 한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 * *

(설마 결승까지 갈 줄은 몰랐군.)

“원래는 4강에 그쳤다고 했었죠?”

(그래.)

“하다못해 이제는 스포츠의 역사까지 달라졌군요.”

(뭐, 월드컵을 단독으로 개최한 것부터가 이미 달라질 대로 달라진 것이니,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

“하긴, 이제는 그런 거 따져봐야 의미가 없긴 합니다. 정치부터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까지, 뭐 하나 달라지지 않은 게 없으니 말입니다.”

IMF도 없었고 연평도 해전도 없었다.

한국의 역사는 이제 노사가 아는 역사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였다.

‘물론 국내 역사만 달라진 것이 아니지.’

이 정도로 한국의 역사가 달라졌는데 외국의 역사라고 그대로 흘러갈 리는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인접국이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였는데, 북한은 완전히 시장을 개방하여 경제 발전에 주력하는 중이었다.

혜성 그룹의 투자 덕에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20%에 육박할 정도로 무서운 성장세를 그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1인당 GDP가 5천 달러를 넘어설 정도였다.

일본도 변화가 적지 않았다.

일단 혜성 그룹이 일본의 먹거리 사업을 야금야금 뺏었기에, 경제적 타격도 노사가 알던 그것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동남아발 경제위기가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향한 탓에 IMF까지는 아니어도 환율이 폭등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때 입은 피해를 수습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10년에서 15년으로 갱신했을 정도였다.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었는데, 한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일본의 10대와 20대는 이전 세대들과 달리 한국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정치권에선 친한파가 등장하고 있었으니, 일본의 미래는 기대해봐도 좋을 거 같았다.

‘물론 일본보다는 중국의 변화가 더 크지.’

내가 그 같은 생각을 하는데, 노사가 마침 중국 이야기를 꺼냈다.

(가장 의외의 변화는 미국과 중국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단 말이지.)

빌 클린턴 대통령의 뒤를 이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앨 고어 대통령은 오히려 빌 클린턴 대통령보다 더 강하게 중국을 압박하고 있었다.

9.11 테러가 없어서 중동에다 헛심 쓸 일도 없었기에 중국을 압박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청나라 시절의 채권까지 꺼낼 정도였다.

“파룬궁 탄압으로 수백 명이 죽었다고 하니, 미국에서 개입하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원래는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심지어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 문제까지 개입하고 있잖아? 이러다 정말 중국이 여러 개로 쪼개질 수도 있겠어.)

정말 그랬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거 같았다.

뭐, 사실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도 중국이 한국에 위협이 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핵만 없을 뿐이지, 핵무기 보유국조차 한국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강해진 상태였으니 말이다.

반면에 중국은 미국의 압박과 북한의 약진으로 노사가 알던 원래의 중국보다 훨씬 성장이 느린 상태였고.

(그나저나 네 장례식 때는 누가 찾아올지 궁금하군.)

“갑자기 무슨 장례식 이야기를 꺼내고 그러십니까?”

(올해 생일 때, 중국의 후진타오, 일본의 고이즈미, 러시아의 푸틴이 찾아왔잖아? 과연 네 장례식 때는 어떤 거물들이 찾아올지 궁금하지 않아?)

나는 혀를 찼다.

죽으라고 제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장례식 이야기를 꺼내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전혀 안 궁금합니다.”

(그래? 근데 알아둬. 죽음이란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귀신으로 수십 년을 살아서 그런지, 성격이 참으로 고약해진 거 같았다.

나는 노사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한편으로는 경각심을 가졌다.

늘 그렇듯, 노사의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이야 내가 건강하다지만, 노사의 말처럼 사람이 언제 죽을지는 하늘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후계를 생각해두기는 해야겠지. 언젠가 나도 은퇴할 날이 올 테니 말이야.’

물론 그 언젠가는 아무리 못해도 20년이 지난 이후일 테니, 그때까지는 열심히 일할 생각이었다.

아직은 혜성 그룹을 더 크게 키울 생각으로 가득한 나였으니 말이다.

- 完 -

작가의 말

독자님들. <귀신 들린 투자천재>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재벌물은 제가 워낙 좋아해서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였는데, <귀신 들린 투자천재>는 제가 생각해도 부족한 부분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1일 연재만 아니었으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주로 경제적인 지식) 글을 이어나갔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다음 작품은 어떤 글을 쓸지 아직 정하지는 않은 상태지만, 만약 재벌물에 다시 도전하게 된다면 그때는 더 많은 공부를 한 뒤에 도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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