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세상이 바뀌었다?
한성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였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다니! 역시 이한성 회장이 난 인물은 난 인물이야!”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는 모를 수 있어도, 혜성 그룹이나 이한성 회장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더군!”
“나도 그 이야기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이한성 회장이 한국 사람인 게 천만다행이 아닌가 싶어. 일본이나 중국에서 태어났어 봐. 얼마나 질투 났겠어?”
“이한성 회장이 일본인으로 태어나다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한데?”
이전부터 혜성 그룹은 한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업이었다.
반도체, 자동차, 전자 등.
혜성 그룹의 각종 제품이 전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한성이 세계 최고의 부자로 등극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혜성 그룹에 대한 자부심은 한성에 대한 자부심으로 옮겨졌다.
“재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추문을 달고 사는데, 이한성 회장은 추문이 하나도 없다지?”
“추문이 있을 턱이 없지. 맨날 회사에서 일만 하는 일 중독자라잖아!”
“이한성 회장의 자식들만 봐도 하나같이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게 눈에 보이더군. 첫째를 봐봐. 학교 성적도 좋은데, 인성까지 좋다잖아?”
사람들이 한성을 좋아하는 이유야 수도 없이 많았다.
한성은 다른 재벌 총수들과 달리 세금도 착실하게 냈고, 추문이랄 것도 없었다.
심지어 현역 제대까지 했으니 더더욱 이미지가 좋았다.
혜성 그룹 제품들이 외국에서 이름을 떨치는 것 역시, 한성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혜성 그룹과 한성을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 양반,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우리 남한 사람들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허구한 날 북한에다 돈을 쓰잖아?”
“에이, 거기가 인건비 싸서 그런 거지, 뭔 말을 그렇게 해. 그렇게 따지면 미래 그룹도 크게 다를 게 없어. 오히려 북한에다 쓴 돈을 따지면 미래 그룹이 훨씬 크게 쓰지 않았나?”
“왕주형이야 고향이 북쪽이라 그렇다 쳐도, 이한성 회장은 뭐 저리 북한에 투자를 많이 하는 거야? 지금까지 혜성 그룹이 북한에다 쓴 돈이 몇조는 될걸?”
“몇조? 그 정도로 많은 돈을 썼다고?”
“조선소 하나만 해도 얼마야! 게다가 벌써 북한에서 고용한 인력만 만 명이 넘는다잖아.”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사유재산을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문제로 삼고 있었으니까.
북한이 이전처럼 적성국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혜성 그룹을 향한 기대치가 높은 만큼, 이런 기대가 부메랑이 되돌아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러던 중, 한성이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했다는 기사가 나온 지 며칠이 지났다.
잠잠하기만 했던 혜성 그룹에서 온갖 기사가 쏟아졌는데, 하나하나가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혜성 그룹, 기부금 늘리다! 전년(1,830억 원) 대비 33%(605억 원) 증가.>
<이한성 회장, 중앙감염병병원 설립에 ‘1,000억’ 기부.>
<이한성 회장의 ‘세기의 기부’ 전 세계가 주목하다!>
<1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 발표!>
불만을 내뱉던 사람들의 입에서 불만이 쏙 들어갈 정도로 혜성 그룹은 기부, 투자, 채용 등 친사회적인 행보를 펼쳤다.
심지어 혜성은 2년간 3만 명 이상의 직원을 직접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점차 공채 규모를 줄이는 다른 기업들과 차별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었다.
“역시 혜성이야! 혜성은 다를 줄 알았다니까!”
“이한성 회장도 참 대단하군. 일개 개인이 천억을 기부하다니. 그 부가 국가를 넘어선 수준이야.”
“예전에도 몇천억 기부를 약속했었고 실제로 약속을 이행했었지?”
“누구는 탈세 혐의로 세무조사를 받을 때, 이한성 회장만은 재계의 귀감이 되는 거 같네.”
혜성의 행보가 어찌나 친사회적이었는지, 재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왔을 정도였다.
물론 그 볼멘소리도 범혜성 가의 위세에 눌려 금세 설 자리를 잃었지만 말이다.
* * *
1996년 연말은 의료, 문화 사업에 주력하며 보냈다.
그리고 해가 지나 1997년이 되자, 나스닥 지수가 4,748.62라는 사상 최고의 꼭지를 기록하였다.
‘마침내 최고점에 왔군.’
나는 보유하고 있던 나머지 닷컴 주식들도 모두 정리하였다.
소프트뱅크의 지분도 일부 팔았는데,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무려 150조로, 나는 소프트뱅크 지분 하나만으로 37조 원의 부자였다.
물론 이 주가가 언제까지 유지되리란 보장이 없었기에 보유하고 있던 지분 25% 중, 10%를 팔았다.
솔직히 전부 팔고 싶기도 했지만, 앞으로 내가 그리는 미래에서 소프트뱅크의 지분은 꼭 필요하였다.
일본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소프트뱅크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소프트뱅크의 지분 10%를 팔아 15조의 실탄을 획득한 나는 IT 버블이 붕괴하는 것을 기다렸다.
예상했던 대로, 1997년 3월.
끝나지 않은 잔치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나스닥 지수가 힘없이 밀렸다.
한 달 동안 20%가 떨어질 정도였다.
“나스닥 지수가 다시 오르겠죠? 설마 더 떨어지지는 않겠죠?”
IT 버블 논쟁이 한창 격화되고 있을 때, 전도연 비서가 어쩐지 초조한 기색으로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초조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잠시 조정 중일 뿐입니다. 곧 천정부지로 치솟을 겁니다.”
“정말요?”
“예, 저를 믿어 보세요.”
내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전도연 비서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했나 보군.’
하긴, 사람의 심리를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게 여길 일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었으니까.
내 덕에 돈을 번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지금 미로와 소프트뱅크, AOL 등에 중국 자본이 엄청나게 몰려 있다는데, 버블이 붕괴하면 과연 그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클지 기대되는데?’
* * *
수많은 IT 기업들이 시대를 앞서가며 여러 인터넷 서비스들을 실시하였다.
대표적으로 코즈모 닷컴, 부 닷컴, 팻츠 닷컴 등은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며 투자자들에게서 엄청난 돈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그들의 이상을 현실로 옮기기에는 현실의 제약이 너무 컸다.
56K 모뎀과 케이블 선 위주의 인터넷망은 그들이 약속한 서비스들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느렸던 것이다.
너무나도 느린 서비스에 지친 유저들은 웹 서비스에 관해 불신하게 되었고, 투자자들도 점차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버블이 꺼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순식간에 시장이 붕괴되었고 닷컴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파산하거나 도산의 길을 선택한 것인데, 이로 인해 닷컴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날려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 자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쩡칭훙,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주, 주석님.”
“지금 너 때문에 상하이방에서 입은 손해가 얼마인지 알아?”
주석의 오른팔이자, 제갈량이라 불리던 쩡칭훙.
나스닥 종합주가지수가 400%가량 올라가면서 그의 기세 또한 올라갔다.
중국의 이인자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것은 물론이요, 후계자로 인정받기까지 한 것이다.
하지만 좋은 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 나스닥 지수가 떨어졌을 때부터 이미 장쩌민 주석에게 쓴소리를 듣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나스닥 시장이 ‘붕괴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엉망이 되자, 이제는 아예 추궁당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까지 불렸던 그가 어쩌다 보니 죄인 신세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이게 왜 내 잘못이야! 주석, 당신은 당신의 의지대로 투자한 거잖아!’
쩡칭훙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역으로 성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그는 신임을 잃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죄, 죄송합니다.”
“수습해. 무슨 수를 써서든!”
그 말을 듣자 쩡칭훙은 암담한 심정이었다.
수습이 불가능한 일을 수습하라고 하니, 암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혜성 그룹의 돈을 뺏어오기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쩡칭훙도 혜성 그룹에 대한, 정확히는 한성을 향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한성이 잘못된 정보를 넘겨줘서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혜성 그룹이나 한성에게 보복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는데 혜성 그룹을 건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배를 갈아탈 수밖에 없겠어.’
막막한 상황에 부닥치자, 쩡칭훙은 그 같은 결정을 내렸다.
덩샤오핑이 죽었지만, 장쩌민 주석의 권력은 완벽하지 않았다.
이번에 국가 부주석으로 선출된 후진타오.
후진타오라면 장쩌민 주석의 대항마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이미 둘 사이에 마찰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 * *
IT 버블 붕괴로 인한 타격은 한국이라고 아예 없지는 않았다.
김태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코스닥 시장과 중소기업 위주의 벤처기업 육성책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한국 역시도 급격하게 IT 버블이 불타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미국, 독일보다는 타격이 작았다.
투자자들의 자본이 북한, 러시아 등으로 분산되어 IT로 몰린 투자 자본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버블이 최고점은커녕 중간 지점도 가기 전에 붕괴된 터라, 피해가 그나마 적다고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한국 IT는 사실상 혜성 그룹에서 주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코스닥의 주가 하락도 다른 나라들보다 적었다.
“이해송 대통령 만세! 만세!”
“와아아아! 보수우파 대통령!”
“경제를 살려 주세요, 각하!”
다만, 김태중 정권이 치적으로 삼던 것이 IT 발전이었기에 경제적인 후폭풍보단 정치적인 후폭풍이 거셌다.
무려 정권이 뒤바뀔 정도였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해송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얼마나 꿈꿔왔던 정권 교체던가.
무려 10년 만에 꿈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것도 다른 누구를 통해서가 아닌, 자기 손으로 말이다.
‘일단 청와대로 들어가면, 동남아발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것에 주안점을 둬야겠어. 그리고 그 뒤에는…….’
혼자 상념에 빠져 있던 이해송에게 선거자금 모금을 담당하는 정현석 법률고문이 다가와 이야기했다.
“미래 그룹이 당선 축하 의미로 큰 거 다섯 장을 보냈고, 은성과 정우에서도 각각 세 장씩 보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큰 거란 100억을 뜻했다.
이미 상당한 금액의 정치 자금을 보낸 적이 있는 세 기업이지만, 이해송이 당선되기 무섭게 추가로 정치 자금을 건넨 것이다.
“당선이 되니 뒤늦게 성의를 보내는군.”
“예, 그렇습니다. 다만, 혜성 그룹만큼은 단 한 푼의 정치 자금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혜성 그룹이라.”
정현석 법률고문의 말에 이해송은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혜성이라고 해야 할까?
다른 대기업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행보를 보이었다.
“당선인님. 푸른 지붕으로 이한성 회장을 불러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