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IT 버블?
‘그럼 그렇지.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군사력이 강해졌다고 해도 소국은 소국일 뿐이다.’
첸치천은 김태중 대통령의 반응에 흡족한 미소를 짓고는 청와대를 나섰다.
“부, 부장님.”
“갑자기 무슨 일이야?”
“북조선에서 미사일 발사시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였다.
그의 심복이 급히 보고하였는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미사일? 내가 지금 서울에 온 것을 알면서 북조선 놈들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시장을 개방한 이후, 핵 개발은 멈췄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사일은 계속 개발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소련의 과학자를 흡수하여 이미 기술적으로는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여력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미사일을 왜 하필 지금 시점에 공개한단 말인가.’
첸치천이 김태중 대통령 앞에서 어깨에 힘을 팍 줄 수 있었던 배경은, 북한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즉, 한국의 북한 공포를 믿고 어깨에 힘을 줬던 것인데, 이번 미사일 실험은 북한이 그의 뒤통수를 갈겨버린 격이 되고 말았다.
‘이게 무슨 망신이야!’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뭔가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는 노련한 외교관답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신정수 외교부 장관을 만났다.
“중국과 한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이자 떨어질 수 없는 파트너입니다.”
신정수 외교부 장관을 만난 첸치천은 그렇게 서두를 뗐다.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한때 서로 단절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긴밀한 교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지요. 중한 관계는 앞으로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질 일은 없을 겁니다.”
“저희 역시 한중 관계가 성숙하고 안정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첸치천이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키며 외교적 화법을 이어가다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중국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한반도의 장기적인 안정을 실현하기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해서 해나갈 것입니다.”
그가 한반도의 평화 유지 이야기를 들먹인 이유는 사실상 한반도 통일에 개입하겠다는 의사 표현과 다를 게 없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남과 북은 서로 상호협력 아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겁니다.”
신정수 외교부 장관이 대차게 반응하였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 일이니까, 제3자인 너는 신경 쓰지 마!’라고 단호하게 말한 것이다.
그러자 첸치천은 미간을 좁혔다.
“북한에서 오늘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하던데, 과연 그들이 평화와 안정에 관심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는 법입니다.”
“마치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을 지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첸치천은 속이 답답하였다.
북한이 엉뚱한 짓만 벌이지 않았다면, 조금 더 강하게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 자신들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고 공식 선언하였다.
한국을 압박할 비장의 카드가 사라진 것과 다름없었으니, 첸치천으로선 속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 회담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이 났다.
김태중 대통령에게 모욕을 줘가며 기세 좋게 행동했던 그였지만, 이 이상 한국을 압박할 명분은 없었던 것이다.
‘북조선 놈들을 가만둬선 안 되겠어.’
중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북한을 상대로 한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할 거 같았다.
한국보다는 북한을 다시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두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그가 신정수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을 마치자, 또다시 급보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남한 정부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예, 최대 800㎞ 사거리를 가진 미사일이 발사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놈들이 쌍으로 내 뒤통수를 치는구나!”
북한뿐만이 아니라, 하필 한국까지 이 시점에 미사일을 쏠 줄이야.
이건 대놓고 중국을 엿먹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빌어먹을! 벌써 800㎞라니. 이래서야 한국을 어찌 건든단 말인가?’
첸치천은 분노하였지만, 그 분노를 표출하지는 못했다.
베이징, 상하이를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둔 한국은 이전보다 훨씬 상대하기 까다로운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 * *
“목표를 정확히 타격하였습니다.”
짝짝짝!
실험장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립 박수하였다.
한미 미사일 지침이 개정된 것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한 달 만에 500㎞에서 개정된 지침인 800㎞까지로 사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렸다.
실로 뜻깊은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중국도 더는 무리하게 압박하지 못하겠지요?”
“그럴 겁니다. 미사일 사거리가 800㎞까지 늘어났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중국이라고 모를 리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 남북이 하나가 되어 중국의 압박에 대응했다는 것도 중국이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강요할 것입니다.”
내 대답에 김태중 대통령은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청와대에서 첸치천 외교부장에게 굴욕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통쾌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대로 기세를 몰아 통일까지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쎄.
통일은 그리 쉽게 될 거 같지는 않았다.
아직 국민적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북한도 준비가 잘 되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만약 지금 상태로 급작스럽게 통일을 한다면 사회적 혼란만 초래할 뿐이었다.
‘어차피 주북 미군도 곧 현실화할 테니, 통일을 급하게 시도할 필요는 없지.’
이북 지역에 미군이 주둔하기만 한다면, 통일에 관해서는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북한의 체제가 갑자기 바뀔 일도 없을 것이고, 남북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일도 앞으로는 절대 없어질 테니까.
하여 나는 김태중 대통령에게 이같이 말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한의 경제력 때문입니까?”
“예, 아무래도 국민의 부담을 줄이려면 북한도 어느 정도 체급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이야 우호적인 관계라지만, 남과 북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던 사이였다.
옛 감정이 아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비라는 명목으로 추가 세금을 뜯어 이북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걸 긍정적으로 생각할 한국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북 사람들 역시도 일찍 통일해봤자 좋을 게 없었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이야 덜하게 되겠지만, 나중 되면 이북 출신은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차별을 받게 될 터였다.
사회 부적응자도 속출하게 되어 한국 사회 전체에 큰 혼란을 가져다줄 것이고 말이다.
“적어도 북한의 1인당 GDP가 5천 달러 이상은 돼야 통일로 인한 혼란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5천 달러라.”
김태중 대통령은 쓴웃음을 지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하긴, 북한의 1인당 GDP를 생각하면 5천 달러도 막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1인당 GDP는 1,000달러가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으니.
“한국과 비교하면 13배 이상 차이가 난다던데, 과연 단기간 안에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까?”
“곧 북한에 세계 자본이 몰리게 될 겁니다.”
이미 그 조짐은 미국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월가가 북한을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종금사의 자본도 북한으로 향하고 있지.’
지금이야 1,000억 단위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 단위의 돈이 북한으로 향할 터.
미래 그룹은 물론이고 다른 기업들 역시 북한에다 공장을 짓기 시작했으니, 북한의 1인당 GDP가 5천 달러 되는 것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길어야 10년? 이왕이면 2002년 서울 월드컵 전후에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군.’
얼마 전, 한국이 일본과 멕시코를 제치고 FIFA에 의해 개최국으로 선정되었다.
즉, 노사가 알고 있는 역사와 달리 2002년 월드컵은 한국이 단독으로 개최하는 월드컵이 된 것인데, 나로서는 이 월드컵을 기점으로 남북이 진정한 하나의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백악관의 연락이 와서 미국으로 날아가 빌 클린턴 대통령과 독대하니, 그가 대뜸 말했다.
“현무2의 발사가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빌 클린턴 대통령님의 지지 덕분입니다.”
“제가 들어보니, 현무2의 사거리가 상당한 거 같더군요.”
“미사일 지침은 확실하게 지켰습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정말, 최초의 성공이 맞습니까?”
그는 아무래도 한국이 한미 미사일 지침을 어기고 800㎞ 이상의 미사일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는 듯했다.
하긴,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고 불과 한 달 만에 800㎞ 사거리를 가진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하였으니 그런 의심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물론입니다. 한국이 어찌 미국을 속이고 엉뚱한 짓을 하겠습니까?”
“저야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중국이 이빨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한국의 군사력이 강해지면 나쁠 게 없지요.”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그가 한국을 오해라도 하면 곤란했는데,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싶었다.
“한국이 미국의 이권을 위협할 일은 절대 없으니 안심해도 좋습니다.”
“하하, 미국의 든든한 우방국인 한국을 의심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해본 말입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안심할 수 없었다.
비록, 지금이야 이렇게 넘어간다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의 속내는 나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내심 한국을 위협적인 국가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중국은 미스터 리의 말처럼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나라인 듯합니다.”
“종잡을 수 없다는 말씀은?”
“대외 정책이 갑자기 변하지 않습니까? 아주 공격적으로 말입니다. 심지어 북한과는 국경에서 충돌이 발생했다죠?”
“예. 공식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양군에서 소수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중국군에서 다섯 명, 북한군에서 일곱 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어쨌든,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는 중국의 모습을 보니, 미스터 리가 했던 말들이 전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설득한 게 마침내 통한 모양이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이고, 공화당에서는 오히려 대중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로선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미스터 리. 다음 대선 때도 저를 도와주세요. 공화당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미스터 리에게도 좋을 것은 없을 겁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리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도울 생각이었다.
지금의 한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대통령께 힘을 보태겠습니다.”
“하하하, 미스터 리가 나를 돕는다면 재선도 승리한 거나 다름이 없겠군요.”
그야 그럴 것이다.
경제적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재선에 실패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IT 버블이 4년이나 일찍 터지지 않는 한, 빌 클린턴은 재선에 성공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