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295화 (295/300)

295화 도발을 해?

<중국, ‘한국의 폭력적 법 집행에 강력한 불만’.>

<‘해경 폭력 집행’을 비난한 중국 정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의사 표현!>

해경 경비정이 불법 조업 어선을 단속하던 도중, 경비 대원의 공기 탄 사격으로 중국 선원 사망자가 발생하자 중국이 강하게 비난하였다.

(역시, 이곳의 중국도 내가 알던 중국과 다를 게 없군. 불법 어선을 외교 압박에 사용하다니 말이야.)

노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는 말에 내가 물었다.

“이번 사건이 중국에서 의도한 사건이었습니까?”

(사상자가 나온 거 자체는 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불법 어선을 외교적으로 활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국이 자주 써먹는 수법이었나 봅니다.”

하긴, 중국이 저러는 것은 노사가 아는 미래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50년대부터 중국의 불법 조업은 계속해서 이어져 온 문제였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중국이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 아십니까?”

미국이 외교 압박을 한 이후 지금껏 조용하게 있었던 중국이다.

갑자기 태도가 바뀌니 나로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장쩌민이 권력 다툼에서 이겼으니,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저러는 거 아니겠어? 미국 대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이유도 물론 있을 것이고 말이야.)

“성가시게 되었군요.”

(어차피 빌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중국도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거다.)

뭐 그건 그럴 테다.

하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중국의 압박을 계속 받을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역시 미국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우리도 우리만의 힘을 길러야 해.’

만에 하나 빌 클린턴이 재선에 실패한다면?

공화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당장 전쟁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중국이 한반도 통일을 막기 위해 더 공격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일본에서도 독도 도발 같은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도 있었고.

그렇기에 힘을 키워서 일본과 중국이 무모하게 도발하지 못하게끔 만들어야 했다.

“아무래도 미국에 가야 할 거 같습니다.”

(미국에는 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다시 설득하여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게 유도해야겠습니다.”

이미 500㎞까지 늘어난 상태.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무력 도발을 막으려면 500㎞로도 부족하였다.

(좋은 생각이다. 미사일 사거리는 지금보다 아무리 못해도 2배는 되어야 해.)

사거리 1,000㎞는 실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서울특별시 기준으로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그리고 일본의 혼슈 지역 대부분을 사거리 안에 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사거리만 된다면, 중국이든 일본이든 더는 우리의 군사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1,000㎞라. 그런데 만약 그 정도 미사일을 바로 개발해낸다면 일본과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조차 우리를 의심하겠습니다.”

(어쩌겠느냐. 어차피 한미 미사일 지침은 강제성 없는 양해 각서일 뿐이야. 우리가 몰래 사거리 연장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게 알려져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니.

만약에 미국과 외교적으로 마찰이 생긴 때라면 엄청난 논란이 될 일인데.

‘뭐,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친분이 있으니 별문제가 안 될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안 그래도 외국에서는 한국이 실제 미사일의 사거리 스펙을 축소해서 발표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 미국행으로 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완화되더라도 미사일 사거리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조금 미룰 필요가 있을 거 같았다.

* * *

중국의 외교 압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서 계속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그들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북한까지 압박하고 있었다.

국경 지역 근처에 탱크 부대를 이동시키는 식으로 북한을 상대로 군사적인 도발을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 진짜 전쟁이 나는 건 아니겠지?’

분위기를 보아하니, 중국은 북한의 변화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 같았다.

미군이 북한에 주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서 저러는 모양인데, 사실 중국으로선 역린이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이한성 회장님. 저 김태중입니다.

한창 중국과 외교적 마찰이 심해지고 있을 때, 김태중 대통령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통령님,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부탁이라.

이전에는 어떤 부탁을 할지 대충 예측이 됐었는데, 이번에는 도무지 예측되지 않았다.

최근 청와대의 관심사는 나와 마찬가지로 중국 외교와 관련되어 있을 텐데, 내가 아무리 혜성 그룹 회장이라고 해도 나라 간의 일에는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떤 부탁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일단 부탁을 드리기 전에, 이한성 회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 인사라니요. 저는 대통령님께 감사받을 일이 없는데…….”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들었습니다. 이한성 회장이 한미 미사일 지침의 개정을 강하게 요구하셨다고요.

아무래도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그래도 미사일에 관한 이야기까지 꺼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참고로 한미 미사일 지침이 개정된다는 사실은 나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내가 직접 미국에 가 빌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하였는데, 모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감사 인사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자주국방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기업가이신 이한성 회장님이 자주국방을 위해 그리 힘써 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받을 일입니다.

“과찬입니다.”

내가 겸손하게 대꾸했지만, 김태중 대통령의 칭찬 릴레이는 끝날 줄 몰랐다.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가 800㎞까지 늘어났습니다. 이 얼마나 경사로운 일입니까? 이한성 회장님이 아니었으면 10년, 20년이 지나도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분명히 경축할 일이긴 한데, 800㎞인 게 아쉽다.

조금 더 제한을 늘려서 1,000㎞까지 풀렸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설마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제가 아니었어도 높아지고 있는 한국의 위상이라면, 미사일 주권이야 언제든 회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회장님 덕에 시간이 앞당겨진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긴 했다.

자랑할 수 없는 일이란 게 문제긴 하지만.

“그런데 부탁하실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용건을 묻자, 김태중 대통령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같이 말했다.

-대중 외교와 관련해서 북한 정부와 합의할 일이 있는데, 염치없지만 북한의 정보를 얻는 일을 다시 한번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염치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대통령이 일개 기업가에게 부탁할 일이 아닌 건 사실이었다.

경제적인 자문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국가의 정보를 얻어달라는 부탁이었으니.

하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게 있어 어려울 것도 없는 부탁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노사가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쉽게 들어 줄 부탁도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노사가 북한 정보 관련해서는 정부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했으니 주저할 필요가 없긴 하겠지?’

노사는 미래를 살고 온 사람이라서 그런지,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일은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자신이 전해 주는 정보가 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크게 기뻐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나저나 북한과 어떤 것에서 말을 맞추려는 거지?’

내가 속으로 그런 의문을 품을 때, 김태중 대통령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리고 미사일 발사 실험을 조금 앞당기려고 합니다.

“현무 2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미국의 눈치가 보이기도 하니, 조금 미루는 게 나을 거 같긴 한데, 얼마나 더 시일을 앞당길 계획입니까?”

-장 소장 말로는 이번 달 안에 가능하다고 해서 5월 말로 잡았습니다.

서둘러도 너무 서두르는 거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미사일 지침이 개정되고 불과 한 달 만에 800㎞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하다니.

시험발사에 성공한다면 미국이 한국을 어떤 눈으로 볼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하지만 중국 때문이라도 서두를 필요가 있긴 하지.’

미국의 눈치가 조금 보인다고 해서 자주국방의 길을 미룰 순 없었다.

하여 나는 김태중 대통령의 말에 별다른 이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 * *

1996년 5월 29일.

중국 외교부장 첸치천은 한국으로 향하였다.

중국인 선원이 한국 해경의 공기 탄을 맞고 사망한 일을 두고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명분이었고, 실질적으로 그의 목적은 한국에 ‘예의’란 것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소국이 어찌 대국에 저항하려 하는가?’

이것이 첸치천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중국 지도부 대부분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구만 10억이 넘는 중국이었다.

영토 크기도 세계에서 5위 안에 들었다.

반면에 한국은?

군사력이야 무시 못 할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인구도 적고 영토 크기는 중국의 한 개 성만 못하였다.

첸치천으로선 한국을 무시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경제력 하나는 무섭게 성장하는 거 같긴 하군.’

8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표현은 90년대가 되면서 더욱 널리 쓰이게 되었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중국도 이 네 마리의 용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세계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는 한국 기업들.

혜성의 경우 일본 브랜드를 넘어설 정도로 확고한 입지를 다지는 것에 성공하였다.

더군다나 1인당 GDP의 성장률도 놀라워서 1만 달러를 돌파하고도 그 기세가 여전하였다.

그 덕에 한국의 중산층은 대단히 두터워 내수시장의 규모도 인구수에 비하면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아직은 일개 소국일 뿐이다.’

첸치천은 잡념을 떨쳐내고는 청와대로 향하였다.

“환영합니다. 오시는데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까?”

“일정이 바쁘다고 들으셨는데, 대통령께서 직접 저를 환영해 주시니, 이거 참 기분이 좋습니다.”

김태중 대통령이 직접 그를 접견해주었는데, 첸치천이 어떤 의도로 한국에 온 것인지를 아직 몰라서 그러는지 호의적인 태도였다.

물론 그가 중국의 외교 책임자인 만큼 예의상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당연했지만, 첸치천은 김태중 대통령의 호의를 약소국 특유의 굴복적인 자세로 받아들였다.

“한국에서 꼭 원하는 결과를 얻고 귀국하시길 바랍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대통령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신정수 외교부 장관에게 잘 말해주세요. 우리 사이에 괜히 얼굴 붉히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말입니다.”

첸치천은 웃으며 그리 말하고는 김태중 대통령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김태중 대통령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는 식의 태도를 보였으니, 김태중 대통령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과연 중국 외교부장인 나를 상대로 화를 낼 수 있을까?’

지금 그의 행동은 사실 의도했던 도발이었다.

애초에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가 외국 정상 앞에서 이런 무례를 실수로 저지를 일은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어떻게 나올지를 확인하려고 한 행동인데, 예상했던 대로 김태중 대통령은 애써 참는 기색을 보여 주었다.

중국과 맞서는 게 두려워서 저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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