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293화 (293/300)

293화 성과급 잔치

노부유키 이데이 회장은 혜성과 불필요한 경쟁을 하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혜성을 견제하는 것?

그건 이미 증명되었다.

아무리 견제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소니에서 많은 심력과 자본, 영향력을 투자해서 혜성 그룹을 공격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성과를 본 것이 없었다.

오히려 소니의 견제를 발판 삼아 더 높은 곳으로 치고 올라오더니, 이제는 전자에서까지 세계 1위를 차지한 혜성 그룹이었다.

더군다나 혜성 그룹의 뒤에 미국 대통령이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미국의 경제 호황으로 빌 클린턴의 재선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었다.

남은 임기는 2년이 아닌, 6년일 수도 있다는 뜻.

안 그래도 빌 클린턴의 당선 이후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는데, 빌 클린턴이 재선까지 한다면 소니는 미국에서의 사업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빌 클린턴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빌 클린턴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혜성 그룹과 적대 관계를 청산할 필요가 있었고.

‘혜성과 더 경쟁해 봤자, 다른 기업들만 득 되는 일이야. 그러니 반드시 임원들을 설득하여 혜성과 평화 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

과연 자존심 강한 소니의 경영진들이 그의 설득에 넘어갈지가 문제였지만, 어떻게든 설득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니는 시대의 흐름에 도태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 * *

혜성 그룹과 적대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것은 노부유키 이데이 회장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니보다 더 혜성 그룹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쪽은 따로 있었다.

“혜성에서 단가를 다시 올렸다고 합니다.”

“드디어 치킨게임을 끝내기로 한 모양이군요.”

“휴, 다행입니다. 1년만 더 이어졌으면 사업을 접어야 했을 판인데 말입니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본래 도요타, 소니보다 훨씬 혜성에 적대적이었다.

혜성 반도체의 성장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혜성 반도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같잖은 시선으로 보다가, 그 이후에는 경계의 시선으로 혜성 반도체를 지켜봤다.

그리고 지금은 혜성 반도체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문제는 언제 또 혜성에서 치킨게임을 시작할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하아, 주도권을 되찾을 방법은 없는 거겠죠?”

“격차가 벌어질 대로 벌어졌는데, 어떻게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혜성에서는 1G D램을 개발했다죠?”

“1G라니. 저희는 이제 막 256M의 완전한 워킹 샘플을 개발했는데, 격차가 이렇게까지 차이 나는 게 말이 되는 겁니까?”

“정말 소문처럼 혜성이 외계인을 고문하기라도 하나 봅니다.”

일본 반도체 업계의 종사자들은 혜성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마다 혀를 내두르곤 했다.

아무리 혜성 반도체가 세계 1위의 기업이 되었다지만, 이건 격차가 커도 너무 컸다.

한때 세계 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했던 일본 기업들조차 혜성 반도체의 발끝을 따라잡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심지어 서로 힘을 합치는 상황에서도 그러했다.

“주도권을 되찾을 수 없다면, 이제 그만 인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혜성이 업계 최고가 되었다는 사실을.”

“혜성에 무릎이라도 꿇자는 겁니까?”

“무릎을 꿇을 거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혜성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저기서 흥분한 목소리로 ‘너, 비국민이지!’, ‘이 조센징 같은 놈!’이라고 외쳤을 것이다.

사실상 혜성 반도체에 굴복하자는 의견이나 다를 게 없었으니.

하지만 일본 반도체 업계의 종사자들에게 더는 자존심이란 게 남아 있지 않았다.

다섯 개의 기업이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견제했건만, 혜성 반도체는 오히려 규모를 팽창해왔다.

이제는 혜성 반도체의 견제에 역으로 당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이니, 자존심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저 역시 찬성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거야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뭐, 혜성의 이한성 회장을 우리의 이너서클에 참여하게끔 만든다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 저 역시 찬성하는 바입니다.”

하여 그들은 혜성 반도체와의 관계 회복에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였다.

* * *

올해 6월, 혜성 전자로 이직한 강민석 대리는 본래 미래 전자 출신이었다.

은성 전자와 미래 전자가 합병하면서 푸대접을 받게 되자, 참지 못하고 미래 전자를 나와 혜성 전자로 이직하였다.

사실 강민석 대리는 이직에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은성 전자나 미래 전자와 비교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급이 높은 것이 혜성 전자였다.

국내 기업들과 비교할 게 아니라,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비교하는 수준인데 더 말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와도 합격을 보장 못 하는 곳이 바로 혜성 전자인 만큼, 강민석 대리는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하였다.

물론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대기업이어도 복지부터가 차원이 다른 혜성 그룹이었다.

월급은 업계 1위였고 말이다.

오죽하면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이제 ‘사’로 끝나는 직업보다 혜성 그룹의 직원, 그중에서 3대 계열사 직원의 등급을 더 높게 취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강민석 대리는 혜성 전자로 이직하자, 적응하기에 어려움을 느꼈다.

일단, 강민석 대리는 동료들과 대화하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작년에 양재역 근처의 아파트 샀었지? 요즘 그쪽 땅값이 많이 올랐다는데, 한잔 사야 하는 거 아니야?”

“야. 부모님, 실거주하게 사드린 건데 땅값이 오른 게 뭔 상관이야? 그러는 너는 주식에서 재미 좀 보고 있다며?”

“나는 그냥 IT 기업에만 투자하고 있어. 소소하게 1억 정도?”

“1억이 소소하냐?”

“전 부장님이 얼마를 굴리는지 못 들어봤어? 거의 10억에 가깝단다.”

“부장님이니 그런 거지. 우리도 부장급 되면 그 정도는 굴리겠지. 아니, 10억이 뭐야, 20억이나 30억도 가능하지 않을까?”

혜성 전자에서 대리급이라고 해 봐야 3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였다.

많으면 30대 후반이었고.

그런데 그 나잇대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산이 많았다.

강민석 대리처럼 자가를 보유하지 못한 사람은 대리 3년 차 이상에서는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주식이니, 부동산 투자니, 경제에 관한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투자는커녕 적금하기도 벅찼던 강민석 대리로선 실로 낯설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10분 전이다. 들어가자.”

“담배 지금 꺼냈는데?”

“나중에 펴. 담배는 일 완전히 끝냈을 때 피는 게 진짜 꿀맛이야.”

“무슨 모범생이냐?”

“여기는 모범생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어.”

또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혜성 전자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였다.

강민석 대리는 학창 시절에도 이렇게 철저히 시간을 지킨 적이 없었다.

쉬는 시간이면, 몇 분 정도 더 농땡이 피우고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 그의 원래 스타일이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혜성 전자에서는 절대 그렇게 안일하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어긴다고 월급이 깎이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경쟁에서 밀릴 뿐이었다.

문제는 그 경쟁에서 밀린다는 게 월급이 줄어드는 것보다 훨씬 타격이 크다는 게 문제였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언젠가 직급이 추월당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곳에서 평생을 버텨야 한다고?’

처음 혜성 전자에 입사했을 때야, 업무 시간은 짧은데 월급을 많이 주니, 혜성 전자에서 평생을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데 막상 혜성 전자에서 일하니, 업무 시간이 짧은 것이 전혀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미래 전자에서 10시간 넘게 일하는 것보다 혜성 전자에서 8시간 일하는 것이 훨씬 고달팠다.

솔직히 미래 전자에서는 근무 시간이 10시간이어도 실질적으로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은 10시간의 절반인 5시간에 불과했다.

담배 피운다는 핑계로 1시간 정도 농땡이 피고, 대충 업무 하는 시늉하며 시간을 때운다면 어느덧 업무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미래 전자에서는 야근한다고 해도 체력적으로 힘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혜성 전자에서는 야근한 적이 한 달에 두세 번 있을까, 말까 한데도 늘 체력이 달렸다.

업무 집중도가 미래 전자에서 일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이에서도 이렇게 버티기 힘든데, 40대가 되면 과연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직급이 높아진다고 업무가 쉬워질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순 괴물들밖에 없는 기업이 바로 혜성 전자였다.

다른 기업들처럼 줄만 잘 탄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젊은 인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히려 과장이 되고 차장, 부장이 되면 그런 인재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실질적인 업무량도 물론 더 많아질 것이고 말이다.

“하아.”

그렇게 강민석 대리가 혜성 전자에 계속 다닐지 말지를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때, 연말 성과급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번엔 얼마나 줄까?”

“세계 1위 했으니, 300% 정도는 주겠지.”

“글쎄. 꼭 그렇지는 않을걸? 혜성 전자의 임직원 수가 혜성 자동차 임직원 수보다 많잖아. 직원이 이렇게 많은데 300%를 어떻게 줘? 거기다 우리는 상장 기업이라고?”

“그렇긴 한데, 회장님 성격상 조금 무리해서라도 주지 않을까?”

“나는 200%만 받아도 만족한다. 애초에 기본 월급이 크게 올라서 200%만 받아도 1,200만 원이 넘어. 다른 기업들 생각하면 이것도 감지덕지야.”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해.”

연말 성과급 이야기를 하는 혜성 전자 직원들은 하나같이 훈훈한 분위기였다.

직원의 수가 워낙 늘어나고, 기본 월급도 높아져서 예전처럼 400%, 500% 성과급은 이제 불가능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직원들은 연말 성과급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일종에 전통처럼 굳혀진 것인데, 혜성 전자는 특히 기대할 만했다.

무려 세계 1위의 전자 기업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성과급을 조금밖에 못 받겠지?’

아쉽게도 강민석 대리는 연말 성과급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제 입사 5개월 차가 남들과 같은 연말 성과급을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연말 성과급을 받는 당일이 되자 강민석 대리는 매우 놀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그의 통장에 찍혔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얼마야?”

957만 원.

미래 전자에서 일했을 때는 1년 동안 모아야 겨우 모을 수 있는 돈이 한 번에 들어왔다.

입사 5개월 차인 그에게도 200%가 넘는 성과급이 지급된 것이다.

‘이러니 사람들이 혜성에 목매다는 거구나.’

기본 급여도 업계 1위로 무려 300만 원이 넘었다.

대기업의 평균 급여가 이제 150만 원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도 실로 큰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성과급까지 합치니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거금을 벌게 되었다.

연차가 쌓이고 실질적인 성과까지 낸다면 성과급으로 얼마까지 받을까 생각하면 입이 떡 벌어졌다.

‘설령 과로사로 죽더라도 혜성에 계속 다녀야겠어.’

정 힘들면 3년 정도만 일한 뒤에 그만둬도 됐다.

혜성에서 3년만 일해도 건물주가 될 수 있을 테니까.

* * *

“어째 직원들의 함성이 여기까지 들리는 기분입니다.”

진봉현 비서실장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성과급으로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올랐나 보군요.”

“크게 오른 정도겠습니까. 아마 지금쯤 술로 샤워하고 있는 팀도 있을 겁니다.”

“연말이니 며칠 정도는 즐기게 놔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직원들의 공로를 생각하면 200%, 300%의 성과급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혜성 그룹이 이렇게까지 성장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터.

그러니 많은 것은 주지 못해도 금전적으로나마 조금 보답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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