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두 개의 회사를 인수하다
나는 두 개의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 오니, 디오의 인기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100만 대의 판매량 자체는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MP3라는 것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100만 대의 판매량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미국은 11월, 12월이 가장 매출이 높을 것이기 때문에 그때의 매출을 기대하면 올해 천만 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보는 것도 가능하였다.
‘출시 첫해부터 천만 달러의 순이익이라. 앞으로가 기대되는군.’
100만 단위를 넘어 천만 단위의 판매량을 기록하면 그때는 얼마나 많은 매출을 얻을 수 있을지 벌써 기대되는 거 같았다.
“혜성은 정말 혁신 그 자체입니다. 디오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감탄밖에 안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본 스티브 잡스가 인사를 나누고는 그 같이 말했다.
“혁신으로 가장 이름을 떨치는 스티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듣기 민망합니다.”
“제 명성도 이제는 SW 시장에서만 통하지, 하드웨어 시장에서는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혜성은 IT라면 가리지 않고 잘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애플로 복귀하셨으니, 하드웨어 시장에서도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일만 남았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할 것이란 사실은 오래전부터 예측하였다.
물론 복귀한 시기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긴 했지만 말이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감사 인사를 하니, 또 감사할 게 있군요. 픽사의 애니메이션 유통 계약에서 저희를 배려해주신 점, 대단히 감사합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토이 스토리’로 이름을 떨치는 이 기업의 실질적인 소유자가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그리고 나는 작년에 인수했던 폴리그램 엔터테인먼트에 지시하여 픽사와 유통 계약을 하였다.
당시 폴리그램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말이 많았다고 하던데, 결과적으로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곧 증명될 거다.
역사상 첫 장편 CG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 스토리는 대단한 성공을 거둘 예정이었으니까.
“저는 디즈니에 뺏기지 않으려고 그런 계약을 맺었던 거뿐입니다. 감사 인사를 들을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디즈니와 경쟁하면서까지 토이 스토리에 투자하려던 것을 보면 미스터 리는 토이 스토리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나 봅니다.”
“예. 흥행 수익이 아무리 못해도 억 단위는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억이요? 허어,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믿지 못했을 텐데, 미스터 리의 말이니 안 믿을 수가 없군요.”
그야 그럴 것이다.
폴리그램이 작년부터 준비했던 브레이브 하트와 나쁜 녀석들 모두가 제작비 대비 큰 흥행을 거두었으니까.
‘내년에 개봉할 미션 임파서블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겠지. 뭐 어떤 내용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작년에 내가 폴리그램을 인수한 뒤로, 겨우 1년 만에 업계에서 폴리그램의 순위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시장 점유율이 평균 10% 정도인 빅6의 영화사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업계 10위 밖에서 10위 안으로 확실하게 들어왔다.
연말과 내년 개봉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영화들까지 모두 개봉하고 나면 7위까지도 순식간에 오를 수 있으리라.
‘영화가 가진 힘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지.’
나는 이미 할리우드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체감한 상태였다.
수익도 물론 엄청났다.
몇 배를 넘어 수십 배의 이익도 심심치 않게 거두는 것이 바로 할리우드였으니까.
노사가 전해 준 정보로 나는 이미 할리우드에서만 10억 달러 이상의 이익을 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은 할리우드의 영향력이었다.
할리우드의 영향력이 실로 엄청났는데, 할리우드의 영향력을 잘만 활용하면 기업의 이미지를 단번에 바꿀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쩌면 국가의 이미지까지도 말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렇군요. 미스터 리가 손해 볼 짓은 하지 않겠죠?”
“예, 아무래도 기업가다 보니 기업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스터 리에게 빚을 진 게 없다고 생각하고, 한 가지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제안이라면?”
“저는 애플에서 디오와 같은 혁신적인 기기들을 생산할 생각입니다. 물론 기존의 컴퓨터와 노트북도 계속 생산하겠지만 말입니다.”
“선전포고라도 하시는 겁니까? 하하.”
내가 농 섞인 목소리로 묻자 그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혜성과 몇 가지 사업에서 경쟁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미스터 리와 저는 원래 선의의 경쟁하는 사이 아니었습니까? 제가 애플의 CEO가 된다고 해서 새삼스레 적대하거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저는 혜성에 위탁 생산을 맡기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개발할 모든 제품을 말입니다.”
위탁 생산이라.
나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제조업체로서 생산 라인을 하나라도 더 돌릴 수 있다면 이익이었으니까.
“애플에도 캐나다에 큰 공장이 있지 않습니까?”
“큰돈을 들여 새로운 투자 설비를 하는 것보다, 혜성 전자의 완성된 공장을 활용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갔다.
기술력으로 보나 생산력으로 보나 사실상 세계 1위를 칭해도 부족할 게 없는 혜성 전자였다.
지금의 애플이라면 스티브 잡스의 생각처럼 위탁 생산을 하는 것이 남는 장사일 수도 있었다.
“좋습니다.”
내가 흔쾌히 대답하자 스티브 잡스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 *
스티브 잡스와의 대화를 끝나고 폴리그램 엔터테인먼트 CEO에게 이런저런 보고를 들었다.
“올해 총매출이 6억 달러라. 기대 이상의 성과군요.”
“브레이브 하트와 나쁜 녀석들의 흥행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장 먼저 들은 매출 보고였다.
10월인 지금, 폴리그램 엔터테인먼트의 매출은 6억 달러였다.
아직 두 달이 남았으니, 올해 매출은 8억 달러 정도를 기대할 만하였다.
‘영화 한두 개로 매출이 이 정도나 차이가 나다니. 이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업이 있을까 싶군.’
물론 흥행한 영화를 계속 유통하면 꾸준하게 매출이 나올 테니, 꼭 리스크가 크기만 한 사업은 아니었다.
미로에서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해주는 덕분에 폴리그램의 영화들은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기도 했고.
“이전에 지시하셨던 대로, 영화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전부 재투자하고 있습니다.”
폴리그램 엔터테인먼트는 한창 규모를 확장해야 할 시기였다.
직원도 늘려야 했고 유통망도 더 키워야 했던 것이다.
“마블 엔터테인먼트 인수할 자금은 남겨두었겠지요?”
“물론입니다.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인수가는 대략 3천만 달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금과 10월 말에 들어올 자금을 합치면 3천만 달러는 어렵지 않게 모으는 게 가능합니다.”
마블 엔터테인먼트.
이번에 미국에서 인수할 두 개의 회사 중 하나가 바로 마블이었다.
앞으로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의 힘은 더욱 막강해질 터.
마블의 가치가 높아질 것도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리암 대표님은 여전히 마블 엔터테인먼트 인수에 회의적으로 생각합니까?”
“하하,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저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쁜 녀석들과 브레이브 하트의 성공을 봤지 않습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솔직히 나라도, 젊은 CEO가 찾아와서는 사주랍시고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면 불쾌하게 여겼을 거 같았다.
할리우드에서 커리어를 쌓은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역시 실력을 보여주는 게 정답이군.’
폴리그램 엔터테인먼트의 임직원이 보냈던 차가운 시선은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어떤 시선을 보내는지 알면서도 인내하고 또 인내하였는데, 결국 그 인내는 보답 받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지금의 폴리그램 엔터테인먼트의 임직원들은 혜성 그룹 직원들이 그렇듯 나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선택한 영화는 모두 성공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비록 시장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격을 인상하는 정책을 펼쳐 큰 실패를 하였지만, 그래도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가진 캐릭터의 힘은 여전합니다.”
“캐릭터의 힘이라.”
“제가 일전에 이야기했던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을 시작으로 마블의 히어로를 하나씩 출격시켜 흥행을 가져온다면 6대 영화사를 넘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만화 시장은 쇠락했으나, 마블의 진짜 힘은 바로 캐릭터였다.
3천만 달러?
솔직히 1억 달러를 불러도 아깝지 않을 거 같았다.
마블 하나로 소니의 자회사인 컬럼비아 픽처스를 넘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나저나 6대 영화사 중의 한 곳인 컬럼비아 픽처스에서는 여전히 저희를 견제하고 있습니까?”
나는 마침 생각난 김에 컬럼비아 픽처스에 관해 물었다.
참고로 소니의 집요한 견제는 가전을 넘어 영화사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다른 일본 기업들이 다 그랬지만, 소니 역시도 혜성이 한국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쾌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예. 이제는 다른 영화사까지 끌어들여 보이콧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그래도 자체적으로 유통할 영화 판권이 부족한 폴리그램 엔터테인먼트인데, 소니의 견제가 성가시게만 느껴졌다.
‘영화사도 안 풀리고 음반 사업도 계속 적자 나고 있는데 굳이 저러고 싶을까?’
소니는 전자 사업만 안 풀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한창 잘 나가던 엔터테인먼트 쪽도 최근 들어 적자를 거듭하고 있었다.
영화야 내가 컬럼비아 픽처스에서 유통할 흥행작을 미리 가로채서 그런 것이고, 음반 사업도 음원의 불법 복제가 늘어나면서 수익이 급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니가 보유한 음반사 중에 부도 위기에 처한 곳이 있다던데, 기회가 되면 소니 자회사 하나를 인수해서 음반 사업도 진출하든가 해야겠어.’
음반 하니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졌다.
콘텐츠의 힘은 영화도 영화지만, 음악도 빠질 수 없었다.
마침 소니가 음반사 쪽으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니, 음반 쪽도 소니를 목표로 잡으면 될 거 같았다.
‘물론 올해는 마블 엔터테인먼트와 가민사를 인수하는 게 먼저겠지만 말이야.’
뭐든지, 급하면 체하는 법이었다.
어차피 음반사들은 몇 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니, 가장 인수가가 낮아졌을 때 인수하는 게 좋을 것이다.
* * *
올해 취임한 노부유키 이데이 소니 회장은 미국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하나 긍정적인 소식이 없었다.
영화, 음반, 전자, 금융 등.
안 그래도 적자에 허덕이는 소니였다.
그런데 기존의 사업까지 악화 일로를 걸으니 노부유키 회장으로선 마음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임원들은 옛 영광에 취해있으니.’
지금도 소니는 최고의 전자 기업이었다.
소니의 트리니트론과 워크맨이 세계 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하지만 문제는 혜성이 뒤에서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트리니트론?
올해의 판매량만 따지면 혜성의 클레앙 TV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워크맨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불과 한 달 전에 출시한 혜성의 디오가 100만 대의 판매량을 기록한 판이었으니까.
더 큰 문제는 시대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의 강력한 경쟁자인 혜성은 디오만 보면 알 수 있듯, 디지털 기술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인 기업이었다.
이미 무서운 적이지만, 앞으로 더 무서운 적이 될 거라는 뜻.
아니, 인정하긴 싫지만 이미 혜성은 소니를 넘어섰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전자 쪽은 혜성이 세계 1위의 매출과 자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다른 계열사까지 포함해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지금은 몸을 낮추고 적에게서 배움을 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