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291화 (291/300)

291화 MP3를 출시하다

“선생님, 저의 아이 좀 살려주세요. 부탁입니다!”

“이미 가망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고, 강철아.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

김정일이 죽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북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체감할 수 없었다.

먹고살 걱정으로 정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먹고살 걱정이란, 말 그대로 먹고사는 것을 의미하였다.

당장 오늘 한 끼를 먹을 수 있을지, 추위를 버티고 무사히 일어날 수 있을지 등등.

“일제 강점기 때보다 사는 게 어려워.”

어찌나 먹고사는 게 어려웠는지 노년층 사이에서 이런 말까지 나왔다.

최악의 시대였던 일제 강점기보다 어렵다는 말을 한 것인데, 그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소아과로 가면 아이들 시체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굶다 보면 영양실조로 면역 체계가 취약해졌고, 작은 병에 걸려도 치명적이었다.

결국에 죽어 나가는 것은 10대 미만의 어린아이들이었다.

물론 어른들이라고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1㎏에 50원이었던 쌀값이 250원까지 치솟은 상황이었다.

겨울이 되면서 벗겨 먹을 나무껍질도 찾기 어려워지자 곳곳에서 식인 소식이 들려왔다.

평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북한 전체가 굶주림에 빠진 상황.

벌써 아사자만 만 명 단위를 넘어섰다.

사람들이 괜히 일제 강점기 때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던 북한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전해졌다.

“나, 남조선 동무들이 우리를 도와줄 거라는데?”

“그게 정말이야? 미제 식민지인 남조선 동무들이 우릴 돕는다는 게?”

“옥수수와 쌀을 이미 몇만 톤이나 보냈다던데?”

사실 북한 정권에서는 한국의 지원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한국이 지원해 주었다고 알려지는 것보다, 그들의 능력이 좋아서 식량을 구해왔다고 알리는 쪽이 민심을 얻기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었다.

결국, 북한 정권은 부랴부랴 이 같은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로 배급제를 시행하겠다! 쌀 표를 가져와야 식량을 배급해 줄 것이니, 잊지 말고 찾아오도록!”

쌀 표는 노동의 대가로 쥐어지는 식량 배급 카드였다.

배급제가 무너진 이후, 존재의의가 사라졌던 쌀 표지만, 배급제가 부활한 이상 쌀 표 역시도 원래의 가치를 회복할 수밖에 없었다.

“군관 나리들 말 들었어? 배급제가 부활한 데!”

“우와아아! 드디어 제대로 된 쌀밥을 먹는 건가?”

“설마 모래가 가득 들어있는 쌀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

“남조선 동지들이 보내준 쌀이라는데, 설마 그런 장난질을 했겠나?”

“군인들의 습성이 그렇잖아. 혹시 모를 일이지.”

“나는 모래가 들어있는 쌀이라도 먹고 싶어.”

그렇게 사람들이 반신반의할 때,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배급제가 시작되었다.

하나둘 식량을 배급받기 시작하자, 절망감에 가득하던 사람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희망으로 물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쌀을 배급받았는데도 여전히 쌀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암시장의 쌀값도 폭락을 거듭하였다.

쌀의 가격이 순식간에 올 중순 가격이었던 100원까지 떨어졌을 정도였다.

“공장에 다시 다녀야겠는걸?”

“그래야겠지! 앞으로 쌀 표뿐만이 아니라, 돈까지 준다고 하니 무조건 일을 시작해야 해.”

희망이 생긴 북한 사람들은 그 같은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그 소식 들었는가? 우리가 먹고 있는 쌀, 알고 보니 남조선의 혜성이란 기업에서 대부분 보내왔다는군.”

“일개 회사에서 우리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야?”

“듣기로 혜성이란 기업은 웬만한 나라보다 돈이 많은 모양이야!”

대부분의 사람은 새로이 북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홍계성 참모총장에게 찬사를 보냈지만, 일부는 달랐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혜성이 북한을 도왔다는 소문이 평양을 시작으로 전국으로까지 퍼졌던 것이다.

* * *

1995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북한 문제로 시끄러웠다.

왕주형 총재는 소 떼를 이끌고 북한으로 가는 등, 정치쇼를 보여 주기도 했다.

물론 우리 혜성 그룹은 차관 약속과 투자 약속만 하고 끝이었다.

정치적인 문제에 미래 그룹처럼 정도 이상으로 관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더는 김기훈 3차장과 개인적인 만남을 이어가지 않았다.

이제 북한의 새로운 정권도 제대로 안착했고,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했으니 내가 북한 문제에 더 개입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 사업에 집중해야지.’

늘 이렇게 말했던 거 같지만, 어쨌든 1995년은 혜성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해였다.

반도체부터 시작하여 전자 사업, 자동차 사업 등,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슬슬 치킨게임을 끝낼 때가 됐지.’

1993년, 1994년에는 반도체로 이익을 많이 보지 못했었다.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었는데, 매출은 10조를 넘겼어도 영업이익은 1조가 채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반도체 업계에서 2년은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거대한 기업조차 무너질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실제로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은 이 2년이란 시간 동안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다.

몇몇 기업은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였는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라면 기술 투자도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혜성 반도체에서 차세대, 차차 세대, 심지어 차차차 세대 반도체까지 연구하기 시작했다면 일본 기업들은 기껏해야 차세대 반도체를 연구하기도 벅찰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들이 연구하는 차세대 반도체조차 이미 혜성 반도체에서는 개발을 끝마친 반도체였고 말이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치킨게임을 슬슬 끝낸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이미 일본 기업들과 혜성 반도체와의 격차는 1, 2년 수준이 아닌, 3년 이상으로 완전히 따돌린 상태였으니까.

‘미래 반도체도 이제 폭발적으로 성장하겠는데?’

치킨게임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꾸역꾸역 투자를 늘려왔던 미래 그룹이다.

우리 혜성 그룹을 쫓겠다고 아주 발악한 셈인데, 그 결실을 마침내 보게 될 거 같았다.

당연히 혜성 반도체를 넘보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일본의 5강들과 자웅을 겨루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반도체도 반도체지만, 전자 쪽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1995년에는 반드시 TV를 제외한 모든 가전에서 1위를 차지할 계획이었다.

즉, 소니를 완전히 넘어설 것이라는 뜻이었다.

‘소니를 완전히 넘어서기 위해서는 소니의 워크맨 이상 가는 제품을 만들어야겠지.’

오늘날의 소니를 만든 것은 워크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워크맨의 명성에 비견 될 제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장님. 이것이 바로 디오입니다.”

혜성 전자의 이재현 대표가 조그만 전자 제품을 보여주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였는데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

일명 MP3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군요.”

“하지만 회장님께서 원하시는 기능은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요?”

이재현 대표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능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았다.

사실 MP3의 초기 모델이기 때문에 특별한 기능은 없었다.

그저 카세트테이프가 아닌, 디지털 파일을 ‘재생’하여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참신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이거면 통할 수밖에 없겠는데?’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무게가 가벼우니 부담이 안 갔던 것이다.

디자인이 예뻐서 들고 다니면 세련된 이미지를 얻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특허는 어떻게 됐습니까? 이미 취득했다고 했나요?”

“예, ‘MPEG 방식을 이용한 휴대용 음향 재생장치 및 방법’의 특허는 이미 우리 혜성 전자에서 취득한 상태입니다.”

“나중에 경쟁사에서 MP3를 출시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로열티를 줘야 한다는 뜻이군요.”

“물론입니다.”

만족스러웠다.

늘 다른 기업의 특허를 매입하거나 사용 권한을 얻는 식으로 여러 제품을 생산했던 혜성 전자였다.

그런데 이제는 특허 수도 미국의 대기업들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반도체에서만 수천 개나 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간다고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디오를 출시한다고 바로 성공하지는 않을 거다.

일단 용량 자체가 적어서 음악을 몇 곡 못 넣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사용시간도 무척이나 짧았고 말이다.

더군다나 제품 외적인 문제도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홍보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음원 파일의 불법 복제와 관련해서 앞으로 생길 음반 유통사와의 마찰도 대비해야 했고.

하지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한다?

설령 스티브 잡스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가 무언가 성과를 낼 때쯤이면 혜성은 이미 압도적인 격차를 벌리며 저 멀리 달아나 있을 것이다.

* * *

1995년 9월.

혜성 전자에서 야심 차게 제품 하나를 출시하였다.

<워크맨은 공식적으로 퇴장하게 될 것! 시대의 대세는 디오!>

기사로 이 소식을 접했던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디오가 도대체 뭐야? 뭐기에 워크맨을 퇴장하게 만든다는 거지?”

“워크맨과 비교한 것을 보면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말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평범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라면 저렇게 떠들썩하게 마케팅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혜성이 뭔가 큰일을 저지를 거 같아서 기대되는데?”

대부분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일단 기사 내용만 봐도, 디오는 세련된 디자인에 무게까지 가벼웠다.

워크맨을 비롯한 다른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보다 여러 면에서 우월한 성능을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기대하게 만든 것은 디오를 출시한 기업이 혜성 전자라는 사실이었다.

혜성 그룹!

이제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정하는 기업이 혜성 그룹이었다.

특히 반도체, 전자 제품이라면 혜성을 최고로 인식하는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혜성에서 본격적으로 디오를 출시하기 무섭게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미국에서의 인기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경기가 워낙 좋아서 그런지, 디오의 가격이 상당한데도 소비자들은 망설임 없이 구매를 결정하였다.

“이게 바로 그 말로만 듣던 MP3라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디오를 꼼꼼하게 뜯어봤다.

‘디자인이 너무 잘 빠졌군.’

이미 영상 매체로 디오의 디자인은 확인해본 상태였다.

그런데 실물을 보니 디오는 상상 이상으로 디자인이 잘 나왔다.

“이거 노래는 어디서 다운을 받습니까?”

“미로에서 돈을 주고 음악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미로라…… 확실히 혜성에서 치밀하게 준비하기는 했나 봅니다.”

완벽해도 너무 완벽했다.

혜성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거 괜히 애플로 돌아온 거 같습니다.”

그 말에 애플 임원진이 크게 웃었다.

스티브 잡스가 농담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절대 농담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제품 기술력도 압도적인데, 혜성은 혁신과 마케팅까지 손에 쥐고 있다.’

혁신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 스티브 잡스였다.

그런데 혜성에서 출시하는 제품들을 보고 나면 스티브 잡스조차도 자신감이 하락하였다.

남들보다 한참 앞서가고 있으면서 가격이나 성능, 디자인 등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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