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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87화 (287/300)

287화 역으로 이용해 볼까?

안기부의 차장 정도면 엄청난 권력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북한을 담당하는 3차장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욱더 음지를 지양하게 된 안기부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안기부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대기업 회장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숨겨야 할 게 많은 대기업 회장들이었기에 안기부를 더욱더 어려워하였다.

차장급이라면 10대 재벌 총수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다른 재벌들에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독보적인 재계 1위인 혜성 그룹이라면?

3차장이 아니라, 안기부장이라도 공손히 대해야 했다.

지금 내 앞에 김기훈 3차장이 정중한 태도로 서있는 이유도 바로 내가 혜성 그룹 회장이기 때문이었다.

“프룬제 일파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자들은 저희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김기훈 3차장이 엉뚱한 답변을 하자, 내가 따끔하게 지적하였다.

“제가 물은 것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내 말에 김기훈 3차장이 몸을 움찔하더니,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거사 일을 미루기로 한 거 같습니다. 열병식 때의 쿠데타 계획을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저희의 설득이 통했나 보군요.”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프룬제 일파의 어설픈 쿠데타 계획은 파기하기로 한 듯싶었다.

하긴, 내가 전해 준 정보를 확인했으면 승산이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3차장님.”

“예, 예! 말씀하십시오.”

“안기부가 한명련 소좌나 다른 프룬제 일파에 함부로 대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세요.”

자존심 빼면 시체나 다를 게 없는 자들이었다.

괜히 그들의 자존심을 건들기라도 한다면, 내가 세운 계획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컸다.

김정일을 죽이기 전까지, 아니 프룬제 일파가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에도 그들의 자존심은 건들지 않는 게 좋았다.

“물론입니다!”

“이만 물러가도 좋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부르시면 곧바로 달려오겠습니다.”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다급하게 집무실을 나가는 김기훈 3차장이었다.

(저놈이 하는 행동을 보니, 안기부가 프룬제 일파를 잘 관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노사가 김기훈 3차장의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지금까지 잘하지 않았습니까? 프룬제 일파를 설득하여 쿠데타 계획을 조금 미루기도 했고 말입니다.”

(잘하기는. 내가 다했는데.)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프룬제 일파가 우리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노사가 전해준 정보 때문이었으니까.

“혹시 프룬제 일파가 저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다. 한국의 정보력에 충격과 공포를 동시에 느끼고 있어.)

“역시 그렇군요.”

(쿠데타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안기부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야. 물론 너무 지체하면 그때는 그들도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겠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어차피 나 역시 북한 문제를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올해 안에는 반드시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순조롭게 되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겠지.’

프룬제 일파는 안기부가 전해주는 정보로 빠르게 세력을 불리고 있었다.

마침 유훈 통치다 뭐다 해서 김정일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정국도 어수선하여 세력을 불리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나저나 빌 클린턴을 설득하는 일은 어떻게 되었지?)

“다행히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북한의 체제를 전복하는 일은 한국이 단독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이 언제 개입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날아가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최소한으로나마 설명해 주었다.

쿠데타 조짐이 발견되었고, 어쩌면 곧 북한 체제가 전복될 수도 있다는 식의 설명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확실히 나를 신뢰하기는 하는지 내 설명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뜻에 따라주기로 약속하였다.

(빌 클린턴이 그리 나와준다면 중국의 개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북한의 체제를 전복하면 가장 걱정인 게 중국의 개입이었다.

하지만 노사의 말처럼 미국의 지지를 받는다면 중국도 걱정할 게 없었다.

현재의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나라였으니 말이다.

* * *

혜성 그룹의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도연은 귀를 쫑긋 세웠다.

회식 중에 그녀의 보스, 이한성 회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요즘 일이 많으신가 봅니다. 회장님이 오늘도 늦게 퇴근하신다고 하더군요.”

“어제도 늦게 퇴근하시지 않았나요?”

“예, 10시엔가 퇴근했다던데, 비서 된 입장에서 참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야근을 용납하지 않으시니, 어쩔 수 없죠. 당직으로 남은 양준현 비서가 회장님을 잘 보필하길 바랄 수밖에요.”

“다른 기업이었으면 저희는 10시가 아니라 11시, 12시에 퇴근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회장님을 향한 존경심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이렇게나 직원들을 위하시니.”

전도연이 생각하기에도 이한성 회장은 여러모로 다른 재벌 총수들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일단 능력부터 압도적이었다.

재계에서 가히 전설을 썼다고 해도 무방한 인물이었으니.

직원을 위하는 마음도 다른 재벌 총수들과는 급이 달랐다.

혜성 그룹에 괜히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월급이 높아서가 아니라, 회장부터가 직원을 위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난 인물이 여자에게는 쥐뿔도 관심이 없다는 거지만.’

10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중국에도 이한성 회장 같은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정도로 이한성 회장은 비범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전도연으로선 그 사실에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만약 그녀가 다른 비서들이 그러하듯 뼛속까지 혜성맨, 아니, 혜성우먼이라면 이한성 회장의 비범함에 기뻐하는 게 당연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혜성우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근데 요즘은 무슨 일 때문에 저리 바쁘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에게까지 일언반구를 하지 않을 정도면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시는 거 같은데.”

전도연은 다시금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침 그녀가 꼭 필요로 하는 정보가 나올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소희 수석비서의 한마디를 듣고 그녀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님께서 그렇게까지 보안을 중요시하는 사안이라면 우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맞습니다.”

“아, 예.”

술자리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이다니.

역시 이소희 수석비서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기야, 이한성 회장이 아무리 직원을 위한다지만, 자신을 오래 모셨다는 이유로 최측근 자리에 둘 일은 없었다.

이소희 수석비서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이러면 곤란한데.’

전도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가 원래 속한 조직에서의 독촉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혜성 그룹의 중요 정보를 얻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땅히 좋은 방법이 없어.’

처음에는 간단한 임무라고 생각했었다.

이한성 회장은 혈기 넘치는 나이였고 마침 그녀는 미모라면 연예인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빼어났으니까.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한성 회장에게는 미인계가 통하지 않았다.

마치 여자에게 관심이라고는 아예 없는 사람처럼 회사 일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전 비서. 요즘 잘 적응하고 계세요?”

그러던 중 우연히 이소희 수석비서와 단둘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직 부족한 점은 많지만, 비서실에 흠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비서가 2년 차죠?”

“네. 올해로 딱 2년 됐어요.”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분이라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정말 적응을 잘하시는 거 같아요.”

그야 중국에서 최고의 인재라 할 수 있는 전도연이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그녀조차도 혜성 그룹에 입사하기가 쉽지 않았었지만 말이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전 비서를 보다 보면,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어요.”

“걱정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볼 때, 전 비서는 회사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더 집중하는 거 같아요.”

전도연은 순간 흠칫하였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었다고 착각한 것이다.

“전 비서, 회장님에게 마음이 있으신 거죠?”

“예?”

“연기하지 않으셔도 돼요. 회장님을 바라보는 전 비서의 눈빛이 사랑하는 남성을 바라보는 여인의 그것임을 저는 눈치챘으니까요.”

“…….”

말문이 막힌 그녀에게 이소희 수석비서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심을 솔직하게 털어놔 보세요. 그럼 제가 자리를 마련해 줄게요.”

“자리를 마련해 주다니요?”

“영웅호걸은 삼처 사첩도 흉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회장님도 영웅호걸이니 전 비서 같은 미녀라면 마다하지 않으실 거예요.”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다.

일에만 미쳐있다고 생각했던 이한성 회장이었는데 말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정도의 부자가 사생활 스캔들이 없는 게 말이 되는가.

부의 힘으로 철저하게 관리해서 소문 하나 없었던 것이지, 다른 재벌 총수들처럼 사생활이 깨끗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회일 수도.’

전도연은 내심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혜성 그룹에 입사하고 나서 줄곧 시도하려고 했던 게 미인계였다.

마침내 기회가 왔으니, 이제 써먹을 일만 남았다.

* * *

이소희의 보고를 들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런 의도가 있었나.’

전도연 비서는 내가 눈여겨보던 인재였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에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일본어 이렇게 5개 국어 사용이 가능하였으며 경제적 지식도 빼어났다.

비서로 두기엔 지나칠 정도로 유능한 인재라는 뜻이었다.

하여 그녀를 크게 키워서 유지은을 제외한, 혜성 그룹 최초의 여성 대표이사로 삼을까도 생각했었다.

‘지나치게 스킨십이 잦은 거 같더라니, 예상대로 미인계였어.’

부자로 이름을 떨칠 때부터 이런 일이 많았었다.

그런데 설마 비서로까지 위장 취입하여 미인계를 활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도연 비서의 부친이 화교라고 하셨죠?”

“예, 어머니는 한국인이지만 부친은 중국계 미국인입니다.”

“어쩌면 중국의 스파이일 수도 있겠군요.”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중국에서 가장 넘쳐나는 자원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넘쳐나는 자원을 활용하여 외국이나 글로벌 기업의 중요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면 중국으로선 절대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혜성 그룹이라면 중국이 표적으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대상이었고 말이다.

‘안 그래도 이런 일이 많았는데, 중국 때문에 앞으로는 모든 여자를 의심해야 될 것만 같군.’

그나마 내가 일에 미친 사람이라서 다행이었다.

돈의 힘으로 유지은이 젊었을 때의 미모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뭐 유지은이 미모를 잃었다고 해서 다른 여자를 사랑할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그런데 전도연이 중국의 스파이가 맞다면 역으로 이용해 볼까? 손자병법에서도 간첩을 다루는 방법이 다섯 개나 있다고 하던데 말이야.’

다섯 개의 방법 중에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는 반간을 활용하면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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