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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86화 (286/300)

286화 생살여탈권을 쥔 거나 마찬가지

“어서 오십시오. 이한성 회장님.”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갑자기 찾아 주셔서 놀랐습니다. 청와대로 오시는 게 부담스럽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나라고 대통령과 독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북한의 프룬제 일파와 접촉하려면 김태중 대통령의 도움이 꼭 필요하였다.

일개 기업인인 내가 사적으로 북한의 정치 세력과 접촉할 수는 없었으니.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태중 대통령을 찾았다.

“대통령께 전해 드려야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김태중 대통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수심이 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경제 문제부터 외교 문제, 통일 문제 등.

여러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히 하실 말씀이 있는가 봅니다.”

“예. 그렇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중히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전에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혹시 대통령께서는 지금의 북한 정권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의외군요. 왕주형 총재도 아니고, 이한성 회장님이 북한 정권에 관해 물으실 줄이야. 일단, 답변을 드리자면, 지금의 북한 정권은 대화가 안 통하는 정권이라고만 말하겠습니다.”

조심스러운 답변이었다.

하긴, 김정일 정권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대통령의 입장에서 함부로 발언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제가 오늘 급히 찾아온 이유는 북쪽에서 쿠데타 조짐을 감지하여 이를 보고드리기 위함입니다.”

김태중 대통령은 눈을 크게 떴다.

다짜고짜 쿠데타를 거론하니 그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안기부장이었으면 모를까, 재벌 회장이었으니 더더욱 당혹스러울 것이다.

“쿠데타 조짐이라니요? 이한성 회장님이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아시게 된 겁니까?”

“대통령께도 아시다시피, 혜성 그룹은 러시아와 미국에 상당한 정보망을 구축한 상태입니다.”

노사를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내가 변명할 거라고는 빌 클린턴 대통령, 옐친 대통령 등의 인맥뿐이었다.

실제로도 러시아와 미국에서 대북 관련 정보가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었고 말이다.

물론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세력인 프룬제 일파에 관한 정보는 오직 노사만이 취급하는 정보였지만.

“러시아와 미국에서 북한 내부에 관한 정보를 습득했다는 말씀입니까? 우리 한국에서도 알지 못한 정보들을?”

“예. 그렇습니다.”

“허어. 러시아와 미국의 정보력이 대단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대북 관련 정보력에서도 우리를 한참이나 압도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세력이 러시아와 연관이 있으므로 안기부보다는 정보를 얻기가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대체 어떤 세력이기에?”

“프룬제라고 소련 유학파 출신들이 바로 북한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세력입니다.”

“들어본 적이 있는 거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엘리트로 통하는 군인 세력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김태중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거라고 하니, 그로서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님. 혹시 프룬제 일파와 접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설마 북한의 쿠데타에 개입하자는 말씀입니까?”

눈을 부릅뜨는 김태중 대통령에게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프룬제 일파는 본래 친소파였으나, 소련이 무너진 이후 어떤 나라와도 손을 잡지 않고 있습니다. 즉,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으로 본다면 이해하기 편할 겁니다.”

“친한파로 회유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설령 회유에 실패한다고 해도 지금의 김정일 정권보다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 물론 회장님 말씀처럼 그들의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지금 그들에게 접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룬제 일파의 쿠데타가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해서 그들과 접촉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제가 정보를 제공하고 정부에서 인력과 자금을 지원한다면 그들의 쿠데타는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김태중 대통령의 얼굴을 살폈다.

내가 한 말이지만, 실로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오늘 처음 알게 된 쿠데타 정보, 심지어 어떤 증거도 없었다.

내 입에서 나온 게 전부였는데, 나는 쿠데타에 개입하라고 이야기하였다.

김태중 대통령으로선 내 요구를 들어주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태중 대통령은 딱 잘라서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한 가지 질문을 할 뿐이었다.

“이한성 회장님께서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북한의 일에 관여하려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야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원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항구적인 평화라.”

“쿠데타에 개입하라면서 평화를 논하는 게 역설적으로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진심으로 평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비효과 때문에 북한의 역사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직접 개입하여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게 막아야만 했다.

내가 지금 무리수를 두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정보를 더 들어보고 판단해야겠지만, 이한성 회장님의 조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김태중 대통령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설득하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서 그런지 내 설득이 먹혀들었다.

급한 상황인 만큼, 나로서는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 *

한명련은 군수공장이 밀집한 로동자구를 지나며 입술을 깨물었다.

‘당의 고위 간부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배불뚝이뿐인데, 정작 공산주의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로동자들은 어찌 저리 피골이 상접했는가.’

평양에서 불과 몇십 ㎞만 지나면 세상이 달라졌다.

하루에 한 번은 고기를 먹는 평양 시민들과 달리, 평양에서 떨어진 인민들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으며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사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김정일이 집권하면서 북한의 경제난은 나날이 악화하는 중이었다.

‘어서 빨리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그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할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한명련 소좌님 맞으십니까?”

한명련은 갑자기 나타난 낯선 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평범한 외모의 사내였는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저는 김성재라고 합니다.”

“김성재? 그게 누구야?”

사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쪽에서 왔습니다.”

“뭐, 남조선에서 왔다는 말이래?”

“그렇습니다.”

한명련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김성재가 적대 의사가 없다는 듯,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남조선 동무가 나에게 무슨 용건이야?”

권총을 겨눈 채 묻자, 김성재가 침착하게 답변하였다.

“한명련 소좌님께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뭐이? 남조선이 나에게 제안을 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한명련에게 김성재가 더 황당한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한명련 소좌님께 꼭 필요할 만한 정보들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어이가 없구먼그래. 내가 필요한 정보가 뭔 줄 알고 남조선이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거야?”

“열흘 뒤에 있을 열병식. 그때 김정일 위원장을 암살할 계획이지 않습니까?”

그 순간 한명련은 저도 모르게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자칫하면 총을 발사할 뻔한 상황.

김성재는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물론 김성재보다 동요한 것은 한명련이었다.

열병식에 있을 김정일 암살 계획은 프룬제 일파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소좌 계급의 한명련조차도 그 일부에 간신히 끼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프룬제 일파가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에서 알고 있다니.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알았지?”

“우선 총은 내려놓으시는 게…….”

“잔말 말고 대답하라우!”

퍽!

한명련은 화를 참지 못하고 권총을 휘두르며 외쳤다.

하지만 김성재는 피를 흘리는 상황에서도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당신들의 계획을 저희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가 아님을 한명련 소좌님도 잘 아실 텐데요.”

“이 간나 새끼가. 죽고 싶어?”

“저를 죽인다면 프룬제 일파는 한 명도 빠짐없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숙청당할 겁니다. 물론 한명련 소좌님과 소좌님의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이익!”

“상황을 이해하셨다면,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해 주십시오.”

그 말을 듣자, 한명련도 마침내 이성을 되찾았다.

김성재의 목숨을 위협해봤자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후우. 말해 보라우. 남조선이 우리에게 어떤 제안을 한다는 거야?”

“아까 말했듯, 저희는 정보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쿠데타를 실행에 옮길 때 꼭 필요한 정보들을 말입니다.”

한명련은 ‘어떻게?’라고 묻지 않았다.

그들이 비밀리에 세운 쿠데타 계획을 알아차린 것만 봐도, 한국의 정보력이 무시 못 할 수준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보를 받은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되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한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되는 것.”

“흥! 약점을 빌미로 우리 정권을 꼭두각시로 삼으려는 것은 아니고?”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사실 정해진 결과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도움을 받은 이상, 한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꼭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나?”

“아시겠지만 보안이 중요한 문제 아닙니까.”

“나는 우리의 파벌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결정을 내린다고 우리의 파벌이 그대로 움직이란 보장은 없어.”

“한명련 소좌님의 발언권이라면 문제없다고 보는데, 저희의 추측이 틀린 겁니까?”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군그래.”

혀를 찬 한명련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안은 받아들이겠어.”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대신 우리를 속이려고 들었다간 가만두지 않을 테니 명심하라우!”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믿음이 안 가는 김성재의 대답에 한명련은 그저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 * *

한명련은 곧바로 프룬제 일파의 핵심 인물들에게 김성재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당연하겠지만 프룬제 일파는 한명련이 그랬던 것처럼 경악하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그들의 계획을 북한 내부의 세력도 아니고 외부의 세력인 한국에서 알아차렸으니, 경악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몇몇은 배신자를 찾아야 한다며 시끄럽게 떠들어댔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는 앞으로의 계획을 토론하였다.

“남조선을 어떻게 믿고 남조선 말을 따르라는 거야?”

“일단 들어봐야 손해 볼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계획도 미리 알아차린 자들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계획을 알아차린 건, 운이었을 수도 있지 않겠어?”

“운이라고 보기에는 그들이 전해 주는 정보가 너무 정확합니다. 우리보다 더 정확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한국과 합의한 이후, 한국에서 몇 가지 정보가 전해졌다.

하지만 프룬제 일파는 한국에서 전해 주는 정보를 신뢰하지 않았다.

너무 자세해서 오히려 수상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프룬제 일파는 한국에서 전해 주는 정보를 신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프룬제 일파 내부에 존재하는 첩자들까지 밝혀냈기 때문이었다.

-17일 오후 3시에 위원장이 류경 호텔로 시찰을 할 예정입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극비로 취급되는 김정일의 일정까지 알려 주었다.

도저히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정보를 말이다.

‘도대체 김정일의 최측근만 아는 정보를 이들이 어떻게 아는 거지?’

한명련은 혀를 내둘렀다.

정보의 원천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게도 느껴졌다.

만약 한국이 적이었으면 이미 그들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

그야말로 프룬제 일파의 생살여탈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으니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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