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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84화 (284/300)

284화 이래서 힘이 있어야 해

김일성이 죽은 뒤, 정치 문제로 다시 큰 소란이 일어났다.

야당에서의 반발로 김일성 조문에 참석하지 못했었는데, 북한에서 이것을 거론하며 ‘남조선이 조전, 조의는 고사하고 애도의 뜻조차 표시하지 않는 것은 상식 이하의 불손하고 무례한 행위’라며 비난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북한의 도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영수라는 북한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이란 사람이 ‘서울 불바다’라는 망언을 하여 큰 논란이 되었다.

결국 김일성의 죽음 이후, 남북관계는 모든 접촉이 끊어진 채 다시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고 말았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이렇게 되었군.’

쓴웃음이 나왔다.

평화가 찾아오나 했더니, 더더욱 관계가 악화하고 말았다.

이래서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얼굴을 보는 게 민망할 거 같았다.

‘나야 그렇다 쳐도, 김태중 대통령이 문제겠어.’

기껏 평양까지 가서 남북 정상 회담을 했었더니, 겨우 몇 개월 만에 수포가 되었다.

당연히 국민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재벌 개혁이다 뭐다 해서 경제 성장률이 예전만 못한 상황.

이럴 때, 김일성이 죽고 평화 통일까지 무산되었으니, 지지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레임덕이 김영산 대통령보다 일찍 올 수도 있겠는데?’

단순히 레임덕을 걱정할 게 아니었다.

정권이 바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했다.

여당 내에서 벌써 내부 총질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차기 대통령은 야당에서 나올 가능성이 의외로 낮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가진 영향력이라면 북한의 내부 사정에 관여하는 것도 이젠 가능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라던가, 돈의 힘을 이용하여 어느 정도는 개입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개입해봤자 득이 될 것은 없어 보였다.

괜한 변수만 발생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노사의 지시를 기다리기로 하고 나는 다시 사업에 집중하였다.

남북관계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지만, 재계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래 그룹에서야 실망하는 분위기였으나, 대부분의 기업은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회장님. 포르쉐 가의 로이제 피에히 씨가 저희의 인수 제안에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결정을 내렸나 보군요.”

다행히 포르쉐 인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도요타나 혼다 등, 일본에서 방해가 들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수가가 높아서 그런지 방해가 없었던 것이다.

‘하긴 포르쉐의 매출이나 규모에 비하면 내가 제시한 인수가가 지나치게 비싸긴 하지.’

나야 포르쉐의 미래를 알기에 지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다른 기업들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뭐, 어쨌든 포르쉐를 싼값에 인수했으니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 * *

안타깝게도 포르쉐를 얻었다고 자동차 업계의 순위가 크게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포르쉐의 인지도에 비해 매출이나 규모는 그리 대단한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포르쉐와 우리 자동차 그룹 간의 시너지 효과는 실로 엄청날 게 분명하다.’

혜성 자동차와 기화 자동차가 포르쉐의 설계 능력과 디자인을 흡수한다면?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생기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포르쉐가 혜성 자동차나 기화 자동차에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부로 포르쉐의 생산라인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겠습니다. 혜성 자동차와 기화 자동차에서 사람을 보낼 테니 직원들이 열심히 배우게 만드세요.”

나는 그대로 유임한 비데킹 대표에게 그 같은 지시를 내렸다.

현재의 포르쉐는 비효율적인 생산방식으로 신차 출시가 계속 늦어지고 있었다.

혜성 자동차와 기화 자동차의 생산방식은 도요타와 비교해도 밀리는 것이 없었기에 시너지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개발과정에서 엎어진 모델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버리기 아까운 모델들인데, 이왕이면 혜성 자동차나 기화 자동차와 공유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포르쉐의 아이디어만 얻어도 사실 인수 자금인 1조 6천억이 별로 아깝지 않았다.

자회사라고 포르쉐의 아이디어를 공짜로 가져갈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버리려고 하는 모델만 혜성 자동차나 기화 자동차에 가져와도 실로 엄청난 도움이 될 게 분명하였다.

“특히 벤츠의 G바겐을 뼈대로 한 SUV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것을 혜성 자동차에 도입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나는 지시를 내리면서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큰 기대가 되었다.

포르쉐 특유의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가진 SUV 자동차를 혜성 자동차에서 출시한다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거 같았다.

‘카이엔이라고 했었지? 노사가 기억할 정도면 자동차 역사에서 나름대로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러면 기대를 안 할 수가 없겠군.’

더군다나 카이엔을 출시할 때쯤이면 자동차 시장에 SUV 붐이 돌 것이다.

한국, 미국을 가리지 않고 SUV의 인기가 급상승할 시기일 텐데, 그때 노사가 기억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카이엔을 출시한다면 안 그래도 높았던 SUV 점유율을 더욱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뭐, 실제 디자인을 봐야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중국에서의 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음, 아직은 중국 당국의 답변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비데킹 대표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우고 한숨을 내쉬었다.

포르쉐를 인수하기 전에는 포르쉐가 중국에서 어떤 꼴을 당하든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냥 중국이 중국했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중국 덕에 포르쉐가 위기를 겪었으니, 인수하기 편해졌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포르쉐를 인수하고 나니 중국이란 나라가 이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비데킹 대표도 당연히 아실 일이지만, 포르쉐는 중국에 속은 겁니다. 중국의 목표는 처음부터 포르쉐의 기술력이었지, 서로 윈윈하거나 그러는 게 아니에요.”

“설령 중국의 의도가 그렇다고 한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미 투자한 것도 있으니, 최대한 중국 당국의 지시를 따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뭡니까?”

“인구 10억 국가에서 포르쉐의 차량을 파는 것.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포르쉐는 중국의 의도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의 말은 자세히 따지면 틀렸다고 볼 수만은 없었다.

기대했던 국민차 사업은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포르쉐는 중국에서 실력으로 크게 인정받았다.

당장은 손해를 볼 뿐이지만, 추후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할 경우, 중국 내에서의 포르쉐 판매에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실제로도 미래의 포르쉐는 중국에서 몇만 대는 우습게 팔아먹는다고 노사에게 듣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너무 안일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 중국이 아이디어를 도용해봤자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저러는 거겠지?’

이 시대 기업가들이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데킹 대표의 모습만 봐도 알 거 같았다.

중국은 그저 덩치만 큰 가난한 나라로 인식하였다.

아이디어를 도둑맞아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기술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랬던 중국이 불과 20년도 안 돼서 세계 시장을 위협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 비데킹 대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

지금도 엄청난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 중국이었다.

그런데 중국은 지금의 경제 성장률에 만족하지 않고 중공업과 하이테크 산업에 눈을 돌렸다.

언제까지 경공업 사업에 의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 가장 먼저 집중하여 육성한 중공업이 바로 자동차 산업이었다.

처음에는 합작사로 출발한 중국이지만, 몇 년 뒤부터는 중국 고유의 모델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었다.

거기서 또 몇 년이 지나면 중국의 자동차가 세계를 위협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고.

나는 이런 중국의 미래에 경각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중국에서의 사업을 철수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철수 말입니까?”

“아이디어만 뺏기고 득 될 것이 없습니다. 합작사를 차린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기업에만 이익이 가지, 포르쉐에는 몇 %나 떨어지겠습니까?”

중국에서 사업하면 매출이 잘 나오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중국에서의 사업이 궁극적으로 이익일지는 의문스럽게 여겼다.

일단 세금이니 뭐니 해서 뜯어가는 돈이 엄청났다.

실질적으로 중국에서 사업하는 기업이 본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이익금은 20%가 최대일 것이다.

나머지는 전부 다 중국 정부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뺏긴다는 뜻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중국이 자사의 자동차를 표절할 것도 경계해야 했다.

표절하면 중국이었으니까.

여기에 중국 정부의 안하무인 격인 태도까지 생각하면 중국에서의 사업은 궁극적으로 이익이 될 수 없었다.

외교 문제만 발생하면 강제로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나는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게 낫다고 여겼다.

설령 중국 시장을 놓쳐서 세계 1위를 못한다고 해도 아쉽지 않을 거 같았다.

“물론 이렇게 손해를 봤는데 그냥 철수하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이 우릴 농락했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대가라면?”

“유럽 언론과 미국 언론을 총동원하여 중국 정부의 만행을 폭로할 겁니다.”

“그, 그렇게까지 하신단 말씀입니까?”

“어차피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는데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비데킹 대표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더는 반발하지 못했는데 이미 중국 사업에서 실패한 이상, 그의 발언권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 *

나는 곧바로 중국이 그간 포르쉐에 저지른 사기극을 폭로하였다.

100억이 넘는 돈을 광고비로 써가며 중국의 만행을 폭로한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야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반향은 상당했는데, 미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 진출 계획을 전면 수정할 정도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중국 정부는 이 같은 포르쉐의 폭로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주었다.

한참 외국 자본의 투자가 필요한 시기에 포르쉐가 초를 쳤으니 중국 정부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사업하기 싫으신 겁니까?”

왕수월이라는 중국 상무부 부부장이 찾아왔다.

그는 협박하듯, 공격적으로 말했는데, 포르쉐의 폭로에 대해 따지는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뜻을 짐작하면서도 전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포르쉐 말입니다. 포르쉐! 지금 포르쉐가 미국에서 시끄럽게 구는 거, 이한성 회장이 지시한 일 아닙니까?”

“글쎄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의뭉스러운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왕수월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태연한 반응을 보일 때가 아닙니다!”

“그럼 제가 어떤 반응을 보이길 원하십니까?”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하고서 지금 당장 정정 기사를 내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당당하게도 한다.

미국 기업가를 상대로는 굽신거리면서 세계 시장에서 명성을 떨치는 혜성 그룹의 회장인 나에겐 왜 저리 안하무인이게 구는 걸까?

이래서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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