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괜히 노키아를 인수한 게 아니야
노사가 기억하는 미래에선 김일성의 죽음에 늘 의혹이 따라다녔다.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으니 의혹이 따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의혹의 중심에는 항상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따라다녔다.
‘진짜였군.’
이전까지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의혹이었다.
사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넘어갔었다.
하지만 귀신의 몸으로 그는 직접 봤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에 관여하는 모습을 말이다.
아직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김일성은 이미 고인이 된 상태였다.
‘설마 중국까지 연관되어 있을 줄이야.’
물론 중국이 직접 김일성 모살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따로 사람을 보내 김정일을 도운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은연중에 김일성이 사망할 경우, 김정일을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 지지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설령 김일성이 죽더라도 확실하게 북한 지도자가 될 거라는 보장이 없었던 김정일에겐 큰 도움이 되는 약속이 아닐 수 없었다.
북한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상당했으니까.
‘원래도 중국이 개입했었을까?’
그랬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뭐가 됐건 지금 중요한 것은 중국이 한반도 통일의 최대 난관이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중국이라면 한반도가 통일하는 상황을 절대 반기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앞으로 어찌하면 좋을까?)
조금만 더.
원래 역사에서 그랬듯, 김일성이 7월에 사망했다면 그래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김일성의 행보를 본다면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통일과 관련해서 많은 진척을 보였을 테니까.
나진, 선봉을 시작으로 일부 지역을 아예 시장 개방했을 수도 있었고.
하지만 김일성이 죽은 이상, 김태중 대통령이 북한과 나누었던 합의는 모두 없던 것이 된 거나 다름없었다.
즉, 한반도 통일을 이루어내려면, 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냥 무로부터 시작하는 거면 상관없는데, 김정일 이놈이 통일에 반대하는 자라서 문제란 말이지.’
노사가 직접 확인한 결과, 김정일은 원 역사에서 그랬듯 김일성의 권력을 승계하여 북한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지도자가 될 김정일은 통일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인물이었다.
아마 설득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터.
권력에 미친 인간이니 인민들이 모조리 굶어 죽을 상황이 된다고 해도 절대 한반도 통일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리라.
‘이러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겠어.’
김정일과 말이 안 통한다?
그럼 김정일을 쫓아내면 그만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김정일을 지금의 자리에서 쫓아내고 새로운 인물을 앉힌다면 북한과의 관계에도 진전을 보일 것이다.
* * *
<김일성 사망! 평양방송, ‘어제 새벽 심근경색으로’.>
<전군, 경 비상경계령.>
<긴급안보 회의! 북한 동향 24시간 점검.>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이틀 전에 노사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달리 모든 한국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무려 49년 동안 권좌를 지켜왔던 김일성이었다.
민족의 원수이기도 하니, 한국 사람들로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침 장이 열리기 무섭게 혜성 전자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지금은 시가총액이 얼마나 됩니까?”
“14조입니다.”
나는 혀를 찼다.
“1조나 날아갔단 말입니까?”
“이조차도 선방한 겁니다. 다른 기업들은 더 타격이 큽니다.”
클레앙 TV의 성공으로 주가가 15조까지 올라갔던 혜성 전자였다.
20조를 목표로 착실하게 달리고 있었는데, 내부 문제도 아닌, 북한 문제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이래서 북한을 통일해야 하는 건데.’
한국 기업들이 괜히 저평가를 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혜성 전자야 비정상적일 정도로 주가가 높았지만, 어쨌거나 대부분의 한국 상장 기업들은 저평가를 당하고 있었다.
이유야 북한이 절대적이었다.
아직 우리는 전쟁 중이었고, 북한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하면 한국 주식시장도 크게 요동을 쳤다.
김일성의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기업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부 다 경영진 회의를 소집하고 북경, 홍콩, 도쿄 지사의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북한 동향 파악에 전심전력하였다.
일부는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말이다.
“직원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전쟁이 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원수가 죽었는데 기뻐하질 못하고 전쟁 걱정을 해야 하다니. 씁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군요.”
진봉현 비서실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진봉현 비서실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업에 주력해도 부족할 시간에 이러고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중요한 순간에 노사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다시 평양으로 돌아간 것은 알겠는데, 이틀 동안 소식이 없으니 나로선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다행히 그날 저녁.
더 답답해지기 전에 노사가 나를 찾아왔다.
“뭘 그렇게 구경하고 오셨습니까?”
김일성도 죽은 마당에 뭐가 그리 궁금했을까?
노사는 짧게 대답하였다.
(북한 체제를 뒤엎을 수 있을지, 그걸 알아보고 왔다.)
“예?”
(김정일, 그놈을 제거해야 통일이든, 미군 주둔이든, 가능하지 않겠어?)
내가 의아해하자 그가 더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김정일을 어떻게 죽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북한의 절대 권력자였다.
김일성이 죽은 지 며칠이 채 안 됐으니 아직 권력 기반이 약하기는 하겠지만, 오랫동안 김일성의 후계자로 군림하던 김정일이었다.
나로서는 김정일을 어떻게 죽인다는 것인지, 도저히 상상이 안 갔다.
(그놈이 나처럼 귀신도 아닌데 못 죽일 게 뭐 있어?)
“그건 그렇습니다만, 김정일은 북한에 있지 않습니까?”
(북한에 있으니, 내가 북한에 갔다 온 거지.)
“무언가를 알아 온 겁니까?”
자신감 넘치는 노사의 모습을 보며 나는 눈을 빛냈다.
김정일을 죽이는 것?
부담스럽긴 했지만, 나로선 반대할 이유가 없긴 했다.
아무리 봐도 김정일이란 인물이 한국에 이익이 될 존재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물론 혜성 그룹에도 마찬가지였고.
(나비효과로 프룬제 유학생들이 아직 숙청당하기 전이더구나. 정확히는 그들의 쿠데타 계획이 실행에 옮기지 않은 상태야.)
“프룬제 유학생들이라면?”
(소련에서 공부한 유학생들을 말하는 거다. 원래 이놈들이 사회주의 체제에 유례없는 권력 세습에 반발하여 김정일을 죽이고자, 쿠데타를 일으켰어야 했는데, 아직 쿠데타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어. 예측일 뿐이지만, 아마 네가 미사일 과학자들을 빼돌린 일과 연관이 있을 거야.)
겨우 그 정도의 설명으로 프룬제 유학생들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노사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는 알 거 같았다.
“그들을 이용해 북한의 체제를 뒤엎자는 겁니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프룬제 파벌 안에는 상장 계급의 장군도 있고 인민무력부 작전국 부국장도 있어. 그놈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지.)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노사가 저리 말했으니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확실할 터다.
하지만 세력이 만만치 않다고 확실하게 쿠데타에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실패라도 했다간, 그 여파가 엄청날 텐데요.”
만약 북한에 내전이라도 일어난다면 우리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어쩌면 수백만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몰려올 수도 있었고, 포탄이 엉뚱한 곳으로 튈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의 땅을 밟게 될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김정일의 권력을 생각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더 커.)
“김정일의 권력이 그렇게 불안정합니까?”
(북한의 권력은 공산당에 집중되어 있는데, 김정일은 당의 직책을 갖지 못했어. 그저 김일성이가 군 최고 사령관에 꽂아 줬을 뿐이지. 하지만 막상 군 내에서는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아. 6군단 같은 경우 은근하게 반기를 들고 있을 정도야.)
“그렇습니까?”
(무엇보다 올해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고난의 행군은 노사에게 이전부터 많이 들었었다.
아사자만 백만 명이 넘는다나?
정확한 수치야 알 수 없지만, 북한의 식량 공급이 바닥을 치며 국가 전체가 마비될 정도의 상황을 고난의 행군이라 불렀다.
“그게 올해부터였군요.”
(따지고 보면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이미 1980년대부터 북한은 한계에 직면했었으니까.)
“그렇습니까.”
(아무튼, 내가 뒤에서 조종한다면 쿠데타가 실패할 일은 웬만해선 없을 거다. 이미 그런 기술들은 사이비 신 노릇 하며 익혀뒀으니까.)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북한 사정이나 김정일의 권력 기반이 최악에 가깝다고 하니 확실히 성공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개입할지였다.
내가 아무리 한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래 봤자 나는 일개 기업인에 불과하였다.
대통령도 아니고 일개 기업인이 북한 쿠데타에 개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
설령 어떻게든 개입한다고 해도 그 후폭풍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제가 뭘 해야 하는 겁니까?”
(일단 현금을 준비해 놔. 이왕이면 달러로 말이야.)
“현금이라.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혜성 반도체나 미로만 상장해도 엄청난 실탄이 마련될 것이다.
아니면 소프트뱅크의 지분을 팔아도 되고.
물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달러도 결코 작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다른 것은 또 없습니까?”
(지금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계속 유지해 둬. 안기부나 군부도 최대한 영향력을 늘려두고 말이야. 물론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알겠습니다.”
(네가 개입해야 할 시기는 내가 알려 줄 테니, 일단 그 정도 준비만 해 두면 될 거 같다.)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한국에서 천년만년 사업을 하려면 북한 리스크는 없애고 가는 게 맞았다.
노사의 기억으로 2023년까지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 뒤에 북한에서 무슨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비효과로 이미 역사가 바뀌기도 했고 말이다.
‘애초에 노사라면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 거야. 노사도 애국심보다는 혜성 그룹의 미래를 위해서 저리 움직이는 것일 테니까.’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생각이 깊은 사람이 노사였다.
혜성 그룹에 해가 될 일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 * *
북한 문제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혜성 그룹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다.
긴장 분위기가 다시 완화되자 나는 혜성 그룹을 경영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올해, 우리는 반드시 모토로라를 넘어서야 합니다.”
1994년인 올해, 주력해야 할 사업은 휴대폰이었다.
휴대폰 시장의 규모는 엄청난 속도로 커져 가고 있는 상황.
시장이 더 커지기 전에 확실하게 세계 1위로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캔디바폰 출시 일정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준비는 완벽합니다. 한 달 뒤에, 문제없이 출시할 수 있습니다.”
캔디바폰.
SMS 문자 기능을 포함한 새로운 형태의 휴대폰이었다.
2세대(2G)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제조한 휴대폰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 거 같습니까?”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아무래도 작년에 HS-93을 출시했기에 더 그런 반응인 거 같습니다. 그나마 디자인이 워낙 좋아서 기대하는 쪽이 조금 더 많은 거 같기는 합니다.”
“마케팅에 더 신경을 써야겠군요.”
“예, 한국보다는 미국과 유럽에 신경을 써야 할 거 같습니다. 이미 한국 시장은 혜성이 제패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직은 방심할 때가 아닙니다. 모토로라야 한국에서 기를 못 쓰고 있지만, 미래 전자를 합병한 은성 전자는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이참에 한국 시장을 확실하게 장악한다는 생각으로 광고를 준비해주세요. 물론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세계 시장도 놓치면 안 됩니다.”
내가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은 투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현재 휴대폰 사업에 집행하고 있는 투자금만 수천억이 넘었다.
광고비로 수백억은 쓸 생각이었기에 모든 나라를 동시에 공략하는 것도 문제가 없을 터였다.
‘기껏 노키아의 통신 사업부까지 인수했는데, 반드시 세계 1위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