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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81화 (281/300)

281화 숨겨진 1인치

잠깐 무안한 표정을 짓던 빌 클린턴 대통령은 화제를 전환하였다.

“제가 듣기로 한국의 IT 발전 속도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예. 제2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에서 IT 발전에 주력하는 이유가 미스터 리의 조언 때문이라는데, 사실입니까?”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미스터 리도 IT가 지금보다 더 발전할 거로 생각하시나 보군요.”

“적어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IT에 관심을 보이자, 나는 IT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비효과로 IT 버블이 일찍 터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참 남은 이야기지.’

아무리 나비효과가 벌어진다고 해도 빌 클린턴 대통령의 퇴임 직후에 터질 IT 버블이 임기가 한창 남았을 때 터질 일은 없을 것이다.

빨라 봐야 1년.

그렇기에 나는 자신 있게 조언할 수 있었다.

“역시 미스터 리의 조언은 명쾌하기 그지없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종종 찾아오셔서 조언해 주세요. 미스터 리의 몇 마디 조언이 저에겐 큰 힘이 됩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김태중 대통령을 조언하는 것이야 이젠 더는 불필요하게 느껴졌지만, 미국 대통령을 대상으로 하는 조언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중국을 견제하는 일이나 한반도 통일에 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빌 클린턴 대통령을 조언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상당히 이익이 가는 일이었다.

“백악관은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 때도 주저하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저리 말해줬으니 나도 주저할 생각이 없었다.

통일 때문에라도 미국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상황이었으니, 분기에 한 번씩은 꼭 백악관을 찾아,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가야 할 거 같았다.

* * *

백악관에서의 일정이 마무리되자 나는 다시 비행기를 탔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의 일정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기에,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향하였다.

“매출이 벌써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고요?”

“예! 광고에서만 9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이 나오고 있습니다.”

1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10억도 안 되는 돈이었다.

나에게, 그리고 혜성 그룹에 있어서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매출.

하지만 벤처 기업, 그것도 이제 막 1년 된 기업에서 이 정도 매출이 나왔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광고주들도 이제 미로의 위력을 알아보는 모양이군요.”

“사실 지금도 미로의 광고비는 터무니없이 낮게 집행되고 있습니다. 유저 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곧 더 좋아질 겁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조차 IT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미국에서의 IT는 한국이 그러하듯 비약적인 발전을 보일 터.

‘슬슬 컴퓨터 게임에도 투자를 해야겠는데?’

혜성 반도체의 영향인지, 컴퓨터를 사용하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PC 게임의 발전도 빨라지고 있었고 말이다.

노사도 원 역사보다 IT의 발전이 1년 정도 더 빨라졌다고 하니, PC 게임도 이제는 슬슬 신경 쓰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물론 그전에 콘솔 시장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야겠지만.’

혜성 전자와 합병하기 전, 필립스 전자에서 비디오 게임기를 출시하였다.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기술이나 디자인, 기기의 편리함 등은 어차피 필립스 전자의 그것이 소니나 다른 업체에 크게 밀리지 않았다.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게임.

그런데 게임도 소프트뱅크와 협력하면서 이제는 부족하지 않게 되었다.

소니와 자웅을 겨룰 정도는 아니어도 탑5 안에 들 날이 멀지 않았던 것이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경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저도 들은 바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가 벌써 열 곳도 넘는다죠?”

“예. 이름이 알려진 곳이 열 곳이고, 아마 알려지지 않은 곳까지 포함하면 서른 개 이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확실히 경쟁이 치열해지긴 하는군요.”

“그래서 말인데, 투자를 받는 게 어떻습니까?”

“어디 투자 제안이라도 왔나 봅니다.”

“세쿼이아 캐피털이란 벤쳐 캐피털 사에서 지분 10%에 200만 달러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작게 감탄하였다.

지분 10%에 200만 달러라니.

그 말은 미로의 가치를 2천만 달러로 인정한다는 뜻이 아닌가?

‘IT에 확실히 돈이 몰리고 있기는 한가 보군.’

괜히 버블이라고 불리는 게 아닌 거 같았다.

연 매출이라고 해봐야 고작 100만 달러에 불과한 미로의 가치가 벌써 2천만 달러로 인정받을 정도면 말이다.

‘IT 버블이 터지기 직전에 상장한다면 재미 좀 볼 수 있겠는데?’

미로는 전 세계 포털 사이트의 절대 강자로 군림할 예정이었다.

검색 이외에도 이메일을 비롯하여 뉴스, 쇼핑, 게임 등에 진출할 것인데, 이는 하나같이 미래 잠재력이 뚜렷한 사업들이었다.

그리고 미래 잠재력이 뚜렷하다는 말은 시장에서의 평가도 상당히 좋을 것이란 사실을 의미하였다.

노사가 알던 야후의 시장 지배력을 넘어선 미로가 IT 버블 직전에 상장을 한다?

조 단위도 우스울 것이다.

200조의 소프트뱅크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절반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즉, 미로 하나가 100조 원의 회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불과 몇 년 안에 말이다.

“투자는 받지 않겠습니다.”

100조가 될 수도 있는 기업인데 겨우 몇백만 달러 벌겠다고 지분을 팔 수는 없었다.

미래에는 100조가 아니라 1,000조 회사가 될 수도 있었고.

하지만 투자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이같이 말했다.

“대신 제 돈으로 더 투자하겠습니다. 500만 달러면 충분하겠습니까?”

“추, 충분합니다!”

“단순히 미국에서의 경쟁자를 제치는 것으로 만족해선 안 됩니다. 유럽, 아시아 등도 어떤 포털 사이트보다 먼저 진출해야 합니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노사가 말해 준 미래의 포털 사이트를 생각하며 이것저것 조언하고 싶지만,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더 말해봐야 잔소리만 될 뿐이었다.

경매, 지식인, 블로그 등.

미래의 포털 사이트가 하는 서비스들이 지금 시대에 반드시 통하리란 보장도 없었고 말이다.

‘물론 점유율이 낮아지면 비장의 무기 꺼내듯 하나씩 꺼내야겠지만.’

일단 지금은 검색 기능을 키우는 게 우선이었다.

포털 사이트로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검색 기능이었으니까.

* * *

미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한 가지 희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클리앙 TV입니까?”

클리앙 TV.

혜성 전자가 옛 필립스 전자 직원들과 힘을 합쳐서 개발한 TV였다.

“확실히 기존의 TV와는 비율이 달라 보이는군요.”

“바로 보셨습니다. TV 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리 혜성 전자에서 최초로 화면 비율을 바꾸었습니다.”

“13:9라고 했었나요?”

“정확히는 12.8:9입니다. 기존 4.3에서 가로세로비를 바꿔, 수평 길이를 무려 35.2㎜ 늘렸습니다.”

나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 비율이 조금 달라졌다고 가시적인 변화가 있을까 싶겠지만, 딱 하나 달라진 게 있었다.

“클리앙 TV로, 기존 TV에서 볼 수 없었던 숨겨진 화면을 볼 수 있다고 했었죠?”

“예! 가로 화면이 늘어남으로써, 그동안 못 봤던 방송 화면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화면을 본다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대단할 게 없는 것이었다.

좌우로 35.2㎜ 늘어난 가로 화면은, 시청자가 거의 인지하기 어려웠고 애초에 불필요한 장면들이었으니까.

심지어 은성, 정우 TV의 경우 리모컨으로 화면을 조정하여 그 숨겨진 화면을 볼 수 있기도 했고.

‘하지만 마케팅으로 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이지.’

숨겨진 화면을 볼 수 있다!

내가 소비자라면 이 문구 하나만 보고 혜성 TV를 선택할 게 분명하였다.

아무리 별거 아닌 화면이라고 해도,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자기만 볼 수 있다는 그 메리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니까.

그렇다고 동급 제품과 비교해 가격이 더 비싼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클리앙 TV로 국내 1위는 문제없겠지요?”

은성 전자 덕에 혜성 전자는 만년 2위였다.

세계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유일한 흠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클리앙 TV를 개발함으로써 적어도 TV 시장에서만큼은 국내 1위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안 그래도 시장 점유율을 거의 다 따라잡은 상황이었는데, ‘숨겨진 화면을 볼 수 있다!’라는 클리앙 TV까지 출시한다면 은성 전자를 넘어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물론입니다. 국내 1위는 물론이고, 5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럼 세계 1위도 가능하겠습니까?”

자신만만하게 국내 1위를 이야기하던 이재현 대표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소니가 있는 한, 당장 세계 1위 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런 이재현 대표의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이재현 대표였다.

하지만 그런 이재현 대표조차도 소니와의 경쟁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TV 시장에서 소니가 압도적이긴 하지.’

세탁기나 청소기, 에어컨 등.

다른 부문에서야 조금씩 소니를 앞질러 가고 있기는 했다.

필립스 전자를 합병하면서 가전 부문의 매출도 소니와 거의 엇비슷해진 상황이기도 했고.

문제는 TV 시장이었다.

소니의 TV 시장 점유율은 29%였다.

혜성이 필립스 전자와 합병했음에도 여전히 15%라는 것을 생각하면 압도적인 차이라고 볼 수 있었다.

“트리니트론 브랜드의 아성을 넘어서려면 역시 브라운관 TV로는 안 되는 모양이군요.”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브랜드라서 아무래도 쉽지 않습니다.”

뭐 어쩔 수 없다.

그의 말처럼 트리니트론 브랜드의 파워가 워낙 막강했으니.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브라운관 TV로 안 된다?

그럼 평판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승부를 보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소니라면 트리니트론 브랜드를 포기하기 싫을 테니, 끝까지 브라운관을 고집하려 들 터.

그들이 브라운관 TV에 미련을 둘 때, 우리는 반도체 시장에서 그렇듯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시장의 절대 강자가 되면 될 일이었다.

* * *

리암 다니엘은 몇 달 전부터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컴퓨터부터 켜는 습관이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면 꼭 들어가는 사이트가 바로 미로였다.

“오늘은 뭐 새로운 게 없을까?”

미로는 그에게 있어 신세계였다.

사실 지금의 그가 컴퓨터 중독자가 된 이유도 미로 때문이었다.

늘 새롭고 재미있는 세계.

과도기라서 그런지, 여러 서비스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어서 더 신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최신정보 카테고리에도 별 내용이 없었고, 새로운 서비스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럴 때는 뉴스밖에 볼 게 없었다.

뭐, 뉴스라고 해봐야 아직 신문사 몇 개밖에 안 들어온 상태였지만 말이다.

‘어, 근데 이건 무슨 광고지?’

미로 중앙에 광고 문구 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비밀스러운 화면을…….>

인터넷이 느려서 문구가 다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문구만 봐도 흥미가 돋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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