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7년 안에는
“한국 대통령을 막아야 합니다.”
“윌리엄 국방 장관. 이미 다 끝난 이야기입니다.”
“드디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게 되었는데, 한국이 끼어들면서 애매한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까? 한국의 개입을 막고 북한을 굴복하게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김태중 대통령의 방북을 고운 눈으로 보지는 않고 있었다.
북한이 작년부터 엇나가는 행동을 하여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에서는 항공모함까지 동원하여 북한을 압박하고 있었는데, 하필 이런 때 한국이 개입하였다.
평양에서 역사적 회동.
즉, 김태중 대통령이 방북하여 김일성과 정상회담을 가지기로 결정된 것이다.
“북한이 한국 대통령을 급하게 초대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만큼 저들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조금만 더 압박하면 저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윌리엄 페리 국방 장관의 말에 빌 클린턴은 턱 끝을 쓰다듬었다.
사실 그 역시도 고민하는 문제였다.
단순히 남북 정상회담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반도 통일이 궁극적으로 미국에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 문제는 이미 프레지던트 킴에게 맡기기로 했다. 뒤늦게 태도를 바꿔 봐야 좋을 게 없어.’
빌 클린턴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김태중 대통령을 존경하였다.
고문을 당하고 타국으로 망명까지 하면서도 꿋꿋하게 민주화 투쟁을 하였다는 것.
결국에는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으니,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선 김태중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태중 대통령에게 운전대를 넘겨 준 것도 그가 개인적으로 김태중 대통령이란 사람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빌 클린턴 대통령이 김태중 대통령에게 한반도 통일 문제의 지휘권을 넘겨준 가장 큰 이유는 한성이었다.
‘미스터 리의 조언은 확실히 신빙성이 있어. 우리 미국은 중국의 잠재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몰라.’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한성의 조언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비상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가 당선되기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들은 하나둘 무너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중국도 다른 공산주의 체제 국가들이 그러하듯, 내외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천안문 사태까지 일어나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니 위협을 느낄 리가 없었다.
경제적으로 대단히 낙후한 나라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가 취임하고 1년 동안 자세하게 살펴보니, 중국이란 나라의 성장 속도가 무시무시하였다.
무려 10%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보였던 것이다.
중국의 인구가 10억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같은 경제 성장률은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야 절대 미국을 위협할 수 없겠지만, 한성이 말했던 것처럼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그때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지만, 은근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영토 확장 욕도 신경 쓰였고 말이다.
‘만약 두 나라가 통일한다면, 쓸모없어진 주일 미군을 북한으로 옮길 수가 있게 된다. 이러면 중국을 확실하게 견제할 수가 있어.’
남한에서 북한으로 미군을 옮기는 것.
거리로 따진다면 고작 수백㎞ 옮기는 것뿐이지만, 중국과 육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미국에 엄청난 전술적 이점을 주었다.
중국 수도와의 거리까지 계산한다면, 중국을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 견제는 덤이었고 말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방관자가 되어 한국 대통령의 방북을 지켜볼 겁니다. 그러니 이에 관해서는 더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단호한 말에 더는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 * *
신문을 집어 1면을 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김태중 대통령이 북한의 김일성과 악수하는 사진이 1면에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통일하는 건가?’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북괴의 수괴인 김일성과 한국 대통령이 악수하다니?
서로 주먹다짐하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공산주의 체제는 무너졌고 독일은 이미 통일한 마당이었다.
북한 역시도 체제가 전복할 수 있을 정도의 크고 작은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하니,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것도 이제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벌써 미래 그룹은 접경 지역의 땅을 대대적으로 매입하고 있다지?’
통일을 기대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국민들은 물론이고, 대기업들도 통일을 시간문제라고 여기고 있었다.
김태중 대통령이 김일성과 다정하게 악수하는 사진이 그만큼 한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쯧쯧. 북한에 가서 뭘 하나 했더니 열심히 사진만 찍고 왔군.)
그때였다.
신문을 보고 있던 내 뒤에 노사가 여느 때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나는 놀란 기색 없이 태연한 목소리로 노사에게 말했다.
“기사 내용을 보면 꼭 사진만 찍고 온 것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래. 송이버섯은 받았지.)
“납북 어민들과 국군 포로들도 돌려받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단순히 두 사람의 악수하는 사진만 보고서 통일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북한으로 간 김태중 대통령은 김일성에게 세 가지 확약을 받아냈다.
국군 포로들과 납북 어부들, 그리고 6.25 남침의 사과까지.
그동안 김일성과 북한이 보여준 태도를 생각하면 김태중 대통령은 많은 것을 받아내고 온 셈이었다.
(하지만 그 세 가지를 받아내기 위해 김일성이는 한 가지 조건을 달았지. 주한미군 철수라는 조건을 말이야.)
“…….”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평양에서 이루어진 김태중-김일성의 공동선언으로 남과 북은 군사 긴장을 완화하여 나가자는 협의가 이루어졌다.
덤으로 경제 협력에 관한 협의도 이루어졌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달려 있었다.
그 조건이 바로 노사가 이야기한 주한미군 철수였다.
북한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논리를 펼치며 주한미군 철수와 연방제 수용 등을 요구한 것이다.
“이번 공동선언이 김일성의 진심은 아닐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진심일 리가 없다. 김일성은 그저 미국이 무서워서 시간을 벌려고 저러는 거뿐이야. 늙은 나이에 만주로 도망치기는 싫은 거지.)
뭐 그럴 수도 있었다.
항공모함을 동원한 미국의 행동을 보면 진짜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나는 노사처럼 마냥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일단 남북 지도자가 한 테이블에서 통일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통일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래도 하나 긍정적인 것은 미국을 네 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원래라면 몇 달이 지나야 남북 정상회담을 허락해 줬을 텐데, 네 덕에 시기가 빨라졌다. 그로서 김일성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지.)
“저도 그 점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러시아니, 일본이니, 중국이니 다른 나라들은 신경 쓰지 말고 미국과의 관계에만 집중해. 괜히 다섯, 여섯 모여봐야 결론 안 나와. 하나도 만족시키기 힘든 판국에 다섯을 어떻게 만족시켜? 가장 센 보스인 미국만 만족하게 한다면 통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난관은 사실 북한의 김씨 일가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난관이었으나, 그들보다 더 큰 난관은 이웃의 강대국들이었다.
러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이 세 나라는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러시아는 회유의 여지가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은 절대적으로 반대하겠지.’
중국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졸렬한 일본 역시도 한국이 강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터.
결국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통일을 끌어내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주변국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거나, 아니면 주변국의 요구를 모두 묵살하거나.
물론 내 생각도 노사와 같았다.
미국과 합의한 뒤, 주변국의 요구를 묵살하는 것.
오직 그것만이 한반도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7년 안에 극적인 합의를 이루어내야겠군요. 통일까지 간다면 더 좋을 게 없고 말입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라면, 끝까지 한국 통일을 지지해줄 것이다.
그리고 빌 클린턴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7년.
이 7년 안에 반드시 통일해야 했다.
통일과 관련해서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순간은 바로 지금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 * *
마침 백악관에서 연락이 왔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한번 보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해가 지났다고 바로 나를 찾는군.’
나로선 나쁠 게 없었다.
안 그래도 미국에 갈 생각이었는데,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만나면 금상첨화였다.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넘어간 나는 곧바로 빌 클린턴 대통령을 찾았다.
늘 그랬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은 나를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그가 환영해준 덕에 이제는 백악관이 친숙하게만 느껴질 정도였다.
“미스터 리, 북한과 이야기가 잘 됐다고 들었습니다. 통일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은데, 정말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게 대통령님 덕입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김일성 주석을 협상장에 올라오게끔 만든 것이 대통령님의 공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빌 클린턴 대통령님을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존경하고 인기 많은 대통령으로 꼽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한국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
김태중 대통령이 립 서비스로 북한과 협의를 이루는데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안 그래도 작년에 엄청난 환영을 받은 게 기억에 남는데, 이거 참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그리 말하고는 이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미스터 리는 제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북한과 통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아무래도 독일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일찍 통일을 이룰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흠, 그렇습니까?”
“다만, 7년 안에 핵 문제나 경제 개방과 관련하여, 뚜렷한 성과를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일성이 죽고 난 뒤가 문제긴 해도, 일단 김일성이 죽기 전에 통일을 위한 조치를 해둔다면 통일도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나진, 선봉 등이 개방하여 시장경제가 시작한다면 김정일이라 해도 그걸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
자본주의가 도입되면 북한은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7년이라. 설마 미스터 리는 제가 재선에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절대적인 지지층도 가지고 계시고, 흠이 없으시며 경제까지 발전하고 있는데 재선은 무조건 성공하실 겁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는 양차 세계대전 직후를 제외하고 미국이 가장 경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심지어 이때는 양차 세계대전 직후처럼 옛 소련이나 대영제국 같은 경쟁국 없이, 오로지 미국이 독보적인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다.
노사께서 말하길, 미국인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시절이 바로 빌 클린턴 집권 시기라고 하니, 웬만해서는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컸다.
“아, 물론 사생활 관련 추문이 벌어지지 않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내 말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헛기침하였다.
그의 유일한 흠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스캔들이었으니, 빌 클린턴 대통령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주지사 시절에도 여러 여성과의 스캔들로 고생한 전적이 있었으니까.
‘심지어 1998년에는 스캔들 때문에 탄핵을 당할 뻔한다지?’
정확히는 스캔들 때문이 아니라, 성관계를 안 했다고 위증했다가 탄핵을 당할 뻔한 거지만, 어쨌든 그게 그거였다.
애초에 백악관 인턴과 성관계하지만 않았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터.
‘뭐 여자 관련 의혹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재선에 성공했지만, 확실하게 재선에 성공하려면 의혹을 최대한 없애는 게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