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비교가 될 수밖에
일본 정부는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을 최대한 동원하여 미국에 전방위적으로 로비하기 시작하였다.
명분이야 이거 하나면 충분했다.
‘한국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헤치고 있다! 한국에서 항모를 도입하면, 동아시아는 화약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일본 정부의 전방위적인 로비에도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냉담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왜 별거 아닌 일에 소란을 피우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미국이 한국을 선택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어째 빌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고 미국과의 관계가 더 안 좋아진 기분입니다.”
“큰일입니다. 큰일이에요!”
“이게 다 이한성 회장 때문입니다. 이한성 회장이 거액을 로비에 사용하여 빌 클린턴 대통령을 꾀어낸 게 분명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을 꾀어내려면 도대체 얼마가 필요한 겁니까?”
“대일본의 돈이라면 안전하니 수십억 엔으로 충분했겠지만, 한국의 로비라면 적어도 수백억 엔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쯧. 그런 돈이 있을 거면, 사업에나 쓸 것이지 이한성 회장은 왜 애먼 곳에 돈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돈이 많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닙니다.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대책을! 한국에서 항모를 도입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본의 고위 관료들은 다시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자국에서 벌어지는 어떤 문제보다도, 한국의 항모 도입을 막는 일에 열성적으로 임하였다.
한때 식민지였던 한국이 일본을 위협하는 국가가 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케시마에 해군을 보내,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미국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이한성 회장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무력 도발은 가능한 피해야 합니다.”
“저는 중국을 이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중국이라.”
“그 누구보다 항모를 원하는 나라가 중국 아닙니까? 중국이라면 한국이 러시아의 항모를 채간 것을 기분 좋게 바라보지는 않을 겁니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항모 판매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던데, 언론을 이용해서 이들도 자극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군요!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자극한다면 한국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순식간에 결론이 나왔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 * *
“회장님. 일본 NHK에서 러시아와 계약한 내용에 관해 보도하였습니다.”
평소처럼 업무를 보는데, 진봉현 비서실장이 그와 같은 소식을 전하였다.
“어떤 내용입니까?”
“한국에 들여올 퇴역 항모 2척이 사실상 현역 함정이나 다를 게 없다며,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다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공영 방송인 NHK가 저런 내용의 보도를 한 것은, 일본 정부의 입김이 들어간 결과일 것이다.
즉, 일본 정부는 언론을 통해 우리가 항공모함을 도입하는 것에 견제하고 있었다.
“일본의 목적은 러시아를 움직여 항모 매각을 원점으로 돌리는 것일 겁니다.”
실제로 일본은 러시아와 중국, 미국을 들쑤시기 시작하였다.
마치 한국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해치고, 군비 경쟁을 일으켰다는 식으로 자극적인 여론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자 중국에서도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중국은 이전부터 러시아의 항공모함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러시아는 중국의 성장을 우려하여 처음부터 중국의 제안을 거절하였었다.
이런 상황이니, 중국으로선 우리에게 질투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해군이 발전하는 것도 달갑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어차피 지금 시점에 중국이나 일본의 여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과 러시아야.’
다행히 미국은 잠잠했다.
일본이냐, 한국이냐.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지금의 미국은 한국을 선택한 듯싶었다.
애초에 우리가 인수한 두 척의 항공모함은 항공 순양함으로서 미국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러시아의 반응은 썩 달갑지 않았다.
러시아의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민스크 함에 노보시비리스크 함에 군사적으로 극비에 해당하는 무기가 실려있다고 거짓 보도하였다.
그러자 태평양 함대 사령부는 이 기사를 근거로 옐친 대통령과 국방부를 비난하고 있었다.
사실상 일본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셈이었다.
만약 이런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부정적인 여론에 부담감을 느낀 옐친 대통령이 항모 매각을 취소할 수도 있었다.
‘옐친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봐야 하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항모 대행 판매사인 콤파스사 사장의 전화가 왔다.
물론 말이 민간 회사지, 콤파스사는 러시아의 퇴역 장성들이 설립한 회사였다.
“전화 받았습니다.”
-이한성 회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잘 지냈습니다.”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합니다.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예전과 달리,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 그의 목소리가 왠지 신경 쓰였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의 용건은 결코 나에게 긍정적인 것은 아닐 듯싶었다.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요즘 일본 때문에 국내 여론이 뒤숭숭합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태평양 사령부에서도 거센 반발을 하고 있다고요?”
일본은 우리가 항모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연일 기사를 보도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고 있었다.
우리 정부에서 아무리 항모를 군사용으로 전용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우리와 러시아의 계약을 무효로 돌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심지어 NHK인지 뭔지 하는 일본 언론에서는 민스크 함의 내부 시설을 촬영하려고 했었습니다.
“내부 시설을 말입니까?”
-예, 항공모함 매각에 반대하는 군 내부 관계자가 도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행히 촬영은 막았지만, 안 좋은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항공모함 내부까지 촬영하려고 했다니.
일본의 집요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안 좋은 소문이라면 정확히 어떤 소문입니까?”
-저희가 주요 시설들을 그대로 보존한 채, 한국에 항모를 판다는 그런 소문입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말이 길어지는 게 신경 쓰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아무래도 다른 국가의 눈치도 봐야 하고, 군 내부의 눈치도 봐야 하니, 항모의 내부 시설을 완전히 파괴해야 할 거 같습니다.
“분명 계약서에는 현재의 위치에서 그대로(where it is)라고 명시되어 있을 텐데요?”
겉으로야 고철에 불과한 항공모함을 매입한 것이지만, 사실 옐친 대통령과의 비밀 협상 끝에 내부 시설 일부를 보존하기로 약속했다.
무기는 당연히 뺐지만, 중앙지휘센터 장비와 레이더(R/D), 방공정보시스템, 미사일 발사대와 지휘시스템, 표적탐지시스템 등이 그대로 보존된 것이다.
이 내부 시설을 역설계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항모 생산은 5년 이상 단축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로서는 콤파스사 사장의 말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태평양 사령부뿐만이 아니라, 지방 정부에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러시아의 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러시아의 사정일 뿐이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였기에 철저하게 계약을 맺지 않았던가.
여론이 안 좋아졌다고 계약을 어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공장 이전 계획도 취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으음.
콤파스사 사장이 앓는 소리를 냈다.
현재 옐친 대통령이 나와의 관계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께 제 뜻을 전해 주십시오. 러시아 같은 강대국이 일본의 손에 놀아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일단 전달은 해 보겠습니다만,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러시아에서 계약을 어긴다면 저희도 계약을 어기고 중국과 거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십시오.”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중국과 줄곧 경쟁하는 사이였다.
물론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러시아를 가장 위협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었으니, 러시아가 중국을 견제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내가 항모를 중국에 팔 수도 있다는 말은, 러시아로서는 상당히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협박일 것이다.
뭐, 러시아에서 항모 매각 자체를 취소한다고 이야기하면 이런 협박도 무의미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 누구보다 돈이 급한 러시아니까.’
만약 러시아가 항모 매각을 취소한다?
그러면 나도 보복 차원에서 러시아 투자를 취소하면 될 일이었다.
이미 맺어진 계약도 지키지 않는 나라라면,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었으니.
다행히 내 협박은 잘 먹힌 듯싶었다.
바로 다음 날.
옐친 대통령에게서 계약을 철저하게 지킬 것이니, 나도 계약을 지켜달라는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항공모함 보유국이 되는구나.’
물론 끝까지 방심할 수는 없었다.
항모를 한국까지 예인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 * *
주변국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당연히 한국이라고 조용할 수는 없었다.
당사자인 만큼, 언론은 연신 항공모함과 관련된 기사를 보도하였다.
가장 강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역시 해군이었다.
해군의 오랜 꿈이 바로 항모를 보유하는 것.
항모를 보유하면 자주국방의 토대는 물론이고, 항공모함 함 자체를 지휘하는 함장과 탑재기를 지휘하는 비행단장 둘을 휘하에 두고 지휘하는 항모전단장이란 중요한 보직 두 개가 생겨난다.
육군, 공군에 비교하면 대우가 낮았던 해군 입장에서는 열렬히 반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물론 해군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항공모함이 뭐기에 이렇게도 난리야?”
“아니, 군필자라는 양반이 항공모함이 뭔지도 몰라?”
“대충은 알지. 근데 항공모함을 보유한 게 이렇게도 난리를 피울 정도의 일이야?”
“항공모함의 가치를 생각하면 이 정도 난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걸프전만 봐봐. 공군의 중요성이 얼마나 커졌어? 하늘을 제압하는 자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시대에, 항공모함은 웬만한 중소국가 공군과 맞서 싸워도 비등비등하다니까?”
“그 말은 항공모함 한 척만 있으면 중소국가와 싸워도 이긴다는 건가?”
“거의 그렇지! 한 척인데도 그런데, 두 척이라면 북한을 상대하는 것도 문제없어! 항공모함 두 척만으로 북한을 이길 수 있다는 거야!”
항공모함 두 척만으로도 북한을 이길 수 있다.
이 같은 뜬소문이 퍼져나가자 너나 할 것 없이 환호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는 이내 항공모함을 인수한 주역에 대한 함성으로 이어졌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주역은 한성이었다.
“내가 말했지! 이한성 회장은 애국자 중의 애국자라고!”
“애초에 혜성이 무슨 악의 기업이라고 말하는 놈들이 비정상이었어.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하고 투자도 계속 늘리는 혜성 그룹이 무슨 악의 기업이야?”
“혜성 공화국이라고 비판하기도 하던데, 웃기는 소리 아니냐? 나는 솔직히, 이한성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나오면 무조건 뽑아 줄 거야.”
“확실히 차기 대통령을 뽑는다면, 왕주형보단 이한성 회장이 낫지. 왕주형 그 양반이 나라를 위해서 한 게 뭐가 있어? 쓸데없이 정치 욕심이나 부리고 한 게 없잖아?”
혜성 그룹을 향한 찬사는 미래 그룹을 향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때는 재계 1위였던 미래 그룹이니, 자연스럽게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