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치킨게임
역시 집권 초기라서 그런 것일까?
발걸음이 당당하였다.
김영산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 전혀 딴판이라고 볼 수 있었다.
“대통령님, 어서 오십시오.”
“이한성 회장님. 회장님을 이런 자리에서 뵙게 돼서 더 반가운 거 같습니다.”
“저도 대통령께서 직접 왕림하실 줄은 예상 못 했습니다.”
집권 초기니 한창 바쁠 시기였다.
정권이 바뀐 지 불과 두 달밖에 안 지난 시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김태중 대통령은 미사일 실험장으로 직접 왕림하였다.
이것은 김태중 대통령이 국방력 강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로켓이지 않습니까. 로켓 실험 자리에는 한 번쯤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오셨으니, 연구원들과 장 소장이 크게 힘을 얻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괜히 부담이나 준 게 아닐지 걱정스럽기는 합니다. 하하. 그런데 이한성 회장님. 저는 정말 회장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존경스럽다니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HS 디펜스를 만들어 한국의 국방력 강화에 힘을 보탰다는 이야기야 김영산 전 대통령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설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소련 과학자를 한국으로 불러들였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김태중 대통령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그 같이 말했다.
사실 내 속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선 실로 존경할 수밖에 없는 행보였다.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 혜성 그룹의 운명을 걸고 도박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나로서는 소련이 무너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과감하게 소련 과학자를 데려온 것이지만 말이다.
“나라에서도 하지 못한 일을 사기업인 혜성 그룹이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정말 존경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저 할 수 있었기에 했던 거뿐입니다. 앞으로 제가 추구할 미래 사업에 우주과학은 빠질 수 없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한성 회장님 덕에 이렇게 로켓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대신해서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 감사 인사는 실험에 성공한 이후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김태중 대통령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저는 이번 실험을 막아야 할지, 강행해야 할지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
“북한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렇지요. 바로 어제 미국, 일본과 북핵 관련해서 합의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시늉을 하였다.
외무부 장관이 직접 미국, 일본을 차례로 순방하며 북한 핵 문제 처리 방안을 협의하였다.
협의 결과는 유화책이었다.
즉, 북한을 궁지에 넣지 않고, 중국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한국은 북핵 문제 처리방안을 협의한 바로 다음 날, 로켓 실험을 하였다.
어디까지나 관측 로켓일 뿐이었지만, 로켓은 로켓이었다.
KSR은 최고 고도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었기에 사거리 500㎞ 이상의 전역 탄도미사일로 전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였다.
물론 실험 결과를 봐야 확실하게 판명이 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실험을 강행하셨지요.”
“예. 유화책도 결국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김태중 대통령이 낮은 목소리로 하는 말에 나 역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화책이건, 평화 통일이건 힘이 없으면 공염불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침 김태중 대통령도 평화 통일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올해 안에 북한을 방문할 생각입니다. 평화 통일을 논의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김영산 정권에서도 통일에 관한 논의를 했었지만, 크게 진전은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 북한의 사정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설 시, 평화 통일과 관련해서 큰 진전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소련은 붕괴하였고, 중국은 자기 살기도 바쁜 상황이니, 통일을 원한다면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일 겁니다.”
“예. 그래서 저는 이번 실험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걸프 전쟁만 봐도 미사일의 중요성은 앞으로 커지면 커졌지 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다.
김태중 대통령이 실험 성공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는 거 같았다.
로켓이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중간에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실망할지 괜히 걱정되었다.
‘장 소장님과 내가 어렵게 데려온 소련 과학자들을 믿어봐야겠지.’
한때 우주과학에 있어서 세계 제일을 자부하던 나라가 소련이었다.
우주과학 연구소의 개발자 일부는 바로 그 소련의 최고 인재들이었으니, 기대를 걸어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 * *
나는 로켓이 발사되는 모습을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다행히 발사는 아무런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발사에 문제가 없다고 로켓 실험에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최고고도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목표지점에 도착하는지, 그 또한 발사 못지않게 중요하였다.
하여 발사에 성공한 이후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렇게 무려 6분이 넘는 시간 동안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데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성공했습니다!”
“우와아아아!”
로켓은 목표지점인 안면도 남쪽 서해에 정확히 떨어졌다.
첫 실험인데도 완벽히 성공한 셈이었다.
“최고 고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260㎞ 이상입니다.”
“260㎞요?”
결과를 들으니 더욱더 놀라웠다.
탄도미사일의 통상 사거리는 1,000㎞일 경우, 270㎞까지 올라간 뒤 포물선을 그리며 자유낙하한다.
그 말은 즉, 높이로만 보면 우리는 1,000㎞ 가까이 쏘아 보낼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만들 수 있는 셈이었다.
물론 당장 그게 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첫 실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정도면 50억이 아깝지 않군.’
이번 실험에 쓰인 예산은 50억.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예산인데, 실험에 성공한 이상, 50억도 아깝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수를 사용해서든, 한미 미사일 지침을 해제하든가 해야겠는데?’
원래는 500㎞까지 푸는 것에 만족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성과를 보니, 500㎞의 사거리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여러 기술이 더 필요하기는 하다지만, 몇 년 안에 1,000㎞의 사거리를 지닌 탄도미사일도 개발할 수 있는데, 500㎞는 너무 작았던 것이다.
“이한성 회장님!”
내가 속으로 한미 미사일 지침을 생각하고 있을 때, 김태중 대통령이 흥분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실험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었다.
“인공위성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로켓 개발의 첫 관문을 돌파하다니! 오늘은 정말 기쁘기 그지없는 날입니다.”
“운이 좋다면 대통령님의 임기 안에 우리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김태중 대통령은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오늘 실험에 성공한 건, 장 소장을 비롯한 여러 박사님이 수고해 주신 덕이지만, 저는 이한성 회장님의 공이 연구진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과찬입니다.”
“앞으로 저는 누가 어떤 식으로 혜성 그룹을 음해하든, 절대 이한성 회장님을 의심치 않겠습니다.”
“계속 의심해 주십시오. 저는 절대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실험에 성공했는데도 겸손하게 구는 것은 반칙 아닙니까?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김태중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김태중 대통령의 마음마저 확실하게 사로잡은 듯하였다.
‘다만 이번 로켓 실험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군.’
비밀리에 실험했다지만, 미국이 눈치 못 챌 리는 없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우리가 로켓 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주한미군 사령부에도 전해졌을 터.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가 최대 관건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 * *
예상대로 한국 이통사는 은성 그룹과 미래 그룹의 컨소시엄이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언론에서는 혜성이 처음으로 인수전에 패배했다느니, 역시 혜성도 은성과 미래가 힘을 합치면 어쩔 수 없다느니, 그런 기사들을 보도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두 기업이 쓴 돈은 무려 6천억.
한국 이통사가 아무리 미래 잠재력이 있는 기업이라지만, 지금 당장 6천억을 사용해서 인수할 정도의 가치는 없었다.
‘특히 두 기업의 사정을 생각하면 지나친 무리수지.’
그나마 미래 그룹은 2천억밖에 안 썼으니 다행인데, 은성 그룹이 문제였다.
반도체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한 상태에서 한국 이통사를 4천억이나 써가며 인수했으니, 사실상 현금이 마른 상태일 터.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적자가 몇 년 동안 이어진다면?
은성 그룹이 아무리 다른 대기업에 비해 부채 비율이 건전한 편에 속한다고 해도,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컸다.
‘뭐 그렇다고 내가 적의 사정을 생각해 줄 이유는 없지만.’
혜성에서 치킨게임을 하지 않는다면, 은성 전자도 반도체에서 나름대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투자한 자금의 절반 정도는 회수할 수도 있었을 테지.
하지만 나로선 은성 그룹의 사정을 생각해 줄 이유가 없었다.
같은 한국 기업이라고 하나, 결국 은성 그룹도 혜성의 경쟁 기업인 것은 매한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여 나는 지체하지 않고 16M D램을 비롯하여 모든 D램 반도체의 가격을 낮추었다.
시세가 50달러를 형성하던 16M D램의 경우, 거의 절반 가까이인 30달러까지 가격을 낮추었을 정도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혜성 반도체에서 갑자기 단가를 낮추자 일본 반도체 업계의 반응이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막 16M D램의 양산에 성공한 일본 반도체 업계였다.
흑자를 내기는커녕 여전히 적자를 거듭하고 있는 상태.
그런데 하필 이때 단가가 낮아졌으니,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생산 단가가 워낙에 높은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니, 30달러 선에서도 적자가 났던 것이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앓는 소리를 하는군.’
목표는 15달러였다.
생산 단가가 낮은 편에 속하는 혜성 반도체가 적자를 겨우 면하는 수준까지 가격을 낮추는 게 목표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벌써 앓는 소리를 하는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모습이 나로선 우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반도체야 그렇다 치고, 미국의 반응이 희한할 정도로 조용하군.’
나는 미국이 KSR 로켓 실험과 관련해서 경고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달가워할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미국의 반응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정부에서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김태중 대통령에게도 따로 압박이 있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
‘내가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이야기한 것이 어느 정도 통한 건가?’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열변을 터뜨렸었다.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미국의 반응만 봐도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은 거 같았다.
‘아예 항공모함까지 인수해 버려?’
지금도 러시아에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었다.
항공모함을 인수할 생각이 없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가격도 점점 내려가고 있었는데, 지금 가격만 해도 항공모함의 가치를 생각하면 껌값이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