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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70화 (270/300)

270화 힘을 합치면 되잖아?

“무엇보다 중국이 문제인 것은 중국이 일당 독재의 국가라는 사실입니다.”

“중국이 일당 독재라는 사실이 우리 미국에 큰 해가 될 일입니까?”

빌 클린턴 대통령의 물음에 나는 당연한 말을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독재자들이 쉽게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공동의 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의 중국 독재자가 선택할 공동의 적은 미국밖에 없습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군요. 미스터 리의 말씀처럼 중국이 G2가 될 정도로 성장한다면 말입니다.”

“예.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긴 한데, 한국 대통령도 종종 조언을 구하는 저의 싱크탱크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그렇습니까?”

“뭐가 됐건, 중국의 성장을 가만히 방관하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 거 같습니다.”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자,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사실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면, 다른 나라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민주화 국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공산당의 통제력이 강하다고 해도 세계화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빌 클린턴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노사의 가르침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민주주의 국가가 된 러시아도 그렇고 시장을 개방한 중국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들이 될 것이다.

오히려 지금 민주주의 국가로 인식되던 나라들이 독재의 길을 밟게 되리라.

“중국의 경제가 지금처럼 계속 발전한다면, 공산당이 무너질 일도 절대 없을 겁니다.”

“단호하게 말씀하시는군요.”

“제가 동양 사람이라 확실하게 압니다. 긴 황제 국가의 역사를 지닌 중국입니다. 중국 개개인은 누구에게 권력이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과 가족의 삶에만 관심을 둘 뿐입니다.”

설령 경제가 발전한 뒤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공산당의 통제력은 강해지면 강해지지, 약해지지는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극소수의 깨어 있는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을 두었지만, 그들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천안문 사태만 봐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음.”

내 말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앓는 소리를 하였다.

천안문 사태는 미국에 있어서도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중국이란 나라에서 인권이 철저하게 유린 되었음에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은 확실한 제재를 가하지 못했으니까.

“주지사였던 시절부터 제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한결같은 믿음을 보여 주었던 미스터 리의 말이니 상당히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중국의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신다면 더욱더 제 말이 신빙성 있게 느껴질 겁니다.”

“허어. 중국이 옛 소련과 일본의 자리를 넘볼 거라니. 10억이 넘는 중국의 인구를 생각하면 실로 끔찍하게 느껴지는군요.”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치게 강경한 말을 해서 거부감을 심어 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내 조언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잘 먹히는 듯했다.

‘하기야, 가장 어려웠던 시절부터 내가 도와줬는데 발언권이 강할 수밖에 없지.’

내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정책적으로 지금 당장 중국을 견제할 수는 없겠지만, 미스터 리의 조언을 늘 생각하며, 중국이 성장할 때마다 경각심을 가지겠습니다.”

“제 조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강대국 대통령이 나의 조언에 따라 준다니.

실로 감개무량하게 느껴졌다.

뭐, 말로만 하는 립 서비스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중국의 위협성을 확실하게 경고했으니, 중국이 커지는 것을 수수방관하지는 않겠지.’

미국 정부의 제재가 없다면, 미국 기업들은 곧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을 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것.

다른 나라의 기업들도 마찬가지로 공장 이전을 강행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경각심을 심어 줬으니, 미국 기업들의 공장 이전도 조금은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 * *

빌 클린턴 대통령과 독대까지 마쳤으니 이제 정말 미국에서의 할 일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한국으로 넘어갔다.

찰칵! 찰칵!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받으셨다고 들었는데,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미국의 정권이 바뀌었는데, 앞으로 한미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혜성 그룹은 한국 이통사 인수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미국에서의 인지도도 나름대로 상승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한국의 그것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공항을 나오기 무섭게 모여드는 수십 명의 기자.

질문도 다양했다.

특히 정치와 관련된 질문이 많았는데, 누가 보면 내가 여당 총재라도 되는 줄 알 것 같았다.

“가시죠.”

일일이 답변해 줄 의무는 없었기에 나는 경호원들이 열어 준 길로 나갔다.

“사옥으로 모실까요?”

“아니요. 명예회장님께서 기다린다고 하시니, 저택으로 데려다주시면 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차를 타고 저택으로 향하였다.

“어서 와라.”

저택에 도착하니 이한철 명예회장이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김태중 취임식에 관해 물었다.

“취임식은 별일 없었습니까?”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렇습니까?”

“다만, 정치인들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따라붙더구나.”

“혜성의 덕을 보려는 자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뭐 나로서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사실 내가 직접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달라진 혜성의 이름값 때문에 괜히 나에게 시선이 주목될까 우려스러웠던 것이다.

“좋은 일이긴 한데, 파란 지붕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지가 걱정스러워.”

“우리가 미래 그룹처럼 정당을 세운 것도 아닌데, 설마 우리를 질투하겠습니까?”

“정치인들이 죄다 우리의 눈치를 본다면 당연히 질투하지 않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청와대 비서진이야 나를 안 좋은 눈으로 볼 수 있기는 했다.

어찌 보면,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내가 대신 누리고 있는 셈이니까.

하지만 그들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나를 열렬히 지지하는 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네가 그렇다면 나도 더는 말하지 않으마.”

이한철 명예회장은 이내 화제를 전환하였다.

“그런데 소문이 사실이냐?”

“어떤 소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통령이 어제 발표했던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계획이, 네가 조언한 계획이라는 소문이 있어.”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김태중 대통령이 이렇게 전격적으로 일을 추진할 줄은 몰랐다.

설마 취임식이 끝나고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 그런 발표를 할 줄이야.

‘정보통신망에서 세계 제일이 되고, 모든 학교에 인터넷 회선을 보급하겠다!’

김태중 대통령의 이 같은 발표는 큰 파문을 일으켰다.

본래라면 5년 뒤에 있을 발표였으니,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더 파문이 클 수밖에 없었다.

“사실입니다. 김태중 대통령이 저에게 몇 가지 조언을 요구하였고, 저는 인터넷이 경제 발전의 핵심이라고 조언했었습니다.”

“그래? 소문처럼 김영산 전 대통령도 그렇고, 김태중 대통령도 너에게 많이 의지하는 모양이구나.”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몇 마디 조언해 주는 정도입니다.”

“뭐가 됐건, 이런 소문이 나는 것은 별로 좋을 게 없다고 본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재계의 사람이지, 정치인은 아니니 말이야.”

“예,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이한철 명예회장의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지만 나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나에게 어떤 의견도 내지 않은 채, 그저 칭찬만 하고 말았을 이한철 명예회장이었다.

그런데 전경련의 회장이 된 이후,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지금처럼 조언 아닌 조언을 던져 주고는 했다.

나는 이게 본래의 이한철 명예회장의 모습인 것을 알기에 이런 변화가 보기 좋게 느껴졌다.

‘확실히, 재계 1위로서 점점 우리를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앞으로는 주의하는 게 좋겠어.’

지금도 나를 마치 한국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흑막처럼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사회의 저명인사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으니, 행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김영산 전 대통령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과 독대하는 일은 자제하는 게 좋을 거라는 의미였다.

* * *

“용건이 뭐야?”

왕재구 회장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구혁재 회장이 웃으며 답했다.

“우리 사이에, 용건이 있어야지만 만나나?”

“우리 사이?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인데?”

“뭘 그렇게 새침하게 굴어?”

“새침? 네가 나에게 한 짓을 잊기라도 한 거냐?”

“그래도 내가 중간에서 중재하지 않았으면, 혜성 그룹과 끝까지 갔어야 했을 거야.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

뻔뻔하기 그지없는 구혁재 회장의 말에 왕재구 회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본론이나 말하지?”

“하하, 그럴까?”

구혁재 회장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본론을 꺼냈다.

“다른 게 아니라, 미래 그룹은 한국 이통사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관심이 있으면?”

“있으면 있는 거지.”

“은성 그룹도 한국 이통사에 관심이 있나 보지?”

“대통령부터가 IT에 관심이 지대한 거 같잖아? 무엇보다 혜성 그룹도 한국 이통사를 노리고 있고 말이야.”

그 말에 왕재구 회장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혜성 그룹이 노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한국 이통사를 노리겠다고?”

“왜? 우리는 혜성 그룹의 것을 노리면 안 된다는 법 있어?”

“은성은 혜성의 개 아니었나?”

미래 그룹 회장답지 않은 저열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원래 왕재구 회장의 성격이 이런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구혁재 회장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개는 아니고, 우호적인 동맹이긴 했지.”

“이제는 아니란 거야?”

“꼭 그렇지는 않고, 동맹이면서 한편으로는 경쟁하는 사이니, 혜성이 탐하는 것을 나도 탐해 보려는 거뿐이야.”

“혜성을 이길 자신은 있고?”

시종일관 옅은 미소를 짓던 구혁재 회장은 왕재구 회장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같은 빅4 그룹이지만, 누구도 혜성 그룹을 은성 그룹이나 미래 그룹과 동급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제는 반도체에서만 6조 이상의 매출이 나오는 혜성 그룹이었다.

은성에서도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혜성 그룹처럼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

미래 그룹 역시 자동차 매출이 혜성보다 뒤지고 있었기에 두 기업과 혜성 그룹의 차이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규모나 매출을 제외하고 순수한 자금력으로 따지자면 차이는 더욱더 압도적이었다.

혜성 그룹은 그야말로 마르지 않는 자금력을 손에 쥐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이한성 회장이 소프트뱅크 대주주 중의 한 명이라고 하니, 말 다 했지.’

한성이 보유한 소프트뱅크의 지분만 팔아도 한국 이통사쯤이야 몇 개도 인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혜성 그룹과 단독으로 자금력 대결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은성 하나로는 혜성을 이길 수 없으니, 혁재 너를 찾아온 거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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