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267화 (267/300)

267화 취임식

“인재 영입이라.”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해결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간단하기는 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기도 했다.

결국 반도체 칩을 개발하는 것은 개발 인력이었으니 말이다.

“일본 개발자들이 한국으로 오려고 할까요?”

“혜성이면 옵니다.”

“왜 그렇게 자신하십니까?”

“돈도 많이 주고 복지도 좋은 데다, D램 반도체 쪽으로는 세계 제일의 회사인데 한국인 게 문제겠습니까?”

속으로 피식 웃었다.

혜성인데 국적이 무슨 상관이냐니.

회장인 나로서는 실로 흡족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물론 겉으로 좋아하는 티를 내지는 않았다.

괜히 이런 말에 좋아하는 티를 냈다간, 내가 아부를 좋아하는 줄 알고 계속 아부만 할 테니 말이다.

‘일본 경제 사정도 안 좋아졌으니, 이제 슬슬 일본 인재를 강탈할 때이기는 해.’

히타치와 NEC가 힘을 합치지 않았더라도 나는 일본 인재를 영입하려고 기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혜성 반도체를 넘어서려고 악착같이 덤비는 모습을 보니, 더욱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라도 일본 인재를 영입해야 할 거 같았다.

* * *

5년 전까지만 해도 혜성 반도체로 이직하는 개발자는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히로토 그 자식, 상사에게 매번 깨지기만 하더니 결국 한국으로 도망쳤네.”

“왜 갑자기 그런 선택을 했나 했더니, 궁지에 몰려서 그랬던 거였군.”

“아무리 궁지에 몰렸었다고 해도, 멍청한 선택이지. 몇 년 있다가는 한국에서도 버림당하고 강제로 은퇴해야 할걸?”

이때도 혜성 그룹은 개발자 월급이 일본과 비교해서도 높은 편에 속했었다.

돈 하나만 보고 혜성 반도체로 이직하는 일본 개발자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본 개발자들은 마치 한국에서 대만을 인식하듯, 한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였다.

몇 년 써먹다가 더 빨아먹을 게 없으면 그대로 토사구팽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혜성 반도체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한국행을 선택한 개발자는 많지 않았다.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혜성에서 수요 공정이라고, 회의 시스템이 있는데 거기서는 개발자와 임원의 발언권이 동등하데.”

“임원과 발언권이 동등하다고?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히로토 그놈이 그렇게 말했다니까?”

“아, 만약 진짜 그렇다면 그거 하나는 부럽다. 우리 임원들, 얼마나 무능하냐. 히치로 전무만 봐도 나는 그 사람이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랐는지 의문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일본 개발자들 사이에서 혜성 반도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돈을 많이 준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개발자 대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을 보자, 혜성 반도체를 더욱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결정적으로 한국행을 선택한 일본 개발자들의 상황을 보고 인식이 확 바뀌었다.

“그나저나 히타로 그놈,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직도 한국에 있나 봐?”

“몰랐어? 걔, 임원 됐데.”

“뭐? 그놈이 혜성 반도체의 임원이 됐다고?”

“본인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라고 하는데, 걔 월급이 내 월급 10배 넘는 거 들으니 부러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미친! 히타로 그놈이 뭐 잘났다고 혜성 반도체에서 임원까지 달아?”

“그러니까 내 말이.”

극소수를 제외하면 혜성 반도체로 이직한 일본 개발자들은 별문제 없이 쭉 근무하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은 승진을 거듭하기도 하였는데, 임원이 된 개발자도 몇 명 있을 정도였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혜성 반도체에 이직할걸!”

시간이 지나자 일본 개발자들은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근무 조건이나 복지는 이미 몇 년 전에 혜성 반도체가 일본을 넘어섰다.

그런데 혜성 반도체는 1991년부터 D램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더니, 16M 양산이나 64M 개발에서 확실하게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일본은?

혜성 반도체가 1991년부터 크게 흥했다면, 반대로 일본은 1991년부터 죽 쓰기 시작했다.

일단 버블 붕괴가 문제였는데, 버블 붕괴 때문에 혜성 반도체가 투자를 늘릴 때 일본 반도체는 오히려 투자를 줄여야 했다.

이로써 혜성 반도체는 더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게 되었고, 일본 반도체는 퇴보만 반복하게 되었다.

1992년에는 이 같은 격차가 더 벌어져, 무려 1년 이상의 격차가 생겨 버렸다.

일본의 뒤꽁무니를 쫓기 바빴던 혜성 반도체를 이제는 반대의 입장이 된 것이다.

당연히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일본 개발자들은 후회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버블 붕괴로 그들의 월급은 삭감하고 있는데, 혜성 반도체로 이직한 전 동료들은 오히려 월급이 늘어나고 있으니, 후회를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NEC와 공동 개발을 한다니, 이제는 달라지지 않을까?”

“그 이야기는 하지도 마!”

“갑자기 왜 그래?”

“NEC 이것들이랑은 대화가 안 통한다니까? 죄다 40, 50대 아저씨들뿐이라서 그런지, 아주 고집불통이야!”

일본 정부조차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 히타치와 NEC의 공동 개발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이질적인 조직 문화로 인해 양사의 개발자들은 사사건건 충돌하기 바빴다.

심지어 지도력이 부재하여 이 같은 충돌은 어떤 중재도 없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두 기업의 개발자들로서는 회사에 다니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진짜 한국에 갈 수 있으면 무조건 가려고. 생각해 보면, 돈을 많이 주는 곳이 결국 나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인데, 안 갈 이유가 없잖아?”

“음, 확실히 맞는 말이야. 문제는 한국에서 우리를 영입하려고 할까? 이미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

“그게 문제긴 하지.”

쓴웃음을 짓던 개발자는 다음 날, 드라마틱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그의 이야기를 어디서 몰래 듣기라도 한 것처럼 혜성 그룹의 직원이 찾아온 것이다.

* * *

1월 16일.

빌 클린턴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나는 다시 미국을 찾았다.

일본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이때, 미국에서의 인맥은 나에게도 굉장히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싶었다.

“회장님, 한국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이요? 누가 왔습니까?”

“의원님들입니다.”

의원이라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여보내라 지시하니, 한 번씩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국회의원들이 내 집무실로 올라왔다.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이요?”

“예! 회장님.”

대표로 보이는 4선 국회의원 이병원이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부탁’이란 말에 거부감이 생겼지만, 일단 이야기는 들어보려는 생각에 소파를 가리켰다.

“여기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4선쯤 되면 대통령 앞에서도 허리를 빳빳이 세운다.

이병원은 여당의 원내총무이기도 하니, 겸손함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내 앞에서는 갓 전입해 온 이등병처럼 각이 잡힌 태도를 보였다.

“정말 놀랐습니다. 미국 땅값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큰 건물을 보유하고 계실 줄이야.”

“맞습니다! 처음에 이 빌딩에 들었을 때, 저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한국 기업이 LA의 중심에 40층 넘는 빌딩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저는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렇습니까?”

겨우 빌딩 하나 때문에 칭찬을 몇 마디나 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이 건물에서 우리 회사가 사용하는 층은 몇 층 안 되는데 말이다.

“이 건물만 봐도 알 수 있는 거 같습니다. 혜성 그룹이 미국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말입니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용건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칭찬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을 보니 내가 먼저 용건을 물어야 할 거 같았다.

“그런데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도움을 바라시는 겁니까?”

“회장님.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미국에서 그리 인정받지 못합니다. 정부 고위 인사나 상원의원은커녕 하원의원조차 만나기가 힘듭니다.”

뭐, 그거야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유럽이나 이스라엘 정치인이면 모를까.

한국의 국회의원이라면, 미국에서는 그리 대접받기 어려웠다.

선거에서 도움받을 일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기업의 인맥을 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근데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

내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을 때, 이병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미국 고위층과도 인맥을 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지금처럼 무시당하며 살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제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설마 빌 클린턴 당선인과 자리라도 마련해달라, 뭐 이런 겁니까?”

“아니요. 저희도 염치를 아는 사람들인데, 설마 그렇게까지 큰 걸 바라겠습니까? 저희는 그저, 정부 고위 인사나 상원의원들과 만날 때, 이한성 회장님과의 친분을 거론하는 것. 그거 하나만 바라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시한 요구였다.

그저 내 이름값을 빌리겠다는 것이었으니.

‘확실히 지금의 나라면 미국에서도 이름값이 통하긴 하지.’

이미 친분 있는 상원의원이나 주지사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작년 말에는 앨 고어 부통령을 비롯하여 차기 정권의 실세가 될 이들과도 한 번씩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국 국회의원들이라고 해도 내 이름을 팔기만 한다면 유럽이나 일본 정치인들과의 경쟁에서 우세한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나?’

나는 잠시 고민하였다.

크게 손해 볼 일이 아니긴 했다.

그저 나와의 친분을 자랑하겠다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이렇게 별거 아닌 일로 정계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늘릴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병원이나 다른 국회의원이 나에 관해 이상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내게 신기가 있다느니, 빌 클린턴이 당선한 것도 내 덕이라느니, 뭐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괜히 곤란했던 것이다.

‘그래도 미사일 협정이나, 항공모함 도입 같은 걸 생각하면 미국 행정부나 정계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어.’

나 혼자 미사일 협정을 끌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눈앞의 국회의원들이 미국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생긴다면, 추후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늘릴 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

“좋습니다. 편할 대로 하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이병원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는 도움이었는데, 지나치게 기뻐하였다.

아무래도 나의 이름값을 과장해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대신, 이상한 소문이 안 돌게 해 주세요. 없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란 이야기입니다.”

“물론입니다.”

“혹시 활동비가 부족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미국에서의 활동비는 저희 혜성에서 최대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괜히 미국까지 와서 세금을 낭비하게 하느니, 내가 자금을 지원해 주는 게 나았다.

아무리 수행원이 많다고 해봤자, 그들이 쓸 돈은 나에게 별로 많은 돈이 아닐 테니 말이다.

‘이런데 막 몇억씩 쓰거나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정치인의 양심을 생각하면 왠지 그럴 거 같기도 했다.

뭐, 크게 상관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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