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항공모함에 미사일까지
‘날 찾는 목적이 무엇이든, 일단 만나봐야겠지.’
이종석 의원까지 내쳐가며 김태중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나다.
이미 끈끈한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김태중 당선인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혜성 그룹에 있어 대통령의 지지를 받는지, 못 받는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보고 싶었던 얼굴을 이제야 보게 되었군요.”
김태중 당선인이 다정하게 악수를 하며 그렇게 말하자,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당선인께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저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기업가는 이한성 회장님뿐입니다.”
“아닙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한성 회장님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한성 회장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더 많은 지원을 하지 못한 게 저로서는 마음에 걸렸는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위안이 됩니다.”
내가 겸손하게 말하자, 김태중 당선인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한국 정치인들 상대로는 겸손하게 구는 것이 최고의 처세술인 듯싶었다.
물론 이종석 의원처럼, 명백히 내 아랫사람인 경우야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옳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한성 회장님을 부른 이유는 고맙단 인사를 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칭찬만 하던 김태중 당선인이 마침내 본론을 꺼내 들었다.
“김영산 대통령과 독대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문민정부의 핵심 참모는 이한성 회장님이라고 말입니다.”
“예? 김영산 대통령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아주 확신 어린 목소리로 그리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김영산 대통령에게 많은 조언을 해 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체면도 있는데, 김태중 당선인에게 내 조언을 받은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러다 김태중 정부에서도 책사 노릇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김태중 당선인이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황당하게 느껴졌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김영산 대통령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의 조언자로서 이한성 회장만큼의 적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일개 기업가일 뿐인데, 대통령의 조언자라니요. 김영산 대통령께서 과장하여 말한 것입니다.”
“이한성 회장님이 누구입니까. 재벌 신화의 주인공 아닙니까?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의 회장인데, 배울 점은 배워야 하지 않겠어요. 이 나라의 어떤 이보다 식견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노사가 곁에 있는 한, 내 식견은 한국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대통령에게 조언한다고 해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저로서는 영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김태중 당선인은 은은한 미소를 짓더니, 본격적인 조언을 요구하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 나라의 경제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이디어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디어라. 제가 감히 조언을 해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도 이한성 회장님의 조언을 구하길 희망하는데 저라고 다르겠습니까? 어떤 말이라도 좋습니다. 이한성 회장님의 진심이 담긴 조언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럼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허리를 굽히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나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는 인터넷이고, 둘째도 인터넷이며, 셋째도 인터넷입니다.”
인터넷!
지금 이 시점에 그에게 해줄 최고의 조언이 바로 이것이었다.
1993년인 내년부터 인터넷 사업은 급격하게 발전을 이룰 터.
한국이 인터넷 시대의 압도적인 강자가 되려면 지금부터 정부 차원에서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김태중 당선인은 인터넷 시대를 대비하기에 적임자 중의 적임자였다.
내가 나비효과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는 손정의 회장의 조언을 받아 IT 산업 진흥을 경제발전정책의 핵심으로 삼으며 한국의 인터넷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테니 말이다.
“인터넷 통신망으로 세계 제일이 된다면, 우리는 일본을 넘어설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을 말입니까?”
“예. 인터넷이 바로 우리의 미래입니다.”
내 확신 어린 태도에 김태중 당선인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이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인터넷이란 게 정확히 어떤 겁니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경제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김태중 당선인이지만, 역시 인터넷은 무리였나 보다.
“간단하게 말하면, 컴퓨터 하나로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이 바로 인터넷입니다.”
“음, 세계와 연결한다니. 뭔가 비범하게 들립니다.”
“혹시 더 전문적인 조언을 원한다면, 전남길 박사라고 계십니다. 미국을 제외하면 어떤 나라에서도 인터넷의 존재를 몰랐을 때,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사업을 강조했던 분입니다. 나사에서 근무하다가 이후 귀국해서 우리나라에 인터넷망을 구축하였는데, 한국에서 이분보다 인터넷의 전문가는 없을 겁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전문가가 전남길 박사였다.
어쩌면 노사보다 더 인터넷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남길 박사는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전남길 박사요? 신문에서 몇 번 본 이름인 거 같습니다.”
“예. 이분께 직접 조언을 들으면 얻으실 게 많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훌륭한 조언을 해 주신 데다, 인재까지 천거해 주시다니, 정말 이한성 회장님께는 감사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겸손하기까지. 역시 이한성 회장님은 이 나라의 보배입니다.”
김태중 당선인은 다시금 나를 낯부끄럽게 만들더니, 이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혹시 혜성에서도 이통사에 관심이 많습니까?”
이통사라.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의아했지만, 나는 숨김 없이 대답하였다.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역시라고?
영문을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나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어떤 말도 해 주지 않았다.
그저 혜성을 응원하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응원이라. 우리가 인수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의미로 봐도 되는 걸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내가 대선에서 도움을 많이 줬으니, 보은 차원에서 지원해 줄 가능성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이통사를 인수할 생각은 없는데 말이야.’
* * *
(일요일인데도 너는 어째 쉬지를 않는구나.)
“차기 대통령이 불렀는데 안 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김태중이가 안 불렀어도 너는 일했을 거 아니야?)
노사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연말이다 보니, 쉴 틈이 없었다.
만약 김태중 당선인과 만날 일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회사에 출근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습니다.”
(쯧, 너무 무리하지 마라. 어째, 너는 재벌 회장인데도 이 시절의 나보다 더 바쁘게 지내는 거 같아.)
“회장이니 더 바쁘게 지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럴 거면 부회장은 왜 뽑았어? 직원들은 왜 있는 거고?)
“부회장이 회사의 주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직원들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회사의 주인이 아닌 그들에게 주인의식을 바라느니, 회사의 주인인 제가 책임 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조금 커졌다고, 끝까지 말대답하는구나. 너, 얼굴색이 별로 안 좋은데, 요즘 운동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요즘 허리가 쑤셔서 스트레칭은 철저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스트레칭으로 되겠어? 당장 과로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데, 너 진짜 그러다 훅 가는 수가 있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고 그럽니까.”
(건강 챙기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만에 하나, 내가 죽었던 나이보다 일찍 죽으면 나는 귀신이 된 네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냐?)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노사도 장수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노사보다 일찍 죽는다니.
실로 끔찍한 이야기였다.
“알겠습니다. 다시 몸 관리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재계 1위의 재벌 회장이 되었는데, 100살까지는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오래 살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든 장수하면 좋은 일이었다.
뭐, 노사가 죽은 연도인 2023년에 갑자기 돌연사하지는 않을지, 그게 조금 걱정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김태중이랑은 무슨 대화를 나눈 거야? 아니, 그전에 빌 클린턴이랑 러시아 대통령과도 만났었지?)
“예.”
(게네들이랑은 뭔 이야기를 했어?)
“빌 클린턴 당선인과는 특별한 대화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앨 고어 부통령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앨 고어를? 나쁘지 않구나. 그런데 앨 고어가 너를 어떻게 보는 거 같더냐?)
“일단 긍정적인 신호를 던지긴 했는데, 정치인이다 보니 확신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그래? 어쨌든 물꼬를 텄다는 거니, 긍정적으로 봐도 되겠어.)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그 뒤로 옐친 대통령과 나누었던 대화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소련 과학자에 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어차피 러시아 놈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소련 과학자를 다시 불러들여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을 테니 말이야.)
“다행이군요.”
(그런데 항공모함을 이야기했다고? 아무래도 이때부터 키예프급 항공모함을 매각할 궁리를 했던 모양이구나.)
“원래도 러시아 항공모함을 저희가 매입했습니까?”
(매입했었지. 일본 놈들 때문에 다시 중국에다 팔아먹었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야.)
노사의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기껏 항공모함을 매입했는데, 일본 때문에 중국에다 되팔았다니.
‘역시 일본은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나라인 거 같군.’
일본을 꺾는데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거 같았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 일본이니, 일본을 넘어서야지만 일본이 지금처럼 방해가 안 될 것이다.
물론 그냥 넘어서는 정도론 안 되고 압도적으로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일본 때문에 중국에다 재매각해야 한다면, HS 디펜스에서 굳이 항공모함을 매입할 필요는 없겠군요. 지금의 일본이라면 더욱더 방해하려 들 테니 말입니다.”
한일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냉랭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한국의 경제 발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을 일본 정부였으니, 한국의 손에 항공모함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게 분명하였다.
(빌 클린턴이 너의 편이잖아?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아무리 빌 클린턴이 저를 우호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국가의 이익이 달린 문제에서 저의 손을 들어주겠습니까?”
(빌 클린턴 정부 때 처음으로 재팬 패싱이란 단어가 쓰여.)
“재팬 패싱이요?”
(빌 클린턴이 동아시아를 순방할 때, 일본을 건너뛰어서 유래한 말이지.)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노사의 말처럼 빌 클린턴 정부에서 일본의 가치를 이전만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반발을 이겨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듯싶었다.
‘이참에 미사일 사거리도 500㎞까지 늘려 버릴까?’
빌 클린턴만 잘 설득한다면 미사일 사거리를 지금의 몇 배로 늘리는 것도 가능할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