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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64화 (264/300)

264화 대통령을 몇 명이나?

“혜성이 방산 산업에도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예?”

“방산 산업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을 그렇게 가져간 거 아닙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아무래도 옐친 대통령은 내가 미사일과 로켓 전문가들을 한국으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인데 그 정도 정보를 모를 리는 없겠지.’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다.

내가 데려온 과학자들은 소련의 미사일 발사 분야 두뇌진에서 가장 중추에 가까운 두뇌진이었으니까.

북한과의 경쟁 때문에 급하게 움직인 감도 없지 않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불법적인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니잖아?’

내가 한 일은 그저 직업을 잃기 직전의 소련 과학자들을 영입한 일뿐이었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뜻.

그렇기에 나는 떳떳하게 말했다.

“가져갔다기보다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거 같아, 제대로 된 대우를 약속하고 영입했을 뿐입니다.”

“소련 시절에야 정신이 없어서 그랬던 거, 인정합니다. 그때는 확실히 과학자들에 대한 대우가 좋지 못했지요.”

지금이라고 다를 거 같지는 않은데.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옐친 대통령이 내 생각을 부정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러시아는 소련과 다르니, 절대 예전처럼 말도 안 되는 대우를 해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과연 과학자들도 그리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이한성 회장님께서는 정녕 그들을 돌려보낼 생각이 없는 것입니까?”

“어렵게 모셔온 인재들인데, 다시 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옐친 대통령은 끙 앓았다.

명색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니 적당히 압박하면 통할 줄 알았겠지만, 나로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쉽게 돌려줄 거였으면 그리 무리하면서까지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소련 과학자들이 러시아로 귀국하는 것에 찬성할지도 의문입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의 의지였다.

물론 이것에 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월급이 열 배 이상 늘었는데, 절대 돌아갈 리가 없지. 성과급까지 포함하면 스무 배 가까이 늘어난 사람도 있는데 말이야.’

이미 자본주의 맛을 본 과학자들이, 나에게서 받는 월급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할까?

뭐, 러시아가 예전의 소련처럼 미국과 자웅을 겨룰 나라라면 애국심 때문에라도 귀국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소련이 무너지고 생긴 혼란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이었다.

아마 몇 년간은 계속 이런 상태를 유지할 터.

과학자들이 귀국을 선택할 가능성은 없다고 장담해도 될 거 같았다.

“좋습니다. 그 이야기는 더 하지 않는 거로 하죠.”

“예.”

“그런데 이한성 회장님은 방산 산업에 관심이 많으신 거 같은데, 혹시 항공모함에도 관심이 있으십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항공모함이라니.

미사일이나 로켓도 아니고 조금 뜬금없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항공모함이라면?”

“관심이 있으시다면, 나중에 이와 관련해서 긍정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항공모함과 관련해서 나와 할 이야기가 뭐 있단 말인가.

나는 의문이 들었지만, 옐친 대통령이 대답을 피하는 모습을 보고 더 묻지 않았다.

‘설마 항공모함을 매각하려는 것인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나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항공모함의 유지비는 10억 단위를 넘어설 게 분명하였다.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백억은 유지비로 빠져나갈 테니, 지금의 러시아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항공모함이 한두 척인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옐친 대통령이 나를 무슨 공기업 회장처럼 여기는 느낌이군.’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슬슬 혜성 그룹을 다국적 기업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였는데, 옐친 대통령은 정반대로 혜성 그룹을 한국의 공기업처럼 여기는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내가 우주과학 연구소를 세우고 미사일 관련 연구를 해서 그러는 거 같았다.

‘사실 미사일보다는 로켓을 연구하는 게 주목적인데 말이야.’

물론 미사일 연구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었다.

어쨌든 나 역시 한국의 국방력을 키우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었으니까.

* * *

이변은 없었다.

1992년 12월 18일.

김태중 후보는 무려 53.8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하였다.

“축하드립니다. 김태중 후보님, 아니, 이제는 당선인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편할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대통령님.”

“감개무량합니다. 5년 전에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대통령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사이였다.

그런데 한성의 설득으로 단일화를 하여 결국 두 명 다 대통령이 되었으니, 실로 감개무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당선인. 이 나라를 잘 부탁합니다.”

“조언 많이 해 주십시오. 아직 미숙한 것이 많습니다.”

“그럴 리가요. 준비된 대통령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행정 쪽으로는 저보다 더 전문가이실 거 같습니다. 하하.”

실제로도 그랬다.

국무총리로 4년을 활동한 김태중 당선인이었다.

실무에는 빠삭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경제나 외교와 관련된 조언을 얻으려면 저보다는 이한성 회장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좋을 겁니다.”

김태중 당선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여기서 한성의 이름이 나올 줄은 예상 못 했던 것이다.

“이한성 회장 말씀입니까?”

“아, 경제와 외교에 이어 국방까지 포함해도 될 거 같습니다.”

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경제나 외교야 그렇다 치자.

빌 클린턴 당선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외교적으로 조력을 받을 일이 꼭 한 번은 생길 테니까.

경제는 물론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국방이라니?

혜성 그룹과 국방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국방까지요?”

“이한성 회장이 방산 산업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소련 과학자까지 데려와서 여러 기술을 연구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아무튼, 이한성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얻는 것이 많을 겁니다.”

김태중 당선인은 김영산 대통령의 조언을 듣고 묘한 기분을 느꼈다.

대통령으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은 조언이었기 때문이다.

‘혜성 그룹에 그 정도로 의존하고 있었단 말인가.’

한성이 일개 재벌 총수가 아님은 물론 그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영산 대통령이 한성의 조언을 이토록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야.’

어쩌면, 자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성의 조력을 받아 당선된 것은 둘 다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김태중의 경우, 한성의 조력이 없었어도 당선이 유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압도적인 결과를 내지는 못했을 터.

더군다나 한성이 지금껏 보여주었던 그 통찰력을 생각하면, 그의 조언은 필수라고 봐야 했다.

한성의 통찰력은 미래를 한 번 보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높은 정확도를 보였으니 말이다.

김영산 대통령과의 접견을 마친 김태중 당선인은 측근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혜성 그룹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한 명씩 혜성 그룹에 우호적인 답변을 늘어놓았다.

“든든한 지원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혜성 그룹은 어떤 기업들보다 친여당 성향의 기업입니다. 저희로서는 사실상 우호적인 동맹이라 여겨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여당에서는 혜성 그룹을 좋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김태중 당선인의 핵심 참모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혜성 그룹은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바라는 것도 크게 없고 뒤탈도 없으면서 반대로 주는 것은 많았다.

이러니 그들이 혜성 그룹을 좋게 생각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확실히 나에게 이익이 되는 기업이긴 하지. 너무 커져 버린 게 문제지만 말이야.’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로선 혜성의 미래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혜성 공화국이라는 소리가 나오는데, 이보다 혜성 그룹의 규모가 커진다면 그때는 정말 혜성 공화국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한성 회장을 배신하고 싶지도 않고.’

한성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한성이란 존재가 두렵기도 했다.

혜성 그룹의 영향력은 가히 대통령에 버금갈 정도였다.

심지어 더 큰 문제는 혜성 그룹이 재벌 기업이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김태중 당선인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혜성 그룹을 핍박한다면, 그의 지지율이 크게 흔들릴 터.

김태중 당선인으로선, 확실치도 않은 미래 때문에 그런 실책을 범할 수는 없었다.

“혜성을 무작정 좋게만 봐서는 안 될 거 같습니다.”

그러다 핵심 참모 중 한 명인, 우종걸이 문뜩 그런 말을 던졌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혜성의 꿍꿍이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꿍꿍이요?”

“다른 기업들과 달리, 혜성의 요구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떤 요구를 해도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거 같은데, 그들이 어떤 요구를 할지 모르니 경계심을 늦추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우종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혜성 그룹이 괜히 김태중 당선인을 밀어준 게 아닐 터.

분명히 그들도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통사를 요구하지 않겠습니까?”

“이통사요?”

“예. 10대 기업이라면 전부 노리고 있다 봐도 무방하니, 혜성이라고 크게 다를 거 같지는 않습니다.”

김태중 당선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혜성의 자금력이라면 다른 기업을 제치고 인수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1993년으로 예고된 이통사 민영화.

규모가 규모다 보니, 어지간한 것에는 욕심부리지 않을 혜성 그룹에서 유일하게 욕심부릴 게 바로 이통사였다.

‘일단 내가 직접 이한성 회장을 만나봐야겠어.’

이야기할 게 많을 거 같았다.

김영산 대통령이 이야기했던 부분도 그렇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직접 들어봐야 했으니 말이다.

* * *

혜성 그룹의 모든 직원이 훈훈한 연말을 맞이하였다.

이번에도 연말 성과급으로 월급의 몇 배에 상응하는 보너스를 얻었으니, 직원들의 분위기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외신 기자들까지 촬영하러 오는군.’

언론에서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 때는 그저 과장이 섞였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인지도가 오르긴 한 거 같았다.

하기야, 혜성 반도체의 경우는 세계 1위에다 매출만 5조 이상이니 외신들이 주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회장님. 김태중 당선인의 전화가 왔습니다.”

“당선인이요? 뭐라고 합니까.”

“시간을 내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직원들이야 연말이라고 쉬는데 나는 쉴 수가 없을 거 같았다.

뭐 원래 혜성 그룹은 임원이 더 바쁜 기업이긴 했지만.

‘이번 달에 대통령만 몇 명을 만나는지 모르겠군.’

김영산 대통령을 시작으로 빌 클린턴 당선인에 옐친 대통령.

그리고 이제는 김태중 당선인까지.

이번 달에만 현직 대통령 두 명, 미래의 대통령 두 명 총 네 명의 대통령을 만난 셈이었다.

나로선 여러모로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김태중 당선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부르는 것일까?’

체면이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먼저 찾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내게 중히 할 이야기가 있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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