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259화 (259/300)

259화 이런 기분 오랜만에 느껴보는데?

“글쎄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자네, 이러긴가?”

권오중 회장은 실망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반응에 뭐 어쩌라는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저는 어디까지나 일개 기업가일 뿐입니다. 점쟁이도 아닌데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실제로 한국의 역사는 내 손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지금의 대통령인 김영산 대통령부터가 5년 일찍 대통령을 하고 있지 않은가.

‘뭐, 지지율로 보면 김태중 국무총리가 유리해 보이기는 해도, 100% 확신할 수 없는 일이지.’

원 역사에서도 IMF가 아니었으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김태중 국무총리였다.

역사가 달라진 지금이라고 무조건 유리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다.

국무총리로 활동하며 지지자가 많아지긴 했지만, 반대로 김영산 정권의 소극적인 개혁 때문에 반대자로 돌아선 지지자도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네는 누구를 지지할 생각이야? 역시 지난 대선 때부터 연을 맺어온 김태중 국무총리를 지지할 텐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좀 알려 주게. 우리 사이에 이러는 건 안 좋아.”

“그러는 권오중 회장님께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나야 우리 정우 그룹에 이익을 주는 쪽이 대통령 되기를 바라고 있지.”

참 솔직하기 그지없었다.

보통은 나라를 위해서 누가 더 좋을 거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이 뭐가 중요하겠어? 어차피 이번 대선도 자네가 지지하는 후보의 승리로 끝이 날 텐데 말이야.”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말이 안 되기는? 자네의 예측력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지난 대선에 이미 증명했었지 않은가.”

“그때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게 운이었다고? 뭐, 그건 그렇다 치지. 하지만 설령 그게 운이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결국엔 혜성 그룹 회장인 자네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게 될 테니까.”

“혜성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따지면 왕주형 총재가 가장 유리할 텐데요. 본인이 미래 그룹 창업주이지 않습니까.”

왕주형 총재는 현재 정치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미 언론에서는 그를 유력 대선 후보로 칭하고 있을 정도였다.

“에이, 그 양반이야 이미 늙었고, 미래 그룹의 영향력도 예전과 다르지 않은가. 자네와 그 양반을 선택하라면 무조건 자네지.”

권오중 회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우 그룹 회장인 그가 저런 생각을 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혜성 그룹의 영향력을 더 높게 평가하지 않을까 싶었다.

* * *

권오중 회장에게는 대충 대답하고 넘어갔다.

아직 지지할 후보를 찾지 못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대선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이가 권오중 회장 하나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재벌 회장들부터, 각 언론사와 정당들까지.

대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나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었다.

‘내 영향력이 확실히 강해지긴 한 모양이군.’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회장, 아니, 이한성 회장님. 우리 예전의 악연은 잊고 앞으로는 좋은 관계로 가봅시다.”

왕주형 총재가 찾아와 이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혜성이 나서서 자신을 방해할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저야, 이미 잊은 지 오래입니다.”

“그래요? 하하, 내가 속이 좁아서 실수를 했나 봅니다.”

“다만, 대선에 대해서 저에게 어떤 부탁을 하셔도 들어줄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나는 왕주형 총재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문에는 이종석 의원을 밀어준다던데, 그 때문입니까?”

“글쎄요.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입니다. 저는 아직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나는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김태중 국무총리가 나을지, 이종석 의원이 나을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지지할 대상을 찾지 못했다면 나, 왕주형도 후보에 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왕주형 총재님을 말씀입니까?”

“내가 미래 그룹만 편애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편견일 뿐입니다. 저는 미래 그룹뿐만이 아닌, 재계 전체를 위해 힘을 쓸 겁니다.”

나는 속으로 조소를 지었다.

미래 그룹의 창업주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미래 그룹을 편애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왕주형 총재가 대의를 위해 행동한다 해도, 미래 그룹 출신인 그의 측근들부터가 미래 그룹을 위해 움직일 게 분명하였다.

물론 나는 이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그렇습니까?”

“이한성 회장님, 부디 저와 뜻을 같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 혜성에 절대적으로 이익이 가는 방향으로 움직이겠습니다.”

글쎄다.

지금의 혜성에게 과연 그런 도움이 필요할지 의문이었다.

“재계 1위, 2위가 힘을 합치면 그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더는 정치인에게 굴욕당할 일도 사라질 겁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김영산 대통령조차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크게 의미는 없어 보였다.

정계에서 나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는 드물었으니 말이다.

‘뭐, 그래도 미래 그룹과 힘을 합치면 한국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는데?’

아마 내가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었다면, 왕주형 총재와 손을 합치는 게 최적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만큼은 절대적인 권력자가 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아무리 잘나 봐야 세계에서 죽 쓴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였으니, 왕주형 총재와 손을 잡는 것은 고려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고민해 보겠습니다.”

“음. 이 회장의 현명한 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

왕주형 총재는 아쉬운 얼굴로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시간이 지날수록 대선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왕주형 총재를 비롯하여 대선 주자들의 행보도 더욱 공격적으로 변하였다.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냐?)

내가 혼자서 신문을 보고 있으니, 노사가 불현듯 나타나서 물었다.

“예. 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천천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여유만만이구나.)

“예전의 혜성이 아니니까요.”

지난 대선에서야 누가 대통령이 되냐에 따라 혜성 그룹의 운명이 결정되었었다.

노태호가 당선되기라도 했다간, 혜성 그룹은 5년 내내 쥐 죽은 듯 지내야 했을 터.

당연히 기화 자동차를 인수하는 일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대선에서는 절박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는데, 올해에 있을 대선은 그리 급하지 않았다.

사실 김태중 국무총리가 되건, 이종석 의원이 되건 혜성 그룹에 손해는 없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왕주형 총재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미래 그룹을 편애할 수는 있어도 감히 혜성 그룹을 압박하거나 하지는 못할 것이다.

5년짜리 권력만 믿고 천추의 한이 될 실수는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 이번 대선은 누가 혜성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될지를 고민하고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니 내가 여유를 부리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더 시간 끌었다간, 두 인간 다 너를 좋게 보지 않을 텐데?)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노사의 지적도 틀리지 않았다.

안 그래도 김태중 국무총리나, 이종석 의원이나 나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어떻게 해서든 내 지지를 얻어내려고 그러는 것인데, 노사의 말처럼 더 질질 끌어봐야 좋을 게 없어 보이긴 했다.

괜히 회색분자라는 소리만 들을 테니 말이다.

“노사께서는 누구를 선택하는 게 맞다고 봅니까?”

(내 생각은 전에도 말했을 텐데? 대선에서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 없다고 말이다.)

“김태중 국무총리를 선택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 이종석 그놈이 너의 말이야 더 잘 따르겠지만, 그놈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무리수를 둬야 하겠어? 네가 밀어준다고 100% 이길 거라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노사의 말처럼,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큰 쪽은 김태중 국무총리였다.

일단 인지도부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니까.

“근데 저는 걱정되는 게, 김태중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저에게 불이익이 가는 방향으로 움직일 거 같습니다.”

김영산 정권 초기부터 진보적인 개혁을 주도했던 게 김태중 국무총리였다.

나와 독대하는 자리에서는 대기업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하기도 했었고.

그렇다 보니, 김태중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혜성 그룹의 입장에선 썩 좋기만 하지는 않을 거 같았다.

(김태중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진보적이지는 않을 거다.)

“그렇습니까?”

(뭐, IMF라는 경제 위기 때문이었겠지만, 실제 역사에서의 김태중은 대기업을 때리는 쪽이 아닌, 대기업을 어루만지는 쪽이었어. 오죽하면 이때 미래 공화국이니, 일성 공화국이니 처음으로 그런 말들이 나왔었지.)

의외라면 의외였다.

IMF 때문이긴 하겠지만, 김태중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되고서 그런 모습을 보일 줄이야.

무조건 대기업에 적대적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하긴, 이번 정권 때도 초기에만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 뒤에는 소극적인 행보를 보였었지. 아마 중도 보수의 표가 걱정돼서 그런 거겠지?’

가만 보니, 김태중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된다고 마냥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그도 결국 정치인이고, 정치인인 이상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노사의 말씀을 들으니 김태중 국무총리를 지지하는 게 나을 거 같군요.”

(IMF나 통일 문제까지 고려한 결과니, 김태중을 선택한다면 너에게 손해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노사가 나에게 손해가 갈 일을 추천해주지는 않을 테니까.

‘날 잡아서 이종석 의원을 설득해야겠군. 차기 대선이 아닌, 차차기 대선을 노리라고 말이야.’

이종석 의원이라면 내 말을 따라주지 않을까 싶었다.

나를 상전 모시듯 모시는 이종석 의원이었으니 말이다.

* * *

오랜만에 다시 미국을 찾으니,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선 분위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역시 여당이 압도하고 있네.’

빌 클린턴이 괜히 걱정하는 것이 아닌 듯싶었다.

이제 막 경선에서 다른 후보를 앞서기 시작하는 빌 클린턴인데, 조지 부시의 인기는 이미 재선을 확정 지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의 역전이니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거겠지?’

나는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며 미국에서의 일정을 바쁘게 소화하였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다 보니, 사업에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괜히 나비효과가 벌어져서 빌 클린턴이 불출마하거나 낙마하면 큰일이었기에 최대한 그를 지원사격 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때였다.

비서가 놀라운 이야기를 하였다.

“백악관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백악관이요?”

“예, 경제정책 보좌관의 전화입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청와대에서 전화가 걸려 오는 것이야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가끔은 귀찮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청와대와 백악관은 느낌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의 관저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거 같았다.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부담스럽다니.’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백악관에서 경제정책 보좌관으로 근무하는 로저 포터라고 합니다. 혜성 그룹의 이한성 회장 맞으십니까?

“예. 제가 이한성입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할 생각인 거 같은데, 허튼짓하지 마시고 기업 경영에나 신경 쓰십시오. 허튼짓을 계속했다간 미국에서 사업을 못 하게 될 겁니다.

무례하기 그지없는 그의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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