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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57화 (257/300)

257화 상장이라고?

나는 환하게 웃었다.

조건을 생각한다면 당연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래도 기뻤다.

지금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인재를 얻은 셈이었으니까.

“절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될 겁니다.”

“그런데 제가 뭐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가장 먼저 하셔야 할 일은 일본어를 배우는 일입니다.”

“예?”

뜬금없는 내 말에 그가 놀란 눈을 하였다.

대표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물어봤을 텐데, 업무 이야기도 아니고 일본어 배우라는 이야기를 했으니 놀랄 만도 했다.

“김찬희 사장님도 지금 일본의 사정이 어떤지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듣긴 들었습니다. 경기 침체를 겪기 시작하며 도산하는 기업도 많아졌다고 말입니다.”

일본은 작년부터 급격히 경기 후퇴를 겪기 시작하였다.

실물경제와 자산 가격의 차이로 경제가 삐걱거린 것이다.

그러다 일본 정권이 연달아 실책을 범하면서 본격적인 경기 침체를 겪기 시작하였다.

도산하는 기업도 수두룩할 정도였는데, 혹자는 지금 일본이 입고 있는 경제적 손실이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당시와 버금간다고 했다.

그 정도로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일본의 경기가 후퇴했으니, 장래 유망한 일본의 기업들을 값싸게 인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회장님께서는 그럼 국내가 아닌, 일본에서 사업을 하실 계획입니까?”

“국내도, 일본도 아닌, 세계를 무대로 사업할 생각입니다. 저희 혜성 그룹의 사업들이 그러하듯 말입니다.”

“……!”

내 말에 김찬희는 격앙된 표정을 지었다.

이미 혜성은 세계를 무대로 수도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

반도체를 시작으로 자동차와 전자 사업까지.

그런데 이제는 내가 SW 시장까지 세계화를 노린다고 하니, 그로선 기분이 들뜰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저와 함께 일본에 가시고, 거기서 일본어를 배우십시오.”

“회장님과 함께 말입니까?”

“예, 저도 일본에 볼일이 있습니다.”

볼 일이란 다름 아닌, 소프트뱅크의 회장 손정의를 만나는 일이었다.

일본의 SW 기업들을 인수하려면 손정의 회장의 협조를 구해야 했기에 미리 그의 협조를 받아낼 생각이었다.

* * *

나는 일본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공항에서 내린 뒤부터 줄곧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마치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라도 되는 양, 십 수 명의 경호원을 거동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너무 경호가 많아.’

안전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거추장스러웠다.

괜히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노사까지 경호를 늘리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단출한 인원으로 일본에 왔을 텐데.’

처음 진봉현 비서실장이 경호를 늘리자고 했을 때, 나는 이웃 나라를 가는데 거창하게 굴 필요 없다고 반대했었다.

일본이란 나라가 치안이 안 좋은 나라가 아니기도 했고.

그런데 노사가 북한을 거론하며 경호를 강화할 것을 주문하자, 어쩔 수 없이 그 뜻에 따르게 되었다.

실제로 일본 조총련을 생각하면 일본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겪으니, 더 통일을 바라게 되는 거 같군.’

내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길을 걷던 김찬희 대표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분위기가 몇 년 전에 왔을 때와는 너무 달라졌는데요? 그때는 정말 신나고 유쾌한 나라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전쟁이라도 겪은 분위기입니다.”

“그만큼 경기가 안 좋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 좋은 거 같아서 놀랐습니다.”

“이번 경기 침체는 굉장히 오래갈 겁니다.”

“그렇습니까? 안타까운 일이군요. 처음 일본에 왔을 때, 그 밝은 분위기가 정말 긍정적으로 느껴졌는데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많이 놀랐던 거 같았다.

일본이 G2로 미국의 경제를 따라잡기 직전이란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도쿄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화려했던 것이다.

‘이게 현실에 안주한 결과겠지?’

물론 일본 경제가 위기를 겪는 이유는 하나로 꼭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플라자 합의부터, 일본 정권의 실책, 부동산 버블 등등.

당장 생각나는 이유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일본이 경제 위기를 겪는 가장 큰 이유가, 일본이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미국조차 두려워하던 기술을 더욱 갈고 닦았다면?

기업들이 해외나 부동산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자기 사업에 집중하였다면 어땠을까.

위기는 분명히 있었겠지만, 노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30년 이상 불황이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혜성은, 그리고 한국은 절대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되겠어.’

만에 하나 나비효과로 IMF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됐다.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한다면 결말은 결국 도태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 * *

“HS 테크라…….”

손정의를 만난 나는 인사를 나눈 뒤에 HS 테크 설립을 이야기하였다.

본격적으로 SW 시장에 진출하려는데 협조해달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당황할 법도 한데 태연하기 그지없군.’

나는 손정의의 태연한 반응에 속으로 감탄하였다.

어떻게 보면 도전장을 내민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손정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마치 예견했던 일이라는 듯, 심심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사실 회장님께서 SW 기업에 관심을 보일 때부터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하였습니다.”

“그렇습니까?”

손정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손정의에게 몇 개의 기업을 지정하여 예의주시해달라고 부탁하였었다.

아마 그 때문에 내가 SW 시장에 진출할 것을 눈치챈 듯싶었다.

“넥스트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경쟁자가 출연하겠군요.”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자라니요. 이제 막 회사를 세웠는데, 당치도 않는 소리입니다.”

“이한성 회장님께서 세운 회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자가 되기에 충분한 거 아닐까요? 하하하.”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내 이름값은 적어도 IT 업계에서만큼은 빌 게이츠와 우열을 가릴 정도니까.

실질적인 영향력은 당연히 더 높게 평가받고 있었고 말이다.

‘넥스트를 설립하여 빌 게이츠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스티브 잡스의 상황보다 지금 내 상황이 훨씬 유리하기도 하지.’

물론 나 같은 경우는 HS 테크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혜성의 사업은 어디까지나 제조업 중심이었으니까.

하지만 김찬희라는 인재를 구했고, 내가 뒤에서 확실하게 지원해 준다면 손정의의 말처럼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경쟁자가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저는 솔직히 손정의 회장님께서 제가 SW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길까 봐 걱정했습니다.”

“아니, 무슨 그런 걱정을 하고 계십니까. 저는 오히려 이한성 회장님이 SW 시장에 진출하셔서 기쁠 따름입니다. 이 업계에 든든한 아군이 생기는 셈이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이한성 회장님께서도 대주주시니 잘 아시겠지만, 저희 소프트뱅크는 SW보단, 유통에 더 집중하는 기업입니다. 오히려 HS 테크에서 훌륭한 제품들을 생산해 주고 그 제품을 저희가 유통할 수 있게 해준다면, 서로에게 이익이 갈 일입니다.”

사실 나도 이 같은 생각으로 손정의 회장에게 솔직히 말한 것이었다.

뭐, 손정의 회장이 근시안적인 안목을 가졌다면, 오히려 사이만 안 좋아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손정의 회장이 협조해준다면 일본 SW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군.’

나는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손정의 회장에게 말했다.

“손정의 회장님의 말씀처럼 HS 테크의 설립으로 우리의 관계는 더 끈끈해질 겁니다.”

“하하, 정말 좋은 일이군요.”

손정의 회장은 기분 좋게 웃더니, 갑자기 낮은 목소리를 하며 말했다.

“사실 저도 회장님께 꼭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어떤 겁니까?”

“내년에 소프트뱅크를 기업 공개할까 하는데, 회장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기업 공개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프트뱅크가 기업 공개한다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였다.

‘원래 역사보다 2년 이른 거 같은데, 아닌가?’

내가 기억하는 게 정확하다면 소프트뱅크가 상장하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3년 뒤인 1994년이었다.

그런데 시기가 달라지니, 기분이 묘했다.

이게 좋아할 일인지, 나빠할 일인지 판단하기 애매했던 탓이다.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마이크로소프트와 독점 계약한 이후, 소프트뱅크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예. 올해 매출이 천억 엔을 넘어섰다고 들었습니다.”

천억 엔이면 벤처 기업치고 실로 엄청난 규모였다.

한국 돈으로 무려 5천억이나 되는 돈이었으니까.

“그런데 제 생각에는 내년의 매출은 훨씬 더 늘 거 같습니다. 워낙 윈도우가 인기를 끌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한성 회장님을 보면서 욕심이 들었습니다.”

“욕심이라면?”

“제 사업도 제 사업이지만, 저도 이한성 회장님처럼 본격적으로 투자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단단히 마음의 결심을 한 거 같았다.

나에게 작정하고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내년에 상장하는 게 나에게 득일까, 실일까?’

나 역시 소프트뱅크의 주주였다.

1985년에 지분을 인수하고서 늘고 줄기를 반복하여 현재 25%의 지분을 가진 상태.

그렇다 보니 소프트뱅크의 상장 시기는 나로서도 굉장히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소프트뱅크의 성장이 원래 역사보다 훨씬 빠르니, 기업 공개를 앞당기는 것도 문제 될 건 없지 않을까?’

올해만 해도 벌써 연 매출 천억이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이 같은 매출 상승으로 손정의 회장은 ‘일본을 대표하는 벤처 영웅’ 소리까지 듣고 있을 정도였다.

지금 상장을 한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볼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무조건 조 단위는 되지 않을까?’

혜성 전자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소프트뱅크의 가치는 3조 이상으로 평가받지 않을까 싶었다.

어쩌면 5조 이상도 가능할 테고 말이다.

그리고 만약 그 정도로 상장에 성공한다면 내 지분의 가치도 조 단위로 껑충 뛴다.

소프트뱅크 하나만으로 내 자산이 1조 이상이 되는 셈이었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이점이 아닐 수 없었다.

“상장하는 이유가 투자 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니. 하하, 다른 주주들에게 이런 말을 했으면 좋은 소리는 못 들었을 거 같습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서 아무 말이나 한 거 같기는 합니다. 불편한 기분을 느끼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손정의 회장님의 마음을 제가 모르겠습니까? 지금 시점에 상장하는 것은 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면 소프트뱅크가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소프트뱅크의 상장은 미룰수록 이익이었다.

하지만 나는 투자자이면서 한편으로는 혜성 그룹을 경영하는 기업가였다.

소프트뱅크의 상장을 미뤄 나중에 더 많은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당장 자금력을 얻는 것도 중요하였기에, 지금처럼 소프트뱅크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상황에서는 상장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제 마음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의 기대에 보답하여 언젠가 소프트뱅크가 일본의 혜성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기업을 키우겠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겨우 몇 년 뒤에 200조 기업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이런 말을 할지 의문이었다.

뭐, 몇 년 뒤의 회사 가치도 혜성이 압도적으로 높겠지만 말이다.

“손정의 회장님에게 충분한 자금력이 생긴다면 혜성을 따라잡는 것은 일도 아닐 겁니다.”

“하하, 상상만으로도 기쁜 일입니다.”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번 만남으로 손정의 회장과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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