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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56화 (256/300)

256화 적임자를 찾다

“아마 지금보다 월급이나 복지는 많이 안 좋아질 겁니다. 아무래도 혜성과는 별개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자회사 형태가 아닌, 별개의 회사로 간다는 말씀입니까?”

“예. 그렇게 될 겁니다.”

혜성 그룹이 완전히 한국의 기업이라면, 새로 설립할 IT 기업은 처음부터 글로벌 기업을 노릴 것이다.

제조업 기반인 혜성 그룹과 포탈, SW, 게임 등의 사업을 펼칠 IT 기업이 시너지 효과를 얻기도 힘들었으니 말이다.

하여 자회사 형태가 아닌, 완전히 독립된 형태로 출발하고자 하였다.

혜성과는 별개의 기업이라면, 황 노인을 비롯하여 혜성 그룹의 주주들에게 지분을 나눠 줄 이유가 없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다른 IT 기업이 그러하듯, 매일같이 야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업계의 삶을 좇다 보면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을 것이니 말입니다.”

“…….”

안 좋은 이야기만 해서 그럴까?

역시 표정들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필립스 전자 직원들조차 불만이 없을 정도로 복지와 근무 환경이 좋은 혜성 그룹이니 더 안 좋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

혜성으로 이직한 직원 중에는 혜성 그룹을 천국이라 표현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혜성 그룹은 단순히 월급만 많이 주는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토요일을 정상적으로 근무할 때, 오전 근무만 짧게 시키다가 이제는 아예 토요일 근무를 없앤 것이 혜성 그룹이었다.

야근 횟수도 훨씬 적었고 불가피하게 야근했을 경우, 야간 수당도 확실하게 챙겨주었다.

여기에 300% 성과급까지 많으면 분기에 한 번, 아무리 적어도 반년에 한 번 지급하니, 불만이 생길 턱이 없었다.

“혜성 그룹에 남는 선택은 할 수 없습니까?”

“당연히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여러분에게 기회를 드리는 거지,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에 몇몇은 똥 씹은 표정이었다.

근무 환경도 열악해지고 월급도 줄어드는데, 도대체 어디가 기회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저는 인터넷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혜성에서 하는 그 어떤 사업보다 더 중요하게 말입니다.”

반도체, 자동차, 전자.

지금 내 말은, 인터넷 사업을 이 세 개의 사업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하겠지만, 혜성 그룹의 직원들로서 이 말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인터넷이 뭐기에?”

“회장님이 저리 관심을 보인다면, 한 번쯤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일단 승진을 일찍 할 수 있겠어.”

작게 웅성거리는 그들을 보며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진취적이고 야망이 큰 이들이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20명의 임직원 중 무려 15명이 이직하겠다고 말하였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사업이란 한마디에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한 것이다.

‘이제 대표만 데려오면 되겠군.’

* * *

한컴은 2년 전, 이찬희가 새로운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자고 결심한 뒤, 불과 1년 만에 세워졌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찬희는 자신이 거창한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심풀이 장난은 아니었지만, 워드프로세서를 만드는 것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을 내고 우연히 사람이 모여들면서 일은 점점 커졌다.

우여곡절 끝에 한컴 1.0을 만들었는데, 이게 엄청난 기세로 팔리기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무서운 아이들’이란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벌써 10억이라니! 매출의 상승세가 놀라울 정도군.’

회사를 차린 지 불과 1년.

한컴은 벌써 연 매출 10억을 돌파하였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신생 기업, 심지어 사장의 나이는 20대였다.

그런데 이 신생 기업은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키며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내년에는 더 잘 되겠지?’

컴퓨터의 수요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었다.

당연히 한컴의 수요도 나날이 증가할 수밖에 없을 터.

중요한 사실은 소프트웨어는 팔리면 팔릴수록 영업이익률이 높아진다는 점이었다.

제조업처럼 따로 제품 제작에 드는 자금이 없었기에, 팔면 팔수록 그 수익은 온전히 한컴이 가져갔다.

“이찬희 씨, 은성 하나워드에서 이찬희 씨의 한컴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제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 없습니다.”

“1억을 드리겠습니다.”

회사의 명성이 커져서 그런 것일까?

이젠 여기저기서 인수 제안까지 들어왔다.

심지어 은성 그룹에서 인수 제안이 들어왔을 정도였다.

물론 은성 그룹이라고 해봤자 언론에서는 언급조차 없는 일개 자회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1억이 아무리 큰돈이어도 한컴의 가치는 그 이상이지.’

솔직한 말로 은성 하나워드에서 1억을 제안했을 때, 흔들렸던 것은 사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겨우 1년 만에 1억을 번 셈이었다.

함께 회사를 만들었던 두 친구와 돈을 나눈다고 해도 인당 3천만 원 이상씩은 챙길 수 있을 터.

갓 대학을 졸업한 그와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들에겐 3천만 원은 무척이나 큰돈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찬희가 평가하는 한컴의 가치는 1억보다 한참 위였다.

돈이 급하지도 않은데 본래 가치보다 낮게 팔 수는 없었다.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혜성에서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손님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손님은 무려 혜성 그룹의 임원이었다.

“혜성에서 저희 회사는 어쩐 일로?”

“저희 회장님께서 김찬희 사장님과 사장님이 만드신 한컴에 관해 관심이 많으십니다.”

“회장님이라면, 이한성 회장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김찬희는 눈을 부릅떴다.

혜성 그룹의 회장이 한컴에 관심이 있다니?

그게 정말이라면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한국에서 가장 돈 많고 영향력이 강하다는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는 평정심을 되찾고서 물었다.

“그럼 이곳에 찾아오신 이유도 저희 한컴을 인수하기 위함입니까?”

“예, 그렇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

“인수가로 5억을 제시하겠습니다.”

“5, 5억이요?”

5억이란 말을 듣자, 김찬희는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그에게 5억이 얼마나 큰 돈인가?

연 매출 10억을 기록했다지만, 유통 회사랑 5:5로 나누면 5억에 불과했고, 직원 월급부터 사무실 월세 그리고 제품 개발비 등의 경비들을 포함하면 남는 게 그리 크지 않았다.

그가 지금껏 손에 쥔 돈은 천만 원이 안 될 정도였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잖아.’

혜성이고 뭐고 인수 제안은 단호하게 거절하려고 했었다.

한컴의 가치와 그의 미래를 생각하면 한컴을 매각하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게 훨씬 이익이었으니까.

하지만 혜성에서 5억을 제시하니, 이 생각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5억이면 새로운 사업을 해도 충분할 거 같은데. 그게 어떤 사업이든 말이야.’

그의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게임을 만들어도 됐다.

아니, 게임을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그 게임을 유통하는 유통사까지 차릴 수 있었다.

5억이란 돈은 그 정도로 큰돈이었다.

“만약 한 가지 조건을 더 들어주신다면 1억을 얹어주겠습니다.”

안 그래도 큰돈인데 거기서 무려 1억을 더 얹어준다고?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만약 조건이 어렵지 않고 정말 6억을 받을 수 있다면 매각을 결정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았다.

한컴을 같이 세운 그의 친구들부터가 강하게 매각을 주장할 것이니 말이다.

“조, 조건이 뭡니까?”

“저희가 새로 설립하는 회사의 대표로 와주십시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회장님께서 HS 테크라고 새로운 회사를 차리실 계획입니다. 그런데 아직 대표는 미정이니, 김찬희 사장님께서 HS 테크의 대표가 되셨으면 합니다.”

놀람의 연속이었다.

설마 이런 제안이라니.

‘혜성 그룹의 회장은 내 가치를 1억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건가?’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무려 혜성 그룹 회장이 자신을 높게 평가해준다고 하니, 김찬희로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찬희는 바로 결정하지 않고서 물었다.

“혹시, 회장님을 한번 뵐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회장님께서 김찬희 사장님을 찾으셨습니다.”

일단 회장을 만나보고 결정하려 했는데, 선뜻 긍정의 대답이 들려왔다.

정말로 혜성 그룹의 회장은 그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듯싶었다.

‘인수 조건이 워낙 좋으니, 혜성에 매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한성 회장의 밑에서 일할지 말지는 직접 만나보고 결정해야겠어.’

* * *

“반갑습니다. 이한성 회장입니다.”

“마,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한컴의 김찬희 사장이라고 합니다.”

“여기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나는 김찬희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직접 나를 찾아온다고 했을 때는 참으로 당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긴장한 모습의 그를 보니, 그 나이 또래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뭐 그렇다고 김찬희의 가치를 낮게 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김찬희는 장래가 유망한 소프트웨어 회사의 사장이었다.

설립 1년 만에 연 매출 10억을 돌파하기까지 했으니, 누구도 그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컴의 활약은 정말 놀랍습니다. 한컴이 현재의 한국 소프트웨어 업계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소프트웨어 업계를 이끌다니요. 과찬입니다. 절대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사람들이 괜히 한국의 빌 게이츠라고 이야기했겠습니까?”

내 말에 김찬희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였다.

아마 그로서는 민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기업인데, 빌 게이츠를 거론하고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나도 외국에서 이런 말은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김찬희가 대단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으로선 감히 빌 게이츠와 비교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으니까.

“언론이 저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커녕 넥스트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한컴입니다.”

“하지만 김찬희 사장님의 목표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니었습니까?”

“무,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별명을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와 함께하신다면 그 별명이 절대 과장이 아니게 될 겁니다.”

내가 밀어준다면 정말 그렇게 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도 결국엔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항마가 되지 않았던가.

물론 넥스트야 스티브 잡스의 능력이 워낙에 출중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왜 저를 그렇게까지 영입하시려는 겁니까?”

김찬희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 역시 마이크로소프트를 목표로 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사실 노사는 김찬희에 관해 그리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었다.

미래의 자산을 생각했을 때, 김찬희의 동료들이 오히려 자산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컴이 몰락하고 재기의 발판으로 시작한 포탈 사업도 실패하면서 사업적인 역량을 크게 보여주지 못했다고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내가 평가하기에 김찬희는 당장 HS 테크의 대표로 쓰기에 최적의 인재였다.

일단 김찬희의 명성부터가 매력적이었다.

무려 한국의 빌 게이츠 소리를 듣는 김찬희였으니까.

능력적인 면에서도 무시 못 했다.

소프트웨어 공모전에서는 여러 대기업을 제치고 ‘한국 최고의 소프트웨어’ 평가를 받으며 대상을 차지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김찬희의 몰락도 불법 복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나로서는 저평가할 이유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넥스트가 먼저 시작하여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컴만으로 그들과 제대로 된 경쟁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컴만으로는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그러니 김찬희 사장님. 저와 손을 잡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먼저 시장을 장악한 그들과 경쟁하려면 그들이 투자한 돈과 인력의 수십 배가 필요한데, 제가 그 자금과 인력을 대드리겠습니다.”

단순히 내 회사 대표로 들어오라는 말이 아닌, 마이크로소프트와 넥스트를 거론하며 이야기하자 김찬희가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의 뜻을 전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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