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한 걸음 앞지르다
김영산 대통령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 그 역시도 이번 전쟁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베트남에서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것이 불과 25년 전의 일이었다.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에도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미사일과 현대 폭격기의 위용도 아직 모르는 상태였기에, 전쟁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예상 못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미군이 참전하기만 하면 두 달 안에 전쟁이 끝날 거란 말씀입니까?”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전쟁이란 게 과연 그렇게 쉽게 끝날까요?”
의문 어린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전문가도 아닌 제가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회장님을 청와대로 초청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회장님의 고견을 듣기 위함입니다. 어떤 말씀이든 괜찮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아무리 김영산 대통령이 나를 좋게 평가한다지만, 일개 기업가가 군사나 정치적인 조언을 한다면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몇 마디 조언을 받아 김영산 대통령의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면, 하는 게 맞는 거겠지.’
비록 베트남전이라는 오점이 있지만, 지금의 미국은 명실상부 초강대국이었다.
그리고 이번 걸프전으로 더욱더 그 위치는 공고해질 터.
만약 내 조언을 듣고 김영산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한다면 앞으로 외교적 이점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덤으로 내 발언권도 더 커질 것이고.
물론 그만큼 번거로운 일도 많아질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마 대통령께서는 이번 전쟁의 양상이 베트남전처럼 소모전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계실 겁니다.”
“당연히 소모전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겠습니까? 이라크가 미군과 정면 대결해 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이라크가 정면 승부를 피하는 것과 관계없이 전쟁은 순식간에 끝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트남전에서 교훈을 얻은 미군이 먼저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한 뒤에 전쟁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한 뒤에 전쟁을 시작한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기술은 발전했고, 현재의 미군에는 과거와 비교도 안 되는 정밀한 폭격기와 미사일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이 첨단무기들은 지상군이 투입하기도 전에 전쟁을 끝낼 것입니다. 이라크의 심장부를 타격하는 것으로서 말입니다.”
“미사일이라.”
“단언컨대, 1990년대부터 전쟁 교리는 완전히 바뀌게 될 겁니다. 아마 곧 소모전이란 개념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도 아직은 자신들의 무기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그들의 하이테크 병기들은 실전에서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걸프전이 끝나면 당사자인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알게 될 것이다.
미사일과 공군을 키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전쟁에서도 이길 수 없으리란 사실을.
“허, 공군과 미사일만으로 전쟁을 끝낸다고요? 육군 간부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습니다.”
“물론 저는 육군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전쟁을 끝내는 역할은 결국 지상군이 맡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한들, 정말 놀랍기 그지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미국의 첨단무기들이 상당한 위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익히 들었지만, 지상군 투입하기도 전에 전쟁을 끝내 놓는다니? 지금의 저로서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아마 이번 전쟁이 실전에서 실험하지 못한 하이테크 병기의 실험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험장이라. 이 회장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왠지 이라크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그만큼 압도적인 전쟁이 될 겁니다.”
“허…….”
김영산 대통령은 탄성을 내질렀다.
너무도 확신 어린 태도로 터무니없는 예측을 하니, 그로선 아리송하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내가 기이할 정도로 정확한 예측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아마 내 이야기를 들은 체도 하지 않았을 거 같았다.
그만큼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부족한 저의 소견이니, 믿기 어려우시다면 굳이 믿으시려고 노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저 놀라서 그랬습니다. 이라크가 두 달도 못 버틸 정도라니. 이 회장이 말씀하신 첨단병기들의 위력이 정말 그렇게 대단합니까?”
“예. 이라크군은 미군의 모습을 거의 보지도 못한 채 항복하게 될 겁니다.”
노사가 이야기해 준 대로라면 이번 전쟁에서 미군의 피해는 고작해야 수백 정도에 불과하였다.
반면 이라크군은 수십만 사상자가 났다고 하니, 이 정도로 압도적인 전과는 세계 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미국이 보유한 첨단병기들의 위력이 상당하다는 의미였다.
‘내가 미사일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이미 소련의 인재를 맞이할 준비는 조금씩 하고 있었다.
소련이 무너진다면 바로 고급 인재들을 빼돌려 미사일 연구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이한성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들어 보는 의견이었는데, 저에게 큰 도움이 된 거 같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미 재무장관과의 이야기가 끝난 뒤, 다시 한번 이한성 회장님을 청와대로 초대해도 될까요?”
“대통령님의 부름이라면 언제든 시간을 내겠습니다.”
“회장님께는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는 얼굴로 하며 나를 배웅하는 김영산 대통령을 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연 미국과의 협상에서 어떤 변화를 줄지 모르겠군.’
뭐, 이 이상은 더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나는 기업가이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저 한국인으로서 김영산 대통령이 옳은 선택을 하길 바랄 뿐이었다.
* * *
1990년 9월 7일.
니콜라스 브래디 재무장관이 특사 자격으로 방한하였다.
브래디 재무장관은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김영산 대통령과 접견하였는데, 그 친서에는 예상했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한국에게 직접적으로 중동 전비 분담금을 거론한 것이다.
‘4억 5,000만 달러를 지원하라니.’
김영산 대통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는 미국의 요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이라크 금수조치도 한국에겐 무리한 요구였었다.
침공국인 이라크와 침공당한 쿠웨이트는 한국의 원유 주수입국이었다.
건설업체들이 두 나라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미국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대이라크 금수조치에 동참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금수조치에 그치지 않고, 현금 지원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현금 지원 다음에는 또 무엇을 요구할까?’
아마 군사 지원을 요구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전까지 세계의 경찰임을 자부하던 미국은 더 이상 전쟁을 단독으로 수행할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원래 같았으면 미국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을 텐데, 이한성 회장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군.’
5공 정권과 달리 김영산 대통령은 미국에 빚진 것도 없었고 약점 잡힌 것도 없었다.
미국이 까라면 까야 했던 이전 정권들과 달리, 김영산 정권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통성 있는 정권이라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미국의 막무가내 요구를 대차게 대응한다 해도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겼다.
아마 한성의 조언이 아니었으면 분명 그는 강하게 반발했을 것이다.
‘미군의 군사력이 정말 그리도 강하단 말인가?’
지금으로선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다 해도 득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원유 주수입국인 이라크와 외교 관계는 단절되고, 어쩌면 정규군까지 파병을 보내야 할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만약 정규군을 파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의 지지율은 크게 흔들릴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한성이 말했던 것처럼 미군의 군사력이 그토록 압도적이라면, 이번 전쟁에서 제삼자로 남는다고 해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이미 미국은 일본에 40억 달러의 현금 지원을 요청한 상황.
일본이라면 미국이 요구한 40억 달러까지는 아니어도 그 절반 이상은 지원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일본에서 20억 달러를 지원하고 한국은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두 나라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지금 미국의 요청을 거절한다면, 나중에 총독부 철거로 일본과 외교적 충돌이 발생할 때, 미국은 일본의 손을 들어 주겠지?’
지지율을 위해서라면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한성의 말대로 미국의 군사력이 그토록 압도적이고 전쟁도 두 달 안에 끝나게 된다면 미국의 요청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들어 줘야만 했다.
그래야 훗날 있을 일본과의 외교 다툼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 * *
9월 24일.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 끝에 다국적군의 유지 경비와 주변 피해국에 대한 재정 지원 등, 도합 2억 5,000만 달러의 현금 및 재정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자 정치권에서 말들이 많았다.
미국에 너무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고, 왜 우리와 상관이 없는 중동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냐면서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김태중 국무총리도 ‘자칫하다가는 아랍 민족주의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라면서 우려를 표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합이 잘 맞았던 김영산 대통령과 김태중 국무총리가 처음으로 뜻이 엇갈린 셈이었다.
“오늘도 이라크 관련 문제로 소란스럽군요.”
“예, 미국에서 추가로 군사 파견까지 요구하기 시작해서 더 소란스러운 거 같습니다.”
진봉현 비서실장의 대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2억 5,000만 달러 정도로 미국이 만족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인 듯싶었다.
하기야, 일본에서 지원하는 현금을 생각하면 2억 5,000만 달러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는 20억 달러 이상의 지원금이 논의 중이라고 하니까.
“만약 지원군까지 파병하게 된다면 국무총리와 갈등이 고조되겠습니다.”
“김태중 국무총리와의 관계를 걱정할 게 아니라,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군요.”
앞으로 몇 달간은 김영산 대통령에게 엄청난 고비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뭐 그래봤자, 다국적군의 반격이 시작되면 김영산 대통령의 위기는 바로 해소될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회장님, 도착한 거 같습니다.”
진봉현 비서실장의 말에 나는 신문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익숙한 연구소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혜성에서 D램 연구를 전담하는 기흥 연구소에 도착한 것이다.
‘마침내 16M D램의 양산화에 성공하였군.’
오늘 내가 기흥 연구소를 찾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16M D램의 양산화 성공을 자축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일본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갔다고 봐야 하나?’
한국은 늘 일본의 뒤를 좇기 바빴다.
가전이나 자동차 사업은 말할 것도 없었고, 반도체 사업도 언제나 일본을 추격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것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혜성 반도체에서 마침내 16M D램의 상용 샘플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