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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48화 (248/300)

248화 길어야 두 달이다

미래 그룹 왕재구 회장이 오랜만에 자신의 부친인 왕주형 명예 회장 댁에 방문하였다.

“아버지 요즘 자주 못 찾아뵈어서 서운하셨죠. 죄송합니다.”

“됐다. 회사 일 하느라 바쁠 텐데 굳이 번거롭게 굴 거 없어.”

왕주형 명예 회장의 모습은 여전히 정정해 보였다.

요즘 정계 활동도 정력적으로 한다더니, 그래서 더 건강해진 거 같았다.

“신문을 보니, 이라크가 전쟁을 일으킨 일로 정유업계가 비상이라던데, 우리 정유사는 괜찮은 거냐?”

“문제없습니다.”

“정말 문제가 없는 게 맞느냐?”

추궁 섞인 그의 물음에 왕재구 회장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하였다.

“평소보다 비싸게 주고 사기는 하겠지만, 유가가 워낙 낮은 상태였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을 거 같습니다.”

“그래?”

“예.”

“혜성은 전쟁이 일어나기 한참 이전에 원유를 미리 대량으로 매입했다더라.”

“대량이라고 해봤자, 반년밖에 못 버틸 양입니다.”

“어쩌면 혜성은 이번 전쟁이 반년 안에 끝날 거로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설마 전쟁이 그렇게 일찍 끝나겠습니까?”

“글쎄. 혜성에서 정말 그렇게 예측했다면 나는 전쟁이 반년 안에 끝날 거라는 것에 손을 들어주고 싶군.”

왕재구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전쟁이 확산할 거라는 이야기까지 있는데, 전쟁이 반년 안에 끝날 리가.’

심지어 다국적군까지 개입할 예정이었다.

비록 이라크 한 나라를 일방적으로 두드리는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수십만 명을 동원한 이라크가 일찍 항복할 일은 없을 거 같았다.

“그리고 내가 듣기로 이한성 회장이 유가 선물도 했다더라.”

“저도 그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왕재구 회장도 들었던 이야기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황당했던지.

주식 투자의 귀재라더니, 유가 선물까지 손을 뻗치는 한성의 모습이 그야말로 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룹 경영하는 것도 버거운데, 도대체 그놈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한성이 일 중독자란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혜성 그룹의 규모를 생각하면 혜성 그룹을 경영하는 일만으로도 쉴 틈 없이 바쁠 것이다.

그런데 한성은 혜성 그룹도 잘 경영하고 있으면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도 누구보다 잘하고 있었다.

이제는 유가 선물까지 하고 있다 하니, 그의 시간 활용은 실로 경이적이게 느껴졌다.

“이한성 회장이 난 놈이긴 난 놈이야.”

“…….”

왕주형 명예 회장의 말에 왕재구 회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혜성을, 그리고 혜성의 회장인 한성을 극도로 원망하는 그였기에 한성을 칭찬하는 것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가능성에 베팅하다니. 도대체 그놈은 얼마나 강심장인 거야?’

물론 미래 그룹이라고 중동 전쟁의 가능성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라크는 계속해서 전쟁 위협을 해왔으니까.

하지만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었다.

그 약간의 가능성에 베팅할 정도로 왕재구 회장은 배포가 크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가가 계속 내려가는 상황에서 대량으로 매입했다가, 거기서 더 내려가기라도 한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 말이다.

“아직도 이한성 회장을 원망하고 있느냐?”

“아버지도 그놈을 원망하셨지 않습니까?”

“원망했었지. 감히 재계 1위 자리를 탈환한 놈이니까. 사업에서 부딪히는 것도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고.”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의미가 없어졌으니까.”

“예?”

“이한성 회장에게 적대감을 가져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자가 우리에게 신경이나 쓰겠어?”

“…….”

“너도 봤잖아. 혜성 전자의 가치가 10조로 인정받은 것을. 그리고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어? 혜성 그룹의 많고 많은 계열사 중의 한 곳인 혜성 전자에도 우리가 밀린다는 거야.”

“솔직히 충격적이었습니다. 10조라니.”

“아마 혜성 자동차나 혜성 반도체를 상장했으면 15조도 가능했을 거다.”

“혜성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평가받고 있는 거 같습니다.”

“글쎄. 오히려 제대로 평가해서 그 가격이 나온 게 아닐까? 지금의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몇 년만 지나도 10조가 아깝지 않은 회사가 될 테니 말이야.”

왕재구 회장은 혀를 내둘렀다.

역사가 깊은 미래 전자의 시가총액도 기껏해야 1조 2천억인데, 혜성 전자는 무려 그 열 배였다.

왕재구 회장으로선 도무지 지금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4조를 기부한다는 약속은 어떻고? 네가 만약 이한성 회장 정도 되는 자산가라면 재산의 절반을 기부한다는 약속을 할 수 있겠어?”

당연히 할 수 없었다.

세금 내는 것도 아까워 죽겠는데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라니?

그의 상식선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미 혜성과는 대립해 봐야 득 될 것이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니 너도 괜한 고집 부리지 마.”

“혜성과 화해하라는 말씀입니까?”

“싸워봐야 좋을 게 없다는 말이다.”

“……고민 좀 해 보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미 정답은 나온 거나 다름없었다.

비록 사업적으로 경쟁은 계속 이어갈 테지만, 사적인 원한은 잊어야만 했다.

언제든 조 단위의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상대와 싸운다면 손해 볼 것은 그뿐이었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이한성 그놈은 지분이 뭐 그리 많은 거야? 자산 가치가 8조 이상이라니.’

* * *

혜성 정유 대표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의 선견지명이 아니었으면 혜성 정유도 다른 회사들처럼 골치 아픈 일을 겪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운이 좋았을 뿐인데, 너무 치켜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치켜세우다니요. 백번을 말해도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보다, 배럴은 충분하지요?”

“예. 평소처럼 넉넉히 사용해도 10개월 이상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10개월이라.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충분하다는 말씀은?”

“별거 아닙니다. 전쟁이 일찍 끝날 거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내 말에 혜성 정유 대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막 전쟁이 시작했는데 10개월 안에 끝나겠습니까? 지금 미국과 다국적군이 참전한다고 알고 있는데…….”

“전쟁 자체는 일찍 끝날 겁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확신하는 내 태도에 혜성 정유 대표는 더 의문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지금까지 증명한 것이 있었기에 새삼 의문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근데 정말 미군이 얼마나 강하기에 그리도 일찍 전쟁이 끝나는지 궁금하긴 하군.’

혜성 정유 대표한테는 10개월 안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질적으로 전쟁이 끝나기까지 불과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미군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개입하고 한 달이 조금 지나 전쟁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저, 회장님.”

그때 이소희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입니까?”

“청와대의 전화입니다.”

“청와대요?”

“예.”

왠지 지금쯤 청와대의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이 적중하였다.

“전화 받았습니다.”

-이한성 회장님, 갑작스럽게 전화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익숙한 고영태 비서실장의 목소리였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공손함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딱딱하게만 들렸던 목소리가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닙니다.”

-제가 전화를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대통령께서 다급히 이한성 회장님을 찾으십니다.

“저를 말씀입니까?”

-예. 요즘 중동 문제로 여기저기서 시끄럽지 않습니까? 이한성 회장님이 중동의 전문가이시기도 하니, 이한성 회장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중동의 전문가라니요. 미래 그룹이나 다른 기업들과 비교하면 중동에서의 사업 규모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작습니다.”

-사업 규모를 따져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한성 회장님께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족들과도 친분이 깊지 않으십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부디 시간을 내주셔서 대통령님께 직접 조언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영산 대통령도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하긴, 이라크 제재 군비분담 협의를 위해 미 내무장관이 방한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오고 있으니 급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가능한 선에서 대통령님께 최대한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오늘 바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청와대로 출발하겠습니다.”

-예, 이한성 회장님께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 * *

고영태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바뀐 것처럼 느낀 게 착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청와대에 가니, 청와대 직원들부터가 이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었다.

공식적인 조 단위의 부자가 되어서 그런지 나를 대하는 태도가 한결 공손해진 듯싶었다.

“이한성 회장님, 이렇게 어려운 발걸음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도가 공손해진 것은 김영산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부터 나를 편하게 대했던 김영산 대통령이 그 어느 때보다 예의를 갖추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전에 말씀드렸듯, 저는 대통령님이 부르면 언제든 옵니다.”

“하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든든합니다.”

김영산 대통령은 기분 좋게 웃더니, 갑자기 과거의 일을 사과하였다.

“제 자식 놈과 얽혔던 일은 제가 이 자리에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제대로 교육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제 다 지난 일이지 않습니까?”

“지난 일이어도 이한성 회장님께 감히 무례를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대통령 체면에 사과도 제대로 못 했으니, 이한성 회장님께는 그저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다 잊었으니, 더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습니까?”

“예, 그보다 중동과 관련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들었습니다.”

내가 본론을 물으니, 김영산 대통령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아시다시피,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켜 세계가 큰 난리통에 빠졌습니다.”

“물론 저도 정유사를 경영하고 있어서 중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 혜성 정유는 원유를 충분하게 비축하고 있다던데, 제가 들은 게 사실이 맞습니까?”

“적어도 10개월은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비축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전쟁을 예측하고 미리 준비하신 겁니까?”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했을 뿐입니다.”

“다른 기업들은 그 만약의 수도 예상 못 했다고 하는데, 역시 이한성 회장님의 선견지명은 대단하신 거 같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회장님이 중동 전문가라 참 위안이 됩니다. 지금 중동 문제로 상당히 골머리를 앉고 있는데 말입니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골머리를 앉고 계십니까?”

“아무래도 참전 문제가 가장 걸립니다. 이미 지금도 이라크 경제 제재 조치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하였는데, 미국이 이것으로 만족할 거 같지 않아 보입니다.”

“참전을 요구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참전에 거부한다면 상당한 규모의 지원금을 부담해야 할 거 같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참전이냐, 지원금이냐를 두고 고민하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예. 미국이 압박하면 참전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긴 한데, 전장에서 죽어갈 우리 군인들을 생각하면 도무지 참전을 선택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자금 분담이면 모를까, 중동에 군사를 파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었고.

‘베트남 전쟁을 생각하면 전쟁이 장기화할 것을 우려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걸프전은 차원이 다른 전쟁이 될 것이다.

걸프전은 그야말로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드문 일방적 승리를 거두는 전쟁이 될 것이니 말이다.

“미군이 참전하면 전쟁은 두 달 안에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여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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