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247화 (247/300)

247화 설마 했겠어?

나는 한국 재계의 힘을 모았다.

일본의 견제를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이때만큼은 사이가 안 좋은 미래 그룹과도 손을 잡았다.

미래 그룹도 일본 때문에 그리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도요타만큼은 아니라 해도 미래 자동차 역시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합류가 큰 힘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다가 어느 정도 반격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더군다나 소니의 경우, 미국에서 이미지도 그리 좋지 않았기에, 오히려 미국 언론 측에서는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텃세 부린다는 식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하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언론이 우리 편을 들어준 셈이었다.

그 덕에 미국에서의 싸움은 소모전으로 갔고, 시간이 갈수록 일본 기업들의 손해만 커졌다.

결국 휴전 아닌 휴전을 함으로써, 싸움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8월이 되었다.

‘벌써 8월이군.’

1990년 8월 2일.

이 날짜는 나에게 있어서도, 세계 역사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날이 아닐 수 없었다.

걸프전의 배경이 되는 이라크의 침공이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준비는 다 했다.’

이미 유가 상승에 베팅을 끝내놓은 상황이었다.

물론 내년에는 오히려 기록적인 폭락을 하겠지만, 곧 있을 유가 상승도 재미를 보기에 충분할 것이다.

배럴당 10달러 중후반대에 불과하던 가격이, 곧 20달러를 넘어 배럴당 23달러 선까지 치솟을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나비효과가 없을까?’

현재 중동의 정세를 보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 보이긴 했다.

노사가 이야기해 주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었으니까.

나비효과를 일으킬 만큼, 중동 역사에 영향을 끼친 적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너무도 달라진 한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100%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언제 어떤 식으로 변수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번 유가 선물에서 변수가 발생하면 나에게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말을 하면 돈에 미친놈 소리를 듣겠지만, 어쨌든 나비효과가 발생하여 전쟁이 두 달 늦게 일어나거나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면 캐시콜이 일어날 거야.’

손실이 증거금을 넘어서면 마진콜이 요청되고, 요청 기간 내에 추가 증거금을 납입하지 못할 시, 강제로 반대매매가 발생한다.

내가 증거금으로 넣은 자금은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셈이었다.

이러니 나로서는 변수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라크군, 쿠웨이트 수도 점령!>

<오늘 새벽 침공, 모든 관공서 건물 장악.>

<10만 병력을 동원한 이라크, 현재는 쿠웨이트와 영토 회담 진행 중!>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뻐해선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만약 변수가 발생했을 경우, 유가 선물로 얻게 될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내가 얻게 될 손실은 조 단위에 이를 것이니 말이다.

‘애초에 이 전쟁은 내가 막을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난 중동 사람이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처럼 중동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고.

아무리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일개 기업가, 그것도 한국의 기업가에 불과한 나로선 이라크의 전쟁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내가 막을 수 없는 전쟁이었다면, 유가 선물로 최대한 많은 돈을 벌어 희생자의 유가족을 위해 힘을 쓰는 게 나아.’

계획대로만 된다면 아무리 못 해도 5조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운이 따라준다면 8조 가까이도 벌 수 있을 터.

그리고 그 정도의 돈이라면 일부만 기부해도 희생자의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 * *

1990년 7월이 되자, 중동의 정세가 급격하게 불안정해졌다.

이라크 정부는 쿠웨이트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였는데, 공공연하게 군사적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압박을 할 정도였다.

심지어 미국 CIA에서는 이라크의 군대가 이라크-쿠웨이트 국경으로 옮겼다는 정보를 전해주었다.

그만큼 이라크 정부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지도층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이미 두 나라 간의 상호 불간섭 및 불가침 조약이 체결된 상태였다.

더군다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의 채무국이기도 해서 이라크가 ‘감히’ 허락도 구하지 않고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아랍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라크가 두 나라 사이를 적절하게 중재하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1990년 8월 2일.

이라크 정부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쿠웨이트를 전격적으로 공격하였다.

쿠웨이트는 이라크 군의 전격적인 기습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공항과 항만 등 주요 거점이 점령되었고 쿠웨이트 군은 완전히 지리멸렬하였다.

심지어 쿠웨이트 다스만 궁까지 함락당한 상황.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일개 속주가 될 날도 이제 머지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후세인 그자는 분명 우리나라도 침공하려 들 텐데.”

“빚을 갚기 싫다고 전쟁을 일으키다니! 이런 무도한 자가 어디 있단 말이요?”

“그러게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지 않았습니까!”

“진정들 하십시오. 어차피 미군이 있습니다. 다른 우방국들도 이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이라크가 30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였는데 어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지원군을 보내, 쿠웨이트 왕가를 구원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은 쿠웨이트 왕가의 망명 정부가 들어설 수 있게 지원해 줄 때입니다.”

두 나라의 갑작스러운 전쟁에 사우디아라비아 지도층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라크 군이 언제 사우디아라비아로 전쟁을 확산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혼란에 빠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 *

“설마, 설마 했더니 이라크에서 기어코 일을 벌일 줄이야.”

파이잘 왕자는 혀를 내둘렀다.

사실 그는 이라크 정부가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한성 회장의 말이 맞았군.’

작년 말부터 한성이 경고를 했었다.

중동에서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유가 폭락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라크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같은 한성의 경고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성은 외부인, 심지어 미국이나 영국, 소련 등의 나라도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한국의 기업가였다.

심지어 정부의 인사도 아니었으니, 한성의 경고를 주의 깊게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유일하게 파이잘 왕자만은 한성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런 그도 전쟁이 일어날 시기를 한참 뒤로 예상하였었다.

그런데 한성은 마치 예언이라도 한 듯, 정확한 시점을 예측하였고 그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파이잘 왕자로서는 실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당연히 우연이겠지?’

주로 동양과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한성이 중동의 정세를 전문가들 이상으로 잘 파악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러니 한성의 예측은 어디까지나 우연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였다.

하지만 파이잘 왕자는 턱 끝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근데 전쟁 시기를 예측하던 이한성 회장이 너무 확신에 차 있긴 했어.’

천생 기업가처럼 보이던 한성이었다.

그런 그가 전쟁 시기 같은 민감한 이야기를 굳이 꺼낸 것부터가 수상한 일이었다.

자칫 그의 예측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인데 말이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한성과 대면했던 왕족 중 일부가 한성을 두고 ‘건방진 동양인’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외부인이 중동 정세의 불안성을 이야기하며 전쟁을 운운하였으니 당연히 한성을 좋게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성은 그야말로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전쟁 시기를 예측했던 셈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이한성 회장은 이 모든 일을 예상했다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한성의 가치를 더 높게 잡아야 할 거 같았다.

동양이나 미국 정세도 아닌, 거의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중동의 정세까지 예측할 정도면 그 통찰력은 실로 범상치 않다고밖에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필립스 전자를 인수하고 상장까지 성공적으로 했다지?’

워낙 중동의 정세가 불안정하여 한국의 소식을 그리 관심 있게 챙겨 듣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혜성 그룹의 소식은 꼭 챙겨 들었는데,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왕족인 그로서도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무려 필립스 전자.

한때, 세계 제일의 전자 메이커로 이름을 떨쳤던 그 필립스 전자를 인수했으니까.

이후에 들려온 상장 소식도 놀랍기 그지없었다.

혜성 전자가 시장에서 무려 130억 달러가 넘는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130억 달러 이상의 기업은 흔치 않았으니, 파이잘 왕자로선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보다 보면 정말 알라께서 선택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이 빠르단 말이야.’

처음 혜성 그룹을 알게 되었던, 2년 전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때도 조금씩 세계가 주목하던 기업이었긴 하나,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이제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혜성이란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앞으로 혜성과는 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겠어.’

파이잘 왕자는 속으로 그 같은 결심을 내렸다.

단순히 혜성 그룹의 미친 듯한 성장세를 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성장세도 성장세지만, 그의 통찰력.

마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한 한성의 통찰력을 보고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 * *

중동에서의 전쟁이 일어나자, 정유 업계는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여전히 석유 파동으로 인해 벌어진 경제 타격을 잊지 못한 한국이었다.

석유 파동의 원인은 결국 중동 전쟁에 있었으니, 정유 업계가 긴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라크에서 쿠웨이트의 원유 생산 기지를 파괴하기까지 하였다.

이미 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선 붕괴까지 시간문제나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한국의 정유 업계가 초긴장 상태에 빠졌을 때, 유일하게 웃음을 짓는 기업이 한 곳 있었다.

그 기업은 다름 아닌, 혜성 정유였다.

“회장님의 선견지명이 아니었으면 우리도 지금쯤 패닉에 빠져있지 않았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회장님이 지시했던 때에 원유를 매입하지 않았다면, 두 배는 비싼 돈을 주고 원유를 샀어야 했을 겁니다.”

혜성 정유의 임원들은 연신 감탄을 거듭하였다.

한성이 1년 치 원유를 미리 매입하라고 지시한 것이 불과 두 달 전이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원유는 계속 하락을 거듭하던 시기여서 반대가 심했는데도, 한성은 원유 매입을 고집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한성의 선택은 그야말로 위대한 선택이 되었다.

가장 원유가가 낮을 때 많이 산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하, 갑자기 든 생각인데, 만약 회장님께서 원유 선물을 하셨다면 천문학적인 부자가 되셨을 거 같습니다.”

“회장님은 지금도 천문학적인 부자신데요?”

“그렇긴 한데, 더 큰 부자가 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군요. 원유 선물이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만약 배럴당 13달러였을 때, 유가 상승에 베팅했으면 얼마나 벌었을까.”

“하하하, 의미 없는 말인 거 같습니다. 아무리 회장님이라고 그룹 경영하는 것만으로도 바쁘신데, 유가 선물까지 했겠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