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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46화 (246/300)

246화 이 정도는 기부해야지

설령 혜성이란 기업을 모른다 해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그 회사가 얼마나 높은 가치로 인정받는지만 중요할 뿐.

그리고 혜성의 단일 계열사가 13억 달러 이상의 가치로 인정받았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필립스 전자 직원들은 혜성 그룹에 소속되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회사의 비전이 상당히 괜찮은가 본데?”

“그러게. 반도체랑 자동차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겨룬다고 하더니, 전자 쪽도 그런 모양이야.”

“나갈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나가지 않기를 잘한 거 같아.”

필립스 전자 직원들은 그 같은 대화를 나누며 기쁜 미소를 지었다.

모기업이 될 수도 있는 혜성 전자의 가치가 무려 130억 달러였으니, 그들로선 위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필립스 전자보다는 훨씬 더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이렇게 필립스 전자 직원들이 혜성 전자의 성공적인 상장 소식을 듣고 기뻐할 때, 소니 경영진은 비상 회의가 열렸다.

“시가총액이 5조 엔(10조 원)이라니! 미쳤군. 매출이라고 해봐야 2조 엔을 간신히 넘는 기업인데!”

“혜성 전자의 주가야, 시간이 지나면 다시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기세를 보세요. 주가가 내려갈 것처럼 보입니까? 오히려 반등하고 있습니다.”

“허, 참. 기사를 보니 5천억 엔에 달하는 실탄을 얻었다는데, 이거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을 거 같습니다.”

혜성에서 필립스 전자를 인수하기 전까지만 해도 혜성 전자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소니 경영진이었다.

하지만 혜성이 필립스 전자를 인수하고 그 이후에 상장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자 경각심을 넘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기업 상장의 이점은 단순히 자금 조달이 편리해진다는 이점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적인 인지도도 몰라보게 달라지는데, 혜성 전자처럼 규모가 큰 기업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시가총액만 따진다면 세계 IT 업계에서 그야말로 10위 안에 드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 치고 이제 혜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혜성의 인지도가 그 정도로 올라갔습니까?”

“반도체에, 자동차에, 휴대폰과 가전까지. 굵직굵직한 사업들은 죄다 하니 인지도가 올라가는 것도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이번 상장으로 업계 사람들만 주목하던 혜성 그룹을 거의 모든 일본인이 주목하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소프트뱅크에서 유통하고 있는 SH-88과 SH-90의 매출이 급상승할 정도였다.

“국내도 국내지만, 미국에서의 인지도가 무섭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반도체나 자동차 꼴이 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모르는 일입니다. 솔직히 예전의 혜성 그룹을 생각하면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 누가 알았답니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말이군요.”

“도요타나 도시바 등의 기업들과 힘을 합쳐서 혜성을 견제해야 합니다. 이대로 놔뒀다간, 우리의 영역을 하나둘 뺏어가고 말 겁니다.”

“저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미래 그룹도 그렇고, 예전의 일성 그룹도 그렇고 한국 기업들을 상대하는 일은 절대 방심해선 안 될 일입니다. 같은 일본 기업끼리 힘을 합쳐서 한국을 견제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정부까지 동원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소니 경영진은 보다 적극적으로 혜성 그룹을 견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혜성 그룹의 성장세는 그들이 그런 결심을 해야 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 * *

상장하니 역시 반응들이 상당했다.

가장 호들갑을 떤 것은 언론들이었는데, 혜성 전자의 세계 순위가 몇 위라는 둥, 혜성 반도체와 합치면 세계 IT 1위도 문제없다는 둥, 한국의 자랑이라는 둥, 온갖 찬사를 늘어놓았다.

물론 단순히 혜성 전자의 가치만 놓고 호들갑을 떤 것은 아니었다.

초점을 나에게로 돌린 언론도 있었는데, 내가 보유한 혜성 전자의 지분이 70%가 넘어서 그런지, 더더욱 관심이 집중되었다.

나는 그야말로 조 단위의 부자였으니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초점을 나에게로 돌린 언론들이 찬사만 늘어놓지는 않았다.

몇몇 언론들은 부의 독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식의 보도를 하였고, 아예 대놓고 혜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식의 보도를 한 언론도 존재하였다.

‘더 두고 보면 좋을 게 없겠어.’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노사와 계획했던 대로 기부 약속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저는 죽기 전까지 반드시 현재 재산의 절반인 4조 원을 사회에 기부하겠습니다.”

나는 기자 회견을 통해 기부 약속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그것도 무려 조 단위, 4조나 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기부하기로 선언하였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엄청났다.

<이한성 회장, 재산의 절반 기부 선언!>

<‘4조 원’ 기부 약속한 이한성, 직원 연봉도 올린다.>

<혜성에서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5천억 이상?>

<최고 부자 이한성 기부금 어디에 쓰나.>

언론에서는 이미 찬양에 가까운 기사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기사만 봐서는 내가 엄청난 성인군자라도 되는 듯싶었다.

‘약속은 어디까지나 약속일 뿐인데, 그걸 모르는군.’

연도도 정하지 않았고 그저 죽기 전까지만 기부하겠다고 했으니, 당장 돈이 나갈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이야기한 재산의 절반이란 어디까지나 현재 주식 평가액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자산이 많아졌으면 많아졌지 줄어들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4조 기부 약속을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래도 이왕 기부한 거 제대로 쓰기는 해야겠지.’

나는 기부 행위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부유한 이가 기부로나마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4조 원의 기부 약속은 절대 위선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여러 사회 문제를 비롯하여 기초 과학 연구, 일자리 늘리기 등에 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할 생각이었다.

“이 회장, 4조를 기부한다더니, 그게 정말인가?”

“저는 무엇보다 4조를 기부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놀랐습니다. 재계 10대 재벌 총수들의 재산을 다 합쳐도 4조가 안 될 텐데…….”

내 기부 약속에 경악한 것은 언론뿐만이 아니었다.

정우 그룹의 권오중 회장과 은성 그룹의 구혁재 회장이 나를 찾아왔는데, 둘 다 무척이나 놀란 반응을 보여주었다.

1조도 아니고 무려 4조라니.

재벌 회장인 만큼 그들도 내가 기부를 약속한 배경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한들 내 배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생 재벌인 그들은 여론이 조금 안 좋아지고 정계에서 견제받는 정도로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라고 한다면 절대 하지 않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뭐, 나야 죽기 전까지 4조쯤 얼마든지 벌 수 있고, 4조로 얻는 무형의 이익이 훨씬 크다고 생각해서 배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지만 말이다.

‘김태중 국무총리의 반응만 봐도 내가 얻고 있는 무형의 이익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지.’

상장 직후까지만 해도 이상할 정도로 나와의 만남을 피하던 김태중 국무총리였다.

노사가 말하기를, 김태중 국무총리가 재벌 개혁을 계획 중이고, 우리 혜성 그룹도 그 개혁의 대상 중의 한 곳이라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노사에게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김태중 국무총리를 포기하고 이종석 의원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어줄까를 고민했었지만, 기부 약속 이후에는 그런 고민도 부질없어졌다.

“이한성 회장님을 다시 봤습니다. 이렇게나 품은 뜻이 높고 원대할 줄이야. 정말 다른 재벌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분이신 거 같습니다.”

조금씩 거리를 두던 김태중 국무총리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전보다 우호적으로 대하였는데, 나를 향한 그의 눈빛에는 언뜻 존경심도 느껴지는 듯했다.

절반의 재산을 기부한다는 약속이 그의 심금을 울리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 * *

‘통 큰 기부를 약속했으니, 국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언론도 긍정적이고, 정계도 잠잠하기 그지없었다.

이 정도면 안심해도 될 거 같았다.

“필립스 전자 직원들의 반응이 상당히 우호적으로 바뀐 거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아무래도 혜성 전자의 상장이 그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느끼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혜성 전자의 상장은 외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의 가치가 무려 130억 달러였다.

10년도 안 된 회사가 130억 달러의 가치를 지녔으니, 외국 사람들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이 혜성 소속이 된 필립스 전자 직원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미국 정치인들의 반응도 확 달라졌는데?’

재계 1위가 되었을 때도 사실 미국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한국이란 나라가 미국인들에게는 워낙 존재감이 미약하다 보니, 한국에서 1위를 해 봐야 높게 쳐주지를 않았던 것이다.

내가 지금껏 인맥을 얻는 것을 어려워했던 이유도 바로 인지도 부족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IT 업계에서만 관심을 드러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 공개를 통해 공식적으로 혜성 그룹의 공신력을 인정받았기에, 미국 월가에서조차 주목하는 기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치인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기존에 우호적인 관계였던 민주당 정치인들은 더욱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었고, 무관심하던 공화당 정치인들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몇몇은 아예 사적인 모임에 초대하는 행동을 취하기도 하였다.

‘다만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군.’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외국 기업들의 견제도 심해졌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가장 견제를 심하게 하는 나라는 일본이었다.

안 그래도 혜성을 경계하던 일본 기업들은 혜성 전자의 상장으로 독이 바짝 오른 분위기였는데, 로비에 사용하는 돈도 뒤에 한자리는 더 올라간 듯싶었다.

오죽하면 빌 클린턴이 이 같은 질문을 던질 정도였다.

-미스터 리, 혹시 소니와 사이가 안 좋습니까?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십니까?”

-요즘 소니에서 로비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새로이 지어지는 혜성 자동차 공장의 건설을 방해해달라고 말입니다.

빌 클린턴의 그 같은 말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지간히 혜성이 싫은 모양이었다.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다니 말이다.

“주지사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당연히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애초에 주지사인 저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리가 고마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칸소 주의 이익을 위해 힘쓰는 것이 제가 할 일이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보다 축하드립니다. 상장에 성공하셨다고요?

“예, 시장에서 생각 이상으로 혜성 전자를 높게 평가해 주었습니다.”

-그만큼 혜성의 발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미스터 리가 잘 된다고 하니 저도 기분이 참 좋습니다.

“주지사님도 내년에 있을 주지사 선거에서 꼭 당선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 이듬해에 있는 대선에서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대선이라. 하하, 미스터 리는 또 그런 소리를 하시는군요. 허황됐긴 하지만, 저도 미스터 리가 말한 것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리되실 겁니다.”

그렇게 빌 클린턴과의 우호적인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일본 기업의 견제에 맞대응할 준비를 하였다.

이제 혜성 그룹의 체급도 커졌으니, 예전처럼 싸움을 피하기만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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