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245화 (245/300)

245화 상장에 성공하다

혜성 전자의 상장을 앞두고 개인 투자자들은 열띤 토론을 하였다.

“필립스 전자의 가치가 3조 이상인데, 필립스 전자를 품을 혜성 전자는 당연히 5조를 넘지 않겠어?”

“에이, 아무리 그래도 5조는 너무 세지. 은성 전자도 3조가 조금 넘는 수준인데? 혜성 전자는 은성 전자보다 시장 점유율이 낮잖아.”

“국내에서의 시장 점유율이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따지면 소니도 일본에서는 4위 정도밖에 안 해.”

“바로 그 소니에게 밀려서 천문학적인 적자를 본 게 필립스 전자라잖아. 적자뿐인 기업을 인수했으니, 오히려 가치는 낮게 평가받아야 정상 아닌가?”

“필립스 전자를 인수한 게 누구야. 혜성 그룹의 이한성 회장이야! 혜성을 재계 1위로 만든 사람이 필립스 전자를 인수했는데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은 일도 아니지.”

한성의 이름이 나오자, 혜성 전자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던 개인 투자자가 입을 다물었다.

재벌 신화를 쓰고 있는 한성이었다.

혜성 계열사란 이유만으로 그 기업의 가치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높게 평가받는 것도 한성이 혜성 그룹의 회장이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지금껏 수많은 인수 합병을 진행하였지만, 단 한 번의 실패가 없었었다.

그 당시에는 무수한 반대 여론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가 진행했던 인수 합병은 언제나 혜성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이러니 사람들은 이번 필립스 전자 인수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5조가 뭐야. 7조도 될걸?”

“7조? 나는 8조도 될 거 같은데?”

토론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개인 투자자의 여론은 단숨에 혜성 전자의 가치를 5조 이상으로 평가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심지어 5조가 끝이 아니었다.

“5조니 7조니 찔끔찔끔 올리지 말고 아예 10조를 노려보는 건 어때?”

한국의 상장 역사를 생각하면 실로 터무니없는 액수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혹시’ 하는 생각을 가졌다.

실질적인 혜성 전자의 가치가 어떻든 10조 이상의 평가를 받는다면 그 과정에서 그들도 상당한 수익을 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네들의 생각도 그래? 나는 5천 원까지 갈 거 같기는 한데, 한번 도전해 봐?”

“5천 원? 희망가에 두 배 이상인데 거기까지 오르겠어?”

“그 필립스고 그 혜성이잖아. 두 기업이 합쳐지는데 10조가 뭐야. 나는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본다.”

개인 투자자들이 그 같은 대화를 나눌 때 어느덧 혜성 전자의 상장 당일이 되었다.

1990년이 되면서 무수히 많은 기업이 상장하였지만, 혜성 전자만큼 언론의 주목받는 상장은 없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관심을 드러내고 있을 정도였는데, 개인 투자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5천 원까지 가자!”

“가자아아!”

이날 혜성 전자의 시초가는 공모가보다 두 배 이상 높은 6,300원으로 시작하였다.

잠시나마 혜성 전자의 가치가 13조 가까이로 평가받은 것이었다.

* * *

처음 시초가가 6,300원이 되었을 때,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직접 설립한 회사가 이렇게나 높은 평가를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혜성 전자가 이 정도면 혜성 반도체랑 혜성 자동차는 얼마라는 거야?’

15조 이상.

어쩌면 20조 이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혜성 그룹 전체를 다 합치면 50조 이상도 가능할 수 있고 말이다.

물론 혜성 반도체나 혜성 자동차라고 혜성 전자보다 높은 평가를 받으리라고는 100% 확신할 수 없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따지면 두 기업이 압도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시장이 그런 것을 자세하게 고려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장에서 고려하는 것은 오직 하나.

미래 비전.

겉으로 보기에 얼마나 미래 잠재력이 있어 보이는가를 두고 회사의 가치를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 같은 평가에 있어서 혜성 자동차나 혜성 반도체는 호재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혜성 전자처럼 곧 인수할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무언가를 개발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설령 저평가를 당한다 해도 둘 다 10조 이상씩은 될 테니, 혜성 그룹 전체의 시가총액은 아무리 못해도 35조 이상은 되겠어.’

35조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터무니없게 느껴졌던 규모인데, 이제는 충분히 손에 닿을 수 있는 규모로 느껴졌다.

‘이 정도면 내가 세계 제일 부자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성공적으로 상장이 이루어진다면 공식적인 세계 최고 부자 자리는 노려봐도 될 거 같았다.

현재 세계 최고 부자라고 해봤자 140억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 생각도 주가의 상승 폭이 내려가다가 이내 떨어지기 시작하자, 다시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장이 광기에 휩싸여 너도나도 매수 주문을 하였지만, 6천 원의 벽을 넘으면서 이성을 되찾았다.

결국 이날 혜성 전자의 주가는 5,200원으로 장을 마감하였다.

(그래도 시가총액 10조를 넘었구나.)

노사가 흡족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나는 그런 노사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 거 같습니다.”

(그렇지. 그렇게 시장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는데,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근데 조금 아쉽긴 합니다. 15조까지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만약 시가총액이 15조가 되었다면?

내 지분을 은행에 담보로 걸어놓는다는 전제조건하에 나는 수십 조까지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물론 그 정도 규모라면 돈을 빌리기도 쉽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지금으로도 만족해야지. 어쨌든 1조의 실탄은 획득했잖아?)

1조라.

확실히 이번 상장으로 엄청난 실탄을 획득하긴 하였다.

비록 필립스 전자를 통째로 인수할 정도의 실탄은 아니지만,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금까지 합하면 대출을 하지 않아도 필립스 전자를 인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유가 선물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바로 걸프전에 대비해야겠습니다.”

(전에도 말했듯, 너무 눈에 띄는 짓은 하지 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니, 눈에 띄는 짓을 하면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어.)

“예. 조심하겠습니다.”

조심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

위험하지 않은 선에선 최대한 많은 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있었다.

‘3조, 아니, 4조 정도만 얻어도 충분히 만족할 거 같은데.’

나도 참 손이 커지긴 한 거 같았다.

천억 단위도 아니고 조 단위를 벌어야 만족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뭐, 혜성 그룹의 규모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혜성 전자가 성공적으로 상장했으니, 여기저기서 주목을 받게 되겠군요.”

(단순히 주목을 받는 선에서 끝나지는 않을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혜성 전자라는 일개 계열사의 규모가 국가조차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어. 당연히 반응이 작을 리는 없지 않겠냐?)

그건 그렇다.

미래 그룹의 총매출이 10조 넘겼을 때도 온갖 소란이 벌어졌었는데, 시가총액 10조는 그보다 더 큰 반향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너를 두려워하거나, 경외하는 이들이 늘어날 거다. 재계에서든 정계에서든 다른 어떤 업계에서든 말이야.)

“견제하는 이들도 많이 늘어나겠군요.”

기자들부터가 그랬다.

비록 상장 소식에 묻히기는 했지만, 김현과의 마찰을 다룬 기사를 비서실에서 보고한 적도 있었다.

무슨 혜성 공화국이 어쩌니 하는 기사였는데, 일부 언론에서는 혜성 그룹을 대단히 위협적인 세력으로 보고 있는 듯 보였다.

이 기사 때문인지, 초선 의원 중심으로 특정 기업 즉, 우리 혜성 그룹을 견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정계에서 일어날 정도였다.

“이제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 거 같습니까?”

(일단 기부하는 게 좋겠지. 내일만 되어도 모든 언론에서 이번 상장으로 네가 얼마나 많은 돈을 챙길지 떠들어댈 것이니 말이야.)

“그렇군요.”

노사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치 다른 재벌 총수들이 면피성 기부하듯, 강제로 기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

지금까지 몇 차례나 기부하였었다.

아마 86년도 이후의 연 기부 금액을 따지면 혜성 그룹이 단연코 1위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올해도 이미 수백억이나 되는 돈을 사회에 기부하였었는데, 이번 상장으로 더 큰 규모의 기부 약속을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리고 기부로 일단 긍정적인 여론을 모은 뒤에, 더 압도적인 성장세로 그룹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압도적으로 말씀입니까?”

(그래.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룹의 규모를 키운다면 언론에서든, 정계에서든 누가 감히 뭐라 할 수 있겠냐?)

고개를 주억거렸다.

노사의 말처럼 기사 몇 개 정도는 크게 신경 쓸 것이 없었다.

혜성 그룹의 규모가 50조, 아니, 100조 정도 규모만 되어도 언론에서는 혜성 그룹의 성공을 찬양하기 바쁠 테니까.

* * *

잘 다니고 있던 필립스 전자가 갑자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혜성이란 기업에서 인수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엔젤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혜성이란 기업이 무슨 기업이야.’

그녀는 한국이란 나라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전혀 들어본 적 없는 기업에서, 필립스 전자를 인수했으니 그녀로선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위에서 하는 거 보니까, 우리가 그만두는 게 아니라, 위에서 먼저 우리를 해고할 거 같던데?”

“어떻게. 나는 필립스 전자에 계속 다니고 싶은데.”

“나도 여기 나가면 뭐 해야 할지 막막하다. 10년 넘게 다닌 회사인데 말이야.”

엔젤라의 동료 직원들도 상황이 막막했는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혜성의 회장이란 사람이 직접 네덜란드 본사를 찾아와 몇 가지 약속을 하였지만, 전혀 위로되지 않았다.

그저 혜성의 회장이 젊고 잘생긴 동양 남자라는 사실만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거 들었어? 혜성에서 자동차도 만든다던데?”

“자동차를?”

“앱설루트란 브랜드가 혜성에서 만든 자동차래. 심지어 자동차뿐만이 아니야. 반도체도 세계에서 손꼽힌다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동료 직원들이 혜성과 관련된 정보들을 몰고 오자, 안젤라도 불안감이 조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비록 그녀는 처음 들어보는 기업이었으나, 혜성 그룹은 누가 봐도 비전 있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반도체에 자동차 심지어 호텔과 백화점, 건설 같은 사업도 한다는 정보가 나돌았던 것이다.

‘조금 안심해도 되려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에게 새로운 소식이 하나 더 전달되었다.

그 소식이란 다름 아닌, 모기업이 될 수 있는 혜성 전자의 상장 소식이었다.

“뭐? 혜성 전자의 가치가 130억 달러라고?”

130억 달러!

비록 전성기 시절의 필립스 전자 수준은 아니지만, 현재 필립스 전자의 가치에 무려 세 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그녀로선 실로 놀랍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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