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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44화 (244/300)

244화 혜성 공화국?

“대통령 차남에 관해 취재하고 싶다고 했었지? 한번 해 봐.”

“저, 정말 그래도 됩니까?”

“자네가 그렇게 원하는데,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어?”

박찬우 기자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현이란 자가 일개 야인 신분으로 정권의 뒤에서 실세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올해 초였다.

사명감 넘치는 기자로서 이런 사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바로 동료 기자들을 모아, 김현을 취재하려고 하였었다.

하지만 취재 준비를 끝내고 며칠이 지나자 신문사 부사장이 이같이 말했다.

“미안하다. 외압이 왔다.”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하기도 전에 외압을 넣었다는 것은 상대가 그만큼 권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심지어 외압을 한 사람은 무려 안기부 간부였다.

김현의 뒤에는 적어도 안기부가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박찬우 기자는 이 같은 현실에 오히려 열정을 불태웠다.

‘겨우 이런 거로 포기할 거라면 시작도 안 했다.’

그는 승용차에 달린 신문사의 로고도 가리며 취재를 이어갔다.

역시나, 며칠도 지나지 않아 수상한 낌새를 눈치챌 수 있었다.

“한약업사들에게 정치 자금을 받은 거 같은데요?”

“얼마 정도 받았을까?”

“이 정도라면 1억 이상은 무조건 받았을 거 같습니다.”

“벌써 1억의 뇌물을 찾아낼 정도면 지금까지 적어도 수십억은 받았겠는걸?”

“그렇겠죠. 사무실의 한 달 운용 자금만 억 단위라는데, 그 자금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대통령 아들이라는 놈이…… 이래서야 5공이랑 다를 게 뭐야?”

박찬우 기자는 더욱 열의를 가지고 취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묘해졌다.

김현이 재계의 거물과 신경전을 벌였다는 소문이 세간에 돌았기 때문이다.

“재계의 거물? 그게 누구일까?”

“빅 4 중 한 명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역시 미래 그룹의 왕주형 명예 회장인가?”

“권오중 회장일 수도 있습니다. 혈기 넘치는 성격이니, 젊은 김현이 나대는 것을 그리 좋게 바라보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현을 취재하던 기자들은 알게 되었다.

김현과 신경전을 붙은 재계의 거물이 혜성 그룹의 이한성 회장이란 사실을 말이다.

“둘 다 나이가 비슷해서 부딪친 모양인데?”

“하긴, 그 나이 때는 혈기가 넘칠 나이긴 하죠.”

“너보다 나이 많은데 뭔 소리야.”

“저도 혈기 넘칩니다. 하하.”

“아무튼, 둘이 전쟁을 시작한다면 누가 손해를 볼 거라고 생각하냐?”

“그야 당연히 혜성이 손해 보지 않겠습니까?”

“왜?”

“김현은 무려 대통령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정계의 권력자들은 김현의 눈치 보기 바쁠 텐데, 세무조사라도 때리면 혜성 그룹이라도 골치 아플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박찬우 기자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그는 혜성 그룹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매출 규모만 수십조에 달하는 기업이니 혜성을 고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혜성 그룹이 대통령의 차남과 시비가 붙어서야 좋을 게 없을 거 같았다.

‘진짜 세무조사라도 때리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지. 이한성 회장은 꽤 이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군.’

그뿐만이 아니라, 기자들 전체가 이번 일로 혜성 그룹이 큰 피해를 볼 거라고 생각하였다.

아무리 대기업이라 해도 대통령의 혈육 앞에서는 일개 기업인에 불과하였다.

결과적으로 혜성 그룹은 큰 손해를 보고서 김현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하였다.

“이거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요?”

“그러게. 왜 우리 말고 다른 기자들이 김현을 쫓는 거지?”

“그것도 그건데, 정부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김현 때문에 일을 벌여도 단단히 벌일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정계의 거물과 재계의 거물이 충돌했으니, 당연히 일이 시끄러워져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청와대도 그렇고 혜성 그룹도 그렇고 잠잠하기만 하였다.

‘그렇다고 김현이 잠자코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김현은 뭔가 수를 쓰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짧은 시간 동안 정부 관계자들을 십 수 명이나 만난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김현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반응은 잠잠하기만 하니, 박찬우 기자는 결국 이같은 추측을 하기에 이르렀다.

“설마 김현이 진 건가?”

이게 아니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조사했던 김현의 성격을 생각하면, 순순히 물러날 일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김현이 지다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누가 뭐래도 대통령의 아들인데요.”

다른 기자들은 그의 생각을 부정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들도 점점 박찬우 기자의 생각에 동조하게 되었다.

모든 정황이 김현의 패배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당 실세들조차 김현의 뜻에 움직여주지 않는다니.”

“혜성의 영향력이 상상 이상인데요?”

“언론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거 같습니다. 소극적으로 움직이던 신문사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김현의 뒤를 캐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기자들이 한마디씩 하자, 박찬우 기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가 어쩌면 취재를 할 대상을 잘못 골랐을지도 모르겠어.”

“예?”

“김현이 아니라 혜성을 취재해야 할 거 같은데?”

“혜성을요?”

“안기부 간부조차 제 부하처럼 대하던 김현이야. 그런데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김현이 혜성 그룹에 꼼짝도 못 하고 있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냐?”

박찬우 기자는 정권의 뒤에서 권력자 노릇을 하던 김현보다 그런 김현을 손쉽게 상대하는 혜성 그룹을 더 위협적인 존재라고 보았다.

안 그래도 사회 저명인사들이 대기업의 강세를 우려하는 말들을 많이 하는 상황이었다.

경제 비중도 높아지고 선거에도 영향을 끼치면서 우려가 심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혜성 그룹은 단순히 경제 비중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이미 정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조차 혜성 그룹에 속수무책일 정도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혜성 그룹 장학회 출신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중용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우리 언론사에서도 혜성 장학회 출신이 꽤 많을걸?”

“제가 얼핏 들었는데 법조계에 특히 많다고 합니다.”

“이거 진짜 혜성 그룹 회장이 김현보다 더 무서운 존재일 수도 있겠는데요?”

“무엇보다 이한성 회장의 무서운 점은 김현처럼 시한부 권력이 아니라는 거지.”

“하긴, 재벌 회장에겐 임기라는 것이 없죠.”

그렇게 기자들이 하나둘 동조하자 박찬우 기자는 결심하였다.

혜성 그룹을 취재해 보자고.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해. 가까스로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이 나라가 혜성 공화국으로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아직은 지나친 과대망상과도 같았다.

하지만 혜성 그룹의 성장세를 생각하면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0년도 안 돼서 회사 규모를 수십 배로 키웠는데 10년 뒤의 혜성 그룹은 또 얼마만큼 커지겠는가?

그때는 정말 지금 떠도는 헛소문처럼 혜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하게 될 정도로 경제적 비중이 높아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 경제적 비중이 높아진다면 혜성의 힘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힘을 아득히 넘어서게 되리라.

‘절대 그 꼴은 볼 수 없어!’

박찬우 기자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혜성 그룹을 취재하기로 결심 내린 그때, 혜성 그룹과 관련된 새로운 소식이 전국을 강타하였다.

그 소식이란 다름 아닌, 혜성 전자의 상장 소식이었다.

* * *

<소니를 넘어설 혜성 전자, 상장 절차 본격화!>

<외신, 혜성 전자 가치 5조 원 전망!>

<빅 4가 되고 난 이후 첫 상장. 과연 혜성 전자는 1990년대의 최대어가 될까?>

혜성 전자의 상장 절차가 본격화된 이후,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상장 소식을 전하였다.

“시장의 기대가 상상 이상인 거 같군요.”

신문을 읽고서 혀를 내둘렀다.

설레발이라고 해야 할지, 뭐가 됐건 언론의 반응이 엄청났다.

확실히 노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혜성 그룹 계열사의 상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았다.

“아무래도 필립스 전자와 인수 계약을 맺은 일로, 세계 1위까지 노려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거 같습니다.”

“바로 필립스 전자랑 합병하는 것도 아닌데, 참 이해가 안 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필립스 전자와 혜성 전자는 기화 자동차와 혜성 자동차가 그러하듯 별개의 회사라고 봐야 했다.

필립스 전자를 인수한 자본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 자본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시장의 기대가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두 기업을 합병할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비서실장님께서는 혜성 전자의 공모가가 어느 정도 될 거로 생각합니까?”

내 말에 진봉현 비서실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같이 답변하였다.

“5조가 넘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 않습니까? 공모가는 아무리 못해도 2,500원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500원이라.”

시가총액 5조라면 기대 이하였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겠지만, 나는 최소한 10조 정도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야 1조 이상의 현금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회장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는 5,000원도 가능할 거로 봅니다.”

“5,000원이요?”

놀라는 진봉현 비서실장의 모습을 보니, 노사에게 ‘시가총액 10조라고요?’라고 놀라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역시 노사의 추측이 틀렸다고 봐야 할까? 음, 그런데 지금까지 노사의 말이 틀린 적은 거의 없었는데.’

상장은 처음이라 나 역시 긴가민가하였다.

이럴 때는 그냥 마음 놓고 기다리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이 회장, 혜성 전자의 시가총액이 적어도 4조는 되겠지?”

“4조가 뭡니까. 허허, 5조 아니, 6조 이상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진짜 그 정도의 가치로 평가된다면 외국의 어떤 기업과 비교해도 가치 면에서 크게 밀릴 게 없겠군요.”

물론 내가 마음 놓고 기다리려 해도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어디를 가든, 혜성 전자 상장 이야기를 안 꺼내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재벌 총수들을 만날 때면 반드시 혜성 전자 이야기가 나왔다.

재계에서도 그만큼 혜성 전자 상장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회장, 김영산 대통령의 차남과 사이가 벌어졌다고 들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건가?”

“제가 듣기로 김현 씨가 완전히 물먹었다고 합니다.”

물론 혜성 전자 소식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김현과의 충돌.

이건 어떻게 보면 정치권력과 전경련의 충돌로 볼 수도 있는 것이었기에, 재벌 총수들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별일 아닙니다. 김현 씨가 워낙에 혈기가 넘쳐서 조금 무례를 저질렀던 것인데,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재벌 총수들의 질문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신경하게 대꾸하였다.

마치 김현과의 충돌이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도 나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재벌 총수들의 생각은 달랐는지 내 태연한 반응에 놀라는 모습들을 보여 주었다.

대기업의 힘이 아무리 강해졌어도 그들에게 있어 정치권력은 여전히 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언가로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이제 나로 인해 생각이 점차 달라지겠군.’

당장 시장의 권력이 정치의 권력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덜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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