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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41화 (241/300)

241화 소통령이라

혜성 전자가 필립스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김태중 국무총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한성 회장의 자금력은 정말 한계가 없는 거 같군.’

기화 자동차를 인수한 지 불과 1년이다.

그런데 혜성 그룹은 거침없이 기화 자동차보다 훨씬 큰 기업을 인수하였다.

인수가만 무려 3조 5천억.

국가 예산이 대략 20조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일개 기업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결코 아니었다.

‘안 그래도 혜성의 영향력이 막강한데, 필립스 전자까지 인수했으니 시장으로 권력이 이동할 날도 멀지 않겠어.’

나라의 기업이 발전하는 것은 실로 긍정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는 혜성의 모습을 보니, 김태중 국무총리는 경각심을 느꼈다.

이미 ‘대기업이 망하면 한국도 망한다’라는 말이 ‘혜성이 망하면 한국도 망한다.’라는 말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혜성이 차지하는 경제 비중은 상당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 비중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고 있었다.

김영산 정부 들어서 중소기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으나, 중소기업의 성장세보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혜성 그룹의 성장세가 더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왕주형 회장은 대놓고 정치권력을 탐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이군.’

미래 그룹의 창업주인 왕주형 명예 회장이 처음 정치인이 된다고 했을 때, 정계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일개 기업인 따위가 정계에서 이름을 알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왕주형 명예 회장의 존재감은 야당 대표 이상급으로 커졌다.

이것만 봐도 기업가, 그중에서 빅 4 재벌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었다.

“미루어왔던 재벌 개혁을 다시 이어서 진행해야 할 때인데, 대통령님이 일본과의 외교 때문에 정신이 팔렸다는 것이 문제다.”

정권 초기에는 강하게 재벌 개혁을 밀어붙였었다.

그런데 경제 위기의 조짐이 보이자, 흐지부지 물러나고 말았다.

물론 5공 관련 범죄를 강하게 벌하여 지금도 쌍호 그룹이나 샤롯 그룹은 법의 심판을 받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정작 재계에서 군림하고 있는 빅 4의 그룹은 큰 타격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혜성 그룹의 경우, 5공 특혜에서 면죄부를 받은 기업이었기에 국민의 지지까지 받고 있었다.

‘차기 대선 때 이한성 회장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지금부터 고민을 해봐야겠어.’

어쩌면 혜성 그룹과 거리를 둬야 할지도 몰랐다.

그가 정권을 잡으면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대상이 혜성 그룹일 수도 있으니까.

* * *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일정까지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 달만의 귀국이었다.

참고로 수주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정부와 직접 수의계약을 맺은 것.

‘한국에서 또 난리가 났겠군.’

필립스 전자를 인수한 데 이어 조 단위의 수주까지 받았으니,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예상대로 김포 공항에서부터 취재진이 몰려 있었다.

나는 1시간 내외의 짧은 기자회견을 가졌다.

“필립스 전자를 갑작스럽게 인수한 배경을 알 수 있겠습니까?”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필립스 전자는 충분히 잠재력이 있는 회사였고,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인수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실 계획입니까?”

“은행권 대출과 기업 공개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기업 공개’라는 말에 기자들이 어수선해졌다.

몇몇은 ‘특종이다!’를 외치기도 하였다.

내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한 번도 상장을 안 했었으니 기자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기자들뿐만이 아니라, 주식 시장에서도 꽤 반응이 있을 거 같군.’

그 뒤로 사우디아라비아 수주 관련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체되었기에, 나는 몇 마디 더 답변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자들은 뒤에서 내 이름을 애타게 불렀지만, 이 정도 답변만으로도 궁금증은 충분히 해소되었을 것이다.

“제가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공항에서 나를 기다린 것은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혜성 그룹 임원들도 나를 애타게 기다렸었는데, 나는 대표로 마중 나온 지원철 전무에게 물었다.

다행히 지원철 전무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보고하였다.

‘역시 하운철 부회장님께 내 빈자리를 맡기길 잘했군.’

물론 어지간한 일은 내가 원격으로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하운철 부회장이 중심을 잡아주지 않았으면 이렇게 평화롭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어디선가 사고가 터져도 크게 터졌겠지.

“바로 회사로 갑시다.”

“저택으로 안 가시고요?”

“잠깐 얼굴들만 보고 귀가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차 적응이 안 돼서 피곤하긴 했다.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회사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기에, 우선 혜성 그룹의 사옥 먼저 들르기로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사옥에 도착하니, 백 명이 넘는 직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니, 백 명의 직원들이 우렁차게 인사하였다.

실로 거창하기 그지없는 의전이었다.

“일들 하시지,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회장님이 오셨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혜성 그룹 회장으로서 이 정도의 의전은 이제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직원들을 격려해주고는 집무실로 올라갔다.

“비서실장님, 그동안 별일 없었습니까.”

“예,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다행이군요.”

“다만, 회장님을 찾는 전화가 많이 왔었습니다.”

“누구누구에게 왔었습니까?”

“고영태 비서실장도 한 번 연락을 주었습니다. 대통령께서 회장님의 소식을 궁금해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대통령께 직접 전화를 드려야겠군요.”

“이종석 의원의 연락도 왔었습니다.”

“뭐랍니까?”

“한번 뵙고 싶다 합니다.”

“그래요?”

“그리고 은성 전자의 구자성 명예회장께서도 이번 달 안에 식사를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한 달 동안 해외에 나가 있었더니, 나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

하기야, 필립스 전자와 관련해서 궁금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자금의 출처가 궁금하지 않을까?

“김현 씨도 이번 주 안에 회장님을 찾아뵙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진봉현 비서실장이 ‘김현’을 언급하였다.

“김현이라면, 대통령님의 차남을 말하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별로 반가운 손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통령이란 별명이 생겼다죠?”

“아직 쉬쉬하고는 있지만, 여러 소문이 나돌고 있기는 합니다.”

“문민정부의 실세들도 김현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린다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정 부분, 사실인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김현 씨가 대통령의 차남이기도 하고, 김현 씨가 세운 사조직이 문민정부의 싱크탱크 역할도 한다고 하니, 실세들이라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쯧. 아무리 대통령의 아들이라 해도 민간인일 뿐인데 참.”

역시 문민정부라고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거 같았다.

뭐, 5공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야 약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김현이 저를 찾는 이유가 뭘 거 같습니까?”

“이번에 필립스 전자를 인수함으로써, 압도적인 자금력을 보여 주셨으니, 아마 자금을 빌리거나 투자를 부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름대로 가능성 있는 추측이었다.

정치인들이 나를 찾는 목적은 대부분이 돈이었으니까.

김현도 따지고 보면 정치인이나 다를 게 없으니, 돈을 목적으로 나를 찾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번 주 안에 찾아온다고 했었죠?”

“예.”

“아무래도 이번 주 일정은 꽉 찼으니, 다음 주쯤에 만나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미룰 수도 있는 일정이었지만 굳이 김현 때문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김현과 친해져봤자 얻을 것이 없기도 했고.

“김현 씨의 성격상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김현 같은 자의 눈치를 봐야 하겠습니까?”

자기가 대통령 아들이면 어쩔 건가.

대통령조차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판국에 말이다.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이재현 대표를 좀 호출해 주십시오.”

“예, 바로 이재현 대표를 불러오겠습니다.”

얼마 후 혜성 전자의 이재현 대표가 올라왔다.

나는 그와 필립스 전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몇 가지 나누었다.

전화로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역시 직접 마주하고서 대화를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이재현 대표와 필립스 전자에 관해 깊은 대화를 나누고는, 퇴근 시간 때에 맞춰서 하운철 부회장과 함께 귀가하였다.

* * *

김현이 정치에 뜻을 품은 것은 오래전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담근 것은 3년 전, 대선을 앞뒀을 때였다.

그는 잘 다니고 있던 쌍호 증권을 그만두고 선거 유세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의 부친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그는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 건물에 ‘중앙조사연구소’를 열었다.

중앙조사연구소는 향후 그의 정치 행보를 위해 만든 사조직이었다.

이 연구소 안에는 전산실이 있었는데, 각계 인사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리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재계의 인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혜성 그룹을 정점으로 미래 그룹과 정우 그룹 그 외에 여러 재벌의 각종 기록을 정보 전산화하고 있었다.

“자금력이 이리도 막강하다니. 이제 미래 그룹은 상대도 안 되겠는데?”

“그러게 말이야. 일개 재벌이 조 단위를 동원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더 놀라운 것은 이한성 회장의 나이가 이제 30대 초중반이라는 거야.”

“30대 초중반이라. 허.”

김현의 측근들은 필립스 전자를 인수한 혜성 그룹을 두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분명 그들이 관리한 정보대로라면 혜성 그룹이 일시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은 천억 단위가 한계였다.

작년에 혜성 반도체에만 수천억을 투자했고, 혜성 자동차에 심지어 기화 자동차에까지 막대한 투자를 했으니, 사실 천억 단위도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혜성 그룹은 그들의 예상을 깨고 천억 단위를 넘어 조 단위를 동원하였다.

감탄을 넘어 경악할 수밖에 없는 자금 동원력이었다.

그때, 측근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김현이 말문을 열었다.

“이한성, 이자만 잡으면 최연소 대통령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야.”

김현은 현재 야인 신분이었으나, 대통령의 차남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소통령이라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김현은 지금의 권력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미 권력을 맛본 상태였기에, 겨우 2년밖에 안 남은 정권 실세 자리에 만족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물론 지금 당장으로선 현실성 없는 야망에 불과하였다.

30대 초반에 불과한 그의 나이도 나이지만, 김영산 대통령과 달리 그는 정치적 치적이랄 게 없었다.

그저 김영산 대통령의 선거 유세 때 선거 유인물을 뿌리는 정도밖에 한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였다.

소통령의 힘으로 사회 곳곳에 그의 사람을 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대선에 나설 때쯤이면 이들이 기업, 정부, 신문사 등에서 중임을 맡게 될 것이니 이것만 해도 큰 힘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무려 대통령의 자식이었다.

김영산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 역시 지지할 가능성이 컸다.

‘여기에 기업가, 그것도 혜성 그룹 정도의 재벌이 지원해준다면 10년 뒤쯤에는 대통령 자리도 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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