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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37화 (237/300)

237화 소니?

“혜성만큼 인재가 많은 기업이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그 혜성에서 가장 빼어난 능력을 보여 주셨던 것이 바로 하운철 대표님이지 않습니까.”

“과찬입니다. 요즘엔 젊은 사람들이 워낙 출중한 능력을 보여 주고 있으니, 젊은 사람들을 더 중요한 자리에 기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시 하운철 대표를 다시 불러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기야,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애초에 하운철 대표가 대표직에서 사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명예로 보나, 실질적인 연봉으로 보나, 남부럽지 않은 자리가 바로 혜성 자동차 대표 자리였으니 말이다.

‘돈을 아무리 준다고 해도 안 통하겠지?’

뭐 수십억을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돈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하운철 대표를 끌어들여야 했다.

다행히 그에게 통할 수단이 하나 있었다.

“요즘도 스포츠카를 좋아하시죠?”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하운철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허, 이 나이에 주책이란 생각도 들지만, 제가 스포츠카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게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재벌 총수도 아닌데 스포츠카를 모으는 것이 조금 사치스러운 취미처럼 느껴지기는 합니다. 허허. 그런데 갑자기 그런 질문은 왜 하셨습니까?”

그가 묻자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포르쉐의 대주주가 되실 생각은 없습니까?”

“포르쉐요?”

전혀 의외의 말이었는지, 하운철 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런 하운철 대표의 표정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5년 안에 혜성 그룹은 포르쉐를 인수할 겁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아시겠지만, 포르쉐는 현재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당장 인수해도 가능할 정도지요.”

물론 지금 당장 인수할 생각은 없었다.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다 내후년이 더 어려울 포르쉐였으니까.

적어도 4~5년 정도 묵혀두고 포르쉐의 가치가 가장 낮게 평가받을 때 인수에 나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부회장으로 오시지요. 이참에 스포츠카를 소유만 할 것이 아니라,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회사의 대주주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제가 혜성 그룹 부회장이 된다면 포르쉐의 지분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정확히는 지분 인수의 기회를 부여할 생각입니다. 최대 주주는 물론 제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지분을 하운철 대표에게 공짜로 줄 수는 없는 일.

그러니, 정당한 대가를 받고 하운철 대표에게 매각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하운철 대표에게는 이조차도 감지덕지할 것이다.

그가 혜성 그룹 부회장으로 있는 한, 사실상 포르쉐의 대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테니까.

“이거 참,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십니다.”

“그만큼 하운철 대표님이 꼭 필요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허허, 지금도 잘하고 계시는데, 구태여 저 같은 늙은이를 필요로 하시다니.”

“설마 이번에도 거절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죠?”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하운철 대표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희의 기분이 어떤지 지금은 왠지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황희를 거론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운철 대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몇 년을 더 일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장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

드디어 부회장이 생겼다.

그것도 재벌 회장 출신의 유능한 부회장이.

‘이제 아무런 걱정 없이 외국을 쏘다녀도 되겠어.’

권오중 회장이 그러했듯, 나 역시 앞으로 세계 경영을 할 생각이었다.

당장 이번 달에만 미국 일정과 사우디아라비아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든든하기 그지없는 부회장이 생겼으니 마음 놓고 한국을 떠나도 될 거 같았다.

* * *

역시나 재벌 회장 출신이어서 그런 것일까?

하운철 대표, 아니, 하운철 부회장은 부회장으로 취임하기 무섭게 혜성 그룹 임원들을 휘어잡았다.

혜성 자동차 임원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혜성 전자나 혜성 반도체 그리고 그 외 계열사의 임원들 모두가 하운철 부회장을 자신의 상관으로 인정한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신망이 두터운데?’

만약에 내가 그릇이 없거나,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괜히 불안하게 여겼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하운철 부회장의 사내 영향력은 단기간에 엄청난 수준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반기고 있었다.

어차피 지분부터가 절대적이었고, 하운철 대표의 나이도 나이이다 보니 걱정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한국에서의 일은 하운철 부회장님께 맡기겠습니다.”

마침내 미국 출장의 날이 오자, 나는 하운철 부회장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아직 업무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는데, 벌써 외국으로 떠나십니까?”

“급한 일은 전화로 물어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이거 참, 저를 너무 믿으시는 것은 아니신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몇 년인데요.”

“허허.”

황당한 눈빛을 보내는 하운철 부회장을 일별하고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은 한창 추운 날씨인데, 캘리포니아는 언제 와도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적당한 거 같군.’

캘리포니아도 벌써 다섯 번째였다.

그런데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 날씨부터가 한국과 사뭇 다르다는 점이었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상적인 날씨.

‘하지만 그래도 지진이 잦으니, 무조건 좋다고 볼 수도 없는 일이겠지.’

작년에도 꽤 큰 지진이 있었다.

내가 오늘 만나려는 레오 매카시 부지사도 이 지진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지진으로 사망자만 거의 3백 명이 나왔으니, 부지사가 고생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제가 너무 자주 찾아뵙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아니, 뭐 그런 걸 말씀을 하고 그러십니까. 저는 회장님이 자주 찾아오면 찾아올수록 기쁠 따름입니다.”

레오 매카시 부지사는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나저나 요즘 혜성 그룹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립니다.”

“혜성 그룹의 이야기라면?”

“주 정부에서도 혜성의 이름이 거론될 때가 많습니다. 미래가 기대되는 기업이라면서, 모두가 주목하더군요.”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서 우리 그룹을 좋게 봐주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좋게 볼 수밖에요. 혜성만큼이나 주 정부의 정책을 잘 따라주는 외국 기업이 어디 있습니까. 하하.”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혜성 자동차의 경우, 미국 시장에 완벽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공격적인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내지 않아도 될 세금까지 내고 있었는데, 이러니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우리를 좋게 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공장도 계속 늘리는 중이기도 했고 말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캘리포니아에 왔으니, 캘리포니아의 법에 따라야지요.”

“역시 회장님입니다. 일본 기업들도 회장님을 본받았으면 좋을 텐데…….”

말끝을 흐리던 레오 매카시 부지사는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일본 기업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회장님 조금 경각심을 가지셔야 할 거 같습니다.”

“경각심이라면?”

“최근 들어 일본 기업들의 로비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반도체와 가전까지 말입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했던 일이긴 해도, 일본의 견제가 시작됐다는데,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공화당의 경선 후보들과도 접촉하고 있는 것이, 내년 1월에 주지사 선거가 끝난다면, 회장님에게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지사 선거라.

그러고 보면 주지사 선거도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의, 그것도 캘리포니아라는 일개 주의 선거지만 나 역시 이 선거에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금의 주지사는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지만, 차기 주지사는 어떨지 모르지.’

만약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일본 기업들과 끈끈한 사이라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로선 좋을 것이 없었다.

부지사인 레오 매카시만 해도 캘리포니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주는데, 주지사 정도 되는 권력자라면 혜성 그룹의 사업을 방해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혹시 주지사 선거에 나갈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주지사 선거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레오 매카시 부지사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반문하였다.

하지만 그가 괜히 나에게 경고해준 것이 아닐 것이다.

일본 이야기를 꺼내며 나에게 경고한 것은 자신이 주지사가 되어야 할 당위성을 설파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주지사 선거에 나가실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글쎄요.”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계시는데, 주지사도 한 번쯤 도전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절대적인 지지라니요. 기껏해야 부지사인 저를 알아준다고 얼마나 알아주겠습니까.”

“현재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이 교육 아닙니까? 그리고 부지사님은 교육에 있어서 가장 전문가시고 말입니다.”

한국도 교육열이 상당한 편에 속하는 국가였지만, 미국이라고 교육열에 무관심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주들은 오히려 교육에 관심이 지대한 편인데, 캘리포니아도 바로 그런 주에 속하였다.

최근 들어 낙후된 교육 시스템과 교육의 질 저하 등으로 여러 분야에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었기에 더더욱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내년에 있을 주지사 선거의 최대 쟁점은 교육이 되리라.

“회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용기가 생기는 거 같기도 합니다.”

“주지사 선거에 나가신다면, 제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레오 매카시 부지사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진 못했지만, 미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선거에 나가는 것은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니.

표정만 보면 이미 경선에 나간 표정인데 말이다.

‘뭐가 됐건, 레오 매카시를 주지사가 되게 만들어야겠어.’

물론 레오 매카시 부지사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는 일.

전경련의 다른 재벌 총수들에게 부탁해서 공화당 정치인들과도 인맥을 쌓는 과정이 필요할 거 같았다.

그래야 만에 하나 일본이 후원하는 후보가 당선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 *

레오 매카시 부지사와의 만남 이후로, 빌 클린턴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을 만나며 사교 활동을 벌였다.

“이번 주말에 파티가 있는데, 미스터 리가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세요.”

“제가 껴도 될 자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걱정 마세요. 사람들이 미스터 리를 많이 좋아합니다. 레이디들은 미스터 리의 잘생긴 얼굴을 보겠다고 안달입니다. 하하.”

인맥이 한두 명 생기니, 각종 모임에도 초대받기 시작했다.

정계 모임에, 재계 모임, IT 모임 등등.

의외인 것은 혜성 그룹의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다는 점이었다.

IT야 그렇다 치고, 사업가들은 기본적으로 혜성 그룹을 알고 있었다.

‘근데 웃기게도 나를 일본 사람이라 생각하고 적대하는 이들도 꽤 있군.’

미국인들이라고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미국 기업가들의 경우, 대부분이 일본을 경계하고 있었다.

소니가 파죽지세로 CBS 레코드 그룹에, 미국의 정신적 아이콘 중 하나인 컬럼비아 픽처스 영화사까지 인수한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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