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재계의 중심이 되어야 할 때지
뭐랄까.
김영산 대통령은 다혈질적인 면이 있었다.
또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은 성격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김영산 대통령은 일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지.’
한국인 중에 일본이란 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냐마는, 아마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일본에 거부감을 가진 대통령이 김영산 대통령일 것이다.
기업가인 나와 대화할 때도 종종 일본에 대한 반감을 털어놨을 정도였다.
그러니 원 역사에서 그랬듯, 갑자기 조선총독부를 폭파한다 해도 절대 이상하게 볼 일은 아니었다.
“우리 초계기가 자기들 영공을 침범했다고 억지를 부리다니! 초계기는 분명 우리의 영공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현재 일본과의 갈등은 해군 초계기가 일본의 영공을 침범한 일로 촉발되었다.
물론 이 침범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주장일 뿐이었다.
레이더의 성능이 미래의 그것처럼 완벽하지 않았고, 일본에서 해군 초계기가 침범했다고 주장하는 시간이 겨우 30초에 불과하였다.
김영산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일본이 억지를 부린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명분만 찾고 있던 일본이니, 기회라고 여겼을 거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후의 대응만 봐도 일본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확실치도 않은 정보로 일본 자위대 항공기까지 대거 끌고 와서 우리를 위협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그 정도로 끝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가능성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전 정권들과 달리, 일본과의 관계를 그리 중요시하지 않은 것이 김영산 정권이었다.
더군다나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일본의 중요성도 이전보다는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졌으니, 일본과 협력할 필요도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여론도 반일 감정으로 가득하기에, 대일 관계는 꾸준히 악화하였고 일본에서도 이런 한국의 상황을 불쾌하게 여겼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니 해군 초계기가 자신들의 영공을 침범했다는 명분으로 어떻게든 우리나라를 압박하려 한 것이리라.
“언제까지 우리나라가 일본에 핍박과 무시를 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반드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고 말 겁니다.”
무척이나 분노했다는 듯, 콧김을 뿜어내는 김영산 대통령이었다.
나는 그런 김영산 대통령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시겠다는 말씀은?”
“마음 같아서는 조선총독부를 당장이라도 철거하고 싶습니다.”
“…….”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보니, 조선총독부를 당장 철거할 생각은 없는 듯싶었다.
‘언젠가는 철거하긴 해야겠지만, 지금은 조금 이르지.’
대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 나로서도 좋을 것은 없었다.
안 그래도 일본 기업들의 견제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인데, 대일 관계까지 악화하면 도시바와 도요타뿐만이 아니라 일본 정부까지 나서서 혜성을 견제할 것이다.
아직 대비가 끝난 것이 아니었기에 혜성 그룹에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일본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겠지요.”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클 거 같습니다.”
“이 회장님도 지금 당장 일본과 충돌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시겠지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일본과 충돌이 안 생기겠습니까?”
“음, 이전 정권들처럼 대일 관계를 최대한 원만하게 풀려고 한다면, 충돌이 생길 일이 있겠어요?”
“우리나라의 국력이 이전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점점 일본을 위협하고 있는데, 아무리 우리가 우호적으로 나선다고 일본이 우리를 고운 눈으로 볼 일은 없을 거 같습니다.”
더군다나 공산주의 체제도 붕괴한 이후였다.
한국, 일본 사이에 공공의 적이라 할 만한 나라도 이제 북한뿐이니, 서로 공조할 일도 그만큼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영산 대통령은 내 생각과 다른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물론, 군사력이야 빠르게 치고 올라가고 있다고 해도, 어차피 일본은 군대를 둘 수 없는 국가이니 군사력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 같은데요.”
“일본 경제는 거품입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지요.”
“거품이라.”
“지속적으로 인하되는 엔화 환율로 일본 기업들은 수출 경쟁력에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에 공장을 짓는 식으로 투자처를 변경하고 있지요.”
“확실히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 거 같습니다. 해외 부동산도 많이 매입하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너무 가파르게 올라서 투자가치가 상실하게 되었죠. 그로 인해 국내 자본이 해외로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그러면 일본에 불황이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길어야 2년. 빠르면 올해 안에 일본의 경제는 붕괴하게 될 겁니다.”
내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그 같이 말하자 김영산 대통령이 눈을 크게 떴다.
언론에서는 일본이 곧 미국의 경제력을 넘어설 거라며 떠들어대는데, 정작 혜성 그룹 회장인 내가 일본 경제의 붕괴를 예측하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비효과를 걱정해서 최고 2년까지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지금의 일본 경제는 사실상 1년 버텨도 많이 버틴 상태였다.
이미 자산 가격이 붕괴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산 가격이 붕괴하면 자연스럽게 소비가 줄어들고 기업들은 불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부동산을 이때까지 가지고 있었으면 매각을 할 수가 없었겠지.’
가격이야 지금이 최고점이긴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지금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사람은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손해를 보고 팔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조차도 쉽지 않겠지만.
“길어야 2년이라.”
내 말에 김영산 대통령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제 임기 안에 일본 경제가 붕괴하는군요.”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클 겁니다.”
“조선총독부 철거 시점을 언제로 정할지 고민이었는데, 그때가 제격인 거 같습니다. 하하하.”
통쾌한 웃음을 짓는 그를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영산 대통령의 성향이라면 언젠가 조선총독부를 철거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철거 시점을 알려줬으니, 그 전에 대비할 수 있어서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 * *
김영산 대통령과의 독대는 확실히 소득이 있었다.
일본과 충돌할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게 된 셈이었으니 말이다.
‘미국에서의 견제가 한층 더 강화되겠어.’
아마 1~2년 동안은 방해를 많이 받을 거 같았다.
나는 일본과 달리 공화당과의 인맥이 거의 없는 편이니까.
하지만 빌 클린턴이 당선된 이후라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일본과의 충돌을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한철 명예회장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이소희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일단 앉는 게 좋을 거 같다.”
“예.”
자리에 앉자, 그가 말했다.
“대통령과 독대하였다고 들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너는 온 나라가 주목하는 혜성 그룹 회장이야. 네가 50분 독대했다는 사실도 아마 재계 인사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군요.”
“재계 1위가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너는 지금까지 잘했으니,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만 하면 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거 같은데, 맞느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이한철 명예 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재벌 총수들과 독대할 때도 일본과의 충돌을 이야기하며 대비하라 경고하던데, 정말 양국의 사이가 틀어지기는 틀어진 모양이구나.”
“일본의 역사 도발로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 국민 여론까지 강경 일변도를 취하고 있으니, 사이가 나빠질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전경련에서 이 문제로 말들이 많다.”
“그렇습니까?”
뭐 뻔한 일이었다.
재계 1위인 혜성 그룹도 일본과의 충돌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다른 기업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샤롯 그룹이 가장 곤란한 처지겠어.’
김영산 대통령이라면 샤롯 그룹을 강하게 압박하여 일본 기업인지, 한국 기업인지 하나로 딱 정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만약 일본과 충돌이 벌어진다면, 혜성 그룹은 괜찮을 거 같으냐?”
“안 그래도 혜성 반도체와 혜성 자동차 임원들에게 일본과 충돌할 때 벌어지는 시나리오를 주제로 전략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래?”
“예. 일단 혜성 그룹은 대일 의존도가 낮은 편이라, 크게 위기를 겪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다만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미국에서의 영업입니다.”
“일본의 로비를 걱정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흠.”
이한철 명예회장은 턱 끝을 쓰다듬더니, 내게 물었다.
“전경련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겠느냐?”
“전경련이라면?”
“너는 모르겠지만 의외의 인맥을 가진 재벌 총수들이 많다. 도레미 그룹의 정성원 회장도 미국 공화당 정치인들과 교류를 많이 하였고, 서행 그룹 진 회장은 사위가 미국인인데, 그 미국인의 부친이 상원의원이라더구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솔직히 정우 그룹의 권오중 회장이나 샤롯 그룹의 신진호 회장 정도가 아니라면 다른 재벌 총수의 해외 인맥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룹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상원의원에, 공화당 정치인들까지 인맥을 두고 있었다.
역시 그룹 매출만으로 인맥이 결정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좋기는 한데, 다른 그룹의 도움을 받으면 저희 쪽에서도 무언가를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 하지만 재계 여론의 방향을 잘 이끈다면 큰 대가를 주지 않아도 인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위기 상황 때 인맥을 공유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만 여론이 흘러간다면 나야 나쁠 게 없었다.
어차피 발언권은 전경련 회장인 이한철 명예회장이 가장 컸고, 실질적인 매출도 우리 혜성이 가장 높았다.
결국 우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다른 기업의 인맥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아버지가 전경련 회장이 됨으로써 이런 효과도 얻게 되는구나.’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이한철 명예 회장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니 그렇게 예를 차릴 필요 없다.”
“아닙니다. 저는 민주당 의원들 하고만 인맥을 형성한 상태여서 제법 곤란했었는데, 아버지 덕에 인맥을 크게 넓힐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야.”
“앞으로도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네가 잘하고 있는데 조언까지야. 그래도 한 가지 조언 아닌 조언을 해 주자면, 다른 재벌 총수들과의 관계도 신경을 쓰는 게 좋겠다. 재계 1위가 되었으니, 사실상 재계의 리더가 된 것인데, 너는 너무 다른 기업에 무신경한 거 같아.”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전 일성 그룹이 재계 1위 하던 시절, 이병철 회장은 같은 재벌 총수들에게도 존경받았었다.
왕주형 명예 회장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재계 1위가 되었지만,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저 자산 규모가 다른 기업들보다 훨씬 더 큰 재벌 총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임을 자주 나가기는 해야겠군.’
재계의 어른으로 확실하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야지만 언젠가 정치권력에 저항하려고 할 때, 재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문제야. 모임 같은 곳에 나가면 안 그래도 부족하던 시간이 더 부족해질 것인데…….’
역시 부회장감을 하루빨리 찾든가 해야 할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