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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34화 (234/300)

234화 이번 기회에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

“미스터 리. 이쪽은 미스터 리가 만나고 싶어 했던 민주당의 젊은 정치인입니다. 민주당에서 가장 세련되고 유망한 분이지요.”

“아칸소 주의 주지사인, 빌 클린턴이라고 합니다. 미스터 리와는 꼭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무척이나 친근감 있게 느껴지는 미소를 짓는 미래의 대통령을 보며 나는 속으로 감탄하였다.

언젠가 만나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리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내가 억지로 접촉한 것도 아니었다.

친분이 있는 척 로저스라는 로비스트가 빌 클린턴을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설마 빌 클린턴 쪽에서 먼저 접촉해 올 줄이야.’

나는 딱 빌 클린턴을 지목하여 소개를 요구하진 않았다.

그저 혜성 그룹에 우호적인 젊은 민주당 정치인을 소개해달라고 했었는데, 빌 클린턴 쪽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지금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저는 그저 유망한 정치인을 뵙고 싶었는데, 설마 차기 대통령님을 소개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 화답에 척 로저스와 빌 클린턴이 기분 좋게 웃었다.

지금의 그들로선 농담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말이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 대통령이 될 생각은 있지만, 차기 대통령이라니. 하하하, 케네디 대통령 이래로 최연소 대통령이 되겠군요.”

“차기 대권에 도전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아쉽게도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너무 커서 제가 야욕을 부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이걸 겸손한 말이라고 봐야 할까?

뭐, 한국이었으면 40대 초중반의 정치인인 그가 대통령 자리에 욕심을 낸다는 사실 하나로 겸손하단 평가를 듣기는 절대 불가능했겠지만 말이다.

“클린턴 주지사님, 미스터 리에 관해서는 따로 소개를 안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괜히 미스터 리를 뵙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평소에도 혜성 그룹에 관해 관심이 있었으니, 따로 설명해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의 답변에 나는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어디까지나 정치인 특유의 과장 섞인 말이겠지만, 어쨌든 빌 클린턴이 나에게 우호적이라면 나쁘게 볼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가 이 자리에 낄 필요는 없겠군요. 두 분께서 즐거운 시간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용주이신데 이 정도야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척 로저스가 그리 말하며 자리를 비워주었다.

그러자 빌 클린턴이 물었다.

“척 로저스 씨와는 어떻게 안면을 트시게 되었습니까?”

“캘리포니아의 레오 매카시 부지사와 친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척 로저스 씨와도 친분이 생겼습니다.”

정확하게는 레오 매카시와 친해지기 전에 로비스트인 척 로저스를 고용한 것이었지만, 구태여 모든 일을 솔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캘리포니아의 부지사쯤 되는 인물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만 공개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이제 보니, 미국에서의 인맥도 상당하신 거 같습니다. 이거, 저보다 인맥이 좋으신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정치에 입문한 뒤로 아칸소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거든요. 하하하.”

“그렇다면 더 대단하십니다. 아칸소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도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으신 거 아닙니까?”

“전국적이라니요. 아칸소에서도 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인데요.”

“미국 사람이 아닌, 저조차 빌 클린턴 주지사님을 알 정도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 말에 빌 클린턴은 피식 웃더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척 로저스 씨가 말씀하시길, 미스터 리는 젊은 민주당 정치인과의 친분을 원한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역으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나라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사우스 코리아를 말씀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던 입장이긴 하지만, 사우스 코리아는 베트남 전쟁을 함께 했던 미국의 동맹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실 저는 지금의 한국 대통령인, 김영산 대통령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김영산 대통령을 존경한단 말씀입니까?”

“한국의 완전한 민주화 실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한 분이잖아요? 민주주의 국가의 사람으로서 그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외였다.

존경한다는 말이야, 정치인 특유의 표현이라고 쳐도 김영산 대통령을 단순히 한국의 대통령으로만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인물이란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한국을 잘 안다고 하니, 말하기가 편하겠군요. 아까 저에게 질문하셨던 것에 관해 답변해 보자면 저는 민주당 정치인과의 친분을 원합니다. 이유는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시겠지만, 한국은 일본의 이웃 국가입니다. 그리고 아픈 역사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일본 역시도 한국을 싫어하고 심지어 일본 기업은 미국에서 한국 기업의 활동을 방해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혜성 그룹도 그러면 일본 기업의 견제를 받고 있습니까?”

“예. 도요타는 물론이고, 일본 반도체 기업들도 혜성 그룹을 견제하는 중입니다.”

“젊은 민주당 정치인과의 친분을 원한 것도 그러면?”

“맞습니다. 일본의 정치 인맥에 대응하기 위해, 저도 준비하려고 하는 겁니다.”

빌 클린턴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당 정치인으로서, 아니 미국 정치인으로서 일본의 힘을 모를 수는 없었다.

매년 엄청난 돈을 써가며 미국에 친일파 정치인을 양성하고 후원하는 게 일본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는 빌 클린턴 주지사님을 소개해 준, 척 로저스 씨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하, 저를 너무 높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빌 클린턴 주지사님. 제가 아까 처음으로 했던 말은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 같이 말했다.

그러자 빌 클린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저를 차기 대권 주자로 생각하는 겁니까?”

“주지사님께서 차기 대통령이 될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

“허. 제 와이프조차도 그런 생각을 안 할 텐데, 오늘 처음 본 미스터 리가 그런 생각을 할 줄이야.”

“부디 제 말을 허언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차기 대통령이 될 주지사님을 위해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칸소 주에 대규모 투자를 해주시는 것도 가능합니까?”

빌 클린턴이 농담하듯 그렇게 묻자,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였다.

“아칸소 주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겠습니다.”

“……!”

눈을 부릅뜬 그의 표정을 보며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것은 무조건 해야 할 일이었다.

도요타조차도 미국에 조 단위의 투자를 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자동차 공장을 세우려면 남부가 적합하지.’

빅 3이 뭉쳐있는 북부 지역에 비해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한 것도 장점이었다.

물론 미국의 땅덩어리는 워낙 거대하니, 남부라고 해도 선택지는 많았지만 말이다.

* * *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

빌 클린턴과의 대화는 잘 마무리되었다.

아칸소 주에 공장을 세우겠다는 약속까지 했으니, 빌 클린턴이 나를 어떻게 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적어도 외국의 기업가 중에서는 가장 우호적으로 보지 않을까?

물론 그의 대선 때 내가 얼마나 도와주냐에 따라 또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근데 나 때문에 괜히 나비효과가 발생해서 대통령이 안 되는 것은 아니겠지?’

잠깐 그런 걱정도 해봤지만, 크게 문제 될 게 있을까 싶었다.

내가 빌 클린턴을 방해하는 쪽이라면 모를까, 도움을 주는 쪽이니 안 좋은 방향으로 나비효과가 발생하지는 않을 거 같았다.

뭐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대처해도 될 일이고. 지금 내가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공화당 정치인들과도 인맥이 생겼으면 좋은데, 그건 조금 아쉽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빌 클린턴과의 인맥이 생기니 이제는 공화당 정치인들과의 인맥이 아쉬워졌다.

아무래도 빌 클린턴의 인맥은 공화당 시대인 지금으로선, 크게 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화당 정치인들의 콧대를 생각하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하였다.

‘그나저나 미국에서도 HS-90의 반응이 심상치 않군.’

빌 클린턴과 레오 매카시 그리고 스티브 잡스 등과 만남을 가진 나는 HS-90의 미국 현지 반응을 살폈다.

아직 출시한 제품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유출된 정보에 불과한데도 미국인들의 반응은 썩 나쁘지 않아 보였다.

휴대폰 사용자가 가장 많은 미국이다 보니, 기존 휴대폰의 불편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서 그러는 거 같았다.

‘심지어 빌 클린턴조차 HS-90에 관해 이야기할 정도니 더 말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토로라도 출시 일정을 보름이나 앞당긴 거 보니, 어지간히 충격받은 듯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 * *

귀국하니, 마치 내가 한국에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고영태 비서실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통령님께서 회장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김영산 대통령과의 만남이라.

1990년이 되었으니, 한 번쯤 만날 생각이었긴 했지만 이건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혹시 저를 찾으시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일본과 관련하여 상의하실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일본이라.

고영태 비서실장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전히 아리송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 묻지 않고 약속 날까지 기다렸다.

토요일이 되어 청와대로 향하니, 김영산 대통령이 나를 반겨 주었다.

“이 회장, 어서 오세요.”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와대에서의 독대는 오랜만이었지만 크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3년 뒤,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될 남자와 만나고 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내 담이 커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사업차 미국에 갔다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자동차 공장 유치 문제로 빌 클린턴 아카소 주지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그래요?”

일부로 빌 클린턴을 언급하였지만, 김영산 대통령의 반응은 싱겁기 그지없었다.

하긴, 지금의 빌 클린턴은 무명 인사나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없으니, 그의 반응이 싱거운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이 회장은 미국 정치인과도 친분이 두터운 거 같습니다.”

“아닙니다. 그저 사업적인 이야기로 몇 차례 만났을 뿐입니다.”

“미국에서의 사업은 잘되고 있습니까?”

“자동차나 반도체 사업은 잘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가 문제일 거 같습니다.”

“왜요? 제가 봤을 때, 혜성 그룹은 모든 사업이 순탄하게 잘 되고 있다 들었는데, 뭐가 걱정이십니까?”

“아무래도 일본이 저희 혜성을 의식하기 시작해서 말입니다.”

“큼, 일본이라.”

“그러고 보니, 비서실장이 일본과 관련하여 상의할 것이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하던데, 혹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내 말에 김영산 대통령은 노여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회장도 요즘 대일 관계가 어떤지는 알고 있을 겁니다.”

“물론입니다. 일본의 고위 관료가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과 관련하여 일본이 좋은 일도 했다는 식의 망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대일 관계가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고 싶습니다.”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총독부를 부수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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