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도요타도 3년이면 충분하다
6일, 서해안 개발 추진위원장인 김태중 국무총리가 광주로 향하였다.
“광주의 첨단 산업기지와 대불 산업기지 건설을 위해 올해 안에 3조 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찰칵! 찰칵!
김태중 국무총리가 서해안 개발 투자계획 확정안을 밝히자 기자들이 특종을 외쳤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기 때문이었다.
‘이 확정안이 언론에 보도된다면 광주는 물론이고, 전라도 전체가 떠들썩해지겠군.’
아마 김태중 국무총리의 지지율이 훨씬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뭐 원래도 전라도에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김태중 국무총리가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광주까지 따라왔지만, 아직 내가 나서야 할 때는 아니었다.
그러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마침내 김태중 국무총리와 접견할 기회가 생겼다.
“이 회장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 정도야 예상했던 일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회장님과 대화하고 싶었는데, 기자들이 쉬이 놓아주지를 않더군요. 정말 끈질기기 그지없었습니다.”
“국무총리께서 그만큼 중임을 맡고 계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저 국민의 뜻을 대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김태중 국무총리는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그 같이 말하더니, 불쑥 물음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질문일 수 있으나, 이 회장님의 생각이 계속 궁금하더군요. 이 회장님은 서해안 개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일개 기업인이 어찌 정부의 일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제 앞에서는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어떻게 이 회장님을 일개 기업인으로 여기겠습니까? 솔직한 답변을 해주셔도 문제 삼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솔직한 답변을 원한다고 하셔도, 저야 시기적절했다고밖에 답변해드릴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시기적절이라. 이 회장님도 중공과의 수교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까?”
“물론입니다. 헝가리와 폴란드와는 이미 수교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중공과 수교할 날도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김태중 국무총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를 단언하여, 요즘 들어 크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대실패’의 번역본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누구나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를 예상하였다.
이미 동유럽의 공산 정권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었던 까닭이다.
심지어 소련부터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누가 보더라도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시간문제처럼 보여졌다.
‘그러고 보면 권오중 회장도 지금쯤이면 내가 했던 예측이 단순한 예측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겠군.’
내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는데, 김태중 국무총리가 말문을 열었다.
“이 회장님의 예상이 그렇다고 하니, 지금 시점에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예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회장님의 예상은 지금껏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지 않습니까?”
“설마 그렇겠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냐는 식으로 답변했지만, 사실 내 예측의 정확도는 거의 100%에 근접하기는 했다.
노사가 직접 보고 온 미래를 토대로 예측하는 것이니 정확도가 높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회장님도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이종석 의원과 만나는 이유도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 때문이겠지요?”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김태중 국무총리는 이종석 의원과 만난 일에 관해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어느 정도를 노리고 있습니까?”
“예?”
“수주 규모를 묻는 겁니다.”
“제 목표는 업계 1위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수주를 최대한 많이 받아내고 싶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김태중 국무총리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데,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혜성 건설은 시공 능력에 비해 지금까지 관급 공사의 비중이 턱없이 낮았다고 들었습니다. 해서, 형평성을 고려하여 이번 서해안 개발에는 혜성 건설이 수주를 많이 따낼 수 있게끔 배려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해안 개발 추진위원장인 김태중 국무총리까지 이런 답변을 줬으니, 서해안 개발에서 대형 수주를 따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 같았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지, 혜성 건설에 특혜를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늘 바랐던 것이 공평함이었습니다. 저로서는 공평하게 일 처리를 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5공 때부터 혜성 건설이 얼마나 푸대접을 받아왔던가.
심지어 정권이 바뀌고, 혜성 그룹이 빅 4가 된 이후로도 국내의 관급 공사는 사실상 포기해야 했었다.
이미 기반을 다진 기존의 건설사를 밀어내고 수의계약을 따내려면 어지간한 뇌물로는 안 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뇌물이야 주자면 못 줄 것도 없지만, 수지타산에 안 맞았다.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큰 공사가 국내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마침 정부와의 관계도 좋고 위원장을 맡은 김태중 국무총리와도 관계가 원만하니 이번 기회에 대형 수주를 연달아 받아내고 마리라.
“그나저나 이번에 수주를 많이 따내신다면, 혜성 그룹이 재계 1위가 되는 것도 필연이나 다름없겠습니다.”
“미래 그룹도 수주를 많이 따낼 것이니, 괜히 기대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만에 하나 올해, 미래 그룹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해도, 1990년대에는 반드시 혜성의 시대가 오지 않겠습니까?”
혜성의 시대라.
그야 그럴 것이다.
1990년대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내년부터 바로 혜성의 시대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혜성 그룹이 마침내 재계 1위가 된다면, 이 회장님의 그다음 목표는 무엇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왜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숨길 이유는 없었기에 솔직하게 답변하였다.
“당연히 세계를 노리는 겁니다.”
“세계라.”
“예. 저는 애초에 국내에서의 순위에 크게 연연하고 있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제 목표는 세계의 유수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물론 세계를 노리면서 국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싶습니다. 방위산업을 키운다던가, 더 많은 근로자를 뽑는 식으로.”
내 말에 김태중 국무총리는 다행이란 얼굴로 말했다.
“이 회장님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요.”
“무엇을 걱정하셨기에?”
“사실 대통령님과 제 정치 성향은 많이 다른 편입니다. 대통령님이 조금 더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한 가지, 견해가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기업의 비중을 낮춰야 한다는 점입니다.”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김영산 대통령도 그렇고, 김태중 국무총리까지 대기업을 견제할 생각만 하고 있으니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뭐 사실 우리나라가 대기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실 혜성 그룹의 미래에 관해서도 걱정이 많았었는데, 이 회장님의 답변을 들으니 당분간은 안심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분간?
왠지 이 말이 경고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나중에 혜성 그룹이 엇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면 언제든 수를 쓰겠다는 뜻이 아닌가.
“혜성 그룹의 존재는 이 나라에 있어 득이 됐으면 득이 됐지, 해가 될 일은 결단코 없을 겁니다.”
“저 역시 그럴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제가 너무 시간을 많이 뺏은 거 같습니다.”
“아닙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이 회장님,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꼭 다시 한번 뵀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이었으면 기분 좋게 들렸을 말인데, 지금은 뭔가 미묘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가 했던 경고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그걸 티 내봐야 좋을 게 없었기에 웃으며 시간 나면 언제든 불러 달라고 대답하였다.
* * *
김태중 국무총리와의 접견은 마무리가 조금 찝찝하게 끝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공사 수주에 관해 확답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나쁘게 볼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원래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뭐, 사실 김태중 국무총리의 생각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가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더 빠르게 성장해주면 그만이니까.’
그가 우려하는 거야 뻔했다.
혜성 그룹이 모든 시장을 잠식하여 중견 기업이 대기업으로 확장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기업이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겠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도 우려스러울 테고.
하지만 전자의 경우 그가 우려한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괜히 전자 사업이나 반도체 사업, 자동차 사업에 주력한 것이 아니었다.
자잘한 것은 버리고 큰 것 위주로 챙기겠다는 내 생각이 강하게 들어간 것인데, 식품이나 건설 같은 사업도 굳이 독과점할 생각은 없었다.
나 역시 경쟁자 없는 사업은 세계 경쟁에서 도태될 뿐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후자의 경우야 솔직하게 말하면 김태중 국무총리의 우려가 틀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미래 그룹 정도의 규모만 되어도 국가가 함부로 괴롭힐 수가 없었다.
근로자만 해도 수십만 명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미래 그룹보다 규모가 커진다면?
그때부터는 갑을 관계가 역전될 수가 있었다.
근로자 가족까지 합치면 동원 가능한 투표 인구가 무려 백만이 넘게 된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목표도 바로 이거였다.
국내의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뜻이었다.
‘3년 안에 도요타 그룹만큼 규모를 키워보자. 그러면 설령 김태중 국무총리가 혜성 그룹을 견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도 감히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할 거야.’
결코 비현실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1조도 안 되는 매출로 시작해서 10조가 넘는 매출을 이룬 것이 바로 나였다.
그게 불과 7년 만에 이룬 성과니, 지금의 혜성 그룹이 도요타 그룹을 3년 안에 따라잡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고 보기 어려웠다.
‘아니면 아예 이종석 의원을 밀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지.’
예전에는 이종석 의원은 쓰다 버리는 용도로만 생각했었다.
여당의 실세라고는 하나,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윗사람 행세하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종석 의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일단 그의 태도 변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는데, 오만하기는커녕 이제는 공손하게 나를 대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태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기도 했다.
심지어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혜성 그룹을 밀어줘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고 있기까지 하였다.
나를 절대적인 아군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뭐, 이종석 의원도 대통령이 되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결국엔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건, 혜성 그룹의 자체적인 역량을 길러야 했다.
* * *
왕주형 명예 회장은 이번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가 미래 건설이 제2의 도약을 할 기회라고 여겼다.
물론 대부분의 건설사가 같은 생각이겠지만,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미래 건설이었다.
누가 뭐래도 업계 1위는 미래 건설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왕주형 명예 회장은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또 혜성 그룹이 문제구나!’
혜성!
몇 년 전까지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기업인데,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혈압이 올랐다.
미래 그룹의 창업주인 그가 이렇게까지 의식할 정도로 혜성 그룹은 규모를 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