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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23화 (223/300)

223화 얼결에 1위가 되어 버렸다

혜성 식품과 혜성 제과를 불시 검사하였지만, 의외로 크게 문제 되는 것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혜성 식품이나 혜성 제과의 경영진으로서는 당연히 위생 문제를 철저하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성격을 모르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그렇다 해서 100%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여전히 비위생적인 환경에 놓여 있는 공장은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 라면 제품에 공업용 우지가 사용된다는 것이 문제처럼 여겨졌다.

“왜 공업용 우지를 쓰는 겁니까?”

나는 혜성 식품 대표, 진용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진용진 대표는 잘못한 게 없다는 듯,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세상에 공업용 우지라는 말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우지라고 해서 오해하는데, 모든 식용 기름은 원유에서 출발합니다. 콩기름도 짜면 처음에는 원유, 채종유도 짜면 원유, 샐러드유도 원유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회사에서 사용하는 우지는 2, 3등급인데, 이건 문제될 것이 없는 겁니까?”

“1등급은 이터블탤로라고 해서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우지를 뜻합니다. 하지만 1등급 우지는 소 한 마리 잡아야 한 주먹 나올 정도에 불과합니다. 맥도날드도 그렇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2, 3등급 우지를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용진 대표의 말에 나는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노사는 우지를 안 좋은 기름이라는 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우지는 수십 년간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식품으로는 위반될 게 전혀 없고, 심지어 미국에 보내서 분석해본 결과, 97개 항목에서 해로운 것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들으면 들을수록 진용진 대표의 말이 맞는 거 같았다.

아무래도 노사가 우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노사라고 완벽한 사람일 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노사가 경고한 것은 단순히 우지를 써서 인체에 유해한가가 아니었다.

우지 파동.

올해에 벌어질 우지 파동이란 것을 대비하라는 경고였다.

“저는 그래도 찝찝하단 생각이 듭니다.”

“예?”

“팜유를 쓰는 것은 어떻습니까?”

“……저희는 지금까지 수십 년간 우지를 사용해왔는데 갑자기 기름을 바꾸면 맛에 영향이 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팜유가 조금 저렴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가격이야 저렴해도 맛에 영향이 간다면, 오히려 손해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라면 경쟁이었다.

맛에 영향이 간다면, 아무리 원가가 저렴해져도 절대 이익이라고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동물성 기름이라 오히려 영양에도 좋다고 하니, 우지를 쓰는 게 여러모로 합당해 보였다.

“죄송하지만 이번만큼은 제 뜻에 따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팜유를 쓰라는 말씀입니까?”

“예, 아무리 생각해도 우지보다는 팜유가 더 나을 거 같습니다.”

나는 팜유보다 우지가 더 낫다고 판단했으면서도 그 같은 결정을 내렸다.

사실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지가 나은지, 팜유가 나은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우지 파동으로, 우지를 쓰는 기업들은 이미지가 엄청난 수준으로 추락하고 이후의 대세는 팜유가 된다는 사실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내가 영향력을 총동원한다면 우지 파동 자체를 막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할 수는 없다.’

혜성 그룹이 미래 그룹만큼 영향력이 강했다면.

나는 구태여 우지를 포기한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용진 대표의 말처럼, 우지가 팜유보다 라면에 적합한 기름이라면 우지를 쓰는 것이 합당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혜성 그룹의 영향력은 빅 4 수준에 불과하였다.

“……알겠습니다. 회장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대답하는 진용진 대표를 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새삼스레 혜성 그룹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내가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우지를 팜유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리자, 혜성 식품 임직원 사이에서는 말들이 많았었다.

대부분이 샤롯 출신이었던 혜성 식품 임직원들이었다.

안 그래도 나의 능력에 불신하고 있었는데, 독단적인 결정까지 내리자 더욱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지 수입을 중단하고 공장에서 팜유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공업용 우지(쇠기름)’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날아들면서 이른바 ‘우지 파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로 인해 업계의 대표 기업들이 전부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고, 삼향 식품을 비롯한 5개 회사의 사장 및 실무 책임자들이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입건하였다.

다행히 혜성 식품은 팜유를 사용하였기에 문제 생길 여지가 없었다.

‘얼결에 식품도 업계 1위가 되게 생겼군.’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론의 동향이나 노사가 해 준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기정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샤롯 식품을 무섭게 위협하던 삼향 식품부터가 불매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었다.

온산병 사태와 수원의 미나마타병 집단 발병 사태 등 최근 들어 유해 물질 중독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유해 물질 중독을 두려워하는 상황이란 뜻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삼향 식품에서 라면에 공업용 기름을 썼다!’라는 소문이 나도니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

공업용이라고 하면 좋은 이미지가 떠오를 수는 없었으니까.

‘다만 무조건 좋아할 일만은 아니겠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었다.

소비자들에겐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었지만, 반대로 재계의 인사들에겐 부정적인 이미지가 심어졌다.

“혜성 그룹 회장은 운이 참 좋은 거 같아요. 식품 기업을 인수하고 1년 만에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말이에요.”

“저는 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연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왕 회장은 그럼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겁니까?”

“혜성 식품에서도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지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지에서 팜유로 바꾸기 무섭게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으니, 이걸 어떻게 우연으로 보겠습니까?”

“허, 그렇게 보니 수상하긴 하군요.”

“이번 우지 사태로 득 본 것은 혜성 식품 하나뿐입니다. 이것만 봐도 검찰을 누가 움직였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재계의 인사들은 이번 우지 파동을 두고 내가 개입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 같은 여론을 주도하는 게 누구인지는 너무도 명백했다.

혜성을 가장 적대하는 왕재구 회장이 여론을 주도했을 게 분명하리라.

“한성아. 네가 정말 검찰을 동원한 것이냐?”

재계의 여론이 얼마나 안 좋아졌는지, 이한철 명예 회장까지 나에게 찾아와서는 그 같이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 역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봐도 시기가 공교로워서 말이다.”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솔직한 말로, 작디작은 식품 업계에서 1위가 되겠다고 검찰을 동원할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이한철 명예 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철 명예 회장도 내가 무리수를 던질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다행이긴 한데, 네가 수를 쓴 거라는 소문이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걱정이다.”

나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의혹이었다.

‘대통령과 친하다고 해서 검찰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설령 검찰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해도 이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이었다.

검찰이란 패를 구태여 우지 파동 같은 일에 쓸 이유는 없으니까.

“이런 일은 앞으로도 비일비재할 겁니다. 미래 그룹을 넘어서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후, 내가 조금 더 힘을 써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아닙니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왕 전경련의 회장이 되었는데, 혜성 그룹에 이익이 가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겠느냐.”

확실히, 이한철 명예회장이 나선다면 재계의 여론도 조금은 진정될 거 같았다.

물론 왕재구 회장이 뒤에 있는 한, 언제든 이런 식의 여론전이 벌어지겠지만 말이다.

‘미래 그룹에 한 방 먹여주기 위해서라도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나 인천 공항은 혜성 건설이 무조건 따내야겠어.’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란 말도 있듯, 식품업에 이어 건설업까지 미래 그룹을 넘어선다면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복수를 한 거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와 인천 공항 수주를 따낸다면 미래 건설을 넘어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내년 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규모 수주까지 있을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 * *

“공업용 우지 관련 수사가 혜성 그룹만 비켜 갔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김태중 국무총리의 추궁 섞인 질문에 김귀남 검찰총장이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어디까지나 의혹은 의혹일 뿐입니다. 저희 검찰청은 혜성 그룹과 어떤 접점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요?”

“내사를 통해 조사해본 결과, 혜성 그룹은 오히려 미래 그룹을 비롯한 여러 대기업과 다르게 검찰청과의 관계에 있어서 깨끗한 편입니다.”

혜성 그룹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혜성 그룹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김귀남 검찰총장이었다.

하지만 김태중 국무총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이상 김귀남 검찰총장을 추궁하지 않았다.

사실 그도 어느 정도는 이번 사태의 진실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연으로 넘어가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시기가 공교로운 것은 사실이야.’

수사가 시작된 순간, 우지를 포기하고 팜유를 선택하였다.

누가 보더라도 의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혜성 그룹이 이런 식으로 위기를 넘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단순하게 보면 정보력이 좋은 것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혜성 그룹의 정보력은 은성 그룹의 그것보다 더 좋다고 알려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혜성 그룹이 지금까지 이룬 성과는, 결코 정보력이 좋다고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하늘이 혜성 그룹을 축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란 말이지.’

하늘이라니, 말도 안 되는 미신이었다.

그런데 김태중 국무총리쯤 되는 인사가 이 말도 안 되는 미신을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로 혜성 그룹의 성장은 비현실적이었다.

5공이 특혜를 주는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견제하는 상황에서 빅 4까지 성장한 혜성 그룹이었다.

빅 4가 되고 나서도 성장은 끝이 아니었다.

어느덧 재계 2위까지 성장했고 모두가 혜성 그룹이 미래 그룹을 넘어서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말하였다.

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재계 10위에 불과했던 기업이, 재계 1위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정부의 비호도 받지 않은 채로 말이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이한성 회장의 선택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지. 사업에 있어서도, 정치에 있어서도.’

5공의 특혜를 받지 않은 것도 결과론적으로 보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때 특혜를 받았으면 지금 많은 것을 토해내야 했었을 테니까.

사업을 생각하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반도체부터가 혜성 그룹이 무슨 반도체냐며 언론에서 엄청난 비난과 비판을 가했던 사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반도체 사업을 했던 일성이야 그렇다 치고, 미래 그룹과 은성 그룹까지 정우 그룹을 제외한 빅 4 전체가 반도체 사업에 달려들고 있었다.

그만큼 반도체 사업의 미래는 밝았던 것이다.

물론 자동차나 전자 사업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선점한 기업들이 있어서 혜성은 절대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오히려 기존 기업을 순식간에 압도하고 말았다.

전자는 업계 3위에서 2위까지 올라갔고, 자동차는 기화 자동차를 포함하면 사실상 업계 1위였다.

‘혜성 그룹을 어찌 대해야 할지 고민이군.’

사실 원래의 김태중 국무총리였으면 한성과의 관계가 어떻든, 혜성 그룹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대기업의 비중이 지나칠 정도로 큰 한국이다.

혜성 그룹은 웬만한 대기업 몇 개를 합친 것보다 큰 규모였으니, 차기 대권 주자로서 견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하지만 혜성 그룹이 어떤 대기업과 비교해도 깨끗하다는 점, 그리고 마치 하늘의 축복이 따르는 듯, 행운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연거푸 따라준다는 점이 김태중 국무총리를 고민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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