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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22화 (222/300)

222화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

김명운 사장의 보고를 들은 나는 곧바로 정보팀을 가동했다.

서해안 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함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확실히, 올해 안에 서해안 개발이 시작될 거 같기는 해.’

이미 김태중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여당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곧 언론에도 공개될 것처럼 보였는데, 늦어도 올해 안에는 서해안 개발이 시작될 거 같았다.

‘한번 이종석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어.’

정확한 정보를 알려면 핵심 관련자와 대화를 나눠보는 게 가장 빨랐다.

핵심 관련자라면 김영산 대통령부터 김태중 국무총리에 행정부 고위 관료들까지 다양하게 있었지만, 나는 이종석 의원을 선택하였다.

아무래도 김영산 대통령이나 김태중 국무총리와 수주 공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언론에서도 그렇고 재계에서도 말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먼 길 오시는데, 힘든 점은 없으셨습니까?”

“갑자기 찾아봬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 회장님이 먼저 뵙자고 연락하셔서 제가 얼마나 기뻤는데요? 이 회장님이 불러주신다면 언제든 시간 내드릴 테니, 어느 때든 불러만 주세요. 하하하.”

이종석 의원은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공손한 태도를 보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은근하게 윗사람 분위기를 풍겼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본인이 아랫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혜성 그룹이 재계 2위가 된 게 이런 식으로도 효과를 보는군.’

여당의 실세까지도 공손하게 만드는 것이 재계 2위의 힘이었다.

재계 1위가 된다면 그때는 여당 대표와 동등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뭐, 나는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혜성 그룹의 소식은 저도 늘 챙겨 듣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째 혜성 그룹의 소식은 희소식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이렇게 순탄할 수가 없어요. 하하하.”

“반도체도 그렇고, 자동차도 그렇고 워낙 시기를 잘 맞아서 그렇습니다. 식품이나 의류 사업 같은 경우는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건설은 어떻습니까?”

이종석 의원이 마침 건설 이야기를 꺼냈다.

하긴, 혜성 건설의 주가만 봐도 화제가 그쪽으로 넘어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장에서 과분한 기대를 받고 있어 조금 곤란한 상황입니다. 아직 혜성 건설은 이렇다 할 호재가 없는데 말입니다.”

“중동 쪽으로 재미를 볼 거라는 소문이 있는데, 아닙니까?”

“소문은 소문일 뿐입니다. 아직 확정 난 것은 없습니다.”

“확정 나지 않았다는 말씀은, 무언가 있기는 하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그 부분은 나중에 확신이 생기면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식으로 재미 볼 수 있게 배려해 주겠다는 내 말에 이종석 의원의 얼굴이 환해졌다.

1989년이 되면서 주식시장도 조금씩 정상을 찾고 있는 듯했지만, 몇몇 종목은 여전히 미친 폭등세를 보이고 있었다.

혜성 건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3천억에 불과했던 시가총액이 어느덧 1조에 육박한 상황이었다.

이렇다 보니 이종석 의원으로서도 혜성 건설과 관련된 정보가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이 돈 욕심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

“미리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하하하.”

“그런데 사실 건설과 관련해서 의원님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문을 열자, 이종석 의원이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가 궁금하신 겁니까?”

“……예. 아무래도 건설사 사주로서 대형 국책사업이 시작된다는데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더군요.”

“그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요즘처럼 건설 업계가 어려움에 빠진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말입니다.”

이종석 의원이 뜸을 들이자 나는 그의 술잔에 술을 채워줬다.

그러자 이종석 의원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로젝트의 규모는 대략 28조 정도를 예상하면 될 거 같습니다.”

“28조 말씀입니까?”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김명운 사장이 30조 운운했을 때는 솔직히 믿지 않았다.

아무리 몇 년에 걸쳐서 진행할 사업이라지만, 대한민국의 예산을 생각했을 때 30조면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울 수 없을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김명운 사장의 추측은 정확하였다.

28조.

정확히 30조는 아니어도 그에 근접한 규모였던 것이다.

“예. 상당하지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긴 합니다.”

“혜성 건설도 서해안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으시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의원님도 아시겠지만, 우리 혜성 건설이 시공 능력으로 따지면 국내 3위 안에 듭니다. 혜성 아파트라는 유명한 아파트 브랜드도 있고 말입니다.”

“알지요. 심지어 수십 년간 시공 능력 평가에서 5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관급 공사에서 항상 배제되어 건설사 순위가 낮은 것이지, 정부에서 밀어준다면 단숨에 업계 1위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의원님께서 꼭 좀 도와주십시오.”

내 말에 이종석 의원이 손사래를 쳤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일개 의원인 제가 무슨 도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역시 쉽게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하기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언제나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인 법이었으니까.

“자녀분께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 갔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불쑥 화제를 전환하자, 그가 의아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른 건 다 못하는데 영어 하나만 자신 있어 하는 터라, 녀석이 그토록 좋아하는 미국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를 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먹고살기엔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데, 아마 지금쯤이면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좋아도 조국보다 좋을 리는 없으니 말입니다. 하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오셨으니 잘 됐군요. 제가 사업을 하다가 마침 캘리포니아의 부지사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오오, 캘리포니아 부지사와 친해졌다고요?”

한국 대통령보다 일개 주지사인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세계적인 영향력이 더 큰 시대였다.

당연히 캘리포니아의 이인자인 레오 매카시 부지사와의 인맥도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이종석 의원처럼 정치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내 말에 이종석 의원은 탄성을 지르더니 기대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레오 매카시 부지사의 자녀들과도 안면을 튼 사이니, 의원님 자녀분과도 한 번 모임 같은 것에 초대할 수 있게끔 제가 힘을 써보겠습니다.”

뇌물을 주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구태여 위험을 부담하고 싶지는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이종석 의원은 내 제안에 만족스러운 듯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런 도움을 주시다니. 저로선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하.”

“혹시 자녀분과 관련된 일로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가 연락처를 드릴 테니 언제든 그쪽에다 연락을 주십시오. 캘리포니아에서라면 얼마든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제 아들놈을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다니. 이 회장에겐 그저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이종석 의원의 답변을 듣고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와 이 정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에서 수주 공사를 따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 같았다.

‘혹시 모르니 김태중 국무총리와도 한 번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지.’

솔직히 김태중 국무총리라면 나와의 관계도 있으니, 혜성 건설을 최대한 배려해줄 거 같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처럼, 만약을 대비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 * *

(요즘 혜성 건설 때문에 여기저기서 난리이더구나.)

노사가 불쑥 나타나서는 혜성 건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주식으로 재미는 보셨습니까?”

(거의 세 배는 이득 본 거 같다.)

혀를 내둘렀다.

세 배라니.

정확히 어느 정도 되는 자금을 동원한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수백억은 따냈을 거 같았다.

“앞으로도 혜성 건설 이야기로 계속 시끄러워질 예정입니다.”

(파이잘 왕자 건 말고도 또 뭐가 있는 거냐?)

“국내에서도 대규모 수주 공사를 따낼 기회가 생겼습니다.”

(호오,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의 수주를 따내기라도 했나 보구나.)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여당의 실세인 이종석 의원과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일단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이종석 의원은 저를 밀어줄 거 같습니다.”

(이종석 의원이 밀어준다면 수주 따내는 것은 어렵지 않겠어.)

“혹시 몰라 김태중 국무총리와도 이야기를 나누어볼 생각입니다.”

내 말에 노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혜성 건설이 미래 건설을 대신할 수도 있겠는데?)

“미래 건설 말씀입니까?”

(원 역사에서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의 주역은 미래 건설이다. 심지어 인천 공항도 미래 건설이 만들었지.)

노사의 말을 듣고 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서해안 개발의 주역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인천 공항이라니?

노사에게 들은 바로 인천 공항의 공사비는 무려 조 단위였다.

미래 건설은 그야말로 중동에서도 따내기 어려운 조 단위의 수주 공사를 국내에서 연달아 따낸 셈이었다.

“서해안 개발에 인천 공사라. 미래 건설이 엄청나게 성장했겠군요.”

(두 공사 덕에 90년대까지는 업계 1위를 유지할 거다. 그 뒤로는 일성에게 밀려났지만 말이야.)

안 그래도 넘기 어려운 벽이 미래 건설이었다.

그런데 외국에서 수주받은 공사도 아니고, 국내에서 수주받은 공사 때문에 더 넘기 어려운 벽이 된다니.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쁜 일이었다.

‘반드시 막아야지.’

다행히도 내가 바꾼 역사에서 미래 건설이 서해안 개발의 주역이 될 리는 없을 거 같았다.

미래 건설은 현 정부나 여당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노사의 말처럼, 미래 건설이 받게 될 혜택들을 우리 혜성 건설이 받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소식 들었느냐?)

“어떤 소식 말씀하시는 겁니까?”

(검찰에서 불량 식품을 대대적으로 검사할 거라는 소식?)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신의 몸이라서 정보 획득에 유리한 노사는 이렇게 종종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물어다 주고는 했다.

그 정보는 재계 1위의 정보력을 손에 쥔 지금도 굉장히 도움이 되었는데, 이번에 그가 전해준 정보는 의아하게만 느껴졌다.

나와 큰 연관성이 없는 정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검찰에서 불량 식품을 검사하는 게 저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겁니까?”

(네가 인수한 기업이 어디야? 샤롯 제과와 샤롯 식품이잖아? 과연 샤롯에서 식품 위생을 깔끔하게 관리했을 거 같아?)

“…….”

순간 말문이 막혔다.

노사의 말을 들으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경각심이 생겨났다.

불량 식품 이슈는 결코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내 선까지 검찰 조사가 이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인수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으니 정상참작의 여지도 있었고.

하지만 혜성 그룹의 이미지가 손상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제아무리 샤롯에서 인수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해도 일단 혜성이란 이름을 내걸고 식품 사업을 하고 있었다.

즉, 소비자들은 혜성이란 브랜드 이미지를 믿고 제품을 구매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혜성 식품에서 불량 식품 이슈가 발생한다면 브랜드 이미지에 심한 손상이 갈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이미지 손상은 다른 계열사에도 이어질 터.

‘시급히 위생 문제를 점검해야겠어.’

새삼 노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노사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는 악덕 기업이 될 뻔했다.

뭐, 원래의 샤롯 식품과 샤롯 제과는 그런 기업이 맞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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