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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21화 (221/300)

221화 건설도 업계 1위를 노려야지

동남아에서야 수주를 계속 따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규모를 보자면 동화 건설이 수주받은 규모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소소했다.

국내외 한 해 매출을 다 합해도 1조가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중동에 다시 진출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세계 그룹과 함께 가장 먼저 중동을 탈출한 것이 혜성 그룹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아무리 엄청난 수주를 따내봤자 그 수주 금액이 온전히 나에게 올 거라는 장담이 없었던 까닭이다.

사실 동화 그룹이 따낸 수주도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정확한 미래야 나도 알지는 못하지만, 노사가 이야기해준 것을 생각하면, 리비아의 장래도 밝지만은 않았으니까.

‘다만 중동 국가 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라면 안전하기는 할 텐데.’

사우디아라비아라고 미수금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인맥이란 게 있었다.

무려 왕자와 이어진 인맥이 말이다.

그렇기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주한다면 당연히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를 꼭 집어 지명입찰할 일이 과연 있을지가 의문이었지만.

“회장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걸려 온 전화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요?”

“예, 파이잘 왕자의 전화입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내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생각한 날로부터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파이잘 왕자의 전화였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이한성 회장님.

“1년 만인가요? 이렇게 왕자님과 통화할 수 있게 돼서 영광입니다.”

작년 88 올림픽에 맺어진 인연.

파이잘 왕자와의 인연 덕에 무려 2,400억이라는 투자금을 유치했고, 석유까지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로서는 여러모로 얻은 게 많았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덤으로 걸프전도 대비할 수 있게 됐지.’

어쩌면 나에게는 이게 더 중요할 수도 있었다.

걸프전에서 얻게 될 이익은 쌍호 정유 정도 되는 기업, 여러 개도 인수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일 테니까.

‘물론 파이잘 왕자의 입장에서도 결코 손해는 아니지.’

주가가 올라간 거?

사실 그 정도야 파이잘 왕자가 얻게 된 이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2배 가까이 오른 주가보다는 핵심 원유 정제 기지를 얻었다는 것이 파이잘 왕자에게는 더 큰 이익이었다.

한국의 석유 화학 사업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고, 쌍호 정유 정도면 그들이 대안으로 생각했을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나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조금 섭섭합니다.

“섭섭하다니요? 제가 파이잘 왕자님께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잘못해도 단단히 잘못하셨습니다. 어떻게 한 번을 사우디로 안 올 수가 있어요? 심지어 이번에는 미국도 갔다 오셨다면서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아차 하였다.

미국까지 갔다 온 것을 아는 걸 보면 여전히 나에게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나는 파이잘 왕자를 미처 신경 쓰지 못하였으니, 이건 내 실수가 맞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왕자님께 소홀히 했던 거 같습니다.”

-바로 인정하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하하, 역시 이한성 회장님은 진정한 남자입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한 가지 충고하자면, 우리 중동 사람들은 일이 있을 때든, 일이 없을 때든 항상 얼굴을 비추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한 번 인연을 쌓았다고 방심한다면 관계는 처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왕자님의 따끔한 충고,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충고하자면, 어떤 왕자라도 홀대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왕자가 있지만, 그들은 서로 협조하고 커미션도 나누는 관계입니다. 설령 힘이 없어 보이는 왕자라 해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파이잘 왕자의 충고를 들으니 확실히 내가 중동에 무지했던 거 같긴 했다.

좋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방심했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충고를 해줬는데도 사우디로 자주 안 찾아가면 파이잘 왕자는 나와의 연을 완전히 끊어버리겠지?’

앞으로는 몇 달에 한 번씩이라도 중동을 찾아야 할 듯싶었다.

-이한성 회장님. 사실 회장님께 전화를 드린 용건은 따로 있습니다.

“경청하고 있습니다.”

-내년 초에 상당한 규모의 발주가 있을 겁니다.

‘발주’라는 단어를 듣고 나는 눈을 빛냈다.

심지어 그냥 발주도 아니고 상당한 규모의 발주란다.

파이잘 왕자쯤 되는 인사가 상당하다고 했으면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아무리 못해도 조 단위는 되겠지?’

그 생각을 하니, 나도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아보니 회장님에게 건설 회사가 있더군요. 그것도 명성이 상당한 혜성 건설이라는 건설 회사가 말입니다.

“예.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중동에서 활발하게 수주했었습니다.”

-회장님께서 한 가지 하실 일이 있습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우선 사우디에 지부를 다시 만드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부를 만들어라.

내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주문이었다.

혜성 건설은 이미 중동에 진출했던 적이 있는 기업이었고 적어도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여전히 혜성 건설의 자산이 남아 있었으니까.

“지부를 만들고 또 뭘 하면 되겠습니까?”

-그 뒤에는 사우디에 오면 제가 여러 사람을 소개해 줄 테니, 제가 소개해 준 인맥을 잘 관리하기만 하면 됩니다.

파이잘 왕자가 소개해 주는 인맥이라면 굳이 수주 공사가 아니더라도 내게는 이득이었다.

다만 그의 요구가 너무 간단해서 나는 오히려 의심이 생겼다.

발주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면 분명 나에게 발주를 줄 생각이 있는 거 같은데, 이리도 좋은 기회를 나에게 주려는 이유가 뭘까?

따지고 보면 작년에 서울에서 몇 번 보고 만 사이인데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어떤 게 궁금합니까?

“어째서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시는 겁니까?”

-하하, 그것이 궁금하셨습니까?

크게 웃던 파이잘 왕자는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랍인은 확실하다면 모든 것을 거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이한성 회장님의 성공은 확실한 거나 다름없으니, 이한성 회장님을 미는 데 주저할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내가 성공할 것이 확실하니, 모든 것을 걸겠다는 건가?

그런 거라면 나 또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일이었다.

파이잘 왕자와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고 손해 볼 것은 크게 없을 테니까.

‘근데 과연 저 말이 사실일까?’

물론 왕자쯤 되는 인물이 나에게 사기를 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입찰하는 중요한 순간에 갑질을 할 가능성은 있었다.

이를테면 발주를 도와주었다는 명분으로 내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혜성 정유의 지분을 더 넘기라거나, 아니면 혜성 건설의 지분을 요구하는 식의.

‘뭐, 괜한 걱정이겠군. 그딴 협박쯤, 가뿐히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니 말이야.’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훌훌 털어냈다.

파이잘 왕자의 갑질?

혜성 그룹의 주력 기업이 혜성 정유였다면 일방적으로 갑질을 당할 수밖에 없겠지만, 혜성 그룹의 주력은 정유 사업이 아니었다.

그러니 파이잘 왕자가 갑질을 해대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면 정유 사업을 포기한다는 생각으로 맞서 싸우면 될 일이었다.

정유 사업만 포기한다면 파이잘 왕자와 아니, 사우디 전체와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도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으니까.

* * *

파이잘 왕자의 받은 직후, 나는 곧바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지부를 세웠다.

중동 사업의 재개를 세상에 선포한 셈이었다.

그러자 언론에서 엄청난 반향이 일어났다.

다른 곳도 아니고 사우디였다.

작년에 혜성 그룹은 사우디에서 2,400억의 투자를 받은 적이 있으니, 사람들로선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약속받고 사우디에 다시 진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주가 상승으로 반응이 나왔고 재계에서도 어수선한 게 느껴졌다.

아마 내가 또 어떤 성공을 이룰지 두려워하면서도 궁금해하는 분위기였다.

반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혜성 건설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높아졌다.

매출은 떨어지고 사옥까지 옮겨진 상황이라, 사기가 바닥을 기었던 혜성 건설이었다.

사옥이 옮겨지기 전까지는 그래도 나와 한 건물 아래에서 일했는데 이제는 그조차 아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중동 사업 재개를 발판으로 드디어 나의 관심이 혜성 건설로 향하는 것처럼 느껴지자 혜성 건설 직원들로선 사기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도 많이 기뻐하시는군.’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혜성 건설에 유독 애착을 가진 이한철 명예회장이었다.

그 역시 혜성 건설이 다시 비상할 거란 생각에 기대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혜성 건설의 국내 파트를 담당하는 김명운 사장이 희소식을 가져왔다.

“올해 안에 인천에서 목포까지, 서해안을 대대적으로 개발할 거 같습니다.”

“서해안 개발이라.”

고위 공무원 출신이라서 그런 것일까?

확실히 정보력이 남다른 거 같았다.

나는 그가 가져온 소식을 들으며 턱 끝을 쓰다듬었다.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합니까?”

“곧 미국과 소련 간의 정상 회담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지 않습니까? 중공과도 회담이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 말은 즉,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하는 것은 그리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정부도 생각이 있다면 서해안을 개발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하하!”

“확실히, 대륙의 문이 열리기 직전이긴 합니다.”

서해안 개발.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중공, 아니, 중국은 엄청난 인구를 가진 나라였다.

무려 13억의 인구를 보유했다고 알려졌으니까.

그리고 한국은 이런 중국과 지척 거리에 있었다.

지금까지야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마땅히 교류랄 게 없었다지만, 이제는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중국도 자본주의 체제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상황이었으니, 언제 수교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역사가 흘러간다면 불과 3년 안에 수교할 예정이었다.

정부에서 서해안 개발을 계획한다고 해도 결코 이상할 게 없는 시점이란 의미였다.

“규모는요?”

“음, 규모는 솔직히 추측이 어렵습니다. 5조 정도 예측하는 직원도 있고, 어떤 직원은 30조 정도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30조는, 조금 터무니없는 규모인 거 같은데요.”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김태중 국무총리는 전라도 사람이지 않습니까? 전라도를 발전시킬 기회인데, 김태중 국무총리가 서해안 개발이라는 중요한 기회를 헛되이 낭비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전라도 사람이라서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라니.

뭔가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이야기 같아서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명운 사장의 말에 나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현재 전라도, 그중에 전남 지역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지역 출신이든 간에, 정상적인 사고관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전라도의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서해안 개발을 이용하는 게 당연하였다.

‘이거, 사우디만 노릴 게 아니었는데?’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해안 개발.

이걸 잘만 이용한다면 혜성 건설을 지금의 몇 배로 키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김명운 사장의 말처럼 30조 규모의 사업은 아니더라도, 인천에서 목포까지 개발하려면 최소한 10조 이상의 사업일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마침 정부와 가장 친한 기업이 우리 혜성 그룹이야.’

절반.

아니 절반의 절반만 수주받아도 좋았다.

사우디에 이어 국내에서까지 크게 터져준다면 혜성 건설이 업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였다.

‘겨우 5위로 만족할 수는 없지. 건설도 이참에 1위를 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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