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220화 (220/300)

220화 53억 달러 규모의 공사 수주

(그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를 부탁한다니. 믿기지 않는구나.)

“돈이 급해서 투자해달라고 하는 것은 아닌 듯싶었습니다.”

(그러면? 아, 스티브 잡스 때문인가?)

“예, 저와 대화할 때 계속 스티브를 언급한 것을 보면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넥스트사의 성장을 의식하는 거 같았습니다.”

하긴, 내가 빌 게이츠라도 스티브 잡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개인용 SW 시장은 스티브 잡스에게 넘어간 상황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여기에 엄청난 운영체제까지 준비하였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하려던 오피스 회사를 더 많은 돈을 들여 빼앗아가기까지 했으니, 빌 게이츠로서는 경각심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나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였다.

참고로 빌 게이츠한테도 이렇게 대답했었다.

고민해 보겠다고.

그리고 지금 역시도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아마 스티브 때문이라도 마이크로소프트에 투자하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놓치겠다고?)

노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 선택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단순히 스티브와의 관계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나비효과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는 달라졌고, 아마 노사가 알고 있는 것만큼 거대 기업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미국에 갔다 왔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 시장의 95% 이상을 장악하며 IT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세상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내 예상대로 된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치도 노사가 알던 미래 세계의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를 그만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로군.)

“지금 미국은 스티브의 부활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스티브는 과거의 악연도 잊고 애플과 힘을 합치려 하고 있습니다.”

(애플과?)

“예. 애플, 인텔 등과 힘을 합쳐 마이크로소프트에 맞서겠다는 구상입니다. 인텔은 이미 스티브 잡스의 뜻에 따르기로 했고, 애플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내가 알던 스티브 잡스와는 많이 다르긴 하군. 너와의 만남이 스티브 잡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긴 한 거 같아.)

내가 스티브 잡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니.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10번 정도밖에 만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뭐, 그래도 소프트웨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건 나의 영향인 것은 확실하지.’

원래라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IBM을 꺾겠다며 계속 컴퓨터 제조에 집중했을 것이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하드웨어 시장에 끝까지 집착하였다면 애플과의 관계도 더 악화하였을 것이 분명하였다.

스티브 잡스라면 애플의 유능한 인재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이니까.

하지만 내 덕에 소프트웨어 시장으로 방향을 선회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의 관계도 원만해졌고 인지도도 크게 올라갔다.

‘이렇게 보니 내가 스티브 잡스의 미래를 많이 바꾸긴 한 거 같네.’

내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노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투자할 기회가 날아가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네 뜻이 그렇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내가 봐도 넥스트의 미래가 나쁘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 말이야.)

“제 선택을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됐다. 빌 게이츠에게 거절할 때, 최대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라. 그러면 빌 게이츠도 너를 나쁘게 보지는 않을 테니.)

나 역시도 빌 게이츠와 적대 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 가치가 비록 예전만 못해졌다지만, 그래도 무시 못 할 기업이 될 것은 분명하였다.

더군다나 꼭 사업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빌 게이츠와 관계가 좋아져봤자 손해 볼 것이 없기도 했다.

미래의 빌 게이츠는 기부도 많이 하여 악명을 없애고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하니 말이다.

* * *

귀국하기 무섭게 여러 인사가 접견 요청을 해왔다.

미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나를 찾아왔지만, 역시 한국에 비할 바는 안 되는 거 같았다.

정치인을 비롯하여 엉덩이가 무거운 재벌 총수들까지 만남을 요청했는데, 그중에는 정우 그룹의 권오중 회장도 있었다.

“자네 얼굴을 보기가 참 어렵군.”

“청와대 만찬회 때 뵙지 않았습니까?”

“그게 벌써 몇 달 전인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우리도 얼굴 좀 자주 보고 그래야 하지 않겠어?”

“연인도 아니고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고 그럽니까?”

“나는 내 아내보다 자네가 더 좋네. 하하하!”

“사모님이 들으시면 섭섭해하시겠습니다.”

“자네는 입이 무거우니 괜찮을 거야.”

너스레 떠는 그의 모습에 나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용건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이 회장. 꼭 용건을 물어야 하겠나? 우리 사이에?”

“늘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항상 용건이 있을 때만 찾아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용건이 있어야지만 이 회장을 찾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 그러십니까?”

“물론 몇 가지 물어볼 게 있기는 한데…… 하하하.”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뭐가 그리 궁금하십니까?”

“이 회장은 공산주의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철학적인 질문을 하는 그가 이상하게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회장님이 대학교수라도 된 줄 알았습니다. 뜬금없이 공산주의의 미래를 물으니 말입니다.”

“기업가에게도 중요한 문제 아니겠나?”

“그야 그렇습니다만.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뭡니까?”

“요즘 공산주의 국가들이 어수선하지 않은가? 동유럽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엄청난 시위가 벌어졌잖아? 소련도 쉬쉬하고는 있지만 큰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는 소문이 있고 말일세.”

그의 말처럼 공산주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부침을 겪고 있었다.

천안문 사태가 벌어진 중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공산주의 진영의 종주국인 소련조차도 발트 3국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동독을 비롯한 다른 동유럽 국가들도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말이다.

참고로 동유럽 국가들이 흔들리는 이유에는 아마 한국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작년 88 올림픽 당시, 한국의 발전상이 전 세계에 퍼졌었으니까.

최빈국으로만 생각했던 한국의 발전상은 동유럽 국가들에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였다.

“권 회장님, 너무 염치없으신 거 아닙니까?”

“어? 내가 염치없다고?”

“그렇지 않습니까. 제 정보를 꽁으로 드시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내 말에 권오중 회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염치가 없긴 했군. 그래, 이 회장은 무엇을 원하나?”

섭섭하다느니, 실망이라느니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떨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었다.

권오중 회장과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 해도 언제까지 내 정보를 무상으로 제공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흥미를 느낄 만한 정보는 혹시 없습니까?”

“흠, 이 회장이 흥미를 느낄 정보?”

“이왕이면 사업에 관한 정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리 말하자, 권오중 회장은 미간을 좁히며 상념에 잠겼다.

머릿속으로 자신이 쥐고 있는 정보들을 떠올리고 있는 거 같았다.

“미래차에서 올해 안에 프리미엄 자동차를 출시할 것이라는데, 알고 있나?”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당연히 알고 있는 정보였다.

국내에서는 최대 경쟁자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모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뭐, 그래 봤자 크게 경계는 안 하고 있지. 실패할 게 뻔하니 말이야.’

도요타의 렉서스의 신차 출시도 실패로 끝이 난 상황이었다.

이제 막 프리미엄 시장에 도전하는 미래차라고 크게 다를 거 같지는 않았다.

“작년부터 그렇게 떠들썩하게 준비를 했는데, 제가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애초에 권 회장님이 예전에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 꺼낸 적도 있습니다만.”

“아, 그랬나?”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그러면 동화 건설에서 리비아 대수로 2차 공사 수주를 받게 될 거라는 소식은?”

“리비아 대수로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사에게 들어본 적이 있는 거 같긴 한데,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하기야, 중동에서 발을 뗀 지가 몇 년째니 크게 관심을 둘 이유가 없기는 했다.

“1차 때도 그랬지만, 규모가 엄청날 거라는군.”

“어느 정도인데 그러십니까?”

“못해도 수십억 달러는 될 거야.”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수십억 달러라니.

한국 돈으로 수조 원 규모의 공사라는 것인가?

‘지금까지 중동에서 누가 수주를 받더라도 부러운 적이 없었는데 이건 조금 부럽군.’

수조 원이라면 반도체나 자동차를 1년 내내 열심히 팔아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아무리 내가 돈이 많다고 부럽지 않을 수는 없었다.

‘혜성 건설도 빨리 키워야 할 텐데.’

어제 이한철 명예회장을 찾아갔을 때, 마침 혜성 건설 이야기가 나왔었다.

이한철 명예회장은 혜성 건설이 다른 계열사만큼 발전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는데, 효도를 위해서라도 나는 혜성 건설의 규모를 키우겠다고 다짐하였었다.

이런 다짐 때문인지, 동화 건설이 괜히 부럽게만 느껴졌다.

“그 소식이 사실이라면 동화 건설의 주식 좀 사놔야겠습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아마 지금 사도 늦지 않을 거야. 주가야 조금 올랐겠지만, 나처럼 해외 소식이 밝은 사람이 아니라면 아는 사람이 없을 거거든.”

확실히, 권오중 회장이 해외 정보통이긴 한가 보다.

이런 중요 정보를 빠르게 입수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회장에게 도움이 됐으면 나는 그걸로 만족하네. 하하하.”

“아까 물으셨죠? 공산주의의 미래를?”

“그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 5년을 보고 있습니다.”

내 말에 권오중 회장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5년이라니? 뭐가 5년이란 말인가.”

“소련이 무너지기까지 남은 시간을 말하는 겁니다. 길어야 5년입니다.”

“……!”

권오중 회장은 눈을 부릅떴다.

한때, 아니 지금도 냉전을 이어가고 있는 나라가 소련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를 뽑으라면 여전히 소련을 뽑는 사람이 적지 않을 정도로 소련은 초강대국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소련이 5년 안에 무너진다고 하니 권오중 회장으로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5년은커녕 2년 뒤에 무너질 나라지.’

5년이라고 했는데도 이 정도로 놀랐다면, 2년이라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괜히 궁금해졌다.

물론 나비효과 때문에라도 정확한 시점을 말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말한 대로 소련이 무너진다면 권오중 회장도 내 조언을 적극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겠지?’

어차피 곧 의미가 없어질 미래 정보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활용하여 정우 그룹을 완전한 아군으로 만든다면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 * *

권오중 회장이 전해준 정보는 사실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화 건설이 리비아에서 대규모 공사 수주를 따냈다는 소식에 전국을 강타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동화 건설의 주가는 무려 10%나 올랐다.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이 그리 기쁘지 않았다.

내가 번 돈이라고 해봐야 50억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500억을 투자해서 보름 만에 50억을 벌었으니 엄청난 수익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동화 건설이 수주받은 규모를 생각하면 50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화 건설이 리비아에서 따낸 수주 규모는 53억 달러였으니 말이다.

‘우리 혜성 건설은 언제쯤 대규모 공사 수주를 따낼 수 있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