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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15화 (215/300)

215화 행복한 고민이야

-척 로저쓰 씨가 말하기를, 레오 매카시 부지사도 저희 혜성 그룹을 우호적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정말입니까?”

-예, 레오 매카시 부지사는 일본 기업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우리를 더욱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신은규 대표가 전해 준 소식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정치인과 친분을 쌓게 되었는데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도 레오 매카시 부지사와의 인맥을 최대한 신경 써서 관리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만족스러운 감상평을 내놓았다.

“시작이 좋군.”

레오 매카시.

민주당의 유력 인사까지는 아니었지만, 부지사를 두 번이나 역임한 인물이었다.

노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교두보’ 역할을 충분히 해 줄 수 있을 터.

그런 인물과 교분을 텄으니, 나름대로 큰 성과를 보았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똑똑!

상념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지금 올 사람이면, 아마 하운철 대표겠군.’

혜성 자동차의 하운철 대표와 면담할 시간이었으니, 노크를 한 사람도 아마 하운철 대표일 가능성이 컸다.

“예,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아니나 다를까.

하운철 대표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회장님,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운철 대표님인데 당연히 환영해 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단 여기 앉으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커피는 곧 나올 겁니다. 양 비서가 타고 있습니다.”

“허허. 양준현 비서가 타 주는 커피가 그리도 맛있다는데 오늘 맛보게 되겠군요.”

나는 피식 웃고는 그에게 용건을 물었다.

“오늘은 어떤 용무로 이렇게 귀한 발걸음을 해 주셨습니까.”

“귀한 발걸음이라니요. 너무 과한 말씀입니다. 허허.”

하운철 대표는 그리 말하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내 들었다.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제 손자가 벌써 국민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승진 군이 국민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나이가 조금만 어렸으면 태한이의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아니니,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친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제가 승진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제가 그만큼 늙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허허.”

“늙었다니요. 이렇게 정정하신데 그런 말씀을 하고 그러십니까?”

“제 나이도 이제 60대 중반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임원치고 지나치게 늙은 거지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전부터 계속 나이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며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그래서 기화 자동차의 오승철 대표를 하운철 대표의 후임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고.

하지만 하운철 대표의 모습을 보니 3년까지 기다릴 생각도 없는 듯싶었다.

“은퇴를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허허, 생각은 이전부터 했고 이제는 확실하게 결정을 내려서 회장님께 말씀드리려고 온 겁니다.”

“대표님께서 아직 해 주실 일이 많은데, 벌써 은퇴하신다니요. 제가 대표님의 회사를 인수했을 때, 대표님께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업계 1위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은퇴를 하시면 약속을 이룰 수가 없게 됩니다.”

“기화 자동차를 인수하셨으니, 사실상 업계 1위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혜성 자동차만으로 업계 1위를 해야 의미가 있는 겁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제 지쳤습니다. 예전의 강렬했던 열정도 더는 샘솟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가 무기력하게만 느껴지고 있습니다.”

“거의 평생을 자동차 사업에 몸담아 오셨는데, 은퇴하면 오히려 활력을 잃게 되지 않겠습니까?”

“회장님 덕분에 건물 몇 채 세울 돈이 있으니, 건물주 노릇이나 하며 은퇴 생활을 즐길까 합니다.”

“제가 지금 받는 대표님의 연봉을 두 배 준다고 약속한다면 어떨 거 같습니까?”

여태까지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하운철 대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연봉 얼마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닌 거 아시지 않습니까.”

“정말 확고하게 결심을 내리셨나 봅니다.”

“허허,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성과급을 적게 챙겨 드릴 걸 그랬습니다.”

직원들이 받는 성과급도 대단했지만 역시 임원들이 받는 성과급만 못했다.

하운철 대표의 경우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혜성 자동차의 대표이니만큼, 그 성과급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서도 몇 번 언급이 될 정도였는데, 억 단위를 넘어 10억 이상의 성과급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애초에 동화 자동차의 인수 자금으로 받은 돈만 수십억이지.’

혜성 그룹 내에서 나를 제외하고 가장 돈이 많은 하운철 대표였다.

연봉을 몇 배 높인다고 그가 은퇴를 번복할 리는 없어 보였다.

“후임으로 생각해 두신 인물이 있습니까?”

“제가 어찌 회장님의 뜻도 묻지 않고 후임을 생각해 뒀겠습니까?”

“그렇다면 기화 자동차 대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하운철 대표가 기화 자동차의 오승철 대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하운철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승철 대표를 혜성 자동차 대표로 삼으실 생각입니까?”

“기화 자동차에서 충분한 성과만 보여 준다면 몇 년 뒤에는 하운철 대표님의 후임으로 내정할까 생각해 본 적은 있습니다. 물론 하운철 대표님께서 이렇게 일찍 은퇴하실 줄은 몰랐지만 말입니다.”

“허허,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오승철 대표라. 오 대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동종업계에 있었으니 저 역시 들어 본 바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화 자동차 인사가 혜성 자동차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파벌들 때문입니까?”

“……예. 아무래도 혜성 자동차 내부의 파벌 문제는 아직 완전히 정리된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하운철 대표의 그 같은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동화, 거하, 고림 등등.

여러 회사를 인수하여 몸집을 불렸던 혜성 자동차였다.

외형적으로야 업계 3위가 될 정도로 비대해졌지만, 내부적으로 문제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어떤 기업에도 존재하겠지만, 혜성 자동차 또한 파벌 문제가 심각했던 것이다.

“저 역시 혜성 자동차 내부의 파벌 다툼은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승철 대표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공을 세운 뒤에 혜성 자동차 대표로 임명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계획을 바꿔야 할 거 같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회장님의 계획이 틀어진 거 같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죄송하면 은퇴하지 말아 달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아무리 하운철 대표가 귀한 인재라 해도 회장이나 되어서 세 번이나 붙잡는 것은 회장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거절한다면 괜히 서로 간의 감정만 상할 것이고 말이다.

“지금까지 해 주신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후임이 걱정이군요.”

“역시 진영후 부대표가 낫지 않겠습니까?”

“진영후 부대표라.”

고려해 보지 않은 인사는 아니었다.

혜성 자동차의 부대표쯤 되는 인사가 능력 면에서 부족할 리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비리라든가, 다른 치명적인 문제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내가 진영후 부대표를 하운철 대표의 후임으로 끝내 결정하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었다.

“다 좋은데 리더십이 부족해 보여서 걱정입니다.”

“허허, 확실히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성격이 온후하여 사람들과 두루 친하기는 한데, 카리스마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니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부대표치고 존재감이 부족한 편이었다.

자기주장이 약하다고나 할까?

야망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어서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고 있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진영후 부대표밖에 방법이 없겠군요.”

“예, 오승철 대표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진영후 부대표 말고 다른 후보는 없습니까?”

“음, 이런 말씀 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제 생각에는 김건휘 전무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김건휘 전무라면 너무 젊지 않습니까?”

혜성 그룹은 사실상 신생 기업에 가까워서 임원들도 대체로 젊은 편이었다.

40대, 아니 30대 임원도 흔히 볼 수 있는 게 혜성 그룹이었으니.

김건휘 전무 역시도 혜성 자동차라는 거대 기업의 임원치고 상당히 젊었다.

이제 겨우 39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30대를 혜성 자동차 대표로 임명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예. 하지만 진영후 부대표의 후임으로 생각한다면 김건휘 전무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할 겁니다.”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차차기 대표라면 김건휘 전무의 나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진영후 부대표가 아무리 못해도 임기 3년 정도는 해 줄 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오승철 대표와 김건휘 전무를 두고 고민하면 되는 것인가?’

행복한 고민이 될 거 같았다.

둘 다 자동차 업계에서 최고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인재들이었으니 말이다.

* * *

“전무님,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비서의 질문에 김건휘 전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거죠?”

“대표님이 곧 바뀔 수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 말이에요.”

“하운철 대표님 말씀입니까?”

“예! 나이 때문에 은퇴하신다는 소문이에요.”

그 말에 김건휘 전무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성의 존재가 절대적이긴 했으나, 사실 하운철 대표 역시도 혜성 자동차를 키우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하였다.

인재들을 모은 것도 하운철 대표였고, 수많은 하청 업체들을 감독한 것도 하운철 대표였다.

한성이 그리는 청사진을 실질적으로 현장에 옮기는 것도 하운철 대표의 역할이었고 말이다.

아니, 이런 것을 제치고 사실 하운철 대표가 대표로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혜성 자동차에 큰 역할을 한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왜냐하면, 하운철 대표가 중심을 잡고 있을 때는 누구도 감히 파벌 다툼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운철 대표의 파벌이라도 볼 수 있는 동화 자동차 출신 임원들 역시도 텃세를 부릴 생각을 못 했을 정도였다.

‘대표님께서 은퇴하신다면, 혜성 자동차는 파벌 다툼으로 개판이 되고 말 텐데.’

아마 누가 대표로 임명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외부 인사라도 그럴 것이고, 특히 내부 인사라면 더욱더 큰 진통을 겪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기화 자동차 대표직을 두고 한 차례 크게 말다툼을 벌인 전적이 있는 혜성 자동차의 임원들이었다.

그나마 한성이 기화 자동차의 오승철 대표를 그대로 유임하는 결정을 내려 유야무야됐지만, 혜성 자동차 대표직이라면 절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지 않을 터.

실제로 하운철 대표가 곧 은퇴할 거라는 소문을 접한 이후, 혜성 자동차 내부에서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저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사람이 차기 대표가 돼야 한다며 시끄럽게 굴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엔 나에게 관심도 없던 작자들이 온갖 감언이설을 하며 친한 척 구는군.’

그가 아무리 젊어도 전무는 전무였다.

더군다나 김건휘 전무는 외부 인사 출신으로 거하나 동화, 고림 출신이 아니었기에 여기저기서 그를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그때, 전화를 받던 비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김건휘 전무를 불렀다.

“위에서 부르십니다.”

“위라면 대표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그보다 더 위, 회장님의 부름입니다.”

“회장님이 저를 부르셨단 말입니까?”

“예. 회장님께서 전무님과 단둘이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회장님 집무실로 가셔야 할 거 같습니다.”

김건휘 전무는 눈을 크게 떴다.

회장님의 부름이라니.

언젠가 한성과 독대하는 순간을 고대하긴 했지만,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다.

‘공교로운 시기로군.’

하필 대표가 바뀔 거라는 소문이 날 때 이런 기회가 찾아오다니.

괜한 기대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저도 모르게 헛된 기대를 하게 된다.

‘내가 대표에 오르면 누구보다 더 혜성 자동차를 잘 이끌 수 있을 텐데.’

김건휘 전무는 그 같은 생각을 하며 신속하게 한성의 집무실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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