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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14화 (214/300)

214화 미국에 인맥을 만들다

‘하지만 혜성 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이 되려면 노사의 말처럼 미국 대통령까지는 아니어도 미국 정계의 인맥을 최대한 얻을 필요가 있어.’

일본 기업들이 하는 짓만 봐도 정계의 인맥은 필수였다.

거액의 로비 자금을 활용하여 일본에 우호적인 정치인을 양성하기 위해 수십 년간 꾸준하게 노력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런 노력의 결과에도 플라자 합의는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일단 캘리포니아 부지사와는 어느 정도 인맥이 생기긴 했습니다.”

(재작년에 샌호제이의 반도체 공장 준공식 때 만났었다고 했던가?)

“예. 물론 식사를 두 번 같이 한 것에 불과했지만 말입니다.”

(두 번?)

“작년에도 같이 식사를 했었습니다.”

(의외로군. 캘리포니아의 부지사쯤 되는 인물이 너에게 시간을 내주다니 말이야.)

주지사도 아니고 일개 부지사였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캘리포니아 하나가 대한민국 전체보다 경제력으로 보나 세계적인 영향력으로 보나 훨씬 앞서 있었다.

노사가 감탄한 것도 괜한 것이 아니라는 뜻.

부지사라면 캘리포니아주에서 이인자라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작년에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에 도전했다가 공화당에 아쉬운 패배를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거는 정말 아쉬운 일이로군. 상원의원 하나 네 편으로 만든다면 앞으로의 일이 수월할 텐데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미국 대통령까지 갈 필요도 없이, 상원의원이나 주지사 정도 되는 정치인과 친분이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지금 당장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조차 쉽지 않은 일이지.’

부지사와의 인맥도 솔직히 말하면 인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저 캘리포니아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해줘서 감사 인사를 전한 것에 불과했었으니까.

뭐, 작년에는 자동차까지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서 그런지, 나에 관한 관심이 조금 생긴 듯 보였었지만 말이다.

(캘리포니아 부지사의 이름이 뭐였었지?)

“레오 매카시라고 합니다.”

(흠,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군.)

“그렇습니까?”

(일단 미래의 핵심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흔한 이름도 아닌데,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을 보면 말이야.)

아쉬웠지만, 솔직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만약 레오 매카시 부지사가 미래의 권력자가 될 인물이었다면 진즉에 노사가 언질을 줬을 테니까.

(그래도 부지사쯤 되면 인맥이 상당할 테니, 교두보로 삼을 수는 있겠어. 운이 좋으면 빌 클린턴에게까지 연결될 수도 있고.)

빌 클린턴과의 인맥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긴 했다.

무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아무도 예상 못 한, 심지어 본인까지도 이길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대통령이기도 했고.

‘심지어 루즈벨트 이후로 민주당 최초의 2선 대통령이라지?’

무려 8년의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이었다.

인맥을 얻는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성과라고 볼 수 있으리라.

“부지사와의 인맥을 최대한 신경 써서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지금 당장은 공화당의 시대지만, 민주당이고 공화당이고 일단 인맥을 만들어 놓으면 손해는 아니다.)

“예.”

(그나저나 내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쁘띠엘르나, 원더우더 브랜드들이 짝퉁 때문에 꽤 곤란을 겪고 있다던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동대문에서 만 장 단위로 짝퉁을 양산하고 있어서 매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기는 합니다.”

혜성의 모태 기업이고 내가 처음 도맡은 기업이니 혜성 모직은 여러모로 나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반도체나 자동차, 전자가 쑥쑥 커지는 때에도 혜성 모직 관련 업무에 더 많은 비중을 뒀을 정도였다.

하지만 혜성 모직의 성장세는 어느 순간부터 둔화하기 시작하였다.

브랜드의 인지도가 커지니 시장에 우리 제품을 똑같이 베낀 짝퉁들도 점점 많아졌고, 그로 인해 매출도 떨어지게 된 것이다.

(대비는 어떻게 하고 있지?)

“솔직하게 말하면 대비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공익광고를 최대한 늘려서 소비자들이 양심적인 소비를 하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대비책입니다.”

(당장 효과를 얻기는 힘들겠구나.)

“어차피 저작권 문제야 계속 신경 써야 할 일이니, 장기적인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도 이런데 나중에 중국산 제품들이 들어오면 손해가 막심하겠어.)

“안 그래도 저희가 수출하는 홍콩이나 필리핀에서 중국산으로 보이는 짝퉁 제품이 늘어났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쯧쯧.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겠군.)

내가 괜히 고부가 가치 산업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올 터.

그나마 자동차나 반도체, 전자 산업이야 20년 정도는 안심해도 되겠지만 다른 산업은 어림도 없었다.

당장 의류 제품만 해도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뭐, 혜성 모직처럼 브랜드 명성을 쌓는다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천안문 사태가 올 6월에 벌어진다고 했었죠?”

(6월 4일에 벌어질 건데, 그건 왜?)

“혹시 이 사건을 저희가 따로 이용할 수는 없을까요?”

내 말에 노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천안문 사태를 어떻게 이용하게?)

“방법이야 지금부터 찾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글쎄, 나는 조금 회의적이군.)

“그렇습니까?”

(우리가 개입해서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설령 막을 수 있다 해도 우리에게 득 될 것은 없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너도 요즘 젊은이들처럼 중국의 민주화를 지지하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니지?)

한국에서는 요즘 중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이미 대학가에선 중국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현수막이 걸릴 정도였는데, 일종에 의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먼저 걸어온 민주화의 길을 중국인들도 함께 걸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을 민주화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저는 그런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역사적으로 중대한 일이니 어떤 식으로든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중국이 민주화에 성공했으면 더 무서운 나라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중국의 민주화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땅 크기는 대국이나, 사람이 소인이라서 중국이라 부른다는 말이 미래에 생길 건데, 만약 민주화에 성공하여 중국인의 가치관이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 거 같으냐?)

“주변국의 미움을 덜 사게 되겠군요.”

(그래. 미래의 중국이 늘 발목을 잡는 게 외교였는데, 중국의 약점이 하나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민주화로 인한 13억 인구의 결집도 무시할 수 없을 거고.)

“반대로 중국이 분열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능성 있는 추측이긴 한데, 그건 그거대로 문제야. 만약 중국에서 내전이라도 일어난다면 우리에 영향이 오지 않겠어? 세계사도 더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게 될 거고 말이야.)

“뭐가 됐건, 천안문 사태에 개입하면 득이 될 게 없다는 뜻이군요.”

(내 생각은 그렇다.)

노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 역시 천안문 사태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간접적으로 개입해서 혜성 그룹에 이익이 갈 수만 있다면 주저할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건 중국이야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지금 당장은 미국 인맥을 신경 써야겠어.’

아무래도 미국에 있는 신은규 대표를 통해 캘리포니아의 로비 회사를 고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이니, 정치인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려면 로비는 필수였으니까.

* * *

레오 매카시는 주 의회 근처의 식당에서 평소와 같이 식사하였다.

“후우, 캘리포니아 대학교를 과연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브라운이 지원금을 얼마나 요구할지가 관건일 것으로 보입니다.”

“늘 돈이 문제군.”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로서, 무려 캘리포니아 부지사가 되었으니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재선에 성공하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하지만 정작 레오 매카시는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지사로서 업무를 볼 때도 돈에 쫓기고 개인사에서도 돈에 쫓기는 인생이었으니 말이다.

‘4선까지 도전해 보고 이후에는 나도 투자 회사나 설립해보는 게 좋겠어.’

충분한 인맥이나 자본력을 갖추었다면 그 이상도 노려봤을 것이다.

대통령이야 엄두도 못 낸다지만, 주지사나 상원의원까지는 충분히 노려볼 만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인맥과 자본력은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가 상원의원이나 다른 높은 곳을 노린다 해도, 그 어떤 이도 그에게 후원해주지 않을 게 분명하리라.

실제로 작년에 유력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공화당에 패배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설득해봐야지. 등록금을 동결하는 게 나의 2선 공약이기도 했으니까.”

레오 매카시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그 같이 말할 때, 한 사내가 당당한 발걸음으로 그에게 걸어왔다.

“부지사님, 오랜만입니다.”

“척 로저스 씨군요.”

“잠깐이면 되는데,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내의 말에 레오 매카시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척 로저스.

민주당 유력 정치인의 보좌관 출신인 그는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로비스트로 활약하고 있었다.

“앉으시죠.”

갑작스러운 등장이었지만, 원래 로비스트들은 이런 식으로 등장하고는 했다.

그래서 레오 매카시도 자연스럽게 척 로저스를 자리에 앉혔다.

“제가 밥을 사야 하는데, 이렇게 다 드시고 난 후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척 로저스 씨를 본 것만으로도 반가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바로 본론을 묻자, 척 로저스가 좋은 소식이라며 이 같은 말을 전하였다.

“부지사님에게 후원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제가 얼핏 들었는데, 단위가 꽤 셉니다.”

“호오, 그래요? 저는 기업들과 그리 친하지 않은 편인데, 잘된 일이군요. 어떤 기업입니까?”

“들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외국의 기업이라서. 코리아 기업인데, 혜성이라고 합니다.”

“혜성이라.”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쪽 회장과 몇 번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젊고 잘생긴 동양인이라서 더 기억에 남았다.

보좌관이 마침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혜성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반도체 공장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고, 재작년에 앱설루트라는 고가의 자동차 브랜드를 런칭한 기업입니다.”

그 설명을 들으니 더 확실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회장의 성이 리라는 것부터, 혜성 그룹이 자동차와 반도체뿐만이 아니라 가전제품과 컴퓨터, 의류 심지어 호텔과 백화점까지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기업이야 미국에 진출하지 않았으니 크게 언급할 가치도 없겠지만, 반도체와 자동차는 매출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지?’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주지사를 상대로 앱설루트와 관련해서 몇 가지 로비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대단한 일본조차도 견제할 정도면 확실히 범상치 않다고 볼 수 있었다.

“혜성에선 어떤 것을 원한답니까?”

“일단 부지사님과 친해지는 게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쪽에서는 부지사님의 미래를 높게 평가하는 듯했습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일개 기업인이 자신을 상대로 평가하듯 미래가 어떨 거라느니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인은 달랐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직설적인 화법이 통했던 것이다.

특히 레오 매카시의 경우, 너무 무난한 정치인이란 평가를 듣고 있었기에 외국 기업의 이 같은 칭찬은 더욱 기분 좋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잘 됐군요. 안 그래도 저 역시 혜성 기업을 좋게 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혜성은 캘리포니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새로 준설된 반도체 공장에만 수천 명의 미국 노동자가 고용되고 있을 정도.

그래서 레오 매카시도 혜성을 긍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혜성에서 후원까지 약속하니, 더욱더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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