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목표는 미래 자동차다
기화 자동차가 결국 혜성 그룹에 인수되자, 기화 자동차 직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인수당해버렸잖아?”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다른 기업도 아니고 혜성이잖아.”
“좋기는 개뿔. 막말로 우리 다 잘릴 수도 있는 일이야.”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
“혜성에도 자동차 회사가 있잖아. 그 사람들 입장에서 우리가 불필요한 존재로 느껴질지 누가 알아.”
혜성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고 무조건 기뻐할 수는 없었다.
고용 관계가 승계될지조차 불명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과장님,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혜성 그룹의 직원이 된 거지 뭐.”
“혜성에서 우리를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부의 눈치를 보기 바쁠 텐데, 우리를 왜 잘라? 오히려 직원을 더 모집하면 모집했지, 우리를 자를 일은 없을 거야.”
“정말 그럴까요?”
“괜한 걱정들 말고 일이나 해!”
그나마 과장, 부장급이 나서자 직원들의 혼란이 잠잠해졌다.
간부들의 판단처럼 혜성에서는 기화 자동차 직원들을 해고할 생각이 없었다.
혜성 자동차와 기화 자동차를 합병할 의지가 없었으니, 기화 자동차 직원들을 해고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과장님의 말씀이 맞다면 혜성 그룹에 인수된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그건 그렇지. 혜성이 월급 면에서 가장 좋잖아? 운이 좋으면 2배 가까이 늘어날 수도 있을걸?”
“그랬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나는 월급보단 근무 시간이 더 마음에 들어. 혜성 자동차에 내 친구 있어서 이야기 들었는데, 거기는 야근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야근이 없다고? 와. 거기 토요일에도 오전 근무만 하지 않아?”
“아마 그럴걸.”
“적게 일하고 돈은 더 많이 받는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는데?”
혜성 자동차, 아니, 혜성 그룹 직원들의 월급이 어떤 기업과 비교해도 가장 높다는 사실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였다.
그런데 단순히 월급만 높을 뿐 아니라, 근무 조건과 복지까지 좋다는 것을 알게 되자 기화 자동차 직원들은 화색을 띄웠다.
앞으로의 근무 조건이나 월급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어도 장밋빛 환상을 꿈꾸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물론 일반 직원들의 반응만 이럴 뿐, 간부급부터는 반응이 조금씩 달라진다.
“차장님, 만약 기화 자동차가 혜성 자동차에 합병한다면, 저희는 어떻게 될 거로 생각하십니까?”
“글쎄, 잘리지는 않아도 좋은 대우를 받기는 힘들지 않을까?”
“역시 차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기화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야. 승진은 사실상 포기해야 할걸?”
“이럴 수가.”
“두 기업이 합병 안 되기를 바라야지. 기화 자동차가 기화 자동차로 남기만 한다면 우리의 상황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니 말이야.”
“기도라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던 차장이란 사람이 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혜성 그룹의 직원이 되었으니 이제 은행에 가서도 당당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겠어.”
기화 자동차의 간부로서 받는 대우와 혜성 그룹 계열사의 간부로서 받는 사회적인 대우는 아무래도 큰 차이가 있기 마련이었다.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금부터가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저도 벌써 추석이 기다려지는 거 같습니다.”
“추석이 왜?”
“지난 설날 때, 집안 어른들이 워낙에 잔소리를 많이 하셨거든요. 좋은 대학 가서 왜 기화 같은데 다니냐며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혜성맨이 되었으니, 그런 이야기도 쏙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도 그렇겠어.”
“대신 조카들에게 용돈은 많이 줘야 할 거 같다는 게 걱정이긴 합니다. 하하하!”
이처럼, 간부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출셋길이 막힐 것을 예상하며 불안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앞으로 달라질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하며 기뻐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임원들의 반응도 이와 비슷하였다.
다만 임원들 같은 경우는 출셋길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퇴직당할 것을 걱정하는 게 큰 차이였지만 말이다.
* * *
“하필 혜성이 인수하게 되다니, 이걸 어쩌면 좋습니까?”
“끙.”
“그러게 말입니다. 차라리 미래 그룹에서 인수했으면 좋았을 것을.”
임직원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으나, 큰 거부감을 내비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일단 기화 그룹보다 혜성 그룹이 근로 조건이나 다른 어떤 면을 봐도 우수한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 그중에 강경 노선을 주장하는 노조 집행부 간부들은 혜성에 인수당했다는 것에 엄청난 거부감을 느꼈다.
“혜성 회장은 위선자라 우리 조합을 변질시키려 들 겁니다.”
“맞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도 혜성처럼 어용 노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혜성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혜성 자동차의 노동조합의 모습이 어용 노조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일어난 그들은 투쟁을 신념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투쟁하지 않고 경영진과 합의하는 모습을 보이는 혜성 자동차의 노동조합이 어용 노조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들어서 아시겠지만 벌써, 직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위원장의 그 같은 말에 간부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노조는 결국 직원들의 지지가 있어야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조직이었다.
그런데 직원들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혜성 그룹으로 넘어가서도 그들의 지지를 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직원들이 기화 자동차 경영진에 불만을 가졌던 주된 이유는 동종업계 기업과의 임금 차이였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동종업계 기업은 다름 아닌 혜성 자동차였다.
기화 자동차 노조도 늘 혜성 자동차와 비교하며 직원들을 충동질하였으니, 혜성 그룹으로 인수된 상황에서 분위기가 바뀌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직원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조합원들의 반응도 심상치 않습니다.”
“조합원들까지 동요하고 있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혜성 경영진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은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투쟁하지 않아도 근무 조건이 좋아질 거라는 헛된 기대도 하는 듯 보이고 말입니다.”
“허어, 기화 경영진이나 혜성 경영진이나 무슨 차이가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에서 워낙 찬양해대니 젊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거지요. 몇몇은 혜성 그룹 회장이 자선 사업가인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큰일이에요.”
조합원들까지 동요하고 있다면 이제 막 커지기 시작한 기화 자동차의 노동조합은 순식간에 성장 동력을 잃게 될 것이다.
어쩌면 혜성 자동차처럼 어용 노조나 다를 게 없는 조직이 될 수도 있는 일.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거 같습니다.”
“그럼요. 혜성 그룹 경영진을 쫓아내야 합니다.”
“맞습니다. 쫓아내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존재를 확실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간부들은 하나같이 그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시위든, 파업이든, 자신들의 힘을 보여줘서 혜성 그룹의 경영진에 존재감을 각인시키기로 결정지은 것이다.
* * *
40대, 50대의 중년 사내들이 가지각색의 눈빛을 하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고는, 그들을 향해 나직하게 선언하였다.
“혜성 자동차와 기화 자동차는 합병하지 않고 그대로 나뉘어서 유지하겠습니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나왔다.
여태까지 불안해하고 있었다더니, 정말 그런 거 같았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닌데 그걸 모르고 있군.’
두 기업이 따로 유지되니 당연히 기존의 임원진도 그대로 유임되기는 할 것이다.
지금 기화 자동차 임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나는 모든 임원을 유임할 생각은 없었다.
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늘 그래왔듯, 무능력하거나 비리가 심한 이들은 내칠 생각이었다.
“기화 자동차의 임원진은 그대로 유임할 겁니다. 다만, 내사를 통해 비리가 적발된 임원은 예외입니다.”
몇몇이 몸을 움찔하였다.
찔리는 구석이 많은 모양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태연한 기색이었는데, 나는 그들을 오히려 유심히 봤다.
‘과연 저들 중에 깨끗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청렴하기에 태연하게 구는 것은 아닐 거다.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태연하게 구는 것일 터.
‘반드시 다 잡아주마.’
굳이 노사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혜성의 정보력은 노사의 도움이 없더라도 재계에서 제일가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예, 회장님.”
“아시는 분은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늘 세계를 노리는 사람입니다.”
내가 거창하게 운을 떼자 다들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기화 자동차 역시, 올해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를 노릴 것입니다.”
물론 기화 자동차도 미래 자동차와 정우 자동차를 따라 다른 나라에 진출한 상태였다.
미국 포드사와 합작해서 만든 프리드를 수출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한국 언론에서도 거의 언급이 없을 정도로 미국 시장에서 기화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품질로 극히 일부의 소비자를 신규 고객으로 끌어들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기화 자동차가 세계를 노리려면, 당연히 여러분들도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인재가 되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기화 자동차 임원들은 실력 하나로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입니다. 절대 회장님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기화 자동차 회장, 아니, 이제는 기화 자동차 대표로 불리는 오승철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런 오승철의 모습을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임원들은 어떨지 몰라도, 오승철은 확실히 뛰어난 인재가 맞았다.
김수호 기화 그룹 회장이 혜성 자동차와 다른 경쟁 업체를 꺾으려고 외국에서 어렵게 모셔온 인재였으니 말이다.
“자신감 있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신감 있으시니, 미래 자동차를 넘어서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미래 자동차, 말씀입니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어렵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가능한 일입니다. 애초에 우리 기화 자동차의 목표는 처음부터 업계 1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3년. 3년이란 시간을 주겠습니다. 그 안에 미래 자동차를 따라잡으십시오.”
내 말에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던 오승철이 크게 당황하였다.
설마 시간을 이렇게 적게 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하, 하지만 미래 자동차는…….”
“어려울 거 같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래 자동차가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세계에서 알아주는 기업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기화 자동차는 세계를 노릴 거라고. 그런데 고작해야 미래 자동차에 겁을 내서야 되겠습니까?”
내 말을 들은 오승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미래 자동차는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기업이 아니었으니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반론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신생 기업에 불과했던 혜성 자동차를 업계 3위까지 끌고 올라온 장본인이었다.
문외한이기는커녕 업계에서 가장 성장력이 높은 혜성 자동차의 사주였으니 그는 내 말에 그저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혜성 자동차도 도와줄 것이니, 반드시 3년 안에 미래 자동차를 꺾어주십시오. 만약 3년 안에 대중차 부문에서 미래 자동차를 넘어선다면, 엄청난 성과 보상이 있을 겁니다.”
엄청난 성과 보상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에 임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부자 중의 부자인 재벌 중에서도 가장 부유하다고 알려진 게 바로 나였다.
더군다나 혜성 그룹은 성과급 하면 남부럽지 않게 주는 곳이었으니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기대해도 결코 손해는 아닐 겁니다. 미래 자동차를 꺾기만 한다면 억 단위도 챙겨줄 수 있으니.’
보상은 분명 엄청날 것이다.
물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시 받게 될 처벌도 그만큼 크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