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205화 (205/300)

205화 몇백억쯤이야

<기화의 좌절, 국민 자동차는 이렇게 사라지나?>

처음 기화 자동차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을 때, 왕재구 회장은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요즘 들어 기화 자동차와 관련된 뉴스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거야?”

“기화 자동차의 상황이 저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모양입니다.”

“그렇게 심각할 일이 있었나?”

“파업이 잦아서 공장 가동률이 떨어졌기도 했고, 2년 전부터 다시 시작한 승용차 부문에서 나는 적자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래?”

왕재구 회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화 자동차의 사정이 그가 파악하던 것보다 심각한 거 같아 의문스럽긴 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기화 자동차는 한때 미래 자동차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기업이었다.

경쟁자가 몰락하고 있으니, 왕재구 회장으로선 흡족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혜성 자동차도 기화 자동차처럼 몰락하면 좋겠군.”

예전에야 가장 위협적이었던 게 기화 자동차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재계 2위에 오른 혜성 그룹의 혜성 자동차가 기화 자동차를 넘어섰던 것이다.

“아쉽게도 혜성 자동차는 악재랄 게 없어서 당분간은 성장세를 유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쯧, 미국에서도 여전히 잘 팔린다지?”

“그렇습니다. 올해에는 앱설루트로만 3조 매출을 예상한답니다.”

“황당한 일이군. 혜성에서 자동차를 몇 대나 판다고 3조 매출이야?”

“프리미엄 자동차다 보니 아무래도 차이가 큰 거 같습니다.”

“후우, 우리도 서둘러서 출시 준비를 해야겠어.”

그렇게 기화 자동차로 시작했던 화제는 언제나처럼 혜성 그룹의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왕재구 회장은 이때까지만 해도 기화 자동차를 다시 언급할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기화 자동차와 관련해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회, 회장님! 혜성 그룹에서 기화 자동차를 인수하겠다고 합니다.”

“혜성이 기화를 인수한다고?”

실로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업계 3위인 혜성 자동차가 업계 4위인 기화 자동차를 인수한다니.

만약에 진짜로 혜성 자동차가 기화 자동차를 인수한다면 단번에 정우 자동차와 미래 자동차를 제치고 혜성 자동차가 업계 1위에 떠오르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래 자동차, 아니 미래 그룹 전체가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기화 회장의 반응은 어떻지?”

“아직은 혜성의 제안에 이렇다 할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기화 그룹의 김수호 회장은 매각을 반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혜성에서 기화 자동차를 인수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되는 건가?”

“혜성에서 이미 공격적으로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했답니다. 김수호 회장이 매각을 거부해도 혜성에서 강제로 인수 합병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한성, 이 빌어먹을 놈!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몰상식적으로 기화 자동차를 인수하려 드는 거야?”

왕재구 회장이 답답한 목소리로 외칠 때, 갑자기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 명예 회장님이 오셨습니다.”

명예 회장 즉, 자신의 아버지가 왔다는 소식에 왕재구 회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갑자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소식 듣고 왔다.”

“소식이라면?”

“혜성이 기화 자동차를 인수한다는 소식 말이다.”

“아. 안 그래도 그와 관련해서 대응책을 논하고 있었습니다.”

“대응책을 논할 게 뭐 있어?”

“예?”

“무조건 막아야 한다! 혜성이 기화 자동차를 인수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해!”

왕주형 명예 회장의 말에 왕재구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혜성 자동차가 기화 자동차를 인수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동차 업계를 석권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자동차 업계를 넘어 재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줄 일이었기에 반드시 막아야 했다.

‘내가 회장이 되자마자, 재계 순위가 바뀌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지.’

제아무리 혜성 그룹의 자금력이 넘쳐난다 해도 그는 혜성 그룹과의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미래 그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한번은 혜성 그룹과 승부를 봐야 했던 것이다.

* * *

기화 그룹 김수호 회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팔 생각도 없는데, 미래 그룹까지 끼어들다니.”

혜성이 인수 의사를 타진했을 때도 황당한 기분이었었다.

언론에서 마치 부도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도하기는 했지만, 설마 같은 업계의 혜성 자동차가 나설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혜성 자동차에 이어 미래 자동차까지 인수전에 참가하였다.

정작 당사자는 매각 의사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미래 그룹의 왕재구 회장이 찾아왔습니다.”

“왕재구 회장이?”

김수호 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화 자동차를 노리는 사람 중 한 명이 지금 시점에 찾아온 이유야 뻔했다.

그의 지분을 인수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어디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들어는 볼까?’

매각 의사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미래에서 엄청난 제안을 한다면 기화 자동차를 포기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한성 회장, 그 오만한 작자에게 회사를 넘기면 안 됩니다.”

“저도 기화 자동차를 혜성 그룹에 넘길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상대는 혜성 그룹입니다. 작년에만 10개에 가까운 기업을 인수했던 바로 그 혜성 그룹 말입니다.”

“걱정해 주시는 것은 좋은데, 저희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기화 자동차를 미래 그룹에 넘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화 자동차를 매각할 생각이 없습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시장의 가격보다 30%를 높게 쳐주겠습니다.”

김수호 회장은 작게 탄성을 질렀다.

혜성 그룹 때문에 기화 자동차의 주가는 미친 듯이 상승하는 중이었다.

시가총액이 거의 3천억에 육박할 정도.

이런 상황에서 30%를 높게 쳐준다면, 보유한 지분상, 그가 받게 될 돈은 천억이 넘었다.

‘하지만 천억을 벌겠다고 기화 자동차를 매각할 수는 없지.’

기화 자동차 말고도 다른 계열사도 있었지만, 기화 그룹의 핵심은 기화 자동차였다.

천억이 아무리 큰돈이라 해도 핵심 계열사를 매각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어떤 제안을 하셔도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가 단호하게 말하니, 왕재구 회장이 한발 물러났다.

물론 왕재구 회장이 기화 자동차 인수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혜성이 기화 자동차를 노리는 한,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군. 이제 두 기업은 나를 같은 경쟁 상대로 봐주지도 않는 건가?’

1세대 경영인으로서 실로 불쾌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잠시나마 자동차 업계의 1위도 했었던 기업이 기화 자동차였다.

그런데 이제는 신생 기업인 혜성 자동차에조차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만 아니었으면 아무리 못해도 업계 2위는 유지했을 텐데.’

생각할수록 분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행정 조치라는 그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만 아니었으면 누가 기화 자동차를 이렇게 무시했겠는가.

‘특히 마음에 안 드는 건 혜성 그룹이야.’

혜성 자동차는 기화 자동차 기준으로 신생 기업에 불과하였다.

그런데도 업계 3위에, 미국의 프리미엄 시장을 석권했다며 떠들썩하게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하였다.

심지어 지금은 기화 자동차 인수를 운운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김수호 회장으로선 도저히 혜성 그룹을 좋게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회장님, 혜성 그룹의 이한성 회장이 찾아왔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마침 한성이 그를 찾아왔다.

‘용건이야 뭐,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겠어.’

아니나 다를까.

한성이 소파에 앉자마자 이 같은 말을 하였다.

“귀사가 가진 기화 자동차의 지분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갑자기 찾아와서 하는 소리가 지분을 인수하고 싶다는 말입니까?”

“인수 의사는 계속해서 타진해왔지 않습니까? 회장님께서 답변이 없으시기에 제가 직접 답변을 들으러 왔습니다.”

“답변할 가치도 없었기에 답변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저는 기화 자동차를 매각할 생각이 없습니다.”

“프리미엄으로 시장 가격의 50%를 쳐주겠습니다.”

50%라는 말에 김수호 회장은 눈을 크게 떴다.

미래 그룹의 제안도 놀라웠지만, 아무리 그래도 50%라니.

김수호 회장의 지분을 생각하면 50%는 무려 4백억이었다.

즉, 한성은 김수호 회장의 지분을 1,200억에 매입하겠다는 의미였다.

‘돈이 많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사우디아라비아에 받은 자금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노키아니, 샤롯 제과니, 이런저런 회사들을 인수해서 자금을 다 썼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왕재구 회장의 제안을 들었을 때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었는데, 한성의 제안을 들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미래 그룹보다 무려 2백억을 더 쳐준다고 하지 않은가.

안 그래도 노조와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던 터라, 의욕이 많이 떨어지던 참이었다.

승용차 부문의 성과가 예상보다 훨씬 저조하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서 1,200억의 현금이 그의 손에 들어온다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잔금은 한 달 내에 일시금으로 드리겠습니다.”

대금 전액을 일시금으로 지급하겠다니.

실로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김수호 회장은 고개를 끄덕일 뻔한 것을 간신히 인내하였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지분 인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니, 잘 생각해 주실 바랍니다.”

“협박입니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하다는 이야기해 준 거뿐입니다.”

결국 협박이라는 뜻이었다.

김수호 회장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혜성 그룹에서 매입한 지분이 상당하였다.

한성의 경고대로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것은 김수호 회장이었다.

그는 자금이 그리 넉넉지 않아 경영권을 방어하기가 곤란했으니 말이다.

“최대한 빨리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렇게 한성이 물러나자 김수호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정말 기화 자동차를 매각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왕재구 회장이나 한성이나 쉽게 물러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두 재벌 그룹 모두 자금력이 넘쳐나는 데다, 일종에 자존심 싸움까지 되어버린 상태였다.

기화 자동차의 지분이 고작 27%에 불과한 김수호 회장으로선 하나도 아니고 두 그룹을 상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어차피 매각해야 한다면, 두 기업을 경쟁시켜 내 지분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밖에 없겠어.’

김수호 회장은 그 생각을 하며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왕재구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성과의 일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 * *

“김수호 회장과의 이야기는 잘 끝나셨습니까?”

진봉현 비서실장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길어야 보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뭐, 그 안에 결정을 안 내리면 강제로 경영권을 빼앗아야겠지.’

노사의 지분과 합치면 이미 김수호 회장의 지분을 넘어선 상태였다.

3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김수호 회장의 우호 지분이나 미래 그룹이 매입한 지분이 변수일 수 있겠지만, 보름이란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그런 변수들을 충분히 없앨 수 있었다.

‘돈이야 많이 쓰겠지만, 기화 자동차를 얻는데 몇백억 더 쓰는 것은 별로 아깝지 않은 일이지.’

일본에서 번 2조란 돈이 실로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몇백억 정도의 손실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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