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191화 (191/300)

191화 내기를 하자고?

“이 회장을 탓할 생각은 없으니 염려 말게. 오히려 이 회장 덕에 이 정도로 끝나는 거겠지. 노태호 대표를 지지했어 봐, 신진호 회장 꼴이 나지 않았겠어?”

“올림픽이 시작되면 더는 고생할 일도 없을 테니, 그때까지만 버티십시오.”

“하하, 안 그래도 올림픽만 기다리는 중이야.”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청문회에 시달리는 재벌 총수들은 전부 올림픽만을 기다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생각해 보면 웃기는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을 꺼리던 것이 재벌 총수들이었는데 말이야.’

내가 속으로 피식 웃는데 권오중 회장이 물었다.

“그런데 이 회장은 올림픽 준비 잘하고 있나?”

“아시안 게임 때와 다를 게 있겠습니까? 탁구와 배구, 복싱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스포츠를 지원하는 것 말고 인맥이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준비를 하고 있지만 구태여 그 사실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권오중 회장이 묻는 것도 스포츠와 관련된 것일 테니까.

“후원하는 종목도 많군. 금메달은 몇 개나 딸 거 같은가?”

“글쎄요. 금메달을 노릴 게 아니라, 은메달이나 동메달이라도 따면 그걸로 만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이지만, 2위나 3등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특히 이번 올림픽은 노사가 이야기해준 대로라면 메달을 얻기가 무척이나 힘들 것이다.

소련과 동독 등, 공산주의 진영 국가들이 이를 갈고 출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편파 심사도 무척이나 심할 거라던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아마 공산주의 진영의 심판들이 서로 짜고 편파 심사를 할 가능성이 컸다.

우리도 개최국이니 어느 정도 심사에 유리하겠지만, 내가 후원하는 종목들이 금메달을 따는 것은 어려울 거 같았다.

“자네가 그리 약한 소리를 하다니. 실망이군.”

“약한 소리라니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시안 게임에서 1위를 했던 우리나라인데, 올림픽이라고 어려울 게 뭐가 있겠어?”

“세계를 무대로 하는 건데 당연히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나는 적어도 다섯 개는 딸 생각이야.”

“금메달 다섯 개요?”

“그래. 다른 기업도 아니고, 정우 그룹의 후원을 받는 선수들인데 아무리 못해도 다섯 개는 따주지 않겠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회장이 저렇게까지 금메달을 기대한다면 선수들이 얼마나 부담감을 느낄까?

괜히 정우 그룹의 후원을 받는 선수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혹시 자네, 나와 내기할 생각 없나?”

“내기요? 어떤 내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떤 내기긴. 금메달을 누가 더 많이 따는지를 내기하자는 거 아니겠나?”

뜬금없이 금메달 내기라니.

누가 보면 본인이 직접 올림픽에 나가는 것인 줄 알겠다.

“저는 내기 같은 거 별로 흥미 없습니다.”

“자신이 없나 본데? 하긴, 혜성 그룹이 스포츠 쪽으로는 별로 재미를 본 적이 없긴 하지.”

권오중 회장의 도발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혜성 팰리스가 작년에 몇 위를 한지 아시고 그러십니까?”

“3위를 한 거 가지고 잘난 척하는 건가?”

“신생 구단이 첫해에 3위를 한 게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아시면서 그런 도발을 하시다니. 좋습니다. 내기에 무엇을 거시겠습니까?”

나는 권오중 회장의 유치한 도발에 한 번쯤 넘어가 주기로 하였다.

안 그래도 스포츠 부심을 부리는 것이 꼴 보기 싫었는데, 이참에 권오중 회장의 콧대를 확 눌러주고 싶었다.

‘우리 선수들이라면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혜성 장학회는 2년 전부터 예체능 계열에도 손을 뻗고 있었다.

이번 올림픽에 혜성 장학회가 후원하던 선수들도 많이 출전하니, 성과를 기대해봐도 좋을 듯싶었다.

“난 잠실역 부근의 빌딩을 원하네. 물론 그냥 달라는 것은 아니고, 제 가격에 팔아줬으면 좋겠어.”

왜 유치한 도발을 하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요즘 잠실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군.’

올림픽으로 인해 잠실의 가치는 더더욱 높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 경기장이 잠실에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정부에서도 혜성 그룹이 소유한 부동산을 노리고 있을 정도였다.

“벌금도 내셔야 할 텐데, 현금은 충분하게 가지고 계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빌딩 한두 개 채 돈도 없겠나?”

“빌딩 한두 채라. 못해도 백억은 필요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두 채는 무리고 한 채는 살 수 있네.”

“근데, 제가 이기면 권오중 회장님은 저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무엇을 원하나?”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계열사야 원하는 게 많았다.

하지만 겨우 이런 내기에 계열사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제가 알기로 권 회장님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인맥이 상당하시다고 들었는데, 저에게 그 인맥 좀 소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권오중 회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이 회장이 나를 좀 아는군. 내가 가진 중동의 인맥이 확실히 대단하긴 하지. 폐회식에 온다던 파이잘 왕자도 사실상 내 친구나 마찬가지일세.”

“정말입니까?”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냥 생각난 김에 내기로 요구한 건데, 설마 파이잘 왕자까지 인맥으로 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 회장이 이기면 파이잘 왕자를 소개해주지. 그럼 되겠나?”

“예, 저는 그거면 만족합니다.”

“이거 내가 손해 보는 거 같아. 파이잘 왕자와의 인맥은 빌딩 한 채가 아니라 열 채보다 귀한데 말이야.”

“그래서 무르시겠다는 겁니까?”

“내가 언제 그랬나? 그냥 하는 소리지. 하하, 아무튼 이 회장과의 내기 때문이라도 올림픽이 더 기대되는군.”

나도 그랬다.

내기에서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손해 볼 것은 크게 없을 거 같았다.

잠실의 땅이야 워낙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많아서, 빌딩 몇 개 팔아도 문제 될 게 없었고 말이다.

* * *

오현민은 장래가 유망했던 복싱 선수였다.

처음 복싱을 시작했던 중학교 때부터 연전연승하며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얼마나 재능이 뛰어났는지, 불과 18살의 나이에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했을 정도였다.

아마 그때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시지만 않았다면, 그는 아무리 못해도 최종전까지 올랐을 것이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뒤, 오현민은 기나긴 슬럼프를 맞이하였다.

그와 그의 동생들을 거둬준 사람은 노령의 할머니였고, 할머니 혼자서는 생계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다.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복싱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혔던 오현민은 그렇게 빛을 잃어갔다.

하지만 그때 그에게 기적이 찾아왔다.

1986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추운 겨울의 어느 날, 혜성 장학회가 그에게 후원을 약속하였다.

“저, 정말 복싱만 하면 이 돈을 매달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오현민 선수. 다른 일은 하지 마시고, 복싱에만 집중해주십시오.”

월 50만 원.

그저 복싱만 하면 직장인 월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준다고 하는 혜성 장학회 직원의 말에 오현민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학교든, 협회든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었다.

간혹 쌀이나 연탄 얼마씩을 보내줄 뿐이었다.

그런데 그와는 전혀 연이 없던 혜성 장학회에서 이런 엄청난 지원을 해준다고 하니 그로서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 회장님께서는 오현민 선수의 재능을 믿고 있습니다.”

“회장님 말씀입니까?”

“예, 그러니 부디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굴지의 대기업인 혜성 그룹 회장이 자신을 알고 있다니.

물론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었지만, 오현민은 들뜬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와아! 이게 뭐야?”

“TV다! TV!”

“세탁기도 보내줬어!”

혜성의 지원은 그저 월 50만 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각종 가전제품까지 보내주었는데, 모두 다 오현민의 집에는 없던 것들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이한성 회장님께 이 은혜를 갚고 말겠어!’

복싱 선수로서의 오현민은 이때 부활하였다.

생계 걱정이 사라지자, 오롯이 복싱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실력이 빠르게 증진하였다.

그러다 1988년, 마침내 올림픽의 해가 되었다.

당연하겠지만, 오현민의 목표는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국가대표가 되어 반드시 메달을 따고 마리라.

“이번에도 KO로 오현민 선수가 승리하였습니다.”

“와아아아아!”

“오현민 네가 최고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어 마침내 국가대표에 선발이 된 것이다.

‘아자, 아자!’

오현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짜릿하였다.

‘역시 나는 복싱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어!’

다시금 혜성 그룹에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혜성 장학회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88 올림픽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아마 내년, 아니 내후년까지도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군대에 가서 다시는 복싱에 도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고 말이다.

‘국가대표가 된 것에 만족할 시간이 없어. 할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혜성 그룹을 위해 반드시 메달을 따야 한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오랜만에 혜성 장학회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오현민 선수,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곧 태릉에 들어가신다고 하여 급하게 찾아왔습니다.”

“아닙니다. 혜성 장학회라면 언제 찾아오셔도 환영입니다.”

“하하, 제가 오늘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회장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기 위함입니다.”

오현민은 눈을 번쩍 떴다.

회장이라면, 그의 은인이나 다를 게 없는 한성을 말하였다.

당연히 그로서는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께서요?”

“예, 회장님께서 오현민 선수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제게 감사하다니요.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 하는데, 어찌…….”

“기대하신 것 이상으로 실력을 증진했으니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저 회장님의 은혜를 갚고자 노력했을 뿐입니다.”

“은혜라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그리고 혹시 오현민 선수, 가지고 싶으신 게 있으십니까?”

그 같은 물음에 오현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가지고 싶은 게 있냐고 묻는다면 누구라도 의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지고 싶은 거라면?”

“메달을 따내신다면 회장님께서 어떤 것이든 선물로 드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설령 강남 아파트 한 채라도 말입니다.”

“……!”

혜성 장학회 직원의 말에 오현민은 입을 떡 벌렸다.

아파트, 심지어 강남 아파트를 주겠다고?

평생 돈을 모아도 과연 살 수 있을지 의문인데, 메달만 따면 그걸 준다고 한다.

‘내가 갚아야 할 은혜도 아직 남아있는데…….’

속으로 그런 생각도 했지만 그렇다고 받지 않겠다는 말하진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강남 아파트이지 않은가.

거절하기엔 너무나 많은 돈이었다.

‘근데 회장님께서 나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하신가 보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혜성 그룹이 대기업이라 해도 누구에게나 이런 조건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현민이 메달을 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이 같은 조건을 제시하는 것일 터.

‘만약에 메달을 못 따면 회장님을 볼 낯이 없겠어.’

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직원이 말했다.

“아, 그렇다고 너무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령 메달을 따지 못해도 좋은 성적만 내신다면 회장님께서는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오현민은 쓰게 웃었다.

그런 말을 한다고 부담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현민은 마음을 굳세게 먹었다.

한성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건 기쁘게 생각할 일이었다.

‘회장님께서 내 메달을 그리도 원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메달을 따는 수밖에!’

안 그래도 의욕이 넘쳐나던 그였다.

그런데 강남 아파트 한 채라는 보너스까지 추가되자 더욱더 의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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